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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마검 포르테(Forte) (12) - 이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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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고는 하지만, 본디 칼이라는 건 칼날이 없어도 위험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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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에 들어있건, 칼등으로 때렸건, 묵직한 쇳덩이가 머리를 후려치면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삼도천을 건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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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만약 상대가 일반인이었더라면, 피나는 검을 휘두르기 전에 이래저래 망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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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휴일이 중요해도 그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일부 야근에 시달린 직장인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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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년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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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부터 나쁘지 않은 실력에, 악마의 힘까지 빌린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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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피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청년을 두들겨 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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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퍼억! 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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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크헉! 악!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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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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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부터 두 눈을 당한 게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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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직후 뒤통수가 내려 찍혔고, 바닥으로 엎어지니 옆구리에 풀스윙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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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피나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피나는 그때마다 귀신같이 달라붙으며 청년을 끊임없이 두들겨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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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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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마음속, 당혹과 의문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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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도 4위계 턱걸이 정도의 실력을 지녔던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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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나와 계약한 뒤 그 힘은 더욱 강해져, 검강(오러)을 형성하는 것조차 가능해졌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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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청년은 지금 신체 주변에 오러를 이용한 갑옷을 두른 상태였고, 이는 어지간한 참격 따윈 가볍게 튕겨낼 만큼 강력한 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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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갑옷이 아무런 효과가 없지? 설마 저 마검이라는 건 오러를 통한 방어마저 무시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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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생각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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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가 어지간한 방어는 무시해 버릴 정도의 명검인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칼집에 들어간 채로 오러를 뚫어버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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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청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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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완벽하다고 생각한 방어가,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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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라는 건 그 응용력이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지. 마력 그 자체에 물리력을 부여할 수 있으니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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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은 무기 위에 덧씌워서 한계 이상의 파괴력을 내거나 피부 표면에 둘러 갑옷처럼 쓰는 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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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길게 뿜어내 무기의 사정거리를 늘린다거나, 구슬 형태로 만들어 포탄처럼 쏘아낼 수도 있지. 무기에 덧씌우는 것도 날 쪽에만 오러를 압축해서 위력을 극대화한다거나, 공격을 당하는 부위에만 오러를 집중해 방어력을 좀 더 높이는 등 파고들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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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기교나 궁리는 본인이 차곡차곡 단련을 쌓음으로써 터득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 없이 그냥 ‘오러’라는 힘만 덜컥 얻게 된다면… 바로 눈앞의 청년처럼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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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강이 쪽에 오러가 풀렸군. 발끝으로 걷어차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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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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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마검의 속삭임에 홀린 소녀가 다리를 힘껏 휘두르니, 청년의 입에서 곡소리가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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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어! 일단 거리를 벌려! 주문으로 견제를 해! 지금 옆구리 비었잖아! 아니, 거기서는 검을 쓸 게 아니라 주먹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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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디바나는 속이 터져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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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피나가 던전 내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마검의 힘을 이용한 압도적인 출력 싸움을 보여줬다면 그녀 역시 납득했을 것이다. 그건 그냥 스펙에서 밀려서 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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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나는 지금 마검의 힘은 거의 빌리지도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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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그 자체는 청년 쪽이 우월한데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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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나는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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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녀가 직접 본체를 드러낸다면 상황을 반전하는 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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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경우 교수진들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될 테고, 이는 이후의 작전 수행에 어마어마한 방해가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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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그건 그것대로 계약자가 피나 손에 재기불능이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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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사람 패는 건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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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고민에 잠겨 있던 디바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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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야, 잘 들어! 지금부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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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단이 옳은 결정인지는 나중이 되어야 알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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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뇩심에 눈이 멀었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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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여기저기가 울퉁불퉁해진 나머지, 본래의 준수한 미모는 찾아볼 수 없을 몰골이 된 청년이 대뜸 고개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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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천히 본인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발음이 새기는 했으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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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서 마검의 힘이 너무 탐이 났다. 자기가 순간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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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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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듯이 뺨을 긁적이는 피나의 모습에, 디바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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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게 맞았어! 일단 용사의 후손이잖아? 네가 뭐 사람을 죽이거나 했으면 모를까, 도둑질 한 번 시도했다고 대뜸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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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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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내심 피나가 그렇게까지 순진하고 정의로운 인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지만, 굳이 디바나의 주장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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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더 두들겨 맞느니, 이렇게라도 싸움을 끝내고 싶은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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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분노한 피나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대뜸 청년의 목을 날려버리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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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에도 디바나는 열변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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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동정심을 파고드는 쪽으로 가! 