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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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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110화 마검 포르테(Forte) (12) - 이지선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고는 하지만, 본디 칼이라는 건 칼날이 없어도 위험한 물건이다.

칼집에 들어있건, 칼등으로 때렸건, 묵직한 쇳덩이가 머리를 후려치면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삼도천을 건널 수 있다.

고로 만약 상대가 일반인이었더라면, 피나는 검을 휘두르기 전에 이래저래 망설였을 것이다.

아무리 휴일이 중요해도 그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일부 야근에 시달린 직장인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청년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본래부터 나쁘지 않은 실력에, 악마의 힘까지 빌린 강자.

고로, 피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청년을 두들겨 팰 수 있었다.

퍽! 퍼억! 퍼어억!

“컥! 크헉! 악! 악!”

청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단 시작부터 두 눈을 당한 게 치명적이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직후 뒤통수가 내려 찍혔고, 바닥으로 엎어지니 옆구리에 풀스윙이 들어왔다.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피나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피나는 그때마다 귀신같이 달라붙으며 청년을 끊임없이 두들겨 팼다.

‘왜, 어째서…!?

청년의 마음속, 당혹과 의문이 차올랐다.

본래도 4위계 턱걸이 정도의 실력을 지녔던 청년이었다.

디바나와 계약한 뒤 그 힘은 더욱 강해져, 검강(오러)을 형성하는 것조차 가능해졌을 정도.

실제로 청년은 지금 신체 주변에 오러를 이용한 갑옷을 두른 상태였고, 이는 어지간한 참격 따윈 가볍게 튕겨낼 만큼 강력한 방어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갑옷이 아무런 효과가 없지? 설마 저 마검이라는 건 오러를 통한 방어마저 무시한단 말인가?

청년의 생각은 틀렸다.

포르테가 어지간한 방어는 무시해 버릴 정도의 명검인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칼집에 들어간 채로 오러를 뚫어버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고로, 청년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은 완벽하다고 생각한 방어가, 실제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뿐.

《오러라는 건 그 응용력이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지. 마력 그 자체에 물리력을 부여할 수 있으니 오죽할까.》

《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은 무기 위에 덧씌워서 한계 이상의 파괴력을 내거나 피부 표면에 둘러 갑옷처럼 쓰는 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초일 뿐이다.》

《오러를 길게 뿜어내 무기의 사정거리를 늘린다거나, 구슬 형태로 만들어 포탄처럼 쏘아낼 수도 있지. 무기에 덧씌우는 것도 날 쪽에만 오러를 압축해서 위력을 극대화한다거나, 공격을 당하는 부위에만 오러를 집중해 방어력을 좀 더 높이는 등 파고들면 끝이 없다.》

《그리고 그런 기교나 궁리는 본인이 차곡차곡 단련을 쌓음으로써 터득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 없이 그냥 ‘오러’라는 힘만 덜컥 얻게 된다면… 바로 눈앞의 청년처럼 되겠지.》

《아, 정강이 쪽에 오러가 풀렸군. 발끝으로 걷어차면 되겠어.》

‘네, 마검님!!

사악한 마검의 속삭임에 홀린 소녀가 다리를 힘껏 휘두르니, 청년의 입에서 곡소리가 퍼져 나왔다.

《야! 야!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어! 일단 거리를 벌려! 주문으로 견제를 해! 지금 옆구리 비었잖아! 아니, 거기서는 검을 쓸 게 아니라 주먹을, 아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디바나는 속이 터져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피나가 던전 내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마검의 힘을 이용한 압도적인 출력 싸움을 보여줬다면 그녀 역시 납득했을 것이다. 그건 그냥 스펙에서 밀려서 진 거니까.

그런데 피나는 지금 마검의 힘은 거의 빌리지도 않고 있었다.

스펙 그 자체는 청년 쪽이 우월한데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만 있는 것이다.

디바나는 고심했다.

여기서 그녀가 직접 본체를 드러낸다면 상황을 반전하는 건 가능하다.

허나 그 경우 교수진들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될 테고, 이는 이후의 작전 수행에 어마어마한 방해가 될 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그건 그것대로 계약자가 피나 손에 재기불능이 될 판이다.

벌레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사람 패는 건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 아닌가.

한참 고민에 잠겨 있던 디바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아, 진짜…! 야, 잘 들어! 지금부터 너는─》

그 결단이 옳은 결정인지는 나중이 되어야 알 수 있을 터였다.


“제, 제가 뇩심에 눈이 멀었슙니다!”

얼굴 여기저기가 울퉁불퉁해진 나머지, 본래의 준수한 미모는 찾아볼 수 없을 몰골이 된 청년이 대뜸 고개를 박았다.

그는 천천히 본인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발음이 새기는 했으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검사로서 마검의 힘이 너무 탐이 났다. 자기가 순간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상.

“으음.”

