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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마검 포르테(Forte) (4) - 내 말을 따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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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고도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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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탑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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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시간이 3일이었다는 점. 그녀의 이동 속도 자체는 그리 특출난 게 아니라 평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인이라도 충분한 준비만 갖추면 제한 시간 내에 끝까지 도달할 수 있는 난이도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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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1차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응시자의 반을 넘지 못했는데, 대부분은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탑을 오르려다가 중간에 쓰러지거나 포기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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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강화를 통해 맨몸으로 맹수 급 신체 능력을 낼 수 있는 이들이라고 한들, 체력과 지구력의 한계는 또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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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탑 오르기’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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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 1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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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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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갑자기 출현한 배지를 피나가 허겁지겁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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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메이스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요철이 있는 것이 언뜻 봐도 이것 하나만으로는 완성품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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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신기한 듯이 배지와 배지가 갑자기 출현한 허공을 번갈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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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건이 떡 하니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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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은 천공의 현자가 자신의 것으로 삼은 영역이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축복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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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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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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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는 걸 이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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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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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그렇게 얼빠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피나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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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각인형 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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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조건: 인형을 쓰러트리고 그 정수를 셋 이상 모아 ‘문’으로 가져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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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시간: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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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천공 학원 2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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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인형의 정수는 참가자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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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발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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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빛으로 이루어진 화살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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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를 따라 이동하자 보인 것은, 마치 나무 밑동을 크게 넓혀 놓은 것 같은 무대와 그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는 목각인형. 그리고 목각인형을 상대로 열심히 전투를 이어 나가는 다른 응시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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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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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칼이 안 먹힌다고? 뭐가 이리 단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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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지마! 왁!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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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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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생 중 전사 타입으로 보이는 이가 인형을 상대로 칼을 내리쳤지만, 그 칼은 목각인형의 팔 표면에 흠집을 내는 데 그치고, 돌아온 나무 주먹이 전사의 안면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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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마법사 타입으로 보이는 이는 원거리에서 주문을 통해 인형을 기습하려 했지만, 그가 주문을 외우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인형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가더니, 이내 마법사에게 후다닥 달려와 그 배에 드롭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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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울퉁불퉁해진 전사와 입에서 토사물을 내뿜은 마법사가 나란히 무대 밖으로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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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하는 그들을 보며, 피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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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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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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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포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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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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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칼은 맞대 봐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하려던 포르테는 이내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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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상대로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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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대신 피나의 말을 못 들은 척 설명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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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가 단독으로 무난하게 승리하려면 적어도 검기 정도는 필요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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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검기 같은 거 못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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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검으로 승리하려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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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라는 건 결국 무기에 마력을 흘려 그 공격력을 강화하는 기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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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말하자면, 무기 그 자체의 위력이 충분하다면 굳이 검기 같은 걸 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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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여. 나를 믿고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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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잠시 불안한 기색으로 시선을 헤맸지만, 이내 조심스레 무대 위로 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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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식으로 표현한다면 마치 RPG의 몬스터처럼 곳곳을 어슬렁거리던 목각인형 중 하나가, 피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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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두 그림자가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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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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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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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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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의 목소리는 무대 바깥에서 침중한 얼굴로 목각인형들을 노려보던 응시자들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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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검격에 맞은 인형이, 여태까지 보여준 튼튼함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간단히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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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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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른 피나 본인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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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나이프로 버터를 베어 가르는 듯한 감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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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주어 잘라낸다기보다도, 그저 칼을 대고 있으니 알아서 쑤욱 하고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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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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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쓰러진 목각인형이 마치 낙엽처럼 말라붙는 듯하더니, 이내 저절로 부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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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동전 정도 크기의 씨앗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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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목각인형의 정수인 모양이로군. 어서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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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주머니에 정수를 집어넣은 뒤, 다음 인형을 향해 자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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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각인형은 그 적의를 감지한 듯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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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3개의 정수를 확보한 뒤, 피나는 헤픈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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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각보다 쉽네요! 마검님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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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고맙다, 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무대 바깥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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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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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포르테의 말대로 무대 바깥쪽을 향하자, 다수의 응시자들이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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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이목 집중에 피나는 긴장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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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험의 특이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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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사항: 인형의 정수는 참가자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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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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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해한 모양이로군. 