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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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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음악가 하멜(Hamel) (8) - 악몽

왼손으로 바이올린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 쥔다.

어깨 받침을 어깨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턱받침에는 턱을 편안하게 얹는다.

활을 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현 위로 향하며, 이윽고 활과 현이 접촉하며 선율을 자아낸다.

이윽고 하나의 곡이 마무리되고, 그 직후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훌륭합니다! 멋진 연주로군요.”

구김살 하나 없는 찬사에, 히스티아는 조금 멋쩍은 기색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제자라고 너무 오냐오냐해주는 거 아니니? 중간에 몇 번이나 실수가 있었는데.”

하멜이 중간에 제지하지 않았기에 일단 끝까지 계속하기는 했지만, 히스티아 본인이 느끼기엔 너무나 부족한 연주였다.

박자도 부자연스럽고, 음정도 어긋났다.

완벽 그 자체라고 느껴지는 하멜의 연주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애들 장난 같은 연주.

하지만, 하멜의 생각은 히스티아와 다른 모양이었다.

“하하하! 아예 악기를 다뤄보신 적도 없는 분이, 고작 강의 서너 번 만에 곡 하나를 완주한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사기 치지 말라고 외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거야 뭐… 너와 만나지 않는 날에도 틈틈이 연습을 했으니까. 정말로 서너 번 만에 완성된 건 아니야.”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노력해서 성과를 냈다면, 오히려 훌륭한 것 아닌가요?”

히스티아는 무척이나 낯간지러운 기분을 느꼈다.

속셈이나 흑심을 품은 아부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순수한 칭찬과 찬사.

그건 히스티아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무리라도, 이대로 가면 합동 공연도 멀지 않을 것 같군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단호함마저 느껴지는 대답에, 히스티아는 되레 안심을 느꼈다.

하멜이 그렇다고 하면 필시 그럴 테니까.

둘이 나란히 서서 연주를 한다.

필시 즐거울 터였다.

긴장되고, 어쩌면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추억이 되겠지.

그렇게 실력이 점점 늘어나고, 명성도 높아진다면.

지나치게 큰 꿈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더 이상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고른 길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히스티아 양?”

자신을 부르는 하멜의 목소리에, 히스티아는 긴 상념으로부터 깨어났다.

“미안. 잠깐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 봤어.”

“필시 인기가 많을 겁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많을지 모르겠군요.”

“그건 너무 지나친 평가 아니니?”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서글픈 일이지만, 본디 공연이라는 게 주연의 미모도 중요한 법인 터라. 칙칙한 사내놈과 아리따운 레이디의 연주는 주목도가 다른 법이지요!”

“후후, 말이라도 기쁘네.”

익살스러운 재담과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아우러지기를 얼마쯤.

하멜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떠날 채비를 갖췄다.

“가려는 거니?”

“예에, 뭐. 슬슬 날도 늦었으니 말이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잠자리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 자고 가도 괜찮은데.”

“사내놈으로서 기쁨을 금할 수 없는 권유이지만, 그렇게까지 신세를 지기에는 제 알량한 자존심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요.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다며 보채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히스티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멜은 꾸벅 인사를 건넨 후 떠나갔고 방에는 그녀만이 남겨졌다.

창가로 다가간 히스티아는 점점 멀어지는 하멜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무렵에야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았다.

-쏴아아아아.

빗줄기가 한층 더 굵어진 것일까.

귀에 들려오는 빗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아니, 어쩌면 비는 계속 같은 정도로 내리고 있었고, 하멜의 연주와 말소리에 집중하느라 들리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들린 것뿐일지도 모른다.

히스티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그녀는 비를 좋아했었다.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그 광경을, 가슴이 시원해지는 빗소리를 좋아했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만큼은 아니다.

그녀는 이제 더 소중한 것을 알고 있기에.

“정말로, 이상해.”

힘없는 목소리가, 빗소리에 지워져 사라졌다.


「히, 후히, 히히히….」

여자가 웃고 있다.

입가에서 침을 줄줄 흘리면서, 한때 아름다웠던 외모를 형편없이 무너트린 채, 초점이 없는 눈으로 실실 웃고 있다.

그 여자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엄마.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여자의 움직임이 멈춘다.

마약에 취해 즐거운 환상 속을 자유로이 누비던 정신이, 감옥과도 같은 현실에 끌려온다.

여자는 자기 앞에 있는, 아직 열에도 미치지 못할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본인의 행복을 앗아간 남자의 딸을 응시한다.

여자의 입에서 절규가 새어 나온다.

알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유리병이 깨지고, 그 날카로운 파편이 이쪽을 향해 휘둘러진다.

피가 흘렀다.

시야의 반이 사라졌다.

마음이 부서졌다.

「응? 아, 그래. 너냐.」

남자가 웃고 있다.

반쯤 헐벗은 모습으로, 수많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저를 찾아온 아이를 보고 있다.

남자의 눈에 담긴 감정은 호의에 가깝지만, 그건 부정(父情)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 자신의 업적, 자신이 쟁취해 낸 유형무형의 온갖 것들을 한데 모아 증명하는 알기 쉬운 트로피를 보는 눈일 뿐.

상대는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이지만, 남자는 이 문란한 광경을 숨기려고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것을 껄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남자 곁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들을, 돈이나 폭력으로 인해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노예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은, 저를 도와줄 구원자를 보는 눈이 아니다.

