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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하인 세드릭(Cedric) (10) - 이미지 개선. 영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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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가 영주 대리를 내쫓고 관저에 들어앉았다는 소문을 들은 영민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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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님이면… 그 엄청난 악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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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폭언을 퍼부어서, 1년을 버티는 경우가 드물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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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계속 저택에만 틀어박혀 있던 분이 대체 왜 영주 일 따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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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엄청 늘려서 뜯어내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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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는 영민들을 마수 밥으로 주려는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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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다들 목소리 낮추게! 자칫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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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체드령에서 클라우디아의 이름은 나쁜 쪽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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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영지를 돌아다니며 패악질을 벌인 건 아니지만, 그녀의 저택에 하인으로 들어갔다가 학을 떼며 도망쳐 나온 이들이 온갖 악담을 떠들어 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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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절반 정도는 과장이나 왜곡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실제 체험담이었으니 아예 근거없는 비방이라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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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두려워하며 오들오들 떨던 영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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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클라우디아는 그들의 그런 기대(?)를 좋은 의미로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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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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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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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마수라며? 그냥 좀 털이 빨간 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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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경비 역할을 한다고? 그게 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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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들은 클라우디아가 다룬다는 악명 높은 혈마수들이 생각보다 귀여운 것에 처음 당황했고, 그 개들이 경비견 역할을 할 거라는 공표에 두 번째로 놀랐으며,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세 번째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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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 놈들한테 두들겨 맞을 뻔했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에 경비병들이 들이닥치더군. 덕분에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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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머니를 잃어버려서 계속 찾아다녔는데, 멍멍이가 찾아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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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놈이 경비대 소속 병사인데, 요즘 일하는 게 상당히 편해졌다더군. 전처럼 이리저리 흩어져서 돌아다닐 필요 없이, 그냥 대기하다가 개들이 안내해 주는 대로 출동만 하면 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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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던 범죄자 새끼들, 요즘은 평범한 개만 봐도 몸을 사리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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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눌러앉아만 있어도 다행이라 여겼던 클라우디아가 생각 외로 영주 일을 그럴듯하게 해내자, 그녀를 향한 여론은 거의 손바닥 뒤집듯 급속도로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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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른 지지도 상승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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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클라우디아를 향한 기대치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낮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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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가 펼친 정책이 무척이나 ‘체감하기 쉬운’ 것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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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높으신 분이 백성을 위해 무슨 무슨 정책을 낸다고 해도, 그 정책을 백성들이 직접 체감하면서 기뻐하는 일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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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극단적 정책은 부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악평을 불러오는 일이 많고, 그렇다고 섬세하게 조절한 정책은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큰 효과가 일어날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하다 보니 마찬가지로 체감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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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혈마수 경비 제도는 일단 당장 눈에 잘 보였고, 뭘 하는지도 알기 쉬웠으며, 그 과정에서 영민들 본인이 감수해야 할 노력이나 손해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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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고 해서 영민들 사이에 추가 징병을 한 것도 아니고, 그만큼 세금을 더 받은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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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는 없이 그냥 순수하게 이득만 보는 상황이니, 영민들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마음 편하게 클라우디아를 칭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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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여론에 반발하는 이들도 없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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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좆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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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체드령의 젊은 관료, 하멜른은 클라우디아의 행보를 반기지 않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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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그가 범죄자들에게 뒷돈을 받거나 해서, 에체드의 치안 향상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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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그 점에 관해서는 클라우디아를 꽤 고평가하고 있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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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딱 ‘그 부분만’ 고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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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내쫓았으면 그만한 대안을 가져와야 할 거 아니야! 다짜고짜 신입만 대량으로 떠 넘겨놓고 이제부터 같이 일하라고 하면 그게 되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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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대리가 쫓겨난 것에 반발하여 일을 그만둔 이들은, 대부분 영주 대리와 가깝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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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관료들 내에서도 직책이 높은 고위 관료들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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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는 이들의 빈자리를 하멜른을 비롯한 하위 관료 중 일부를 승진시키는 걸로 메웠지만, 인수인계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업무를 넘겨받았는데 일이 매끄럽게 돌아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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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여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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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 새로 들어온, 행정 업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동시에 해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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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겠지만, 본래 신입이라는 건 적응 기간이 끝날 때까진 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짐 덩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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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 해요, 저건 어떻게 해요라며 물어보는 거에 대답하는 것 자체가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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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화려한 정책으로 눈속임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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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일이 터졌을 때, 그 책임을 지는 건 하멜른을 비롯한 기존 관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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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책임을 지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을 묻는 존재고, 순수하게 클라우디아의 사람인 신입들을 쳐내기보다 기존 관료들을 쳐내는 게 권력 강화에는 더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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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이지 않은 미래 전망에, 하멜른이 격한 우울감을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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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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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집무실로 호출된 하멜른은, 클라우디아에게 웬 종이 뭉치를 넘겨받고는 눈을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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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 드러난 의문을 읽어낸 것인지,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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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업무 방식에 좀 비효율적인 게 보이길래 수정한 거야. 