지금 네가 무대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면, 다른 응시자들은 너를 노릴 거다. 혼자서라면 몰라도, 다른 이들과 협공한다면 기회가 있으리라 여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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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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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보여주면 되겠지. 본보기로 몇 명을 화려하게 때려눕히고, 건드리는 게 손해라는 걸 각인시켜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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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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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의 설명에도, 피나는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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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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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보는 게 싫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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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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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어리광으로도 보이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편한 길을 굳이 마다하려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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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망치는 게 답이겠군. 정면 돌파와 미끼 작전, 어느 쪽이 취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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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쉬운 건 어느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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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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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덜 흉흉한 건 어느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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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기준 따라 다르겠지만, 내 관점에서 말하자면 미끼 작전 쪽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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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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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그러면 우선, 목각인형을 닥치는 대로 베라. 증표가 서른 개쯤 있으면 충분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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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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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앞선 전투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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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별다른 군말 없이 목각인형들을 차곡차곡 베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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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응시자와 싸우고 있는 개체는 굳이 건드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목각인형 중 상대가 있는 건 전체 중 1/10도 되지 않았기에 골라잡기는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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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수를 대량으로 확보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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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포르테의 지시대로, 정수 한 움큼을 손에 쥔 뒤 무대 바깥 허공으로 던져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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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그 정수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고, 그 틈을 타 피나는 ‘문’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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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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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자 중에는 무대 주변이 아닌, 아예 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대기 중인 이들도 있었지만, 피나는 이번에도 그들의 머리 위로 정수 한 움큼을 투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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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의 앞을 가로막으려던 이들은 순간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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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응시자 한 명에게 필요한 정수는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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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와 정면으로 싸워 다수의 정수를 빼앗기보다, 그냥 흩뿌려진 정수를 재빨리 회수하는 쪽이 훨씬 더 안전하고 간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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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작업을 서너 번쯤 반복하자, 마침내 2차 시험의 결산 장소인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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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을 지키고 있던 중년의 검사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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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씀씀이가 너무 큰 것 아닌가? 면접 볼 사람이 너무 많다고 에밀 교수가 잔소리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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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는 듯한 말투였지만,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모양새로 보아 검사 역시 피나의 행동을 그리 나쁘게 본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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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시험관 겸 천공 학원의 검술 교관 라이제놀일세. 자, 기발한 아가씨. 증표를 제출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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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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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라이제놀의 손바닥 위에 정수 세 개를 냉큼 제출했고, 라이제놀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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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시험용 대기실은 저쪽일세. 시험 개시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느긋하게 기다리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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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시선을 향하자, 여러 단층으로 나뉜 객석 같은 공간에 서너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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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옷차림이 멀끔하고 눈빛이 강렬한 것이,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집단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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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3계위 최상위에서 4계위 정도겠군. 이른바 엘리트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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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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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의 옆에 당당히 착석… 하지는 않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객석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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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에게 말을 걸려는 기색이었던 몇몇 응시생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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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퀘스트 창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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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각인형 토벌’에 성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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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학원 2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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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아까처럼 허공에서 작은 금속 파편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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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가 비스듬한 각도의 메이스였다면, 이번 것은 위아래로 곧게 세워진 검 형태의 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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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배지에도 뚜렷한 요철이 있는 걸 확인한 피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한 뒤 두 배지를 겹쳤고, 예상대로 두 배지는 딱 하고 맞아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하나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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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곧바로 3차 퀘스트가 떠오르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퀘스트 창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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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의 2차 퀘스트가 마무리된 후에야 3차 퀘스트가 떠오르는 구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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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앞서 객석에 앉아 있던 여성 중 하나가 날 선 목소리로 피나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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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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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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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가 눈을 껌뻑거리자,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은 피나를 거침없이 추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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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를 그렇게 많이 뿌려버리면 어떻게 해? 너 때문에 실력도 없는 놈들이 잔뜩 여기까지 올라올 것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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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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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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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피나의 모습을 보고 기세가 등등해졌는지, 여성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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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우물쭈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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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지금처럼 남들의 눈과 귀가 가까운 상태에서 검에 말을 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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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여. 안심해라. 내가 이 상황을 타파할 비법을 알려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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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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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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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검은 다 생각이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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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해라. 토씨 하나 틀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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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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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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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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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세요? 남이야 어떻게 통과하든 상관 마시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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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세요? 남이야 어떻게 통과하든 상관 마시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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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뭔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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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여성을 보며, 피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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