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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음악가 하멜(Hamel) (4) - 우연, 혹은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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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기대어 앉은 채, 여인은 조용히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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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내의 연주는 아름다웠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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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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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이전처럼 그 피리 소리를 순수하게 즐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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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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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거절이 불러일으킨 감정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었다면, 두 번째 거절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두려움과 당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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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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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의문이, 다시금 귀를 통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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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여인은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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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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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이 되라는 요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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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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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상대는 그 작은 소망조차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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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사태로 들끓는 감정이, 서서히 어느 일점으로 수렴해 가는 것을 여인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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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체를 알아차리기는 쉬웠다. 여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하고 친근한 감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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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친구 같은 감정이 여인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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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짓은 하지 마. 너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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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세 가지야. 매력적인 이성. 막대한 재물.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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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가지는 거절당했어. 그렇다면 남은 건 마지막뿐이지. 너의 정체를, 네가 가진 ‘마녀 헤카테’의 힘을 알고도, 저 악사가 지금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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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피리 소리를 좋아하잖아. 그를 가지고 싶은 거잖아. 그러면 가지면 돼. 새장에 집어넣고서, 오직 너만을 위해 노래하게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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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무척이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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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굉장히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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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힘들여 고생을 하거나 애를 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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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부하를 불러 명령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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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데,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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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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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그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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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성적인 계산이 아닌, 본능적인 혐오와 두려움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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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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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을 끝낸 직후 발견한 곰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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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예쁘고 귀여워 보였던 그것을 무심코 손에 쥔 순간, 인형은 그녀의 손에 묻은 피로 인해 더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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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물을 묻히고 피를 지워내 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인형은 더욱 볼품없고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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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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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탐욕이, 그를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청년을 망가트리고 다신 예전 같은 연주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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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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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과 함께, 여인은 자신의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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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넘치는 집착과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그녀는 자신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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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이 거리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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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의 비밀을 알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그의 연주를 들을 수는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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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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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정을 내린 뒤, 여인은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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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에서도, 바에서도, 그녀는 악사에게 억지로 다가가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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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용히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연주에 귀를 기울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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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위는 여인의 마음속 더러움을 단숨에 씻어내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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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포근하고,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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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귀찮은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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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혼자서 바에 앉아 악사의 연주를 듣고 있다 보니, 그런 여인의 외모에 혹해 다가오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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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대부분은 여인의 매정한 태도 앞에서 꺾여야만 했고, 주제 파악을 못 하고 거친 수단을 동원하려던 이들은 바텐더 겸 오너인 라이튼의 제지 앞에서 이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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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만남이란 서로의 동의가 있어야만 아름다운 법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키실 수 없다고 한다면, 부디 저의 가게에서 나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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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술꾼과 술집 주인의 관계라면 모를까, ‘안개 낀 술잔’이 뒤에서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어지간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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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은근히 여인의 편을 드는 라이튼의 압박에 남자들은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그 이상 강하게 나오지 못했고, 여인은 조용한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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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에는 꼭 눈치가 없는 이들이 존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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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오늘도 이렇게 만나는군요. 사랑과 정열의 여신께서 제 애달픈 마음을 알아주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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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의 음악이 끝난 후, 그 여운에 잠겨 있던 여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렌스터 몬태규라는 남자는 그 ‘귀찮은 일’의 대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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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인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라이튼의 압박도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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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규 가문이라는 뒷배가 그런 렌스터의 자신감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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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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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그런 렌스터에게 진심으로 번거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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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의상 거절의 말이라도 돌려주었지만, 이제는 아예 말을 거는 것조차 무시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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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딴에는 한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수백수천 번이라도 찍어서 넘어트리겠다는 생각인 것 같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이만큼 귀찮은 게 달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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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워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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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규 가문의 힘과 영향력이 그 나름대로 괜찮은 건 사실이었으나, 솔직히 말해서 조직이 처리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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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자신과 ‘마녀 헤카테’로서의 자신을 가능하면 별개 취급하려는 여인의 성향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청년의 사지 하나쯤은 생선 밥으로 변해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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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칵테일은 어떠십니까? 