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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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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황태자 알론드(Alondre) (7) - 유서 깊은 신분

대륙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인재를 확보하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뛰어난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거고, 하나는 처음부터 키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약소국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외부 영입의 경우, 정말로 본인 능력에 자신감을 갖춘 인재들은 구태여 약소국에 남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야 강대국 쪽에서 제시하는 대우며 보상이 훨씬 훌륭한데, 굳이 그보다 못한 곳에 들어갈 이유가 있겠는가.

아니, 엄밀히 말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소속감이라든가,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가 좋다는 마인드로 남는 인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자는 희소하고 후자는 취급이 까다롭다.

지나치게 힘든 임무를 요구하면 안 되고, 인재 쪽에서 정규 수당 외의 보상을 요구하면 적절한 교섭을 시도해야 하며, 수틀리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겠다며 윽박지르는 것도 잘 달래야 한다.

이쯤 되면 주종관계라기보다는 사실상 동업자, 심하면 아예 상전이다.

인재를 키워내는 것도 마찬가지.

국가 어딘가에 존재할 뛰어난 인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다른 세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충성심이나 사명감을 새기는 것, 저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행정력이다.

애초에 저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약소국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대륙 중부에 있는 자잘한 중소국가들에게 천공 학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천공 학원의 입학생 자체가 각국에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인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야생의 인재보다 충성심이나 소속감이 훨씬 강한 편이다.

그리고 천공 학원의 졸업생은 어지간하면 5위계 이상은 찍고 나온다. 드물긴 하지만 6위계가 튀어나올 때도 있다.

심지어 천공 학원 측은 그렇게 학생을 키워낸 대가로 나라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으니, 정치적, 혹은 물리적 빚을 질 염려도 없다.

인재 가뭄에 고통스러워하는 중부 국가들에게 이만한 꿀통이 또 어디 있겠는가.

“천공 학원이, 망했다고? 거짓말이지?”

“그러면 앞으로 인재는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지, 지금이라도 새롭게 교육 기관을 만들어야 하나?”

“제길, 그게 쉬웠으면 진작 시도했지!”

고로, 천공 학원의 폐쇄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약소국의 위정자들이 보인 반응은 거의 패닉에 가까웠다.

그들은 제발 이 소식이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이기를 기원했지만, 그런다고 벌어진 사건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

각국의 위정자와 고관들은 이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 없이 고민을 거듭했고, 외교관들은 열심히 눈치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당연하지만, 그 여파는 약소국에 한정되지 않았다.

“흐음.”

아이제른 제국. 수도 칼라스티아.

“경들의 생각을 말해보게. 이번 일이 제국의 호재가 될지, 아니면 악재가 될지.”

옥좌에 앉은 황제의 질문에, 신하들이 대답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이나, 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것입니다.”

“이유는?”

“천공 학원은 중립적인 기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 혜택은 중부의 온갖 국가들이 나눠 가졌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입니다.”

“계속해 보게.”

“인재를 수급할 방법을 잃어버린 국가들은 어떻게든 대체 수단을 찾으려 할 것이나, 이는 어지간한 국력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륙 중부에서 그것이 가능한 국가는 오직 카르디안 공화국뿐이지요. 그들은 이미 저희 『황립 제국원』을 흉내 낸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이번 기회에 천공 학원의 역할을 대체하려 시도할 것입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중부에 널려 있는 자잘한 국가들이 모조리 카르디안의 영향력으로 끌려들어 가겠군.”

현시점에서도 대륙 5강에 포함될 만한 카르디안이 중부의 패권을 오롯이 손에 넣는다면, 그 세력은 단독으로도 제국과 겨뤄볼 수준이 될 터.

“분명 내가 즉위할 때만 해도 끝없는 내전 탓에 이미 가지고 있던 영토도 까먹는 멍청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제법 위협적인 수준까지 커버렸군.”

황제는 성가시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이내 명했다.

“중부 국가들에게 제안하게. 원한다면 황립 제국원으로 유학을 받아주겠다고. 비용은 이쪽에서 전부 부담한다고 해.”

신하들이 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개중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말했다.