앞으로는 거기 적힌 순서대로 일해. 너희 부서 애들에게도 전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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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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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은 떫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큰 노력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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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까지 드문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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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들이 아래쪽 일하는 걸 대충 훑어보고는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바꿔 봐라’라고 지시하는 거 자체는 흔한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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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런 식의 훈수가 대체로 제대로 되먹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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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전임인 영주 대리만 해도 ‘종이 낭비를 막기 위해 관료 한 명당 하루에 쓸 수 있는 종이량을 제한하겠다’라는 기적의 명령을 내렸다가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서류들이 양산되는 걸 보고 급하게 명령을 취소한 전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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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평생 서류 작업이라고는 해본 적 없을 귀하디귀한 아가씨가 내린 명령이라면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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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하멜른은 종이 뭉치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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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서두는 그럴듯하군. 목차까지 따로 준비해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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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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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서식? 업무 종류에 따라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써넣을지를 미리 정해놓는다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하기야,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놈들도 적지 않으니. 아예 규칙으로 정해두면 좋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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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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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업무를 분야별로 쪼개는 건가. 확실히 가르치기는 쉽겠어. 숙달도 빠를 테고. 하지만 이래서야 담당자가 빠져버리면 다른 직원은 해당 분야에 문제가 생겨도 대처할 수가… 아하, 그걸 위한 부관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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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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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응대 매뉴얼? 잠깐, 귀빈이 방문했을 때 손님의 작위에 따른 예법이나 절차를 전부 기록해 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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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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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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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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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대체 무슨 개소리를 써놨을까, 라는 심정으로 서류를 읽기 시작하던 하멜른이었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 표정이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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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자기가 영주 앞에 있다는 것조차 잠시 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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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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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손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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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에체드령에 남은 관료 중 가장 행정 업무에 능한 그였기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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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류가 지닌 어마어마한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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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의 내용 자체가 엄청나게 혁신적인 건 아니야. 이해하지 못할 만큼 고도의 기술이나 새로운 개념 같은 건 없고, 관료 경험이 오래된 이들이라면 많든 적든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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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이 서류의 값어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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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막연히 ‘여기서는 이쯤 하면 된다’와 ‘A가 벌어졌을 때 B를 한다’ 사이에는 절대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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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할 정도의 메뉴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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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초보자라고 해도 아예 문맹만 아니라면, 그저 적혀 있는 걸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한사람 몫을 하게 해줄 마법의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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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초보자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야, 여기 적힌 내용들을 실행하면, 기존 관료들의 업무 효율도 엄청나게 올라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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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효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적용해 보기 전까지 알 수 없겠지만, 하멜른의 예상대로라면 최저치로 잡아도 2배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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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공백을 메우는 걸 넘어, 기존 인력을 더욱 줄여도 문제 없이 에체드령의 행정을 감당할 수 있을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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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은 감격에 찬 눈으로 클라우디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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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향해 내심 품고 있던 불만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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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이런 영주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충족감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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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합니다, 정말로 훌륭합니다, 영주님! 이거라면 문제 없이, 아니 그 이상으로 완벽하게 영지를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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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말에, 어째서인지 클라우디아가 잠시 몸을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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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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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 떨기는. 