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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괴도 도팽(Dauphin) (10) - 상현달 아래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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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루크의 시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모여 괴도 도팽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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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도팽의 예고장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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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실패했으니까, 이제는 몸을 사리지 않을까? 저번에는 그냥 실패한 정도로 넘어갔지만, 다음에는 아예 붙잡힐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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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나으리 중 도팽에게 이를 가는 이들이 적지 않지. 아마 붙잡히면 곱게는 못 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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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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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더 이상 도팽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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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야 표적들이 다들 도팽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 이들이었기에 괜찮았지만, 이젠 도팽과 맞설 수 있는 맞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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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훔쳐낸 재산을 전원 피해자들에게 환원하는 도팽의 특성상, 도팽의 범행은 도팽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도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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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이익이 없는 일에 이제 리스크까지 막대해졌으니, 도팽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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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예상을, 도팽은 아무렇지도 않게 깨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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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다! 광장에 도팽의 예고장이 적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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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돌아왔다고!? 이번엔 누구야? 누굴 노리는 거야? 또 세무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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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한두 명이 아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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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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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드 발무아, 베르나르 드 샤르르, 귀욘 바르베르. 드리테로 기샤… (중략) …가론 드 사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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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명단에 적힌 87인의 죄인들이여. 자네들이 저지른 죄가 너무나 크고 많은 나머지 하나하나 글로 옮기는 것조차 피곤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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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이렇게 단체로 이름을 적어, 단숨에 경고를 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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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찾아가는 순서는 그때그때 달라지니 앞에 적혀 있다고 우울해할 것도, 뒤에 적혀 있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는 걸 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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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안심하게. 자네들이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들에게 적합한 사죄와 보상을 한다면, 명단에서 그 이름 또한 지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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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본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본인이 사는 건물 높은 곳에 하얀 천을 묶어 흩날리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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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가 자네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적어서 설명해 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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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은 일정 기간마다 새롭게 갱신할 예정이며,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진 이들은 무사히 사죄에 성공했다고 이해하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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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우는 게 가능하다면 새로 적는 것 또한 가능한 것이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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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름이 안 적혀 있으니 자기는 노려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행패를 부리는 어리석은 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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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어리석은 자의 이름이 명단의 가장 위에 새롭게 적히거나, 혹은 명단에 적히기도 전에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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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 도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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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발칵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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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의 화려한 귀환 그 자체도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기에 충분했지만, 그가 공표한 명단에 적힌 이름들이 하나같이 쟁쟁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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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적힌 이들은 분노하거나 두려움을 느꼈고, 적히지 않은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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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명단에 적힌 이들이 도팽의 경고에 굴복할지 어떨지를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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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상황에 제일 당황한 것은 다름 아닌 경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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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좆 같은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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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의 입에서 거친 욕 한 사발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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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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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대체 어떻게 잡으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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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의 ‘예고장’은 경비대 입장에선 자기들을 우습게 보는 듯한 도발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동시에 일종의 안내용 가이드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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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에서 누굴 노리는지를 빤히 공개하고 있으니, 오로지 표적과 표적의 재산을 경호하는 데 전력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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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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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에 있는 87인 중 누구를 노릴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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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 쳐들어오는 건지 시간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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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상황에 따라선 아예 명단에 없는 인물도 표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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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전처럼 집중 경호 같은 건 불가능하고, 뭣보다 최강 전력인 달리아를 표적 옆에 딱 붙여둘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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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발무아 님께서 집중 경호를 요청하셨습니다! 자기 근처에 저 도팽이란 놈이 얼씬도 못 하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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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샤 재무관이 찾아오셨습니다! 중대장님과 긴히 나눌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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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샤르르 자작께서 내 아들 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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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지금 전령들이 마구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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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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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아아아악! 내 몸은 하나뿐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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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이 머리를 움켜쥐고 있을 그 무렵. 8소대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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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아무리 봐도 이거, 우리 소대장님을 피하려고 머리 쓴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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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눈앞에서 창질 한 방으로 건물을 뽀개버리는 걸 봤으니 쫄아도 이상할 거 없지. 