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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마검 포르테(Forte) (18) - 개변극
마왕을 소환한 나라의 공주.
성녀를 가리킨 그 표현에, 피나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용사 이야기에 대해 알 만큼 아는 피나조차 들은 적이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허나 마냥 근거 없는 비난이라 일축하기에는, 현자의 말을 들은 성녀의 반응이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잔뜩 불안감에 잠긴 눈빛으로 주변을 다급히 살피는 모습.
그를 본 현자가 코웃음을 쳤다.
“꼴에 잘못한 줄은 아는 모양이구나. 망국의 죄인 주제에 성녀 행세라니. 낯짝 두껍기가 아주 철판이 따로 없어!”
“그, 그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왕실 관련자들은 죄다 쳐 죽었거나 지금쯤 마왕 장난감 노릇을 하고 있을 테니!”
현자의 거듭되는 비난에 성녀의 얼굴빛은 점점 백지장처럼 변했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피나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저기, 그, 현자님? 일단 이야기 정도는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듣긴 뭘 들어? 기껏해야 알량한 기만질이나 하려는 거겠지!”
“아니, 그러니까 그래도 당사자 말 정도는 들어 봐야….”
“네놈들 때문에 이 개판이 벌어졌어! 그런 주제에 성녀는 개뿔─”
어쩌지.
이 현자, 이야기를 안 듣는다.
난감함을 느낀 피나가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게 포르테에게 물었다.
‘어쩌죠, 마검님.’
《옆구리를 노려라.》
피나는 팔꿈치로 현자의 오른쪽 옆구리를 찍었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 현자가 바닥으로 쓰러지고, 그대로 경련과 함께 꿈틀거렸다.
“괜찮으신가요? 죄송해요, 저희 현자님이 입도 나쁘고 성격도 좀 까칠하고 가끔 유해하시기도 한데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 예?”
“혹시 사정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성녀는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피나와 현자를 번갈아 바라본 뒤, 이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어 에델바이스.
이제는 마왕의 손에 넘어간 왕국의 공주였던 그녀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는 뻔한 것이었다.
아무리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지만, 자국민을 제물로 바쳐 마왕을 소환한다는 광기의 소행에 반대한 공주.
그런 딸에게 노여움을 느끼고 사람 발길이 드문 탑에 유폐를 명한 왕.
허나 마왕이 계약의 사슬을 끊고 왕궁을 점령한 시점에서 공주를 붙잡고 있던 경비 체계 역시 함께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어떻게든 재난에 휩쓸리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다.
마왕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낀 공주는 지니고 있던 축복의 힘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다녔고, 그런 공주를 사람들은 성녀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현자가 말하기를.
“한마디로 나쁜 건 다 가족들이 저지른 거고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 이거잖아! 거참 아주 잘나셨네!”
“현자님. 말을 조금….”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려는 꼴이 뻔히 보이는구만! 이 계집이 정말로 책임을 지려고 했으면 정체를 숨기고 다니진 않았겠지!”
현자의 지적에 성녀는 손끝을 바들바들 떨 뿐 아무런 반박도 내뱉지 못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면서도 차마 우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그녀가 느끼는 수치스러움과 참담함을 그대로 나타나는 듯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인 나머지, 피나는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정체를 직접 밝히셨으면, 아마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도 못 했을 테니까요. 그러면 다친 사람들을 치유할 수도 없었겠죠.”
“아니에요. 용사님.”
성녀는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현자님의 말씀이 옳아요. 제가 정말로 망국의 왕녀로서 책임을 지려고 했다면, 정체를 밝힌 뒤에 떳떳하게 그 죄업에 마주해야 했겠지요. 그럴 각오도 없으면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이 고맙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안도를 느꼈어요. 저는 아버님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그래. 실로 같잖은 위선에 자기만족이다!”
“현자님?”
피나는 조용히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피나의 으스스한 목소리에, 현자는 인상을 찡그린 채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틀린 말도 아닌데’라거나 ‘진실을 폭력으로 덮으려 하다니 야만적’ 같은 내용을 중얼거렸다.
그런 현자를 무시한 채, 피나는 성녀를 설득하기로 했다.
그녀와 포르테의 목표 중 하나는 과거 용사 일행이 겪은 사건을 알아내는 것.
그를 위해서라도 성녀는 반드시 파티에 영입해야 할 인물이었다.
“성녀님. 저희는 마왕을 쓰러트려야만 해요. 부디 도움을 주실 순 없을까요?”
“…….”
성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무척이나 복잡했지만, 어쩐지 모르게 피나는 그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짊어진 책임을 다하려는 의무감.
하지만 그걸 위해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데, 그게 옳다는 것을 아는데, 차마 그걸 해내지 못하는 망설임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
그제야 피나는 자기가 지금 꺼낸 말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깨달았다.
피나에게 있어서 마왕 퇴치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성녀에게 있어서는 성공 여부조차 불분명한, 위험천만한 일이다.
‘마검님, 어떻게 하죠. 이분을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아니, 설득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피나의 질문에, 포르테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면 설득하지 않으면 된다.》
‘네? 그렇지만, 용사 이야기의 주역은 세 명인걸요.’
《역사란 역사일 뿐이다. 가짜라고 여겼던 것이 진짜일 때도 있고, 진실이라 여겼던 것이 허구일 수도 있지. 선택은 네 몫이다. 그걸 돕는 것이 내 역할이고.》
언뜻 무책임해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든든한 격려.
그 격려에 용기를 받아, 피나는 입을 열었다.
“고민이 심하시다면, 당장 대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 그냥 거절하셔도 돼요.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사람들을 돕는 것도 훌륭한 일인걸요.”