불만 없으면 가서 빨리 전파하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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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무심해 보이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이미 눈에 콩깍지가 낀 하멜른에게는 그마저도 자기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 군주의 겸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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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크게 고개를 숙인 뒤, 이내 빨리 이걸 적용해 보고 싶다는 듯이 들뜬 발걸음으로 방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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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에야, 클라우디아는 툭 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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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솔직히 난 봐도 잘 모르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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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질문에, 대각선 후방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세드릭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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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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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치고는 쟤 반응이 엄청 요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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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아가씨가 처음 오므라이스 먹었을 때 반응이랑 비슷하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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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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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는 순간 헛숨을 들이킨 후, 이내 말을 다다다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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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거짓말하지 마! 내가 저렇게 요란한 반응을 했을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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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집중하는 모양새가 딱 그때 그 느낌이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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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 당장 안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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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충실한 하인의 진실된 증언을 어찌 외면하려 하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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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는 책상 위에 있던 문진(文鎭)을 들어 냅다 투척했고, 세드릭은 늘 그렇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받아 제자리에 원상복구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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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얄밉다는 듯이 노려보던 클라우디아는, 이내 혀를 차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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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치더라도 의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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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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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저런 서류 같은 걸 전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직접 나서서 일을 죄다 처리할 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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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는 세드릭이 행정 업무에도 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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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그한테 매일같이 개인 교습을 받는 몸인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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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관료들이 제 발로 떠난다고 했을 때 굳이 붙잡지 않고 그냥 보내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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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놈들이 없어도 세드릭이 있으면 문제 따윈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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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클라우디아의 예상과 달리, 세드릭은 업무에 직접 나서는 대신 매뉴얼을 만들어서 간접적으로 돕는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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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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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라면 일이 귀찮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클라우디아가 여태껏 본 세드릭은 솔직히 말해 업무 중독에 가까웠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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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간단합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한다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빠지는 것만으로 기능 정지하는 조직 따위는 가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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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최종 결정권자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만, 이라고 세드릭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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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는 그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끼고 인상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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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 매뉴얼을 네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내가 만든 것처럼 위장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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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편이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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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은 딱히 주저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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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래 업무의 효율성을 따지기보단, 그냥 관성적으로 하던 방식 그대로를 사용하는 걸 즐기는 법입니다. 저 하멜른이란 관료처럼 솔선수범해서 이것저것 적용해 보려는 이는 드물고, 그런 이들에게 일을 강제하려면 아가씨의 권위를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영주가 직접 만든 매뉴얼이라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일단 하는 시늉은 해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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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으로 공표하면 그게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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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지요. 일개 하인, 그것도 경력도 미천한 애송이가 갑자기 행정 개혁을 한다며 밀어붙이면 관료 중 그걸 누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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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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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클라우디아는 왠지 불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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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일도 그래. 하인들이 내가 바뀌었다면서 기뻐하긴 하는데, 정작 네 이야기는 잘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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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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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의 행동이 바뀐 것이 세드릭 고용 이후인데, 둘 사이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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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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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세드릭이 클라우디아를 바꿨다! 라고 단언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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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세드릭 본인이 자기 공적을 알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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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저 조언을 했을 뿐입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행하신 건 아가씨지요. 스스로의 공적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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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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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붙이듯이 말하려고 했던 클라우디아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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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미묘한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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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감을 세드릭에게 말하는 순간, 그 일이 정말로 실현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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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됐어. 차나 좀 타와. 달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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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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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이 떠나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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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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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자기가 없어도 괜찮게 하려는 것처럼 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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