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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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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하인 세드릭(Cedric) - 레드벨의 악녀

「비르카 왕국을 지탱하는 세 축 중 하나.」

레드벨 후작가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였다.

덧붙여 저기서 말하는 세 축 중 하나는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왕가였다.

일개 귀족 가문이 왕국의 정점인 왕가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서 취급받은 것이다.

그리고 레드벨 후작가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니었다.

레드벨에서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영지만 해도 왕국의 전체 면적 중 7%에 이르렀고, 간접 지배가 가능한 영역까지 따지면 그 수치는 20%까지 올랐다.

다른 나라와 이어지는 주요 교역로를 움켜쥔 덕분에 막대한 부를 보유했고, 군사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으나 그마저도 다른 두 축인 왕가와 백작가에 비해 뒤떨어질 뿐, 다른 잡다한 영주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당대 레드벨 후작은 몰락해 가던 가문을 단 수십 년 사이에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영웅호걸이라 평가받았고, 그의 자식들 역시 아버지를 빼닮은 듯이 각 분야에서 유능함을 드러내며 레드벨의 명성을 드높였다.

허나 그중 단 한 명.

후작의 막내딸 클라우디아 레드벨(Claudia Redvell)만큼은 예외였다.

그녀에 관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소문 중 몇 개를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거대한 식인 마수를 애완동물로 키우며, 자기 비위를 거스른 이들을 마수의 먹이로 준다.

-걸핏하면 고문을 일삼는 탓에 온몸에 피 냄새가 배있는데, 이를 가리기 위해 엄청나게 강한 향수를 사용한다.

-레드벨 후작이 막내딸의 개인 영지로 일부러 한적한 시골인 ‘에체드’령을 선택한 이유는, 커다란 영지에 방치했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모는 천상의 꽃이지만, 내면은 지옥의 시궁창.

참으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귀족 영애가 바로 클라우디아 레드벨이라는 소녀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저런 영애의 밑에서 일하는 걸 기꺼워할 사람은 드물다.

고로, 에체드령에 있는 클라우디아의 저택에 근무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클라우디아의 소문을 알지 못한 채, 그저 후작가에서 제시한 막대한 보수를 보고 자원한 이들.

또 하나는 클라우디아의 소문을 알고 있지만,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생활 여건이 열악한 이들.

이 중, 저택의 집사장 베스티앙이 선호하는 것은 후자였다.

전자의 경우 어차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지만, 후자는 일정 확률로 근무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면접자는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군.

그리 생각하며, 베스티앙은 눈앞에 있는 청년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수수한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

빼어난 미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모난 데가 없고 유순한 이목구비.

어딘지 모르게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눈망울에서는, 끝에 몰린 사람 특유의 독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이름이 세드릭이라고 했지. 출신은 어디인가?”

“아이제른 제국 동부에 있는 콜림이라는 도시입니다!”

“꽤 먼 곳에서 왔군. 굳이 비르카 왕국까지 내려와 하인으로 지원한 이유가 뭔가?”

“저희 아버지께서는 콜림의 유력자이신 크누크 가문에서 오랜 시간 하인으로 근무하셨습니다. 주 업무는 주방 보조 쪽이셨죠. 저도 나중에는 아버지처럼 크누크 가문에 봉사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크누크 가문의 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제 취직처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게 이쪽이다 보니, 새롭게 모실 주인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던 중 이 저택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호오…. 그러면 요리도 제법 할 줄 아나?”

“완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빠릿빠릿하고, 전체적인 표정이나 분위기도 밝다.

청년이 외지인인 탓에 그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후작가쯤 되는 가문이라면 본래 저런 것도 엄격하게 따져야겠지만,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통에 정규 인원의 2/3을 겨우겨우 채우고 있는 이곳 에체드 별장에서는 그 정도는 사소한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었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부분이었다.

‘허어, 이 밝디밝은 청년이 아가씨 독기 앞에서 대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는지.

