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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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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마검 포르테(Forte) (4) - 내 말을 따라해라.

하루하고도 반나절.

피나가 탑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제한 시간이 3일이었다는 점. 그녀의 이동 속도 자체는 그리 특출난 게 아니라 평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인이라도 충분한 준비만 갖추면 제한 시간 내에 끝까지 도달할 수 있는 난이도라는 뜻.

허나 그런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1차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응시자의 반을 넘지 못했는데, 대부분은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탑을 오르려다가 중간에 쓰러지거나 포기한 경우였다.

마력 강화를 통해 맨몸으로 맹수 급 신체 능력을 낼 수 있는 이들이라고 한들, 체력과 지구력의 한계는 또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퀘스트: 탑 오르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천공 학원 1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를 획득합니다.】

“우왓.”

허공에서 갑자기 출현한 배지를 피나가 허겁지겁 낚아챘다.

배지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메이스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요철이 있는 것이 언뜻 봐도 이것 하나만으로는 완성품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피나는 신기한 듯이 배지와 배지가 갑자기 출현한 허공을 번갈아 응시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건이 떡 하니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천공 학원은 천공의 현자가 자신의 것으로 삼은 영역이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축복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는 하지.》

“아하.”

《이해했나?》

“잘 모르겠다는 걸 이해했어요!”

《…음, 그래. 다행이군.》

두 사람이 그렇게 얼빠진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피나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목각인형 토벌】

【클리어 조건: 인형을 쓰러트리고 그 정수를 셋 이상 모아 ‘문’으로 가져갈 것】

【제한 시간: 3시간】

【보상: 천공 학원 2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

【특이 사항: 인형의 정수는 참가자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음】

피나의 발밑.

마치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빛으로 이루어진 화살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자 보인 것은, 마치 나무 밑동을 크게 넓혀 놓은 것 같은 무대와 그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는 목각인형. 그리고 목각인형을 상대로 열심히 전투를 이어 나가는 다른 응시생들이었다.

캉! 퍽!

“카, 칼이 안 먹힌다고? 뭐가 이리 단단해?! ”

“오, 오지마! 왁! 악!”

“커헉!”

응시생 중 전사 타입으로 보이는 이가 인형을 상대로 칼을 내리쳤지만, 그 칼은 목각인형의 팔 표면에 흠집을 내는 데 그치고, 돌아온 나무 주먹이 전사의 안면을 후려쳤다.

반대로 마법사 타입으로 보이는 이는 원거리에서 주문을 통해 인형을 기습하려 했지만, 그가 주문을 외우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인형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가더니, 이내 마법사에게 후다닥 달려와 그 배에 드롭킥을 날렸다.

얼굴이 울퉁불퉁해진 전사와 입에서 토사물을 내뿜은 마법사가 나란히 무대 밖으로 내던져졌다.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하는 그들을 보며, 피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 마검님.”

《왜 그러지?》

“그냥 포기할까요?”

《…….》

일단 칼은 맞대 봐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하려던 포르테는 이내 말을 삼켰다.

피나 상대로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대신 피나의 말을 못 들은 척 설명을 개시했다.

《전사가 단독으로 무난하게 승리하려면 적어도 검기 정도는 필요하겠군.》

“저, 저는 검기 같은 거 못 써요!”

《진정해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검으로 승리하려면 그렇다는 말이다.》

검기라는 건 결국 무기에 마력을 흘려 그 공격력을 강화하는 기법을 말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기 그 자체의 위력이 충분하다면 굳이 검기 같은 걸 쓸 필요가 없다.

《계약자여. 나를 믿고 싸워라.》

피나는 잠시 불안한 기색으로 시선을 헤맸지만, 이내 조심스레 무대 위로 발을 올렸다.

황태자식으로 표현한다면 마치 RPG의 몬스터처럼 곳곳을 어슬렁거리던 목각인형 중 하나가, 피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잠시 후, 두 그림자가 교차했다.

서걱!

“어?”

“저럴 수가….”

경악의 목소리는 무대 바깥에서 침중한 얼굴로 목각인형들을 노려보던 응시자들의 것이었다.

피나의 검격에 맞은 인형이, 여태까지 보여준 튼튼함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간단히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와아.”

검을 휘두른 피나 본인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달궈진 나이프로 버터를 베어 가르는 듯한 감촉이었다.

힘을 주어 잘라낸다기보다도, 그저 칼을 대고 있으니 알아서 쑤욱 하고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

파스스.

바닥에 쓰러진 목각인형이 마치 낙엽처럼 말라붙는 듯하더니, 이내 저절로 부스러졌다.

남은 것은 동전 정도 크기의 씨앗 하나뿐.

《저게 목각인형의 정수인 모양이로군. 어서 챙겨라.》

피나는 주머니에 정수를 집어넣은 뒤, 다음 인형을 향해 자세를 갖추었다.

목각인형은 그 적의를 감지한 듯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연달아 3개의 정수를 확보한 뒤, 피나는 헤픈 웃음을 흘렸다.

“새, 생각보다 쉽네요! 마검님 덕분이에요!”

《칭찬 고맙다, 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무대 바깥을 봐라.》

“네?”

그녀가 포르테의 말대로 무대 바깥쪽을 향하자, 다수의 응시자들이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이목 집중에 피나는 긴장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번 시험의 특이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라.》

【특이 사항: 인형의 정수는 참가자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음】

피나는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해한 모양이로군. 지금 네가 무대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면, 다른 응시자들은 너를 노릴 거다. 혼자서라면 몰라도, 다른 이들과 협공한다면 기회가 있으리라 여길 테니까.》

“그러면 어쩌죠?”

