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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사서 에른스트(Ernst) (11) - 가족으로서, 사제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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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는 손을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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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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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굴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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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내나 도량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마리크였기에, 분노는 너무나도 쉽게 임계점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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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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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장한 얼굴은 다치지 않게 조절한다든가, 적당히 상대하면서 굴복시킨다든가 하는 계획은 전부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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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디까지나 모의전이며,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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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 같은 짜증과 충동에 몸을 맡긴 채, 마리크는 재차 주문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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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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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의 옆, 불꽃으로 이루어진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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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가 의도적으로 제약을 건 주문이 아닌, 마리크가 미리 카피해 두었던 주문은 아무런 문제 없이 주인의 마력을 흡수하며 그 기세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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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거야!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이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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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과 함께, 마리크가 사람 크기만 한 불꽃의 대검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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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는 공기탄 같은 것을 쏘아 맞대응했지만, 그 크기도, 거기에 담긴 마력도, 마리크의 공격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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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반격과 함께 에리스를 꿰뚫으리라 마리크가 확신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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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끗, 하고 대검의 궤도가 아주 약간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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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를 명중하지 못한 채,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불꽃의 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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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슬아슬한 모습에, 몇몇 학생들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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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마리크는 일절 개의치 않고서, 재차 다음 주문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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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내보낸 것보다 더 크게, 더 강하게, 더 많은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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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위력 주문을 마구 난사하는 그 모습에, 학생은 물론이고 교수들마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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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한 마력 소모는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건만, 마리크는 마치 마력이 끝없이 샘솟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격에 공격을 연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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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도 압도적인 마리크의 마법에 비해, 에리스의 대응은 언뜻 볼품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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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용한 작은 주문들은 불꽃의 대검과 힘겨루기를 하지 못한 채 번번이 밀려 나갔고, 성과라고는 대검의 궤도를 살짝 비트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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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미 모의전 수준이 아니다! 개입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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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그리 생각하며 앞으로 나서려 한 순간,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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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붙잡은 이의 얼굴을 확인한 심판이 다급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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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메리 교수님! 이거 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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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얼굴을 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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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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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얼굴 같은 걸 볼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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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면서도, 심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에리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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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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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있던 항거할 수 없는 재난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약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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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차분하고 침착한, 언뜻 사무적인 인상마저 드는 냉철함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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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심판은 마리크의 화려한 주문 난사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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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이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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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로 인해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고, 의복 일부가 흐트러졌지만, 그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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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화려하고 요란한 공세에 휘말리면서도, 정작 그 중심부에 있는 에리스의 몸에는 어떤 상처도 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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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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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입에서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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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가 쏘아대는 주문은, 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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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같은 것과는 달리 물리적으로 쳐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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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에리스는 공기의 굴절과 약간의 마력 유도만으로 그 공격 궤도를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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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이라도 주문의 발동 타이밍이 어긋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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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간이라도 주문의 충돌 지점이 맞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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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즉시 유도는 실패하고 에리스는 치명상을 입게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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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도 에리스에게서는 아무런 초조함도,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으니, 교수이기 이전에 한 명의 마법사로서 심판은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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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재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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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 역시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크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새로운 주문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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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계 『칼바람을 일으키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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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계 『냉기를 침투시키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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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 『대지의 가시를 불러내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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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겨우 학생 수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주문들이었지만, 에리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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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든 그녀가 공부하고, 이해하고, 분석해 왔던 주문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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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문은 사람 피부나 근육을 찢기에는 충분해도, 뼈까지는 절단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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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계 『옷을 단단하게 하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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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시, 철판 정도의 강도를 지니게 된 의복이 날카로운 바람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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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는 호흡기로 들어가는 순간 입안이 얼어붙을 정도로 강렬하지만, 정작 퍼지는 속도가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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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계 『토끼처럼 날렵해지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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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빨라진 에리스가 경기장을 크게 우회하며 다시 자리를 잡자, 냉기는 그녀를 붙잡지 못한 채 느릿느릿 퍼지다 그 효력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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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가시는 생성 지점의 토질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로 바뀌어. 단단한 암석 지대라면 몰라도, 이런 푹신푹신한 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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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계 『욕조를 가득 채우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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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가슴 앞에서 생겨난 대량의 물이, 아래로 추락하며 지면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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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늦게 완성된 가시가 에리스를 향해 솟구쳤지만, 그 가시는 마치 묽은 점토처럼 흐물거려 날카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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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문도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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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쓰더라도 완벽하게 대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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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마리크가 아이처럼 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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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어째서 안 통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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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할 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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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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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는 차가운 눈으로 마리크를 응시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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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라는 건 그저 쓸 줄 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상대의 실력, 수단, 주변의 환경 등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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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곳에 있는 것이 마리크가 아닌, 마리크가 주문을 베낀 원주인들이었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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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하나를 습득하기 위해 몇 번이고 책을 들여다보고, 그 주문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몇 번이고 연습하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본 이들이었더라면 에리스의 대책에도 곧바로 돌파법을 찾아내려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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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은 정직하게 정면에서 쏘는 것이 아니라 기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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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는 상대가 도망갈 곳이 마땅치 않은 실내 환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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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화염 주문을 먼저 쓰는 걸로 환경을 갖춘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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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리크는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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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럴 능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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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권능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결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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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원주인들이 쌓아온 노력과 시행착오는 조금도 흉내 내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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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문은 마치 틀에서 찍어낸 것 같군요. 