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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황태자 알론드(Alondre) (7) - 유서 깊은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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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인재를 확보하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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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뛰어난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거고, 하나는 처음부터 키워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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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쪽이든 약소국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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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외부 영입의 경우, 정말로 본인 능력에 자신감을 갖춘 인재들은 구태여 약소국에 남으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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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강대국 쪽에서 제시하는 대우며 보상이 훨씬 훌륭한데, 굳이 그보다 못한 곳에 들어갈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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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엄밀히 말해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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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소속감이라든가,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가 좋다는 마인드로 남는 인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자는 희소하고 후자는 취급이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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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힘든 임무를 요구하면 안 되고, 인재 쪽에서 정규 수당 외의 보상을 요구하면 적절한 교섭을 시도해야 하며, 수틀리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겠다며 윽박지르는 것도 잘 달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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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주종관계라기보다는 사실상 동업자, 심하면 아예 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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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키워내는 것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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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어딘가에 존재할 뛰어난 인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다른 세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충성심이나 사명감을 새기는 것, 저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행정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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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저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약소국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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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대륙 중부에 있는 자잘한 중소국가들에게 천공 학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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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천공 학원의 입학생 자체가 각국에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인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야생의 인재보다 충성심이나 소속감이 훨씬 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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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공 학원의 졸업생은 어지간하면 5위계 이상은 찍고 나온다. 드물긴 하지만 6위계가 튀어나올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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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천공 학원 측은 그렇게 학생을 키워낸 대가로 나라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으니, 정치적, 혹은 물리적 빚을 질 염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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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가뭄에 고통스러워하는 중부 국가들에게 이만한 꿀통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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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이, 망했다고? 거짓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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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앞으로 인재는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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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이라도 새롭게 교육 기관을 만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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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그게 쉬웠으면 진작 시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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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천공 학원의 폐쇄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약소국의 위정자들이 보인 반응은 거의 패닉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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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제발 이 소식이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이기를 기원했지만, 그런다고 벌어진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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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위정자와 고관들은 이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 없이 고민을 거듭했고, 외교관들은 열심히 눈치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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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그 여파는 약소국에 한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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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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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제른 제국. 수도 칼라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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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들의 생각을 말해보게. 이번 일이 제국의 호재가 될지, 아니면 악재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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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좌에 앉은 황제의 질문에, 신하들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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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으로는 호재이나, 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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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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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은 중립적인 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 혜택은 중부의 온갖 국가들이 나눠 가졌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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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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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수급할 방법을 잃어버린 국가들은 어떻게든 대체 수단을 찾으려 할 것이나, 이는 어지간한 국력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륙 중부에서 그것이 가능한 국가는 오직 카르디안 공화국뿐이지요. 그들은 이미 저희 『황립 제국원』을 흉내 낸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이번 기회에 천공 학원의 역할을 대체하려 시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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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성공한다면 중부에 널려 있는 자잘한 국가들이 모조리 카르디안의 영향력으로 끌려들어 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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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도 대륙 5강에 포함될 만한 카르디안이 중부의 패권을 오롯이 손에 넣는다면, 그 세력은 단독으로도 제국과 겨뤄볼 수준이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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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즉위할 때만 해도 끝없는 내전 탓에 이미 가지고 있던 영토도 까먹는 멍청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제법 위협적인 수준까지 커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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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성가시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이내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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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국가들에게 제안하게. 원한다면 황립 제국원으로 유학을 받아주겠다고. 비용은 이쪽에서 전부 부담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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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이 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개중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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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중부에는 어리석게도 헛된 유언비어로 제국을 원망하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혹여 폐하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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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의 말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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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중부에서 제국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원인이 원인이다 보니, 자칫하면 황실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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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역시 그걸 눈치챘지만, 굳이 지적하는 일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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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왕국들 입장에선 군주를 투표로 뽑는 놈들보단 우리 쪽이 더 친근감 있지 않겠나? 그 부분을 잘 이용해 보게. 경들을 믿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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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말해줬으면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결과를 내오라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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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들은 다소 난감함을 느꼈지만, 그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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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명령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뭣보다 황제의 얼굴에서 슬슬 귀찮음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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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신하들은 삼삼오오 모여 푸념을 떠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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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황궁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듣는 귀를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 저택에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들과 모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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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날로 국정 운영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시니 참으로 걱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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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폐하 정도면 선황제분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 아닙니까. 기분 나쁘다고 신하들 피를 보는 일도 없고, 무리한 토목 공사로 국력을 갉아먹는 일도 없고, 걸핏하면 별장에 틀어박혀 국사를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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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으면 역대 황제분들 중에 폭군밖에 없는 줄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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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그건 아니지요. 애초에 그랬으면 제국이 지금처럼 성세를 이루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즉위 후 후반기가 될수록 그분들의 ‘일탈’이 늘어난 것도 사실 아닙니까. 다른 황제분들의 화려한 일탈에 비하면, 폐하 정도야 역시 무난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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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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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부정은 못 하고 헛웃음만 흘리는 관료를 향해, 또 다른 관료는 은근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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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 지금 황태자 전하도 솔직히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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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요? 