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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음악가 하멜(Hamel) (8) -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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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바이올린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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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받침을 어깨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턱받침에는 턱을 편안하게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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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현 위로 향하며, 이윽고 활과 현이 접촉하며 선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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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하나의 곡이 마무리되고, 그 직후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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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합니다! 멋진 연주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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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 하나 없는 찬사에, 히스티아는 조금 멋쩍은 기색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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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라고 너무 오냐오냐해주는 거 아니니? 중간에 몇 번이나 실수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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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중간에 제지하지 않았기에 일단 끝까지 계속하기는 했지만, 히스티아 본인이 느끼기엔 너무나 부족한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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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도 부자연스럽고, 음정도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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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그 자체라고 느껴지는 하멜의 연주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애들 장난 같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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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멜의 생각은 히스티아와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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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아예 악기를 다뤄보신 적도 없는 분이, 고작 강의 서너 번 만에 곡 하나를 완주한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사기 치지 말라고 외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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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뭐… 너와 만나지 않는 날에도 틈틈이 연습을 했으니까. 정말로 서너 번 만에 완성된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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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노력해서 성과를 냈다면, 오히려 훌륭한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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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는 무척이나 낯간지러운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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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셈이나 흑심을 품은 아부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순수한 칭찬과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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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히스티아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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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무리라도, 이대로 가면 합동 공연도 멀지 않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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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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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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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함마저 느껴지는 대답에, 히스티아는 되레 안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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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그렇다고 하면 필시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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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나란히 서서 연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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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즐거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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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고, 어쩌면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추억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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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실력이 점점 늘어나고, 명성도 높아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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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큰 꿈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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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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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고른 길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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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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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부르는 하멜의 목소리에, 히스티아는 긴 상념으로부터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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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잠깐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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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인기가 많을 겁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많을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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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지나친 평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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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서글픈 일이지만, 본디 공연이라는 게 주연의 미모도 중요한 법인 터라. 칙칙한 사내놈과 아리따운 레이디의 연주는 주목도가 다른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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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말이라도 기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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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재담과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아우러지기를 얼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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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떠날 채비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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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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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뭐. 슬슬 날도 늦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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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잠자리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자고 가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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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놈으로서 기쁨을 금할 수 없는 권유이지만, 그렇게까지 신세를 지기에는 제 알량한 자존심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요.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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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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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다며 보채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히스티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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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은 꾸벅 인사를 건넨 후 떠나갔고 방에는 그녀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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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로 다가간 히스티아는 점점 멀어지는 하멜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무렵에야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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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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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한층 더 굵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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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들려오는 빗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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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비는 계속 같은 정도로 내리고 있었고, 하멜의 연주와 말소리에 집중하느라 들리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들린 것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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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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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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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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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그 광경을, 가슴이 시원해지는 빗소리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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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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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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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제 더 소중한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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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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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목소리가, 빗소리에 지워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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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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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후히,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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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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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서 침을 줄줄 흘리면서, 한때 아름다웠던 외모를 형편없이 무너트린 채, 초점이 없는 눈으로 실실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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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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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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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를 들은 순간, 여자의 움직임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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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취해 즐거운 환상 속을 자유로이 누비던 정신이, 감옥과도 같은 현실에 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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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기 앞에 있는, 아직 열에도 미치지 못할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본인의 행복을 앗아간 남자의 딸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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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입에서 절규가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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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유리병이 깨지고, 그 날카로운 파편이 이쪽을 향해 휘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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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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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의 반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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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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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 그래. 