성녀의 눈이 크게 떠지고, 옆에서 못마땅한 기색으로 침묵하던 현자가 기함했다.
“뭔 소리야? 지금 저년을 그냥 방생하겠다고?”
“현자님. 붙잡은 물고기도 아니고 방생이라는 말은 조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차피 현자님도 성녀님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잘 된 거 아닌가요?”
현자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아니꼬운데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흥, 멋대로 해라! 마왕을 쓰러트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군!”
성녀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정말로,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오히려 괜히 부담드려서 죄송해요.”
“…….”
안도와 자괴감이 복잡하게 얽힌 얼굴로 성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그 뒤에는, 반드시 대답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성녀의 말에,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올바르지 않은 전개를 멈추라는 듯이, 무대가 그 막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물론, 포르테는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포르테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주변 풍경을 강제로 잡아 고정한 뒤, 무대의 억지력에 저항했다.
결국 방비를 돌파하지 못한 무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용사와 현자의 권유에, 성녀는 기꺼이 응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저 또한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새로운 여정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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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현자의 권유에, 성녀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인 듯하니, 부디 조금만 더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
어쩔 수 없이 용사와 현자는 성녀를, 아니 평범한 여인을 방치한 채 떠나갔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줄거리를 요약할 때 핵심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피나는 포르테에게 내심으로 말을 걸었다.
‘선조님은 본래 여기서 성녀님을 설득했던 걸까요?’
《그렇겠지. 방금 성녀는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상황에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으니까. 좀 더 강한 압박이나 호소를 했더라면, 결국 합류했을 거다.》
더 큰 비극과 유혈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왕을 쓰러트려야 한다든지, 여기서 이런 일을 해봐야 당신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든지, 협력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정체를 밝히겠다든지, 그야말로 설득의 수단은 무궁무진했겠지.
만약 그걸 사용했더라면 포르테가 괜히 무리해 가며 무대에 맞서 힘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르테는 그러지 않았다.
피나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전해 들었던 이야기와는 다르네요. 현자님은 언제나 근엄하고 허허로운 조언자가 아니라 불평불만이 많고 심보가 나쁜 마법사고. 성녀님은 흔들림 없는 신앙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철인이 아니라 평범하게 고민하고 겁을 먹는 사람이고.’
《그래서 실망했나?》
‘아뇨, 더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고 부족했던 사람들인데도 위업을 이뤄낸 거니까요. 무서운 마왕과 맞서 싸운 거니까요.’
그렇게 말한 뒤, 피나는 뺨을 긁적거렸다.
‘뭐, 여기서 이렇게 선택지를 준다고 해도 실제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의미 같은 건 없겠지만요. 아니, 오히려 과거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의미로는 마이너스일지도.’
《그런 건 신경 쓰지 마라. 사람을 멋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 뜻대로 춤추라는 거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으니.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포르테의 단언에, 피나는 배시시 웃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마검님의 조언은 너무나 든든하고 포근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무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성녀를 동료로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용사와 현자는 여정을 이어 나갔습니다.
마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용사 일행은 점점 그 실력을 키웠고, 마왕군 역시 그런 용사 일행을 위협으로 여겼는지 점점 더 강력한 군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일행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실력은 수의 차이를 뒤엎을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궁지에 몰린 그때, 마왕의 침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나라의 전령들이 일행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 용감한 용사님, 지혜로운 현자님. 우리가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함께 마왕을 쓰러트립시다!”
“여러분의 위대한 업적이 우리를 감격도록 하였습니다. 부디 우리들의 구심점이 되어주세요!”
현자는 삐딱한 자세로 이웃 왕국의 전령을, 아니 전령‘들’을 노려보았다.
어느새인가 자기가 관객이 아니라 배우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피나 역시 눈을 껌뻑거리며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위대하신 알바리아 왕국의 통치자이신 필립 유시드 알바리아 폐하께서 여러분의 공헌을 상찬하시기를, 여러분을 귀빈으로서 본국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하신 수신의 후손이자 키르키오스의 정통한 지배자 갈릴레이 로트 이페리파라 공께서 두 분에게 명예 기사의 작위를 내리셨습니다! 부디 아국과 함께하여 이 환란을 이겨내는 데 조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허! 용사님들께서는 우리 알바리아의 귀빈으로서 방문하실 것이오!”
“무슨 소리!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아무런 직함조차 건네지 않고 무작정 찾아오라 하는 것은 무례나 마찬가지요!”
“고작 해봐야 명예 기사 따위로 생색을 내는군! 폐하께서 직접 이분들을 마주한다면 마땅히 그에 적합한 직위를 내릴 것인데, 어찌 당장의 일만 생각하여 헛된 망언으로 귀인들의 귀를 현혹하려 하는가!”
“수레에 담긴 그 조잡한 재화로 현혹하려는 건 그쪽 아니오!”
“뭣이 어째!?”
어느새 용사 일행은 방치한 채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이웃 나라의 전령들을 보며, 현자가 툭 하고 내뱉었다.
“어이, 거기 네놈들.”
“네, 네놈들?”
“어흠, 현자님. 저는 지금 위대하신 이페리파라 공의 대리인으로서 방문한 것이오니, 부디 예의를….”
“예의고 개뿔이고. 그래서 마왕 토벌에 얼마나 보태줄 건데? 병사 몇만은 보내주나?”
현자의 말에, 전령들의 입이 조가비처럼 다물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현자가 냉소했다.
“봤느냐, 용사야. 우리가 피똥 싸가며 마왕군의 진격을 붙들어 매고 있어도, 협력은커녕 인재 빼내기나 시도하는 꼬라지를. 이것들은 그냥 확 당하게 놔둬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지들 발등에도 불씨가 떨어져 봐야 헛소리를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