곤란한 듯이 뺨을 긁적이는 피나의 모습에, 디바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역시, 이게 맞았어! 일단 용사의 후손이잖아? 네가 뭐 사람을 죽이거나 했으면 모를까, 도둑질 한 번 시도했다고 대뜸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그, 그렇군요.

청년은 내심 피나가 그렇게까지 순진하고 정의로운 인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지만, 굳이 디바나의 주장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괜히 더 두들겨 맞느니, 이렇게라도 싸움을 끝내고 싶은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청년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분노한 피나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대뜸 청년의 목을 날려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사이에도 디바나는 열변을 토해냈다.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동정심을 파고드는 쪽으로 가! 가문의 압박을 받아 너무 괴로웠다! 그런 상황에서 눈앞에 강대한 힘이 보이니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피폐 상태에 빠진 피나의 곁에서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서 그녀를 이끄는 건 불가능해졌다.

허나 반대로 측은지심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할 수는 있을 거라며 디바나는 작전을 지시했고, 청년은 이에 충실히 따랐다.

그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기사 가문.

허나 위대한 선조의 이름값에 비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한 후손들.

그러던 와중 뛰어난 재능을 드러낸 소년과 그런 아들을 향한 부친과 가문 어른들의 막대한 압박.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자기 재능이 어린 시절의 반짝임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고 초조함을 느끼던 소년, 아니 이제는 머리가 커버린 청년.

구구절절하게 내뱉는 청년의 하소연에는 실로 비장감과 진실미가 넘쳤는데, 그야 이야기 대부분이 사실이라서 그랬다.

‘힘을 원해서 검을 훔쳤다’라는 부분을 ‘악마와 계약했다’라고만 바꾸면 청년의 인생사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군요….”

피나의 눈에 동정심이 한가득 담겼다.

작전 성공을 직감한 청년과 디바나가 저도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피나가 선언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던전을 같이 돌죠!”

잠시 시간이 정지했다.

적어도 청년과 디바나의 머릿속에서는 그러했다.

“사, 사실 여러분하고 함께 있을 때는 살짝 스케쥴을 느슨하게 했었거든요. 마검님도 ‘때로는 동료와 함께 싸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라면서 허락해 주셨고요, 그런데, 마음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을 줄이야….”

청년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느슨이 뭐 어째?

“저도, 조금 더 노력해 볼게요! 함께 힘내죠!”

둘은 알지 못했지만, 이는 피나의 크나큰 선의였다.

본질적으로 훈련이니 싸움이니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청년의 과거사를 동정하며 의욕을 불태우기로 한 것이다.

“가,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피나 양의 스케쥴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청년은 안색이 사색으로 변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존을 향한 간절한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그런 청년을 향해, 피나가 환히 웃었다.

“아, 괜찮아요! 마검님이 해결법을 아신다고 하니까요!”

“해결법… 이라니요?”

“그 목에 걸고 있는 보석을 잠시만 빌려주시겠어요?”

청년이 몸을 흠칫 떨었다.

피나가 지정한 것은 다름 아닌 디바나가 몸을 숨기고 있는 장신구였기 때문이다.

‘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디바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일단 넘겨.》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건 그냥 그릇일 뿐이야. 설령 파괴된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문제가 없어.》

여차하면 곧바로 장신구에서 뛰쳐나와 피나를 제압할 심산으로, 디바나는 준비를 갖추었다.

청년 역시 그런 디바나의 심정을 이해하고는, 조심스레 피나에게 장신구를 건넸다.

피나는 그걸 검 손잡이에 둘둘 말더니, 나무 아래의, 인공적인 조명이 전혀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방치했다.

청년이 질문했다.

“지금, 무얼 하시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피나가 대답했다.

“저도 잘 몰라요!”

“……?”


처음 나무 그늘에 방치되었을 때만 해도, 디바나는 피나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장신구 안쪽에 있는 결계에서 중얼거렸다.

“진짜 정신이 이상한 애 같다니까.”

“적이 퍼붓는 욕설은 보통 칭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니, 그것참 극찬이 아닐 수 없겠군.”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디바나는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마치 그림자를 뭉쳐놓은 듯한 남자는, 그 이목구비도, 복장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수상쩍은 외모도 외모였지만, 뭣보다 자기만의 공간에 ‘외부인’이 쳐들어왔다는 사실이 디바나의 경계심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너, 뭐야?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시시한 걸 묻지 말도록. 어차피 뻔한 이야기인 데다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남자가 오른팔을 들어 올리자, 그 손아귀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그 검의 형상이 피나의 검과 똑같다는 걸 깨닫고, 디바나는 마침내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러면, 네가, 마검님? 그냥 미치광이의 헛소리가 아니었다고?”

“다행히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군. 자, 그러면─”

남자, 포르테가 선언했다.

“선택하게. 죽음인지, 협력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