처음 고용될 때만 해도 열의로 가득하던 하인들이, 클라우디아의 성질머리를 견디지 못하고 하루하루 말라가다가 그대로 저택을 떠나는 모습을 몇 번이고 지켜봐 온 베스티앙이었다.

이 청년도 같은 루트를 타게 되리라 생각하면 참으로 양심이 아팠지만, 그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가능한 ‘남 보기에 문제없는’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후작의 뜻이고, 저택에 하인이 없어서 빈자리가 휑한 지금 상황은 그 명령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

베스티앙은 어떻게 해서라도 저택에서 일할 인력을 보충해야 했다.

“좋네, 우선 3개월 계약으로 하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간이 끝나기 전에 일을 그만두면 보수는 없네.”

“알겠습니다!”

‘주방 보조 쪽으로 돌리면 아가씨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조금이라도 오래 버틸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베스티앙의 계획은, 세드릭이 저택에 들어간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세드릭의 존재가 베스티앙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드러난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바로 세드릭이 지나치게 유능했다는 것.

“세드릭 말입니까? 아주 진국이죠. 말귀도 잘 알아듣고, 한 번 알려준 건 잊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본래 신입 들어오면 적응 기간만 며칠은 걸리는데, 세드릭은 거의 들어온 당일부터 전력으로 쓸만하더군요. 덕분에 다들 편해졌습니다.”

“교대할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쉰 적이 없었는데, 이번 신입 덕분에 잠깐이나마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재주가 능하고,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아마 어딜 가도 잘 어울릴 타입이에요.”

세드릭이 맡은 업무는 주방 보조.

그가 움직이는 동선은 주방과 식량 창고 정도로 한정되고, 구태여 서빙 같은 걸 맡기지 않는 이상 클라우디아가 세드릭과 마주할 일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베스티앙의 계획은 틀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하인들의 태도나 분위기였다.

세드릭의 존재로 인해, 그들 전원의 행복 지수가 갑자기 천장까지 차오른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하얀색 튤립만 가득한 꽃밭 사이에 빨간 튤립이 섞여 있으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법.

세드릭이 해낸 것은 직원들의 얼굴에 가벼운 헛웃음이나 실소가 새어 나오게 하는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우울함과 의무감으로 굳어 있던 얼굴과 비교하면 너무나 큰 변화였다.

“흐응, 네가 이번에 들어왔다는 새 하인인가 보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이어가고 있던 주방 하인들은,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그대로 얼어붙었다.

앞으로 벌어질 참사를 두려워하듯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메이드 두 명.

그리고 그런 메이드 사이에서 홀로 미소를 짓고 있는 아가씨가 한 명.

색소가 옅은 백금발과 분홍색 눈동자.

개화 직전의 꽃봉오리처럼 요염함과 풋풋함을 동시에 갖춘 미모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정작 그 웃는 얼굴을 본 하인들은 괴물이라도 본 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곳에 있는 이 중 가장 높은 직위에 있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주방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아가씨.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찌….”

“야.”

“예?”

인형같이 아름다웠던 미소가 무너진다.

더할 나위 없는 모멸과 분노와 짜증을 담은 채, 레드벨의 꽃은 입에서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말 걸었어? 누구 허락을 받고 입을 여는 거야?”

“소, 송구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든 그건 내 마음이야. 감히 네가 뭔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주방장이니 뭐니 하면서 직함 하나 달고 있으니까, 막 네 주인이 우스워 보이기라도 해? 응?”

귀족 영애다운 우아함은 없다.

품위 있는 훈계나 질책도, 완곡하고 우회적인 화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천사같이 아름다운 이목구비로 길거리의 불량배 같은 위협과 비아냥을 연이어 내보내는 그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넘어 일종의 해학마저 느끼게 할 정도였다.

저벅.

세드릭이 반걸음 앞으로 나선 것은 그때였다.