오히려 기어코 다시 나타난 담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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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앞으로 서로 대장님 데려가겠다고 난리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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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가 아니라 이미 그래. 어디 어디 누구 전령이라는 인간들이 대장님 좀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찾아오고 있거든. 평소에는 우리랑 말도 안 섞으려는 인간들이 어찌나 허리를 굽실거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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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뭐 받아먹지는 마라. 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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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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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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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한마디에, 떠들썩하던 소대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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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 언제 누굴 노리고 습격해 올 지 알 수 없다고? 다른 범죄자들 상대할 때는 원래 그랬어. 그때도 우리는 잘 막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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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말에, 소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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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동안이 이상했던 거지, 원래 도둑이란 언제 어디를 노리고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게 기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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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라는 이름값에 기가 죽어서 그렇지,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그동안 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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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은 자주, 경계는 방심 없이,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알린다. 다들 하던 대로만 해, 그러면 내가 가서 막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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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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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회의에 가볼 테니까 다들 개인 정비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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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한 뒤 시원스런 동작으로 떠나가는 달리아의 뒷모습을, 소대원들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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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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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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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님, 뭔가 좀 기분 좋아 보이시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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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은지 어떤지까진 모르겠지만, 전보다 좀 후련해 보이기는 하네. 맨날 근심 걱정이 가득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누구한테 위로라도 받고 온 것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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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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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저 엄격함의 화신에게 도전한 용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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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집어치워라 집어치워. 그냥 매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시다가 오랜만에 쉬고 나오시니까 기운이 나신 거겠지. 니들도 똑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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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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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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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호위 대상들이 한곳에 죄다 몰려 있으면 편할 텐데! 야간 경계를 철저히 해라! 도팽의 모습이 보이면 곧바로 8소대장에게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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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순찰과 경계 강화. 그리고 도팽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달리아의 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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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이 꺼내든 대책이란, 지극히 정석적이고 뻔한 것이었지만, 이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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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을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같은 게 뿅하고 튀어나올 것 같으면, 애초에 중대장이 고민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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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펼쳐진 상황은, 어떤 의미로 도둑과 경비 양쪽 모두에게 적용되는 시간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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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대 쪽은 한시라도 빨리 도팽의 습격을 알아챈 뒤 이를 대기 중인 달리아에게 알려야만 했고, 도팽은 달리아가 쫓아오기 전에 표적의 신변과 그 재산을 훔친 뒤에 달아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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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승부에서 초반에 기선을 제압한 것은 도팽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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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네 명이나 되는 표적을, 경비대 쪽에서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완벽하게 털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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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가 뒤늦게 호출을 받고 범행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버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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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달리아의 무력이 강해도, 이미 자리를 떠나 사라져 버린 도팽을 붙잡는 일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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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사이에서 도팽의 명성은 다시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고, 경비대의 명예는 다시금 땅을 향해 추락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달리아와 8소대의 가치는 오히려 더욱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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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달리아 쪽은, 달리아만 옆에 있으면 천하의 도팽조차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인식이 생기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권력자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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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소대 대원들의 경우 달리아처럼 도팽을 직접적으로 저지할 만한 무력은 없었지만, 대신 도팽을 발견하고 그 소식을 본부에 알리는 속도가 다른 소대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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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대들이 기본적으로 상류층 구역에서 느슨한 생활을 이어가던 것에 반해, 8소대의 경우 달리아와 함께 소수 인원으로 넓은 서민 구역을 커버하며 어떤 장소가 어떤 시점에 취약한지를 본능과 경험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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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 다섯 번째 표적을 노린 날에도 8소대의 이런 능력은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달리아는 마침내 도팽이 현장을 떠나기 전 그와 조우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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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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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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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족 가문의 망나니 소공자를 붙잡으려던 도팽의 손길이, 달리아가 휘두른 창 앞에서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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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물러나는 도팽을, 달리아는 무언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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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오! 잘 왔군! 잘 왔어! 자, 어서 저 빌어먹을 도적놈을 빨리 잡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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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는 얼굴이었던 표적은, 달리아가 구원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매달려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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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적이 한때 술 먹고 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그걸 막으려고 했던 8소대의 경비원들에게 폭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걸 아는 달리아는 한층 더 울적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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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당사자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걸 기억조차 못 하는 모양새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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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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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짧게 말하는 것이, 달리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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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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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역시 괜히 험한 꼴을 보기는 싫었는지 재빨리 거리를 벌렸고, 현장에는 도팽과 달리아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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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는 면갑 아래에서, 달리아는 도팽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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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생김새만을 본다면, 그녀가 알고 있는 ‘그’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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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도팽은 지금까지의 범행 중 외모를 바꾼 적도 많았으므로, 그것만으로는 어떤 증거도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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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로 만약의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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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이 그녀가 휴일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그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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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두 번째로군. 