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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괴도 도팽(Dauphin) (9) - 이름 모를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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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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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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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그녀가 경비병으로서 지켜야 할 일반인이고, 또한 그녀를 궁지에서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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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말이 조금 과격하고, 사상이 다소 위험한 것 같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윽박을 질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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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말입니다, 겸손함과 존중이란 바로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상대가 내게 그 어떤 위해도 줄 수 없다고 만만하게 보는 순간, 인간은 터무니없이 잔혹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는 하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두려움을 느낀다면 인간은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고로, 제안하겠습니다. 『무례한 새끼는 도끼로 대가리를 깨버려도 무죄』!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서로를 향한 존중을 알려줄 좋은 법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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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존경하는 아버지 또한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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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가 타고난 체질은 무척이나 특별한 만큼, 감정을 함부로 조절하지 못하고 날뛰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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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인내심과 차분함을 길러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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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대 내에서 겪어왔던 그 수많은 욕설과 뒷담화와 은근한 따돌림에 비하면, 이런 대화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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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굳이 진지하게 대응할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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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난하게 흘려버리면 그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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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절차와 공정이란 참으로 번거로울 때가 많습니다. 힘을 지닌 이들이 그 절차와 공정을 이용해 이리저리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 과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그냥 나쁜 놈은 일단 박살을 내버리는 겁니다! 만인이 통쾌해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결말이라면, 까짓것 절차 좀 무시한다고 그게 대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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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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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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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 없을 정도로 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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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사형? 도시 전체를 유령 도시로 만들 일 있어? 기사들은 편해서 좋겠네! 검은 들 필요도 없이 마늘이나 양파 들고 다니다가 눈에다 비비면 그게 필살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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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건 중요한 지적이로군요. 확실히 가짜 눈물에 대비할 안전장치가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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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비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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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흐음….”하고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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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안 된다면, 어떤 식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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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당연히 법과 절차를 지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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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떤 법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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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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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습니까, 법률 놀이라고. 왕국법이 어떻다든가, 도시의 법은 어떻다든가, 그런 기존의 법이나 질서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을 어떤 법으로 처벌하고, 보호해야 할지.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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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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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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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법률을 만들고 결정하라니, 그런 건 일개 개인이 가볍게 논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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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대답하라고 해봐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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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역시 나쁜 놈들은 모조리 사형으로 좋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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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의 차분하고 신사적인 태도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마치 자기가 이겼다는 듯이 깐족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달리아의 이마에 혈관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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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법’을 만들라고 한다면, 아마 달리아는 평생 단 한마디의 말조차도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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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남자의 저 막 나가는 논리를 부정할 법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 떠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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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은 모조리 사형이라고 한다면, 물건을 훔친 녀석도 사람을 죽인 녀석도 전부 똑같은 취급이 되잖아. 벌이라는 건 죄의 경중에 따라 나눠서 그에 적합한 걸로 내려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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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물건을 훔친 자는 손을 자른다, 거짓말을 한 자는 혀를 자른다, 사람을 죽인 자는 똑같이 죽여버린다. 이런 느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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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범위가 좁은 데다가 하나같이 극단적이잖아. 왜 이렇게 피를 보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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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처벌이 솜방망이라면 다들 우습게 볼 것 아닙니까? 일단 벌이 강력해야 사람들이 무서워서라도 몸을 사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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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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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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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버지는 기사였지만, 말이 좋아 기사였지 생활 수준은 그냥 실력 좋은 떠돌이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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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달리아 역시 제대로 된 교육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학식도 교양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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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에게는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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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떤 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지를 보았고, 경비 생활 속에서 잘못된 법이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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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을 토대로, 달리아는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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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강력하면 할수록 범죄자들이 몸을 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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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저 말 그 자체는, 적어도 그렇게까지 틀린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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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부작용 역시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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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하고는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온화한 영주가 다스리는 땅이랑 엄격한 영주가 다스리는 땅을 둘 다 본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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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군요. 이 비르카 왕국에 온화한 영주라는 게 존재하는 생물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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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긴 있어! 백 개 중 하나 정도였지만!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끝까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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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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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기침을 반복한 후, 달리아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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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영주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줬고, 엄격한 영주는 한번 죄를 저지르면 용서 없이 극형을 내렸지. 얼핏 생각하면 후자가 더 범죄에서 안전할 것 같지만, 막상 내가 본 건 달랐어. 사소한 죄조차 무조건 극형이니까, 오히려 뒤가 없어진 범죄자들이 더 막 나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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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것뿐입니까? 빠져나갈 길 정도는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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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판결이 잘못 내려지는 경우도 있어. 도둑이라고 몰려서 손목을 잘라버렸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지. 