“폐하. 중부에는 어리석게도 헛된 유언비어로 제국을 원망하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혹여 폐하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되옵니다.”

신하의 말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륙 중부에서 제국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원인이 원인이다 보니, 자칫하면 황실을 비판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 역시 그걸 눈치챘지만, 굳이 지적하는 일 없이 말했다.

“그래도 왕국들 입장에선 군주를 투표로 뽑는 놈들보단 우리 쪽이 더 친근감 있지 않겠나? 그 부분을 잘 이용해 보게. 경들을 믿겠네.”

이 정도로 말해줬으면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결과를 내오라는 발언이었다.

신하들은 다소 난감함을 느꼈지만, 그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황제의 명령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뭣보다 황제의 얼굴에서 슬슬 귀찮음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뒤, 신하들은 삼삼오오 모여 푸념을 떠들지…는 않았다.

대신, 황궁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듣는 귀를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 저택에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들과 모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날로 국정 운영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시니 참으로 걱정이오.”

“뭐, 그래도 폐하 정도면 선황제분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 아닙니까. 기분 나쁘다고 신하들 피를 보는 일도 없고, 무리한 토목 공사로 국력을 갉아먹는 일도 없고, 걸핏하면 별장에 틀어박혀 국사를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들으면 역대 황제분들 중에 폭군밖에 없는 줄 알겠소.”

“아, 물론 그건 아니지요. 애초에 그랬으면 제국이 지금처럼 성세를 이루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즉위 후 후반기가 될수록 그분들의 ‘일탈’이 늘어난 것도 사실 아닙니까. 다른 황제분들의 화려한 일탈에 비하면, 폐하 정도야 역시 무난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차마 부정은 못 하고 헛웃음만 흘리는 관료를 향해, 또 다른 관료는 은근히 말했다.

“그래서 전, 지금 황태자 전하도 솔직히 불안합니다.”

“무슨 소리요? 초대 이후 그분만한 재목이 또 어디에 있다고?”

“알지요. 전하께서 뛰어나신 걸 전들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분은 일을 너무 빨리 시작하셨습니다.”

“황태자 시절에 업무를 시작한 이들은 이전에도 계셨소.”

“그분들은 지금의 전하처럼 일을 많이 하진 않으셨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애초에 후계자 교육이나 각종 의전 행사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어찌 많은 업무를 볼 수 있겠습니까. 헌데 전하는 이 모든 걸 감당하고 계시니, 혹여 이것이 훗날 고름이 되어 터지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으음.”

그제야 황태자를 추앙하던 관료 역시 생각이 바뀐 듯 침음성을 흘렸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수를 내진 못했다.

이는 결국 제국이 크고 강대하기에 생겨난 문제였기 때문이다.

제국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의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해 제국을 쪼개거나 영토를 줄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황제가 결정하는 사안의 비중을 줄이자고 하는 건 그건 그것대로 황권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초강대국의 옥좌란 이토록 무거운 법.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여흥 하나 없이 국가를 위해 쥐어짜지고 있을 황태자를 염려하는 것뿐이었다.


“훌륭하군! 실로 훌륭해! 자신이 부서지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주인을 도와, 결국에는 최고의 결과를 손에 넣다니! 그야말로 마검의 귀감이 아닌가!”

덧붙여 그 황태자라는 인간은 루시드라가 은밀히 회수해 온 포르테의 파편을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고는, 연신 감탄과 박수를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황태자를 걱정하던 이들이 보았으면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로 밝고 활기찬 얼굴이었다.

루시드라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감정이 담겼다.

“아니, 세상에 그딴 ‘마검’이 어디 있어. 그런 전개를 원했으면 아예 처음부터 성검으로 하지.”

하지만 황태자는 오히려 루시드라가 뭘 모른다는 듯한 태도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생각을 해보게. 만약 그 유래부터가 무척이나 신성하고, 거룩하고, 선량하기 짝이 없는 도구가 있다고 가정하지. 그 도구를 소유한 주인이 위험에 빠졌는데,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신성한 도구가 자기희생을 했네. 그러면 자네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 이름값 했다?”

