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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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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마검 포르테(Forte) (6) - 졸업 조건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교육 기관.

위와 같은 그럴듯한 수식어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특별함을 갖춰야 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아이제른 제국의 자랑 중 하나이자 제국의 탄탄한 허리층의 근간이 되는 『황립 제국원』의 경우, 그 규모와 범용성이 특징으로 꼽힌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오백여 명의 교수진과 백작령의 운영 자금 수준인 풍부한 예산.

검술, 마법, 교양, 공학, 행정 등 ‘이곳을 무사히 졸업하기만 하면 어디에다 박아 넣어도 한 사람 몫은 한다’라고 평가받을 만큼 다양한 교육 분야.

대륙 최강의 강대국이라는 인식과 달리 졸업생들의 평균 무력은 전투계열로 한정해도 3위계 언저리로 그리 높지 않았으나, 제국의 높으신 분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제국원은 일종의 신입 공급처 같은 곳이라서, 이곳을 졸업한 인재들을 데려간 뒤 기사단이든 마탑이든 행정부처든 간에 자기네 쪽에서 추가로 굴려서 키우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천공 학원은 제국원과는 정반대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르치는 기간은 길고, 학생 수는 적다.

애초에 예산이란 면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도 천공 학원이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막대한 자원과 드높은 기술력을 지니고도, 천공 학원의 특수한 ‘환경’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퀘스트: 목검으로 허수아비 만 번 때리기’에 성공하셨습니다.】

【근력이 소소하게 상승합니다.】

【5p를 획득합니다.】

“후아아.”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피나는 들고 있던 목검을 늘어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십여 명의 학생들이 피나와 마찬가지로 목검을 손에 든 채 기진맥진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목검 휘두르기를 중단한 모습을 본 검술 교수 라이제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추 끝나가나? 그러면 다음 단계로 가지.”

【‘퀘스트: 목검으로 허수아비 정확하게 만 번 때리기’가 개방되었습니다.】

【클리어 조건: 허수아비의 붉은빛을 정확하게 가격할 것 0/10,000】

【제한 시간: 없음】

【클리어 보상: 신체 제어력 소량 상승/5p】

【특이 사항 1: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 시 카운트 되지 않음】

【특이 사항 2: 정확한 타격에 실패할 때마다 카운트가 1씩 감소】

새로운 퀘스트가 뜨는 것과 동시에, 기존 퀘스트를 끝마친 학생들의 허수아비가 기이한 빛을 뿜으며 발광했다.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린 것과 비슷한 크기의 붉은빛이 허수아비의 이마에 떠올랐고, 그 빛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음에는 옆구리에서 떠올랐다.

빛이 떠오르고 사라질 때까지의 간격은 1초 정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는 아니라고 해도, 묵직한 목검으로 재깍재깍 타격 위치를 바꿔가며 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마력을 통해 몸을 강화하는 것도 금지라고 하지 않던가.

학생들이 하나같이 벌레 씹은 얼굴을 한 걸 보았는지, 라이제놀이 껄껄 웃어댔다.

“안심해라!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놈들만 하고, 이게 아니다 싶은 놈들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퀘스트를 시도하거나 그냥 방에서 쉬어도 괜찮다!”

그의 말에,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미 허수아비를 때릴 만큼 때려 지친 상태였기에 불만을 느꼈을 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에 도전하라고 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퀘스트만은 아니었다. 여러 번에 걸쳐 나눠서 할 수 있다면 더더욱 쉬워질 테고.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없는 모양이로군. 그러면 난 다른 곳으로 가볼 테니, 내일 이 시간에 또 보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라이제놀이 떠나가자, 어떤 학생은 곧바로 검을 내려놓았고, 어떤 학생은 의욕적으로 허수아비 때리기를 계속했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마검 포르테는 흥미로운 기색으로 관찰했다.

《실로 자유분방하군.》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는 데다가 장학금 제도도 풍부한 대신, 전반적으로 열의가 넘치다 못해 다소 살벌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황립 제국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검술 교수 라이제놀의 성품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애초에 천공 학원의 수업 대부분이 이런 형식이었다.

일반적인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것은 스승의 역할이다.

하지만 천공 학원에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것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퀘스트들이었다.

전사 계열, 마법사 계열, 신관 계열로 각각 담당 교수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그에 답하는 자문 역할일 뿐, 그들 자신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일은 드물었다.

그나마 피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아직 학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교수들 쪽에서 어느 정도 퀘스트를 선별하여 제시해 주었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교수들과는 얼굴조차 보지 않고 퀘스트만 깨고 사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하니 이미 말을 다 한 셈.

《학원을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오히려 모험가 길드에 가까워. 비효율적이라고 해야 할지, 철저하게 자동화를 끝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군.》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스템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확실한 성장을 보장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근력 +1 같은 식으로 사람의 능력치 하나하나를 점수화한 뒤에 포인트로 투자하는 경지까진 아닌 모양이었지만, 퀘스트를 완수한 학생들은 아주 미미하게나마 보상 칸에 적혀 있던 보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근육 단련으로 근력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라 똑같은 단련만으로는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맨몸으로 통나무를 잡아끌거나 들어 올리는 수준까진 도달할 수 있어도, 같은 크기의 돌기둥이나 금속 기둥을 휘두르는 건 불가능한 일.