무섭고도 무서운 경비병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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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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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어를 들은 순간, 달리아의 마음속에 있던 거북하고도 묵직한 감정이 녹아내리고, 그녀의 속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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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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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이 괴도는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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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달리아가 경비병으로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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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날뛰었네. 세 번째는 없을 거야.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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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라면 ‘괴도’라고 불러주면 좋겠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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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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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창이 공기를 가르며 도팽에게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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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위력을 품은 그 공격을, 각종 주문이 담긴 트럼프로 흘려넘기며 도팽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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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라! 부정하지는 않겠네! 확실히 나의 행동은 규범을 무시하고 질서를 무너트리는 일일지도 모르지! 허나, 세상에는 법을 정직하게 지켜서는 벌할 수 없는 악인이 많아도 너무 많네! 그렇다면 더 큰 선을 위해 약간의 법 정도는 무시해도 좋은 일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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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달리아였다면, 도팽의 주장에 어떤 반론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를 악물며 창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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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지금의 달리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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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가 좋으면 괜찮다’ ‘나쁜 놈을 벌하기 위해서라면 무얼 해도 상관없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면! 그 끝에 있는 건 답이 없는 혼란과 공포야! 그런 상황 벌어졌을 때 가장 상처 입는 건 네가 돕는다고 떠드는 약한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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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그저 막연하게만 떠돌던 그 무언가를, 지금의 달리아는 제대로 언어로 바꿔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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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의 주장을 부정하고, 그의 논리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를 지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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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직 미숙하고, 정작 본인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미숙한 것이었지만, 그런데도 이전보다는 성장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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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닫고, 괴도의 입가에도 은근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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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말과 논리로 싸우던 휴일의 두 명과 달리, 지금 그들은 현장에서 창과 카드를 맞대고 있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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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 언쟁 역시, 순수한 말이 아니라 무력과 폭력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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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제법 번드르르한 것 같지만,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는지는 의문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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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의 트럼프가 허공에 흩날리며, 이내 회오리가 되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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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으로 강화된 카드들은 앞을 막는 정원의 나무나 담벼락 따위를 모조리 절단해 버리며 표적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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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 짝이 없는 공격 속에서, 도팽은 재빨리 다음 수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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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의 능력으로 저 절단 회오리를 막아내거나 회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달리아가 표적을 낚아채 도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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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덩이로 인해 움직임이 제약된 그녀에게 새로운 마도구들을 퍼부어 무력화시키는 것이 도팽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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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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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달리아는, 그런 도팽의 예상은 가뿐히 무시한 채 그냥 몸으로 회오리를 들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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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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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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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황하며 회오리의 출력을 약화하려 했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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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돌도, 심지어 금속마저도 잘라버릴 카드들이, 정작 달리아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죄다 가로막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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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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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등급 이상의 무인들은, 단순히 무기나 방어구에 마력을 흘려넣어 강화하는 것을 넘어, 마력 그 자체에 물리력을 부여해 공격이나 방어에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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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은 달리아 역시 그런 경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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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오러를 발휘한 게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도팽은 달리아가 검기, 아니 창기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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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준 거라고는 순수한 육탄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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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의 신체 강화? 단지 그것만으로, 맨몸으로 금속보다도 더한 방어력을 갖출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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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몸이 튼튼하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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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특이체질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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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도팽이 그에 대해 더 세세한 분석을 하는 것보다, 어느새인가 회오리를 물리력으로 찢어버린 달리아가 도팽에게 창을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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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팽은 재빨리 팔에 걸친 천을 방패 삼아 창을 막아냈지만, 어지간한 대방패 이상의 방어력과 고무줄 수준의 탄력을 겸비한 천으로도 달리아의 무지막지한 완력을 완전히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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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으로 튕겨 나간 도팽의 몸이 여기저기 충돌한 뒤, 도시 한복판에 있는 강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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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뒤로한 채, 도팽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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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발견한 들꽃이, 어쩌면 상상 이상의 거목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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