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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마검 포르테(Forte) (6) - 졸업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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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교육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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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그럴듯한 수식어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특별함을 갖춰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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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아이제른 제국의 자랑 중 하나이자 제국의 탄탄한 허리층의 근간이 되는 『황립 제국원』의 경우, 그 규모와 범용성이 특징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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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오백여 명의 교수진과 백작령의 운영 자금 수준인 풍부한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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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마법, 교양, 공학, 행정 등 ‘이곳을 무사히 졸업하기만 하면 어디에다 박아 넣어도 한 사람 몫은 한다’라고 평가받을 만큼 다양한 교육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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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최강의 강대국이라는 인식과 달리 졸업생들의 평균 무력은 전투계열로 한정해도 3위계 언저리로 그리 높지 않았으나, 제국의 높으신 분들은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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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제국원은 일종의 신입 공급처 같은 곳이라서, 이곳을 졸업한 인재들을 데려간 뒤 기사단이든 마탑이든 행정부처든 간에 자기네 쪽에서 추가로 굴려서 키우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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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점에서, 천공 학원은 제국원과는 정반대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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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기간은 길고, 학생 수는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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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예산이란 면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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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천공 학원이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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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막대한 자원과 드높은 기술력을 지니고도, 천공 학원의 특수한 ‘환경’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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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검으로 허수아비 만 번 때리기’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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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이 소소하게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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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p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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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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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피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늘어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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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변에는 십여 명의 학생들이 피나와 마찬가지로 목검을 손에 든 채 기진맥진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목검 휘두르기를 중단한 모습을 본 검술 교수 라이제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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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끝나가나? 그러면 다음 단계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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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검으로 허수아비 정확하게 만 번 때리기’가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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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조건: 허수아비의 붉은빛을 정확하게 가격할 것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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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시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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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보상: 신체 제어력 소량 상승/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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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1: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 시 카운트 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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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2: 정확한 타격에 실패할 때마다 카운트가 1씩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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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퀘스트가 뜨는 것과 동시에, 기존 퀘스트를 끝마친 학생들의 허수아비가 기이한 빛을 뿜으며 발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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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린 것과 비슷한 크기의 붉은빛이 허수아비의 이마에 떠올랐고, 그 빛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음에는 옆구리에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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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떠오르고 사라질 때까지의 간격은 1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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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는 아니라고 해도, 묵직한 목검으로 재깍재깍 타격 위치를 바꿔가며 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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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마력을 통해 몸을 강화하는 것도 금지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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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하나같이 벌레 씹은 얼굴을 한 걸 보았는지, 라이제놀이 껄껄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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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해라!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놈들만 하고, 이게 아니다 싶은 놈들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퀘스트를 시도하거나 그냥 방에서 쉬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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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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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허수아비를 때릴 만큼 때려 지친 상태였기에 불만을 느꼈을 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에 도전하라고 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퀘스트만은 아니었다. 여러 번에 걸쳐 나눠서 할 수 있다면 더더욱 쉬워질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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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없는 모양이로군. 그러면 난 다른 곳으로 가볼 테니, 내일 이 시간에 또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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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발걸음으로 라이제놀이 떠나가자, 어떤 학생은 곧바로 검을 내려놓았고, 어떤 학생은 의욕적으로 허수아비 때리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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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마검 포르테는 흥미로운 기색으로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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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자유분방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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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는 데다가 장학금 제도도 풍부한 대신, 전반적으로 열의가 넘치다 못해 다소 살벌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황립 제국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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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교수 라이제놀의 성품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애초에 천공 학원의 수업 대부분이 이런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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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것은 스승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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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공 학원에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것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퀘스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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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계열, 마법사 계열, 신관 계열로 각각 담당 교수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그에 답하는 자문 역할일 뿐, 그들 자신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일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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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피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아직 학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교수들 쪽에서 어느 정도 퀘스트를 선별하여 제시해 주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교수들과는 얼굴조차 보지 않고 퀘스트만 깨고 사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하니 이미 말을 다 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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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오히려 모험가 길드에 가까워. 