가문의 압박을 받아 너무 괴로웠다! 그런 상황에서 눈앞에 강대한 힘이 보이니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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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 상태에 빠진 피나의 곁에서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서 그녀를 이끄는 건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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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반대로 측은지심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할 수는 있을 거라며 디바나는 작전을 지시했고, 청년은 이에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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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기사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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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위대한 선조의 이름값에 비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한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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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뛰어난 재능을 드러낸 소년과 그런 아들을 향한 부친과 가문 어른들의 막대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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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자기 재능이 어린 시절의 반짝임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고 초조함을 느끼던 소년, 아니 이제는 머리가 커버린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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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하게 내뱉는 청년의 하소연에는 실로 비장감과 진실미가 넘쳤는데, 그야 이야기 대부분이 사실이라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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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원해서 검을 훔쳤다’라는 부분을 ‘악마와 계약했다’라고만 바꾸면 청년의 인생사 그 자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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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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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눈에 동정심이 한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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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성공을 직감한 청년과 디바나가 저도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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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나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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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던전을 같이 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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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이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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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청년과 디바나의 머릿속에서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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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실 여러분하고 함께 있을 때는 살짝 스케쥴을 느슨하게 했었거든요. 마검님도 ‘때로는 동료와 함께 싸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라면서 허락해 주셨고요, 그런데, 마음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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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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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느슨이 뭐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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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금 더 노력해 볼게요! 함께 힘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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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알지 못했지만, 이는 피나의 크나큰 선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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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훈련이니 싸움이니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청년의 과거사를 동정하며 의욕을 불태우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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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피나 양의 스케쥴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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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안색이 사색으로 변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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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향한 간절한 발버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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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청년을 향해, 피나가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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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괜찮아요! 마검님이 해결법을 아신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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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법… 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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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에 걸고 있는 보석을 잠시만 빌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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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몸을 흠칫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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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지정한 것은 다름 아닌 디바나가 몸을 숨기고 있는 장신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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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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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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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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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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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건 그냥 그릇일 뿐이야. 설령 파괴된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문제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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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곧바로 장신구에서 뛰쳐나와 피나를 제압할 심산으로, 디바나는 준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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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역시 그런 디바나의 심정을 이해하고는, 조심스레 피나에게 장신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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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그걸 검 손잡이에 둘둘 말더니, 나무 아래의, 인공적인 조명이 전혀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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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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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얼 하시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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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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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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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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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무 그늘에 방치되었을 때만 해도, 디바나는 피나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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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장신구 안쪽에 있는 결계에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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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신이 이상한 애 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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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퍼붓는 욕설은 보통 칭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니, 그것참 극찬이 아닐 수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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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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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디바나는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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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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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림자를 뭉쳐놓은 듯한 남자는, 그 이목구비도, 복장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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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은 외모도 외모였지만, 뭣보다 자기만의 공간에 ‘외부인’이 쳐들어왔다는 사실이 디바나의 경계심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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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야?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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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걸 묻지 말도록. 어차피 뻔한 이야기인 데다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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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자, 그 손아귀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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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의 형상이 피나의 검과 똑같다는 걸 깨닫고, 디바나는 마침내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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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네가, 마검님? 그냥 미치광이의 헛소리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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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군. 자,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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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포르테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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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게. 죽음인지, 협력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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