제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배합법을 사용한 건데, 그 풍미가 무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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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네요. 그리고, 이렇게 계속 말을 거시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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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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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다음부터는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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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선고한 뒤, 여인은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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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고는 날렸으니, 이후에도 경고를 무시하고 달라붙으려 한다면 그땐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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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이 빠진 듯한 부잣집 도련님을 뒤로한 채, 여인은 가게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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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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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에 가까운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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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스터를 상대하며 느낀 피로라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제 의지를 강요하려는 그 모습에서 추악함과 동질감을 느꼈기에 새어 나온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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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인이 악사의 의지를 무시하고 억지로 그를 가까이하려고 했다면, 악사가 그녀에게 느꼈을 감정 역시 비슷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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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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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린 후, 여인은 재차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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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스’로서의 일이 있으니, 곧바로 집에 돌아가 준비를 한 뒤 조직원들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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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가 가게 문 앞을 떠나려 한 그 순간, 여인의 예리한 감각이 기이한 소음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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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 어디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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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 그 눈 … 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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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나부……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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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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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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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 익숙함 속에 ‘악사’라는 단어가 뒤섞여 있는 걸 확인하고, 여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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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근원지. 안개 낀 술잔의 맞은편에 있는 골목으로 그녀가 발을 내딛자, 그 안의 정경이 여인의 외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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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살을 붙들린 악사. 그런 그의 멱살을 붙잡은 불한당과 그 패거리. 불한당의 손에 잡힌 돈주머니와 악사의 얼굴에 있는 폭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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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이년은 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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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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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 쪽에 가장 가까운 패거리 하나의 팔을 꺾은 뒤, 그대로 놈의 얼굴을 벽에다 처박으면서 팔꿈치를 거꾸로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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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두 번째 패거리의 종아리를 걷어차 놈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게 하고, 그대로 눈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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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이 빠진 채 뒷걸음질을 치려는 마지막 패거리의 턱을 후려치고, 몸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는 놈의 얼굴 중앙을 힘껏 걷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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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는 듯한 연계였고,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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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남자 셋을 미처 반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압살해버린 여인은, 그대로 다급하게 악사의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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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나요? 내 말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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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별로 안 괜찮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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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의 말에, 여인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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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마음을 씻겨 내려주는 소중한 악사가 망가졌다고 하면, 그녀는 그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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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어디가 문제죠? 포기하지 말아요. 실력이 좋은 의사를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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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 의사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제가 느끼는 고통을 치료해 주시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이 병의 이름은 바로 쪽팔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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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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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끔뻑거리는 여인 앞에서, 악사 청년은 크으윽, 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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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번에 그렇게 폼 잡으면서 ‘제 연주는 그리 싸구려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했는데, 그 뒤가 이거라니. 인간적으로 수치심을 느낄만한 장면 아닙니까? 오, 위대한 아버지여. 왜 제 형제들에게는 많은 재능을 주셨으면서 저에게는 오직 음악 하나만 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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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동작으로 마치 무대 위의 비극의 주인공 같은 동작을 취하는 청년을 보며, 여인은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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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크게 다친 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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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회적 체면과 금전적 손실을 그런 한마디로 압축하시다니, 레이디께서는 꽤 자비가 없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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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고집 강한 음악가님에게 가차 없이 차인 여자라서, 그런 건 못 챙기고 다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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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것참 굉장히 나쁜 놈이 있었나 보군요. 그런데 솔직히 그건 레이디께서 잘못하셨습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예약 공연을 신청했으면 몰라도, 멀쩡한 공연이 대기 중인데 그걸 돈 몇 푼에 그만두라고 하신다니. 그거야말로 악사로서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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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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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한 포인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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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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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동작으로 몸에 묻은 더러움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 악사는, 그대로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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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법. 서로 보기 흉한 꼴을 봤으니 그 부분은 적당히 묻기로 하고,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물색할 때인 것 같군요. 레이디께서도 동의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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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망설이던 여인은, 조심스레 악사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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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당신이 괜찮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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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그러면 자기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저는 하멜. 세상에 음악을 전파하는 유쾌하고도 가냘픈 악사 나부랭이입니다. 레이디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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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잠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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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그녀가 대는 이름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지만, 여인은 이 순간만큼은 조심스레 다른 이름을 입에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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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헤카테를 자칭하기 전에 지니고 있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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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Hystia)라고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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