비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철저하게 자동화를 끝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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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스템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확실한 성장을 보장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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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근력 +1 같은 식으로 사람의 능력치 하나하나를 점수화한 뒤에 포인트로 투자하는 경지까진 아닌 모양이었지만, 퀘스트를 완수한 학생들은 아주 미미하게나마 보상 칸에 적혀 있던 보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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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근육 단련으로 근력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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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라 똑같은 단련만으로는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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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맨몸으로 통나무를 잡아끌거나 들어 올리는 수준까진 도달할 수 있어도, 같은 크기의 돌기둥이나 금속 기둥을 휘두르는 건 불가능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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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이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건 마력으로 몸을 강화했기 때문일 뿐, 그런 그들도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냥 몸을 단련한 전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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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공 학원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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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퀘스트 보상에 ‘근력이 강해진다’라고 적혀 있었다면, 설령 그 당사자의 육체가 성장 한계에 도달해 있다 하더라도 근력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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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근력 상승은 일반적인 육체의 성장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었기에, 보상을 얻은 자가 실제로 근육 단련을 전혀 하지 않은 이라도 근육질의 거한을 힘으로 압도하는 것마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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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의 학생을 받아들여 성장시킨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겠지만… 아마 그건 자원적으로 어렵겠지. 단순히 영역 내에서 특질을 유지하는 거라면 몰라도, 외부로 나간 뒤에도 힘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더더욱. 인원을 선별해 소수 정예로 받는 것도 그 탓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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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7위계의 ‘영역’과 달리 천공 학원은 대륙 내에서도 유명한 부류였지만, 그래도 서류로 파악하는 것과 몸소 체감하는 건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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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내에서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탓에 시스템을 직접 볼 수 없는 건 유감이지만, 피나에게 간접적으로 듣는 것만 해도 흥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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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포르테는 흥미심 때문에 본인의 역할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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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의 음모를 저지하고, 그들에게서 피나를 지켜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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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마검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받은, 혹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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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걸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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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전까지만 해도, 피나 발레스티아는 천공 학원이라는 장소에 대해 내심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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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중부 최고라는 유명세를 지닌 곳인 동시에, 수업 도중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흉흉한 악명까지도 함께 보유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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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을 자칭하는 이들 중 누군가는 이곳을 낙원 같은 곳이라 평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절한 지옥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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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느 한쪽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피나가 막상 체험해 본 결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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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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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천공 학원이라는 장소는, 학생 본인의 선택에 따라 낙원으로도 지옥으로도 변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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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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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조건: 13p/1,000,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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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시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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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보상: 천공 학원 졸업. 학원 내에서 습득한 보상을 외부에서도 유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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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1: 클리어 조건의 p(포인트)는 누적이 아닌 현재 보유량을 기준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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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2: 10,000p를 소모하여 ‘가졸업’이 가능. 이 경우 학원에서 얻은 보상들을 가져갈 수 없으나, 시스템의 보조를 받지 않은 성장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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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은 다른 학원과 달리 몇 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고, 시험 몇 번을 쳤다고 졸업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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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내에서의 온갖 자질구레한 행동에는 p라는 별도의 점수가 보상으로 주어졌고, 이를 백만 점 모아야만 졸업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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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위험한 퀘스트일수록 보상은 강렬했고, 주어지는 p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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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어려운 퀘스트’란 교수들 밑에서 얌전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대체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의문인 학원 곳곳을 쏘다니며 위험한 일이란 위험한 일은 죄다 하고 다녀야만 완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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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본인이 쉬운 것만 하려고 하면 느린 대신 쉽게 가지만, 빠른 성장을 원하면 난이도가 극한까지 치솟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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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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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쉬운 길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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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평범한 수업이 주는 점수는 과목 하나당 평균 5p, 하루에 세 개쯤 듣는다고 가정했을 때 15p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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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졸업은 아득히 멀고 멀지만, 가졸업 정도라면 몇 년쯤 반복하면 충분히 닿을만한 범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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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천공 학원 내에는 p를 재화 삼아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나 상점 같은 것들도 존재하니, 너무 낭비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노력하다 보면 그럭저럭 무난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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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얼추 반년 정도면 끝낼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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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포르테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을 때, 피나는 당황해서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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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반년은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거 아닐까요? 아무리 가졸업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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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가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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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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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는 의아해했고, 피나도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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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마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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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졸업이라니. 그래서야 모처럼 이런 특별한 학원에 들어왔는데 그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지. 내가 말한 건 정식 졸업까지 얼추 반년쯤 걸릴 것 같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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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 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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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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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리예요! 진지하게 졸업을 노리면서 실력과 실적을 쌓은 경력 5년 이상 베테랑 선배님들도 하루에 500p를 넘게 버는 일이 드물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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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00p라고 하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그렇게 해도 졸업까지는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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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식사니 여가니 하는 걸로 포인트를 소모하고, 그보다 적게 버는 날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기간은 더욱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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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닳고 닳은 전문가들조차 그러할진대, 이제 막 입학한 새내기가 어찌 반년 만에 졸업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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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정당하고도 상식적인 항의에, 포르테는 간단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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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해라. 일단 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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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고 말하는 것 같은 확신으로 가득 찬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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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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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에 손을 대버린 어리석은 계약자의 말로(아님)란 대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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