기사들이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건 마력으로 몸을 강화했기 때문일 뿐, 그런 그들도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냥 몸을 단련한 전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천공 학원은 달랐다.

만약 퀘스트 보상에 ‘근력이 강해진다’라고 적혀 있었다면, 설령 그 당사자의 육체가 성장 한계에 도달해 있다 하더라도 근력이 강해졌다.

심지어 이 근력 상승은 일반적인 육체의 성장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었기에, 보상을 얻은 자가 실제로 근육 단련을 전혀 하지 않은 이라도 근육질의 거한을 힘으로 압도하는 것마저 가능했다.

《대량의 학생을 받아들여 성장시킨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겠지만… 아마 그건 자원적으로 어렵겠지. 단순히 영역 내에서 특질을 유지하는 거라면 몰라도, 외부로 나간 뒤에도 힘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더더욱. 인원을 선별해 소수 정예로 받는 것도 그 탓일 테고.》

일반적인 7위계의 ‘영역’과 달리 천공 학원은 대륙 내에서도 유명한 부류였지만, 그래도 서류로 파악하는 것과 몸소 체감하는 건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영역 내에서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탓에 시스템을 직접 볼 수 없는 건 유감이지만, 피나에게 간접적으로 듣는 것만 해도 흥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으니.

물론, 포르테는 흥미심 때문에 본인의 역할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악마들의 음모를 저지하고, 그들에게서 피나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검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받은, 혹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이었으니.

그리고, 그걸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피나 발레스티아는 천공 학원이라는 장소에 대해 내심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이곳은 중부 최고라는 유명세를 지닌 곳인 동시에, 수업 도중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흉흉한 악명까지도 함께 보유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졸업생을 자칭하는 이들 중 누군가는 이곳을 낙원 같은 곳이라 평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절한 지옥이라고 평했다.

사람들은 어느 한쪽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피나가 막상 체험해 본 결과는 달랐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천공 학원이라는 장소는, 학생 본인의 선택에 따라 낙원으로도 지옥으로도 변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퀘스트: 졸업】

【클리어 조건: 13p/1,000,000p】

【제한 시간: 없음】

【클리어 보상: 천공 학원 졸업. 학원 내에서 습득한 보상을 외부에서도 유지 가능.】

【특이 사항 1: 클리어 조건의 p(포인트)는 누적이 아닌 현재 보유량을 기준으로 함.】

【특이 사항 2: 10,000p를 소모하여 ‘가졸업’이 가능. 이 경우 학원에서 얻은 보상들을 가져갈 수 없으나, 시스템의 보조를 받지 않은 성장은 유지된다.】

천공 학원은 다른 학원과 달리 몇 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고, 시험 몇 번을 쳤다고 졸업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학원 내에서의 온갖 자질구레한 행동에는 p라는 별도의 점수가 보상으로 주어졌고, 이를 백만 점 모아야만 졸업이 가능했다.

어렵고 위험한 퀘스트일수록 보상은 강렬했고, 주어지는 p도 많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어려운 퀘스트’란 교수들 밑에서 얌전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대체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의문인 학원 곳곳을 쏘다니며 위험한 일이란 위험한 일은 죄다 하고 다녀야만 완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학생 본인이 쉬운 것만 하려고 하면 느린 대신 쉽게 가지만, 빠른 성장을 원하면 난이도가 극한까지 치솟는 구조.

피나는 생각했다.

‘느리고 쉬운 길로 가야겠다.

현시점에서 평범한 수업이 주는 점수는 과목 하나당 평균 5p, 하루에 세 개쯤 듣는다고 가정했을 때 15p 정도.

진짜 졸업은 아득히 멀고 멀지만, 가졸업 정도라면 몇 년쯤 반복하면 충분히 닿을만한 범주였다.

다행히 천공 학원 내에는 p를 재화 삼아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나 상점 같은 것들도 존재하니, 너무 낭비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노력하다 보면 그럭저럭 무난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터.

《─흠. 얼추 반년 정도면 끝낼 수 있겠군.》

고로 포르테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을 때, 피나는 당황해서 반문했다.

“바, 반년은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거 아닐까요? 아무리 가졸업이라고 해도….”

《응? 가졸업?》

“…?”

포르테는 의아해했고, 피나도 의아해했다.

이윽고 마검이 말했다.

《가졸업이라니. 그래서야 모처럼 이런 특별한 학원에 들어왔는데 그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지. 내가 말한 건 정식 졸업까지 얼추 반년쯤 걸릴 것 같다는 거다.》

“엑. 에에엑!?”

피나는 기겁했다.

“무, 무리예요! 진지하게 졸업을 노리면서 실력과 실적을 쌓은 경력 5년 이상 베테랑 선배님들도 하루에 500p를 넘게 버는 일이 드물다고 하는데요…!”

하루 500p라고 하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그렇게 해도 졸업까지는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식사니 여가니 하는 걸로 포인트를 소모하고, 그보다 적게 버는 날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기간은 더욱 늘어난다.

이곳에서 닳고 닳은 전문가들조차 그러할진대, 이제 막 입학한 새내기가 어찌 반년 만에 졸업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피나의 정당하고도 상식적인 항의에, 포르테는 간단히 대답했다.

《안심해라. 일단 해보면 된다.》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내일도 태양은 떠오른다고 말하는 것 같은 확신으로 가득 찬 말이었다.

피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검에 손을 대버린 어리석은 계약자의 말로(아님)란 대개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