《힘을 보여주면 되겠지. 본보기로 몇 명을 화려하게 때려눕히고, 건드리는 게 손해라는 걸 각인시켜 주면 된다.》

“으음.”

포르테의 설명에도, 피나는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피를 보는 게 싫은 건가?》

“무섭잖아요!”

언뜻 어리광으로도 보이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편한 길을 굳이 마다하려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게 답이겠군. 정면 돌파와 미끼 작전, 어느 쪽이 취향이지?》

“좀 더 쉬운 건 어느 쪽일까요?”

《어느 쪽이나 비슷하다.》

“좀 더 덜 흉흉한 건 어느 쪽일까요?”

《판단기준 따라 다르겠지만, 내 관점에서 말하자면 미끼 작전 쪽이 좋겠군.》

“그러면 그쪽으로!”

《알았다. 그러면 우선, 목각인형을 닥치는 대로 베라. 증표가 서른 개쯤 있으면 충분하겠군.》

“넵.”

이미 앞선 전투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까.

피나는 별다른 군말 없이 목각인형들을 차곡차곡 베어 넘겼다.

다른 응시자와 싸우고 있는 개체는 굳이 건드리지 않았지만, 어차피 목각인형 중 상대가 있는 건 전체 중 1/10도 되지 않았기에 골라잡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정수를 대량으로 확보한 뒤.

피나는 포르테의 지시대로, 정수 한 움큼을 손에 쥔 뒤 무대 바깥 허공으로 던져 흩뿌렸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그 정수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고, 그 틈을 타 피나는 ‘문’을 향해 질주했다.

“멈춰!!”

응시자 중에는 무대 주변이 아닌, 아예 문으로 가는 길목에서 대기 중인 이들도 있었지만, 피나는 이번에도 그들의 머리 위로 정수 한 움큼을 투척했다.

피나의 앞을 가로막으려던 이들은 순간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어차피 응시자 한 명에게 필요한 정수는 셋.

피나와 정면으로 싸워 다수의 정수를 빼앗기보다, 그냥 흩뿌려진 정수를 재빨리 회수하는 쪽이 훨씬 더 안전하고 간편했다.

그런 작업을 서너 번쯤 반복하자, 마침내 2차 시험의 결산 장소인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중년의 검사가 입을 열었다.

“거, 씀씀이가 너무 큰 것 아닌가? 면접 볼 사람이 너무 많다고 에밀 교수가 잔소리를 하겠어!”

꾸짖는 듯한 말투였지만,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모양새로 보아 검사 역시 피나의 행동을 그리 나쁘게 본 것 같지는 않았다.

“2차 시험관 겸 천공 학원의 검술 교관 라이제놀일세. 자, 기발한 아가씨. 증표를 제출하게나.”

“여, 여기요!”

피나는 라이제놀의 손바닥 위에 정수 세 개를 냉큼 제출했고, 라이제놀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3차 시험용 대기실은 저쪽일세. 시험 개시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느긋하게 기다리게나.”

피나가 시선을 향하자, 여러 단층으로 나뉜 객석 같은 공간에 서너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옷차림이 멀끔하고 눈빛이 강렬한 것이,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집단으로 느껴졌다.

《못해도 3계위 최상위에서 4계위 정도겠군. 이른바 엘리트라고 해야 할까.》

“그렇군요.”

피나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의 옆에 당당히 착석… 하지는 않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객석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나에게 말을 걸려는 기색이었던 몇몇 응시생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때, 퀘스트 창이 다시금 떠올랐다.

【‘퀘스트: 목각인형 토벌’에 성공하셨습니다.】

【‘천공 학원 2차 입학시험 통과 증표’를 획득합니다.】

이번에도 아까처럼 허공에서 작은 금속 파편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아까가 비스듬한 각도의 메이스였다면, 이번 것은 위아래로 곧게 세워진 검 형태의 배지였다.

이번 배지에도 뚜렷한 요철이 있는 걸 확인한 피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한 뒤 두 배지를 겹쳤고, 예상대로 두 배지는 딱 하고 맞아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하나로 합쳐졌다.

피나는 곧바로 3차 퀘스트가 떠오르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퀘스트 창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의 2차 퀘스트가 마무리된 후에야 3차 퀘스트가 떠오르는 구조인 듯했다.

그때, 앞서 객석에 앉아 있던 여성 중 하나가 날 선 목소리로 피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네?”

피나가 눈을 껌뻑거리자,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은 피나를 거침없이 추궁했다.

“정수를 그렇게 많이 뿌려버리면 어떻게 해? 너 때문에 실력도 없는 놈들이 잔뜩 여기까지 올라올 것 아니야.”

“어, 음.”

“변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 봐.”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피나의 모습을 보고 기세가 등등해졌는지, 여성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피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우물쭈물했다.

포르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지금처럼 남들의 눈과 귀가 가까운 상태에서 검에 말을 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약자여. 안심해라. 내가 이 상황을 타파할 비법을 알려줄 터이니.》

오오.

피나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역시 마검은 다 생각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해라. 토씨 하나 틀려서는 안 된다.》

피나는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저기요.》

“저기요.”

《저 아세요? 남이야 어떻게 통과하든 상관 마시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저 아세요? 남이야 어떻게 통과하든 상관 마시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 어?”

잠깐, 뭔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여성을 보며, 피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