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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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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괴도 도팽(Dauphin) (9) - 이름 모를 두 사람

달리아는 생각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상대는 그녀가 경비병으로서 지켜야 할 일반인이고, 또한 그녀를 궁지에서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비록 말이 조금 과격하고, 사상이 다소 위험한 것 같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윽박을 질러선 안 된다.

“제 생각에 말입니다, 겸손함과 존중이란 바로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상대가 내게 그 어떤 위해도 줄 수 없다고 만만하게 보는 순간, 인간은 터무니없이 잔혹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는 하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두려움을 느낀다면 인간은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고로, 제안하겠습니다. 『무례한 새끼는 도끼로 대가리를 깨버려도 무죄』!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서로를 향한 존중을 알려줄 좋은 법 아닙니까?”

그녀가 존경하는 아버지 또한 말하지 않았던가.

달리아가 타고난 체질은 무척이나 특별한 만큼, 감정을 함부로 조절하지 못하고 날뛰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인내심과 차분함을 길러야만 한다고.

경비대 내에서 겪어왔던 그 수많은 욕설과 뒷담화와 은근한 따돌림에 비하면, 이런 대화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다.

애초에 굳이 진지하게 대응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냥 무난하게 흘려버리면 그걸로 끝…

“올바른 절차와 공정이란 참으로 번거로울 때가 많습니다. 힘을 지닌 이들이 그 절차와 공정을 이용해 이리저리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그 과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그냥 나쁜 놈은 일단 박살을 내버리는 겁니다! 만인이 통쾌해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결말이라면, 까짓것 절차 좀 무시한다고 그게 대수겠습니까?”

“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달리아는 긁혔다.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긁혔다.

“뭐?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사형? 도시 전체를 유령 도시로 만들 일 있어? 기사들은 편해서 좋겠네! 검은 들 필요도 없이 마늘이나 양파 들고 다니다가 눈에다 비비면 그게 필살기일 테니까!”

“오호, 그건 중요한 지적이로군요. 확실히 가짜 눈물에 대비할 안전장치가 필요하겠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비꼬는 거라고!!”

남자는 “흐음….”하고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되물었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안 된다면, 어떤 식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건 당연히 법과 절차를 지켜서─”

“그러니까 어떤 법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남자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번뜩였다.

“말했잖습니까, 법률 놀이라고. 왕국법이 어떻다든가, 도시의 법은 어떻다든가, 그런 기존의 법이나 질서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을 어떤 법으로 처벌하고, 보호해야 할지.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건.”

달리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초에 법률을 만들고 결정하라니, 그런 건 일개 개인이 가볍게 논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느닷없이 대답하라고 해봐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대답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역시 나쁜 놈들은 모조리 사형으로 좋지 않습니까.”

아까까지의 차분하고 신사적인 태도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마치 자기가 이겼다는 듯이 깐족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달리아의 이마에 혈관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법’을 만들라고 한다면, 아마 달리아는 평생 단 한마디의 말조차도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 남자의 저 막 나가는 논리를 부정할 법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 떠올려야 했다.

“나쁜 놈은 모조리 사형이라고 한다면, 물건을 훔친 녀석도 사람을 죽인 녀석도 전부 똑같은 취급이 되잖아. 벌이라는 건 죄의 경중에 따라 나눠서 그에 적합한 걸로 내려야만 해.”

“흐음, 물건을 훔친 자는 손을 자른다, 거짓말을 한 자는 혀를 자른다, 사람을 죽인 자는 똑같이 죽여버린다. 이런 느낌입니까?”

“너무 범위가 좁은 데다가 하나같이 극단적이잖아. 왜 이렇게 피를 보려고 하는 거야?”

“그렇지만, 처벌이 솜방망이라면 다들 우습게 볼 것 아닙니까? 일단 벌이 강력해야 사람들이 무서워서라도 몸을 사리지 않겠습니까?”

“그건, 음.”

달리아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사였지만, 말이 좋아 기사였지 생활 수준은 그냥 실력 좋은 떠돌이의 영역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달리아 역시 제대로 된 교육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학식도 교양도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경험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떤 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지를 보았고, 경비 생활 속에서 잘못된 법이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도 보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달리아는 생각에 빠졌다.

벌이 강력하면 할수록 범죄자들이 몸을 사린다.

남자의 저 말 그 자체는, 적어도 그렇게까지 틀린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부작용 역시 강력하다.

“법하고는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온화한 영주가 다스리는 땅이랑 엄격한 영주가 다스리는 땅을 둘 다 본 적이 있어.”

“놀랍군요. 이 비르카 왕국에 온화한 영주라는 게 존재하는 생물이었습니까?”

“…있긴 있어! 백 개 중 하나 정도였지만!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끝까지 들어!!”

“네.”

