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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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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히나 노아는 여러모로 싱숭생숭한 기분이다. 원래도 SNS에 능숙한 그녀이기에 일상적으로 어느 정도의 관심은 늘 받는 그녀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꽤 컸다.
[노아, 벌써 춤 영상 인터넷에 돌고 있어. 조회수 꽤 나올 것 같아!]
성묵이 알려준 ‘그 춤’이 담긴 쇼츠가 벌써 조회수 30만을 돌파했다. 이 기세라면 꽤 높은 조회수를 기대해도 좋으리라.
심지어 문혁고 남학생들의 상당수가 경기를 보러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게 온전히 노아 덕분이라 하긴 힘들겠지만, 꽤 영향이 있는 건 분명하다.
베실베실 웃음이 나오는 노아.
그러나 그녀는 자기 뺨을 찰싹 눌렀다.
“들뜨지 마, 노아!!”
챱!
얼얼해진 뺨을 부여잡고 문혁고 SNS에 들어간 그녀. 관객을 불러 모을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이분 야구부 같은데 이름 아시는 분…?]
[몰랐는데 야구부가 숨겨진 문혁고 비주얼 맛집이었네요 ㅎㅎㅎ]
[헉, 야구부 훈남 왤케 많죠? ㅠㅠ]
일명 다중 분신술!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 다른 사람인 척 여러 글을 쓴 노아. 안 그래도 잘생긴 남자에 목이 마른 문혁고 여학생들은 홀린 듯 그녀의 글에 클릭을 눌렀다.
그렇다고 낚시도 아닌 게, 문혁고 야구부원들 외모는 대체로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달리는 댓글들 역시 호평 일색.
-헉, 2루수 내 취향 ㅎㅎㅎ 완전 쿨뷰티의 정석…!
-저분 선도부 신입 지수용 맞죠? 댕댕이 같아서 맘에 들어요ㅋㅋ
-이동혁 이분 말 섞어본 적은 없는데 잘생겨서 친해지고 싶어 ㅠㅠㅠㅠ
도도진, 지수용, 최아담, 리동혁 등이 대체로 미남상이었고, 류지는 특히 잘생긴 편에 속했다. 그녀는 게시판에 사정없이 부원들의 사진을 투하했다.
“후후, 오라버니라고 예외는 없어…!!”
관객 수 확보엔 오빠고 뭐고 없다! 이 전략 덕분에 적지 않은 수의 여학생들을 낚아내는 데 성공한 그녀. 그러나 여기서 멈출 생각 따윈 없다.
“특이 취향까지 잡는 거야…!”
‘얼굴보다는 근육!’을 주장하는 여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취향까지 감안해, 근육은 빵빵하지만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페이스의 소유자인 금성묵과 석운강. 둘의 사진까지 여럿 준비해뒀다.
석운강은 광배근이 쫙 벌어진 뒷모습 사진을 준비했고, 금성묵은 여러 가지 후보군이 있었다.
1번은 헬스장에서 웨이트 하는 사진….
특히 원판을 가득 꼽고 스쿼트를 하는 사진은 남성미가 뿜뿜 풍겼다. 일단은 킵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간 노아.
2번은 공 던지는 사진….
역동적인 자세로 공을 뿌리는 성묵의 사진. 이 역시 상당한 박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 또한 킵해둔 노아는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
순간 숨이 멎은 노아.
땀을 뻘뻘 흘리는 성묵이 티셔츠를 살짝 들어 올려 땀을 닦는 사진이다. 땀에 젖은 성묵의 복근은 햇빛 아래 선명한 그림자를 드러내며, 조각한 듯 완벽한 라인을 자랑했다.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킨 노아.
긴 고민을 거친 그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역시 이건 나 혼자 보는 거로….”
“동생아, 뭐 하냐?”
“……………!!!”
화들짝 놀라서 펄쩍 일어난 노아.
그녀의 뒤에는 오빠인 류지가 서 있었다.
“오, 오라버니. 언제부터?”
“나는 방금 왔지, 왜 그렇게 땀을 흘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핫…!”
식은땀을 흘리는 동생의 말에 실실 웃으며 흐린 눈을 뜨는 류지. 노아의 뇌리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녀는 하나뿐인 오빠가 어떨 때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흠, 성묵이 복근이 좋긴 한데, 그래도 도촬은 좀….”
“꺄아아앙아……!!”
폴짝폴짝 뛰는 노아.
이 시간을 기점으로 타카히나 가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당장 잊으라며 배트를 들고 추격하는 동생과, 헐레벌떡 도망치는 오빠의 추격전이 말이다.
######
도도연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야구 때문이다.
“승리확률을 더 높일 방법….”
문혁고 측은 그녀의 자료를 믿고, 최대한 전력을 숨긴다는 도박 수를 그대로 실행해줬다. 그 마음에 응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데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금강고 에이스 장태산, 이 투수의 약점을 찾아야 해.”
장태산은 투수로서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투수다. 신장 207cm에 달하는 엄청난 리치의 릴리스 포인트.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12-6 커브는 초고교급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신장의 투수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다른 투수보다 더욱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구 능력이 훨씬 중요한 상황.