공포, 절망, 체념.

남자를 보는 것과 똑같은 눈으로, 그들은 아이를 보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아이의 얼굴이 굳는다.

그 표정을 보며 남자의 입에 조소가 어린다.

자기는 다르다는 긍지가 무너졌다.

「흐흐흐, 얌전히 계십시오, 아가씨. 순순히 협력해 주시기만 하면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짐승이 웃고 있다.

우두머리를 두려워하며 납작 엎드려 있던 늑대가, 비어버린 옥좌를 탐내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다.

이제 꽃다운 미모를 물씬 풍기기 시작한 아이가 말한다.

자기는 아버지가 물려준 조직 같은 건 관심 없다.

이대로 도망쳐서 영영 사라져 줄 테니, 그냥 못 본 척만 해달라고.

짐승이 폭소한다. 배를 움켜잡고서, 바보 같은 소리라며 조소한다.

사람들은 혁명이 일어났으니 이젠 귀족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핏줄에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정통성, 희소가치, 혹은 한때 제 머리 위에서 놀던 이들을 무릎 꿇게 하는 음습한 쾌감.

아이는 죽어선 안 됐다.

사라져서도 곤란했다.

아이를 손에 넣는 것만으로 압도적인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반대로 아이를 놓치면 어디서 애먼 놈이 그녀를 명분 삼아 보스 자리에 도전해 올지도 모른다.

아이가 도망쳐도, 도망쳐도, 아이를 이용하려는 자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아이는 깨달았다.

자신에게 처음부터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는 걸.

아이는 이해했다.

이대로 짐승 무리에게 제 몸과 영혼을 맡긴 채 제물이 될 게 아니라면, 역으로 짐승 무리를 굴복시킬 수밖에 없다는 걸.

아이는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를!」

아이를 향해 음욕과 탐욕을 드러내던 누군가가 있었다.

아이를 향해 분노와 살의를 향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아이를 향해 모략과 배신을 꿈꾸던 누군가가 있었다.

베었다.

찢어발겼다.

피부를 째고 근육을 가르고 뼈를 쪼개고 힘줄을 끊고 장기를 빼내고 피 분수를 뿜게 하고 안구를 파내고 처절하게 고통을 주고 비명을 쥐어 짜내 그 모습을 주변에 과시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아이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오직 그것만이 아이가 선대에게서 배운 단 하나뿐인 제왕학이었으니까.

「아니지, 너무 어중간해. 내게 배웠다고 떠들 거라면 좀 더 제대로 하거라.」

이미 죽은 자가 말했다.

설득 대신 강압을.

자비 대신 공포를.

「찍어 누르기만 해선 반발한다고? 그건 어설프게 틈을 보이니까 그런 거다.」

정을 보여선 안 된다.

같은 인간이라고 여겨져선 안 된다.

짓밟고 또 짓밟고 그 의지를 모두 꺾어버린다면, 상대는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구하며 그 허락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게 짐승을 다루는 올바른 방법이다. 그게 더러운 뒷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방식이다.」

잘난 듯이 설교를 늘어놓는 망자의 목을 꿰뚫는다.

목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망자가 광소한다.

「잘한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 딸이지! 그래야 내 인생의 증표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찌르고 또 찌른다.

「죽어버려, 너도, 저 악마도! 내 인생을 망친 너희들 전부 다! 죽어!!」

망자의 얼굴이 변한다.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걷는다고? 뭐? 길거리 악사? 하하하!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따로 없군!」

망자의 목소리가 변한다.

「네 손을 봐라, 네가 걸어온 길을 봐라,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봐라! 피와 오물과 저주가 가득 메워져 있군!」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자들이 그녀를 비웃는다.

「아버지가 나빴을 뿐이라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아니야, 당신도 똑같아. 똑같은 괴물이고 똑같은 쓰레기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들이 그녀를 저주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악사를 꼬드겨 달콤한 말을 들으니 행복하니?」

「그가 너에게 웃어주는 건 너를 잘 모르니까 그런 거란다. 그가 너의 정체를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 거 같아?」

「미스트헤븐의 마녀. 공화국의 가장 악랄한 범죄자 중 하나.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상대만 백을 넘어가는 살인귀!」

「피와 오물로 더러워진 그 손을 잡아달라고 했을 때 그가 잡아줄 것 같니? 내 생각에는 기겁하면서 도망칠 것 같은데?」

「이만 포기하렴. 너한테 구원 같은 건 없어. 언젠가 찾아올 단죄를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강한 척, 여유 있는 척을 하는 게 유일한 미래지.」

「아아, 어리석어라, 우둔해라, 가여워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보랏빛 머리카락이 피로 더럽혀진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 가면을 쓴 여자가 웃는다.

마녀 헤카테가 웃는다.

나이프를 내던진다.

그 입을 틀어막기 위해, 있는 힘껏 목을 조른다.

증오와 살의와 폭력으로, 거슬리는 소리를 내뱉는 이들을 찍어 누른다.

그리고, 목을 졸리는 이가 말했다.

「히스티아 양. 이게 당신의 본성입니까?」

하멜.

그녀가 사랑하는 악사가, 경멸 어린 눈으로 히스티아를 올려다보았다.


비명과 함께, 히스티아는 잠에서 눈을 떴다.

온몸을 식은땀으로 적신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더 이상 무구할 수 없는 아이가, 죄인이 되어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