마력은 무조건 주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조준은 무조건 상대의 몸 한가운데에. 발동 타이밍은 항상 최속. 모든 조건이 매번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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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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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쉽게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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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대응법이지만, 적어도 에리스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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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은, 어떤 대마법사가 평생 추구하며 가르쳐 왔던 ‘이상적인 마법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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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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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 한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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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숨긴 채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대기 중이던 델피나리스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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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하지만 그저 그것뿐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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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처럼 사랑하지만, 그 애정으로 인해 과대평가를 해선 안 된다며 일부러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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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로는 부족하다고, 자신이 바라던 지고의 경지에 오를 재목은 아니라고 멋대로 단정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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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스승의 외면과 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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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늘 속에서 제자가 어떤 노력을 쌓아왔는지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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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화르르르륵! 파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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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나리스가 말문이 막힌 채 몸을 떠는 도중에도, 모의전은 점점 극한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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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시합을 중지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며 당황하던 이들도, 이제는 넋이 나간 채 그저 눈앞의 광경을 응시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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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웃기지마! 이딴, 이딴 건 인정 못, 커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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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내던 마리크의 고개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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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뭉친 물 덩어리가 그의 뺨을 신나게 후려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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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는 이를 악물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그 주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날아든 물 덩어리가 이번에는 마리크의 고개를 반대로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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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버리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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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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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도 무사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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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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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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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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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숨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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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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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가 협박을 하든, 애걸을 하든, 에리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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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의를 기울이는 건 마리크의 값싼 말 따위가 아니라,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와 그가 사용하는 주문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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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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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합이 오갈 때마다 에리스는 점점 앞으로 나아갔고, 뒷걸음질을 반복하던 마리크는 볼품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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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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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은 마리크가 에리스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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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오만과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그 눈빛에는 원초적인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비굴함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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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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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크의 코앞에 에리스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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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숨을 죽인 와중, 에리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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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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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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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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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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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말꼬리가 올라간 직후, 마리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투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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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서 개입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심판이, 후다닥 달려와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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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전 종료!! 승자! 알드리지 강습소 대표, 에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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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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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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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드리지 강습소는 물론이고, 본래 경쟁 상대일 로우튼 강습소 측의 학생들까지도 순간 자기 소속을 잊어버린 듯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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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는 해도 실속은 없었던 마리크와 최소한의 마력 소모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낸 에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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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모의전의 범주를 넘어 거친 언동과 살의 섞인 공격을 내보낸 마리크와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한 태도로 모의전의 격식을 지킨 에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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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그린 듯한 선명한 대비가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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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여학생들은 얼굴을 붉힌 채 몽롱한 눈으로 에리스를 바라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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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그 환호성의 중심에 있는 에리스의 상태는 겉보기와는 달리 제법 만신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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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죽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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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든,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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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줄타기를, 시합 내내 지속한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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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우등생 같은 외관과 우아함을 연기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체면이고 뭐고 그냥 바닥에 누워서 냉큼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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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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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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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이, 몸은 괜찮냐고 물어오는 교수들의 격려와 걱정이, 무엇보다도 저 콧대 높은 가짜 천재의 콧대를 눌러버렸다는 사실이, 에리스의 지친 몸과 마음에 끝없는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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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에리스는, 이내 기대했던 사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깨닫고 눈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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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은 진짜 안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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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결과가 뻔한데 보러 가서 뭐 합니까. 저는 일로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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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가 패배하는 결과 따윈 만에 하나라도 없다는 듯한 단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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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확고한 믿음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진짜 안 오냐는 섭섭함 역시 없지 않았다. 소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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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에리스의 눈이 관객석에 있던 델피나리스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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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칫, 하고 동시에 몸을 떠는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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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윽고 결심을 굳힌 얼굴로, 델피나리스가 에리스를 향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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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주문으로 인해 델피나리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던 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소란을 피웠지만, 두 사제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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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머릿속에 수많은 문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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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에게 이 승리를 어떻게 어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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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족한 제자가 아니라고, 더 나은 존재를 찾을 필요는 없다며, 어떤 식으로 주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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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끼던 막내에게 지나치게 심한 짓을 했다고 스승이 화를 내기라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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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저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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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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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나리스가 에리스의 몸을 덥석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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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구나, 내가 정말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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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젖은 듯한 스승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에리스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온갖 계산이 백지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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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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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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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스승을 마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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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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