헛기침을 반복한 후, 달리아는 말했다.

“온화한 영주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줬고, 엄격한 영주는 한번 죄를 저지르면 용서 없이 극형을 내렸지. 얼핏 생각하면 후자가 더 범죄에서 안전할 것 같지만, 막상 내가 본 건 달랐어. 사소한 죄조차 무조건 극형이니까, 오히려 뒤가 없어진 범죄자들이 더 막 나갔거든.”

“흠, 그것뿐입니까? 빠져나갈 길 정도는 줘야 한다?”

“거기에 판결이 잘못 내려지는 경우도 있어. 도둑이라고 몰려서 손목을 잘라버렸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지. 하지만 이미 잘린 손은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까 무조건 벌을 강하게 하는 건 좋지 않아.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날 수도 있으니까.”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고, 달리아는 저도 몰래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그리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그, 그렇지?”

달리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남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을 뿐인데, 그게 어째서인지 굉장히 기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데, 역시 죄라는 건 직접 저지르는 것도 악하지만, 그걸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도 똑같이 나쁜 것 같습니다. 즉, 관계자들도 싸그리 죄인으로 처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범인 당사자가 사형이라면, 적어도 사지 하나쯤은 날려버리는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윽고 또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 남자에게, 달리아는 으르렁거리듯이 달려들었다.

“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범죄를 막을 것 같아? 반대야! 오히려 자기들도 같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서 서로 쉬쉬한단 말이야! 범인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그 후에도 남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며 달리아에게 동의를 구했고, 달리아는 이를 반박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달리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아는 것이 많았고, 때때로 달리아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의 모순이나 허점을 찌르기도 했다.

남자의 말솜씨 앞에서 달리아는 번번이 밀리거나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텨내는 정도가 한계였지만, 그래도 가끔 남자의 논리를 뚫고 의견을 관철해 냈을 때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느꼈다.

왕국의 법이 어떻다든가, 레브루크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와 이야기하는 가상의 문제 속에서는 오직 달리아 자신의 의지와 신념, 양심만이 기준이 되었으니까.

달리아는 문득, 남자가 이것을 ‘놀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을, 올바르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후우….”

한참을 열정적으로 떠들던 달리아는, 이내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즐거운 휴일은 어느새인가 끝이 다가오고, 그녀가 돌아갈 시간 역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달리아는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안 좋으시군요.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남자의 질문에, 달리아는 대답을 망설였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며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가슴 속에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를 힘껏 털어놓은 달리아는, 조금만 더 그 후련함을 맛보고 싶었다.

“인정할게. 확실히, 재미는 있었어. 그렇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여기서 무얼 떠들어봐야,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녀의 판단도, 그녀의 판결도, 그녀가 생각한 옳고 그름도, 현실에서는 어떤 의미도 없다.

달리아가 제아무리 치열하게 고민하고 필사적으로 답을 짜내도, 이 도시의 상층부가 내리는 판결과 결론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놀이라면 단순히 즐거운 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근본적으로 성실한 달리아는 그 사실에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남자가 대답했다.

“놀이라고 해서 꼭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당장 현실로 옮기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훗날 어떤 일을 겪었을 때 판단 기준으론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용할 수도 없는 기준에 의미라는 게 있어?”

“적어도 ‘나라면 이럴 때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잖습니까. 명확한 결론도 없이 그냥 애매모호하고 질척한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해답을 내려버리는 게 속이 시원한 법입니다.”

“결론을 내린다, 라.”

달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말투가 돌아왔군요? 저는 방금 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공과 사는 구분하는 주의라서요.”

달리 말하자면, 지금부터는 ‘공’의 영역이라는 뜻이었다.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 들은 이야기들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건 달리아 나름의 친절이자, 그녀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만약 남자의 정체가 정말로 달리아가 생각한 ‘그’라고 해도, 적어도 오늘만큼은 붙잡지 않을 수 있도록.

“그건 좋군요. 그러면 ‘다음’에도, 저 역시 아가씨의 이름은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이것대로 풍류가 있어서 좋군요.”

그리고 그렇게 달리아가 그은 선을, 남자는 사뿐히 넘어와 그녀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달리아의 숨이 한순간 멈췄다.

“다음, 이라니요?”

“이런, 설마 받은 은혜를 겨우 하루 이야기하는 걸로 전부 끝내버리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어울려주셔야겠습니다. 하하하! 이래서 남의 호의는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법입니다!”

장난스러운 남자의 말에, 달리아의 손끝이 떨렸다.

“…뭐, 신세 진 건 갚아야 하니까요. 몇 번 정도라면, 더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뻔한 면죄부라는 걸 알면서도, 달리아는 모르는 척 받아들였다.

“그러면 다음에 또, 이름도 모르는 성실한 아가씨.”

“다시 뵙겠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익살꾼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