“…문제는 문혁고 타자들의 선구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야.”
몇몇 타자를 제외하면 문혁고 타자들은 공 고르는 능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극상성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초조함에 도연이 입술을 물어뜯었다.
뭔가 쓸만한 약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직원들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장태산의 다양한 피칭 영상을 모조리 수집했다. 여러 각도의 영상이 사무실의 여러 개의 모니터 속에서 재생 중이다.
“눈이 빠질 것 같아….”
눈이 충혈될 때까지 보고, 또 보는 도연. 다른 직원들에게도 장태산의 약점을 찾으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찾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몰라서 그렇지, 없을 리는 없다고.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초장신 투수야. 아직 고등학생인 지금 메커니즘에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어.
분명히 공략에 써먹을 수 있는 투구 습관, 즉 쿠세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도연. 그렇게 장태산을 계속 관찰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찾았어……!”
그녀의 집념은 결국 빛을 발했다.
결국엔 찾아냈다.
아직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장태산의 쿠세를.
#####
2차전 당일.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컨디션이 더럽게 좋은 날.
“이야, 날씨 좋네.”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걸 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 # 송로버섯 한우 스테이크 도시락]
요리사: 올리비아 램지
등급: 2 star ★★
효과:
[섭취 당일 체력이 한 등급 상승합니다.]
[섭취 시 당일 스킬 지속시간이 2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부상 확률이 30% 감소합니다.]
상대에 대한 호감도: 남사친 (55%)
요리 스킬: S
‘효과 미쳤다. 진짜.
여타 요리 히로인들이 게임 끝날 때쯤에나 겨우 할법한 2성급 요리를 이렇게 턱하니 내올 줄이야. 저번에 받은 1성은 ‘일시적’효과기 때문에 경기 중에 효과가 끝날 수 있는데, 2성은 무려 당일 지속 효과다. 그냥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경기를 앞두고 도움을 준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노아가 관객 동원하는 데 힘을 많이 썼다 했지.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아왔냐고 물으니 대답을 흐리며 도망갔지만, 아무튼 그녀가 엄청나게 노력한 건 분명했다. 그 결과 1차전의 2배에 가까운 문혁고 학생들이 오늘 경기를 보러 왔다고.
많이 온 관객들을 진두지휘해 응원전을 펼치는 것 또한 노아의 몫이다. 무용과라 춤도 잘 추는데,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긍정 텐션을 지닌 그녀라 분위기 띄우는 데에는 걱정도 없다.
본인이 한다고 했던 홍보 영상 역시 알아서 착착 만들고 있는 모양이라, 믿고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연 씨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내 신뢰도가 천장을 찍은 그녀다.
이번에는 팀까지 꾸려서 더 질이 높아졌다는데, 기대도 안 한 장태산의 쿠세를 찾아왔다. 뉴비 절단기 수준의 흉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녀석을 상대로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나는 셋에게 모두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뒀다. 이번에 도움을 크게 받았으니 나중에 따로 보답이라도 해야겠다.
“…나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지.”
띠링!
# 투수 능력치 (*포텐셜)
/좌투 스리쿼터
체력: A+ (*S)
제구: B+
직구: B+ (*S+)
구위: A (*S+)
변화구: B+ (*S)
결국에는 찍고 말았다.
구위 A 등급을!
웨이트 시간에 악력 단련을 신경 써서 한 결과가 꽤 좋게 나타났다.
구속까지 A를 찍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거긴 아직 미세한 벽이 남아있는 느낌이다. 이번 경기에서 적당히 활약하면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스텟에 태양신맥 효과까지 더해지면?
아직 올리비아의 도시락을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부른 느낌이다. 그렇게 신나는 기분을 품고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예상치도 못한 녀석과 마주쳤다.
2M가 훌쩍 넘는 커다란 키에 다부진 체격, 희번득한 사백안의 얼굴.
“장태산?”
“…?”
다름 아닌 오늘 맞붙게 될 금강고의 에이스, 장태산이다. 내가 대뜸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 그러다가 눈치챈 듯 손바닥을 퉁 쳤다.
“아, 네가 금성묵이로군.”
“너 나 아냐?”
“그래, 전력 분석팀에서 경고하더군. 부전고 출신인 금성묵, 네가 보여지는 것 보다 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말이야.”
‘…들킨 건가.
장태산은 의외로 나를 알고 있다.
그것도 별로 좋지 않은 형태로 말이다. 미미한 학교가 어쩌고 하더니 조사할 건 다 조사한 모양이다.
“거참 황송하구만. 그래서 거기에 대한 대비책은 있고?”
“아니, 결국 네가 의외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쏴아아!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콸콸 트는 녀석.
손을 씻으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너희는 내 공을 공략하지 못하고, 우리 타선은 너를 철저히 공략한다. 그뿐이다.”
미미한 학교가 어쩌고 할 때부터 느꼈지만, 자신의 실력과 팀에 대한 압도적인 자신감이 느껴진다. 물론 그만한 실적이 있으니 그럴 자격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경전에서 지고 들어갈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나 한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말해도 되냐?”