초대 이후 그분만한 재목이 또 어디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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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요. 전하께서 뛰어나신 걸 전들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분은 일을 너무 빨리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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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시절에 업무를 시작한 이들은 이전에도 계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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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지금의 전하처럼 일을 많이 하진 않으셨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애초에 후계자 교육이나 각종 의전 행사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어찌 많은 업무를 볼 수 있겠습니까. 헌데 전하는 이 모든 걸 감당하고 계시니, 혹여 이것이 훗날 고름이 되어 터지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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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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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황태자를 추앙하던 관료 역시 생각이 바뀐 듯 침음성을 흘렸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수를 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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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국 제국이 크고 강대하기에 생겨난 문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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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의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해 제국을 쪼개거나 영토를 줄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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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황제가 결정하는 사안의 비중을 줄이자고 하는 건 그건 그것대로 황권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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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의 옥좌란 이토록 무거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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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여흥 하나 없이 국가를 위해 쥐어짜지고 있을 황태자를 염려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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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군! 실로 훌륭해! 자신이 부서지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주인을 도와, 결국에는 최고의 결과를 손에 넣다니! 그야말로 마검의 귀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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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그 황태자라는 인간은 루시드라가 은밀히 회수해 온 포르테의 파편을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고는, 연신 감탄과 박수를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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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를 걱정하던 이들이 보았으면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로 밝고 활기찬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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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라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감정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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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세상에 그딴 ‘마검’이 어디 있어. 그런 전개를 원했으면 아예 처음부터 성검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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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태자는 오히려 루시드라가 뭘 모른다는 듯한 태도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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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보게. 만약 그 유래부터가 무척이나 신성하고, 거룩하고, 선량하기 짝이 없는 도구가 있다고 가정하지. 그 도구를 소유한 주인이 위험에 빠졌는데,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신성한 도구가 자기희생을 했네. 그러면 자네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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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름값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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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반대로 소유자는 죽었는데 도구는 멀쩡히 남아 있다고 쳐보게. 그러면 그 도구가 어떻게 보일 것 같나? 이름이랑 배경만 번드르르하지, 실속은 없다고 실망, 혹은 냉소를 향하게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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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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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사악하고, 음산하고, 저주를 뿜어내던 마검이 주인을 돕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특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일세. 허나 만에 하나 주인을 돕는다면 그건 놀랍고도 경이로운 일이지. 그러면 당연히 성검보다 마검이 좋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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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왜 말이 되는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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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라가 영문 모를 패배감을 느끼는 사이, 황태자는 태연스레 다음 화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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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명의 상황은 어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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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외모랑 이름을 바꾼 뒤에 브라운 상회 쪽에서 일하게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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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과의 계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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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치웠어. 아마 기만 쪽에는 죽은 걸로 신호가 갔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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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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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자체를 한번 먹었다가 완전히 흡수되기 전에 뱉어낸 거니까, 이래저래 격이 약해지긴 했겠지. 대충 자기 계약자랑 비슷한 수준, 그러니까 4위계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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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거라면 문제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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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문제없다’라고 단언하는 황태자의 모습에, 루시드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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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용사’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루시드라는 황태자라는 인간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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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가 ‘그것이 올바르기에’ 선을 행한다면, 황태자는 ‘그편이 취향에 맞기에’, 속된 말로 그냥 호불호로 선을 행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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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매우 초월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비인간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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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루시드라의 눈에는 지독히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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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를 타락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한층 더 불타오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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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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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한 후, 루시드라는 화제를 바꿔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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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 분신은 뭐로 하려고? 이번에는 아예 혼자서 초월자 토벌이라도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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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이번 승리는 피나의 노력과 초월자 본인이 자신을 멈추고자 했다는 특수한 상황 덕이 컸네. 설령 그 자리에 있던 게 만전 상태의 사서 에른스트였어도 압살당하고 끝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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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냥 말해봤을 뿐이었어. 그나저나 진짜로 뭐 할 거야? 이번에도 거대한 음모라도 막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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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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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였던 마왕의 잔해를 회수하는 건 실패했고, 부하도 여럿 잃었지, 『기만』이라고 해도 한동안은 잠잠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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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풀이로 피나를 노릴 걱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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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중부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 피나를 건드렸다간, 인간 세상에 자기 존재를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 되는 만큼 『기만』도 행동을 신중히 할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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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번에야말로 무슨 사명감이나 목적이 있어서 분신을 만드는 게 아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취미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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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이 취미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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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번에는 뭘 해볼까. 새삼 두근거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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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지 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취미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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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와 마검은 6위계의 힘을 내는 대신 조건이 여러모로 까다로웠지. 이번에는 5위계 정도로 수준을 낮추는 대신 자율성을 확보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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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질 않네, 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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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한참을 고민하던 황태자는, 이내 결론을 내린 듯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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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름을 정했네. 그리츠(Gritz)로 하면 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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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그래서 직업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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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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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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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다른 신분으로서 아주 유서 깊지. 비록 내 황태자지만 카테고리적으로는 그리 틀리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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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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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맑은 눈으로 단언하는 황태자의 모습에, 이 광인을 타락시킬 수 있을지 살짝 회의감이 드는 루시드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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