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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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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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헐벗은 모습으로, 수많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저를 찾아온 아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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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에 담긴 감정은 호의에 가깝지만, 그건 부정(父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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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공, 자신의 업적, 자신이 쟁취해 낸 유형무형의 온갖 것들을 한데 모아 증명하는 알기 쉬운 트로피를 보는 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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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이지만, 남자는 이 문란한 광경을 숨기려고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것을 껄끄러워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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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남자 곁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들을, 돈이나 폭력으로 인해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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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은, 저를 도와줄 구원자를 보는 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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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절망, 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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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보는 것과 똑같은 눈으로, 그들은 아이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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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닫고 아이의 얼굴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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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정을 보며 남자의 입에 조소가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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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다르다는 긍지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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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얌전히 계십시오, 아가씨. 순순히 협력해 주시기만 하면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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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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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를 두려워하며 납작 엎드려 있던 늑대가, 비어버린 옥좌를 탐내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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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꽃다운 미모를 물씬 풍기기 시작한 아이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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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아버지가 물려준 조직 같은 건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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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도망쳐서 영영 사라져 줄 테니, 그냥 못 본 척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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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폭소한다. 배를 움켜잡고서, 바보 같은 소리라며 조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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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혁명이 일어났으니 이젠 귀족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핏줄에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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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 희소가치, 혹은 한때 제 머리 위에서 놀던 이들을 무릎 꿇게 하는 음습한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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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죽어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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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서도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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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 압도적인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반대로 아이를 놓치면 어디서 애먼 놈이 그녀를 명분 삼아 보스 자리에 도전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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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도망쳐도, 도망쳐도, 아이를 이용하려는 자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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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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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처음부터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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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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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짐승 무리에게 제 몸과 영혼을 맡긴 채 제물이 될 게 아니라면, 역으로 짐승 무리를 굴복시킬 수밖에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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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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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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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향해 음욕과 탐욕을 드러내던 누군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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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향해 분노와 살의를 향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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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향해 모략과 배신을 꿈꾸던 누군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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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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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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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를 째고 근육을 가르고 뼈를 쪼개고 힘줄을 끊고 장기를 빼내고 피 분수를 뿜게 하고 안구를 파내고 처절하게 고통을 주고 비명을 쥐어 짜내 그 모습을 주변에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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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사람들은 아이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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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것만이 아이가 선대에게서 배운 단 하나뿐인 제왕학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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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너무 어중간해. 내게 배웠다고 떠들 거라면 좀 더 제대로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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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은 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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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대신 강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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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대신 공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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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 누르기만 해선 반발한다고? 그건 어설프게 틈을 보이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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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보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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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간이라고 여겨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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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고 또 짓밟고 그 의지를 모두 꺾어버린다면, 상대는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구하며 그 허락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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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짐승을 다루는 올바른 방법이다. 그게 더러운 뒷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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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듯이 설교를 늘어놓는 망자의 목을 꿰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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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망자가 광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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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 딸이지! 그래야 내 인생의 증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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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찌르고 또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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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버려, 너도, 저 악마도! 내 인생을 망친 너희들 전부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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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얼굴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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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다른 길을 걷는다고? 뭐? 길거리 악사? 하하하!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따로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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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목소리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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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봐라, 네가 걸어온 길을 봐라,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봐라! 피와 오물과 저주가 가득 메워져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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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자들이 그녀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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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나빴을 뿐이라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아니야, 당신도 똑같아. 똑같은 괴물이고 똑같은 쓰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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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들이 그녀를 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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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악사를 꼬드겨 달콤한 말을 들으니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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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너에게 웃어주는 건 너를 잘 모르니까 그런 거란다. 그가 너의 정체를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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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헤븐의 마녀. 공화국의 가장 악랄한 범죄자 중 하나.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상대만 백을 넘어가는 살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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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오물로 더러워진 그 손을 잡아달라고 했을 때 그가 잡아줄 것 같니? 내 생각에는 기겁하면서 도망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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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포기하렴. 너한테 구원 같은 건 없어. 언젠가 찾아올 단죄를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강한 척, 여유 있는 척을 하는 게 유일한 미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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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리석어라, 우둔해라, 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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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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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머리카락이 피로 더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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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난도질당한 채 가면을 쓴 여자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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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헤카테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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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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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을 틀어막기 위해, 있는 힘껏 목을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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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살의와 폭력으로, 거슬리는 소리를 내뱉는 이들을 찍어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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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목을 졸리는 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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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 양. 이게 당신의 본성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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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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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랑하는 악사가, 경멸 어린 눈으로 히스티아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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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과 함께, 히스티아는 잠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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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식은땀으로 적신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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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구할 수 없는 아이가, 죄인이 되어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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