“…뭘 깨달았다는 거지?”
“작년에도 방심해서 떨어져 놓고 또 그러고 있네. 지겹지도 않냐?”
“………!”
나름 정곡이었는지 눈을 번뜩 뜨는 장태산. 아마 우리 같은 신생의 선수가 그걸 지적하리라곤 생각 못한 모양이다.
“방심한 적 없다. 말하지 않았나. 네가 의외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 또한….”
“그럼 이런 가능성도 생각해본 적 있냐?”
“………?”
쏴아아!
나 역시 녀석의 옆쪽에 서서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그리곤 대답을 기다리는 녀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더 나은 투수일 가능성.”
“……!”
놀란 눈의 장태산.
자기 귀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녀석이 말한 의외의 실력은 ‘굼벵이가 꿈틀’하는 정도의 실력을 이야기 한 것뿐, 자신과 비견될 정도를 이야기 한 건 아닐테지.
잠시 눈을 감은 채 뭔가 생각하던 녀석은 곧 슬며시 눈을 뜨며 답했다.
“…없다.”
“그럴 줄 알았어.”
탁탁!
나는 손을 대충 털고는 씩 웃었다.
“잘 보고 있으라고. 내가 증명해줄 테니까.”
“……….”
녀석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더니, 이내 수도꼭지를 잠그는 녀석. 그리고는 내게 가까이 사백안을 희번득거리며 말했다.
“그 언변만큼 실력도 좋은지 지켜보도록 하지, 금성묵.”
그리고는 자리를 떠난 녀석.
녀석 말대로 이제 입으로만 나불대는 시간은 끝이다. 서로 죽도록 물어뜯고, 더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 그뿐인 이야기다.
#####
[아, 국립 성균관 구장에서 뵙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안준경 입니다!]
[해설자 이해송 입니다. 반갑습니다.]
모 유명 스포츠 전문 방송사의 라이브 중계, 두 명의 해설진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금강고의 체급 탓에 적지 않은 관심을 받는 봄 대회 2차전. 적지 않은 숫자의 시청자가 경기를 보고 있다.
[이 해설자님,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예예, 뭐. 아무래도 금강고의 절대적인 우세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고교야구에서 세종기 진출팀의 무게감은 엄청납니다. 지역을 제패하고 전국으로 간 학교가 약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렇군요. 어디 보자, 문혁고는 이번 대회가 첫 출전인 모양입니다.]
[최근 서울에 신생 야구부가 거의 생기지 않았는데, 이렇게 도전을 한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일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론 문혁고가 이번 대회에서 미래를 위한 경험을 쌓는다~ 라는 의의를 가지고 갔으면 합니다.]
문혁고가 이길 확률은 없다는 걸 전제로 깔고 가는 해설자. 그건 경기를 지켜보는 대다수의 시청자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ㄴ금강고 ㅎㅇㅌ~
ㄴ장태산 피칭 보러왔다. 얘 피칭 졸라 시원함
ㄴ문혁고는 어디서 튀어나온 듣보잡이냐ㅋㅋ
ㄴ신생 야구부 ㄷㄷ 금강고 대진 개꿀 빠네
인터넷 중계에서 올라오는 대부분의 댓글이 저런 분위기다. 문혁고 측에서는 이가 갈리지만, 불만이면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자! 문혁고 측 라인업 보겠습니다.]
1. 최아담 SS
2. 도도진 2B
3. 금성묵 P
4. 석운강 C
5. 타카히나 류지 3B
6. 지수용 CF
7. 이동혁 RF
8. 서경수 LF
9. 이태경 1B
[오호, 몰랐습니다만 홍콩 국가대표 포수인 석운강 선수가 문혁고의 소속이군요.]
[예, 다소 네임 밸류가 약한 타순 속에서 무게감 있게 4번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금강고는 석운강 선수만큼은 조심히 상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해설진을 비추던 카메라가 돌아가더니, 이내 경기장 안을 비춘다. 그러자 마운드 위에 올라 땅을 고르는 금성묵이 보인다.
[아,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마운드 위에는 문혁고 측 선발투수, 금성묵 선수가 올라가 있습니다.]
[꽤 의외의 사실입니다만, 기록을 보니 금성묵 선수는 부산권 굴지의 명문인 부전고 출신의 선수로군요. 왜 굳이 좋은 학교를 두고 신생으로 전학을 간 것일까요…?]
[그 이유까진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 막 당시 기록이 전달됐습니다. 1학년 기록은 0승 3패 방어율 4.87. 2학년 기록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중요한 건 지금 당장의 실력 아니겠습니까. 아, 심판의 신호 떨어지며 경기 시작됩니다!]
“플레이볼…!!”
“후우….”
성묵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빙의 후 처음 대회 선발 투수로 출전하는 역사적인 순간.
‘초반부터 바로 꺼낸다.
오늘을 위해 준비해둔 히든카드.
그는 1회부터 그걸 꺼낼 생각이다.
오늘 경기, 성묵은 금강고를 완전히 찍어누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