특별히 크게 걸음소리를 낸 건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 사소한 동작에는 어째서인지 주변의 이목을 잡아끄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클라우디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녀는 주방장을 향한 흥미를 잃어버린 채, 다시금 세드릭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야, 천것끼리 서로 감싸주기라도 하겠다. 이거야?”

난데없는 모욕에도, 세드릭은 눈을 껌뻑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클라우디아가 눈을 찡그렸다.

“뭐야, 대답 안 해?”

“음, 발언을 허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마음대로 입을 열 수가 없어서 곤란해하던 참이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했지만, 이내 방금 자신이 주방장에게 ‘마음대로 입을 열지 마’라고 비난을 내뱉었던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이 하인이 그걸 빌미로 자신에게 비아냥을 시도했다는 것도.

그녀의 얼굴에 분노가 차오르고, 다른 하인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클라우디아는 무슨 생각인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 말이야.”

“세드릭이라고 합니다, 클라우디아 아가씨.”

“그래, 너. 여기 있다는 건 요리 쪽에도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감히 전문가를 자칭할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접 만들어 먹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잘됐네. 오늘 저녁, 네가 만들어서 가져와. 내 방으로, 네가 직접.”

여러 가지 의미로 무리한 요구였다.

주방 보조에 지나지 않는 세드릭에게 저녁을 만들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걸 가지고 클라우디아의 본인의 방으로 오라는 건 더 큰 문제다.

남자 하인이 영애의 방에 들어가는 건 그 자체로 불경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허나, 세드릭은 딱히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되물었다.

“부족한 몸이지만, 명령이시라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싫어하는 음식은 있으십니까?”

“맛없는 거.”

“과연, 우문현답이로군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세드릭의 모습을, 클라우디아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변의 다른 하인들은 아까부터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는 중인데, 혼자만 여유만만한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번 뺨이라도 후려쳐 볼까 생각했던 클라우디아였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그 여유도 잠깐이야.

내심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경고를 날려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 괜히 이번 일에 끼어들면 전부 처벌해 버릴 테니까 방해하지 마.”

주방 하인들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고, 메이드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클라우디아의 뒤를 따랐다.

자기 방 앞까지 돌아온 클라우디아는, 메이드들을 떠나보낸 뒤 방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작은 날붙이를 사용해 본인의 검지 끝에 작은 상처를 냈다.

몽글몽글 솟아오른 피가 지상에 떨어지자, 이내 그 부피를 급격하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Grrrrr...!

이윽고 피가 변한 모습은, 한 마리의 거대한 맹수였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늑대에 가까웠으나 머리가 2개였고, 각각의 입이 사람의 상반신 정도는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거대했다.

주인에게 어리광을 부리듯이 주둥이를 가까이하는 쌍두랑(雙頭狼)의 머리를 쓰다듬은 클라우디아는, 늑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세드릭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를 덮치도록 말이다.

난 뭘 하든 괜찮소, 라고 주장하는 듯한 그의 얼굴이 공포와 경악으로 물드는 장면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잠시.

이내 노크와 함께 문밖에서 세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띤 채, 클라우디아는 대답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카트를 밀며 세드릭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방구석에서 준비 중이던 늑대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늑대의 입에서 피식자를 공포에 질리게 할 울부짖음이─ 깨갱?!

‘…깨갱?

클라우디아는 눈을 껌뻑였다.

그녀는 잠시 눈을 비빈 후,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늑대가, 어지간한 몬스터쯤은 한 끼 식사로 취급할 수 있는 그녀의 종복이, 겁먹은 동네 개처럼 바닥에 엎어져 낑낑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꿀밤을 때린 손을 조용히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세드릭의 모습.

그는 멍해져 있는 클라우디아를 향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아가씨.”

“응?”

“애완동물이 사람 먹는 음식에 달려드는 건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몸에도 안 좋고요. 아무래도 평소 버릇을 잘못 들이신 모양이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