하지만 이미 잘린 손은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까 무조건 벌을 강하게 하는 건 좋지 않아.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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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고, 달리아는 저도 몰래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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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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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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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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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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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그냥 남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을 뿐인데, 그게 어째서인지 굉장히 기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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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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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 죄라는 건 직접 저지르는 것도 악하지만, 그걸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도 똑같이 나쁜 것 같습니다. 즉, 관계자들도 싸그리 죄인으로 처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범인 당사자가 사형이라면, 적어도 사지 하나쯤은 날려버리는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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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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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또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 남자에게, 달리아는 으르렁거리듯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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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범죄를 막을 것 같아? 반대야! 오히려 자기들도 같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서 서로 쉬쉬한단 말이야! 범인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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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그러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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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남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달리아에게 동의를 구했고, 달리아는 이를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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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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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달리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아는 것이 많았고, 때때로 달리아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의 모순이나 허점을 찌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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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솜씨 앞에서 달리아는 번번이 밀리거나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텨내는 정도가 한계였지만, 그래도 가끔 남자의 논리를 뚫고 의견을 관철해 냈을 때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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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법이 어떻다든가, 레브루크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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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이야기하는 가상의 문제 속에서는 오직 달리아 자신의 의지와 신념, 양심만이 기준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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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문득, 남자가 이것을 ‘놀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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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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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을, 올바르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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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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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열정적으로 떠들던 달리아는, 이내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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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휴일은 어느새인가 끝이 다가오고, 그녀가 돌아갈 시간 역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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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달리아는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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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안 좋으시군요.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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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질문에, 달리아는 대답을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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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며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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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랜 시간 가슴 속에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를 힘껏 털어놓은 달리아는, 조금만 더 그 후련함을 맛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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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게. 확실히, 재미는 있었어. 그렇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여기서 무얼 떠들어봐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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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판단도, 그녀의 판결도, 그녀가 생각한 옳고 그름도, 현실에서는 어떤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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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가 제아무리 치열하게 고민하고 필사적으로 답을 짜내도, 이 도시의 상층부가 내리는 판결과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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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라면 단순히 즐거운 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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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알면서도, 근본적으로 성실한 달리아는 그 사실에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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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자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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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라고 해서 꼭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당장 현실로 옮기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훗날 어떤 일을 겪었을 때 판단 기준으론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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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할 수도 없는 기준에 의미라는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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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라면 이럴 때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잖습니까. 명확한 결론도 없이 그냥 애매모호하고 질척한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해답을 내려버리는 게 속이 시원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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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린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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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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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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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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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돌아왔군요? 저는 방금 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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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는 구분하는 주의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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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지금부터는 ‘공’의 영역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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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 들은 이야기들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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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달리아 나름의 친절이자, 그녀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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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남자의 정체가 정말로 달리아가 생각한 ‘그’라고 해도, 적어도 오늘만큼은 붙잡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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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좋군요. 그러면 ‘다음’에도, 저 역시 아가씨의 이름은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이것대로 풍류가 있어서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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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달리아가 그은 선을, 남자는 사뿐히 넘어와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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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의 숨이 한순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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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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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마 받은 은혜를 겨우 하루 이야기하는 걸로 전부 끝내버리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어울려주셔야겠습니다. 하하하! 이래서 남의 호의는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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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러운 남자의 말에, 달리아의 손끝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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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신세 진 건 갚아야 하니까요. 몇 번 정도라면, 더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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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뻔한 면죄부라는 걸 알면서도, 달리아는 모르는 척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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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음에 또, 이름도 모르는 성실한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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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겠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익살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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