“그러면 반대로 소유자는 죽었는데 도구는 멀쩡히 남아 있다고 쳐보게. 그러면 그 도구가 어떻게 보일 것 같나? 이름이랑 배경만 번드르르하지, 실속은 없다고 실망, 혹은 냉소를 향하게 되지 않겠나?”

“그럴, 지도?”

“반대로, 사악하고, 음산하고, 저주를 뿜어내던 마검이 주인을 돕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특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일세. 허나 만에 하나 주인을 돕는다면 그건 놀랍고도 경이로운 일이지. 그러면 당연히 성검보다 마검이 좋은 것 아닌가.”

뭐지? 왜 말이 되는 것 같지?

루시드라가 영문 모를 패배감을 느끼는 사이, 황태자는 태연스레 다음 화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 두 명의 상황은 어떻지?”

“일단은 외모랑 이름을 바꾼 뒤에 브라운 상회 쪽에서 일하게 하고 있어.”

“『기만』과의 계약은?”

“먹어 치웠어. 아마 기만 쪽에는 죽은 걸로 신호가 갔을걸?”

“부작용은 없는 건가?”

“혼 자체를 한번 먹었다가 완전히 흡수되기 전에 뱉어낸 거니까, 이래저래 격이 약해지긴 했겠지. 대충 자기 계약자랑 비슷한 수준, 그러니까 4위계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뭐, 그거라면 문제없군.”

아무렇지도 않게 ‘문제없다’라고 단언하는 황태자의 모습에, 루시드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용사’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루시드라는 황태자라는 인간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사가 ‘그것이 올바르기에’ 선을 행한다면, 황태자는 ‘그편이 취향에 맞기에’, 속된 말로 그냥 호불호로 선을 행하는 것뿐이다.

그건 매우 초월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비인간적이며.

─또, 루시드라의 눈에는 지독히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황태자를 타락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한층 더 불타오를 만큼.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 생각한 후, 루시드라는 화제를 바꿔 질문했다.

“그래서, 다음 분신은 뭐로 하려고? 이번에는 아예 혼자서 초월자 토벌이라도 해볼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이번 승리는 피나의 노력과 초월자 본인이 자신을 멈추고자 했다는 특수한 상황 덕이 컸네. 설령 그 자리에 있던 게 만전 상태의 사서 에른스트였어도 압살당하고 끝이었겠지.”

“나도 그냥 말해봤을 뿐이었어. 그나저나 진짜로 뭐 할 거야? 이번에도 거대한 음모라도 막으려고?”

황태자는 고개를 저었다.

“목표였던 마왕의 잔해를 회수하는 건 실패했고, 부하도 여럿 잃었지, 『기만』이라고 해도 한동안은 잠잠할 거야.”

화풀이로 피나를 노릴 걱정도 없다.

좋든 싫든 중부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 피나를 건드렸다간, 인간 세상에 자기 존재를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 되는 만큼 『기만』도 행동을 신중히 할 수밖에 없으니까.

“즉, 이번에야말로 무슨 사명감이나 목적이 있어서 분신을 만드는 게 아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취미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마검이 취미가 아니었다고?”

“하하하, 이번에는 뭘 해볼까. 새삼 두근거리는군!”

“무시하지 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취미 맞잖아.”

“사서와 마검은 6위계의 힘을 내는 대신 조건이 여러모로 까다로웠지. 이번에는 5위계 정도로 수준을 낮추는 대신 자율성을 확보해야겠어.”

“듣질 않네, 이 인간….”

그 뒤에도 한참을 고민하던 황태자는, 이내 결론을 내린 듯 선언했다.

“좋아, 이름을 정했네. 그리츠(Gritz)로 하면 될 것 같군.”

“그래, 그래. 그래서 직업은 뭔데?”

“거지.”

“…뭐라고?”

“왕자의 다른 신분으로서 아주 유서 깊지. 비록 내 황태자지만 카테고리적으로는 그리 틀리지 않을 터.”

“…….”

너무나 맑은 눈으로 단언하는 황태자의 모습에, 이 광인을 타락시킬 수 있을지 살짝 회의감이 드는 루시드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