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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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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음악가 하멜(Hamel) (4) - 우연, 혹은 필연

창가에 기대어 앉은 채, 여인은 조용히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리 부는 사내의 연주는 아름다웠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완벽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여인은 이전처럼 그 피리 소리를 순수하게 즐길 수가 없었다.

“…….”

첫 번째 거절이 불러일으킨 감정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었다면, 두 번째 거절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두려움과 당혹이었다.

“어째서?”

무심코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의문이, 다시금 귀를 통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로, 여인은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것이 되라는 요청이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헌데, 상대는 그 작은 소망조차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다.

예상 밖의 사태로 들끓는 감정이, 서서히 어느 일점으로 수렴해 가는 것을 여인은 느꼈다.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는 쉬웠다. 여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하고 친근한 감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 같은 감정이 여인에게 속삭였다.

[어울리지 않는 짓은 하지 마. 너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잖아?]

[인간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세 가지야. 매력적인 이성. 막대한 재물. 그리고 압도적인 폭력.]

[앞의 두 가지는 거절당했어. 그렇다면 남은 건 마지막뿐이지. 너의 정체를, 네가 가진 ‘마녀 헤카테’의 힘을 알고도, 저 악사가 지금처럼 고개를 뻣뻣하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피리 소리를 좋아하잖아. 그를 가지고 싶은 거잖아. 그러면 가지면 돼. 새장에 집어넣고서, 오직 너만을 위해 노래하게 하면 된다고.]

그건 무척이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또한 굉장히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굳이 힘들여 고생을 하거나 애를 쓸 것도 없다.

그저 부하를 불러 명령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 끝난다.

알고 있는데,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싫어.”

여인은 그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성적인 계산이 아닌, 본능적인 혐오와 두려움에 가까웠다.

여인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날 ‘일’을 끝낸 직후 발견한 곰 인형.

너무나 예쁘고 귀여워 보였던 그것을 무심코 손에 쥔 순간, 인형은 그녀의 손에 묻은 피로 인해 더럽혀졌다.

어떻게든 물을 묻히고 피를 지워내 보려고 했지만, 그녀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인형은 더욱 볼품없고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여인은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자신의 탐욕이, 그를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청년을 망가트리고 다신 예전 같은 연주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두려웠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여인은 자신의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흘러넘치는 집착과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그녀는 자신을 설득했다.

지금 이대로, 이 거리로 만족하자.

그와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의 비밀을 알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그의 연주를 들을 수는 있을 테니까.


일단 결정을 내린 뒤, 여인은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분수대에서도, 바에서도, 그녀는 악사에게 억지로 다가가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연주에 귀를 기울였을 뿐.

그 행위는 여인의 마음속 더러움을 단숨에 씻어내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포근하고,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으니까.

다만, 귀찮은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이 혼자서 바에 앉아 악사의 연주를 듣고 있다 보니, 그런 여인의 외모에 혹해 다가오는 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중 대부분은 여인의 매정한 태도 앞에서 꺾여야만 했고, 주제 파악을 못 하고 거친 수단을 동원하려던 이들은 바텐더 겸 오너인 라이튼의 제지 앞에서 이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손님. 만남이란 서로의 동의가 있어야만 아름다운 법입니다. 이런 원칙을 지키실 수 없다고 한다면, 부디 저의 가게에서 나가주십시오.”

평범한 술꾼과 술집 주인의 관계라면 모를까, ‘안개 낀 술잔’이 뒤에서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어지간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은근히 여인의 편을 드는 라이튼의 압박에 남자들은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그 이상 강하게 나오지 못했고, 여인은 조용한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꼭 눈치가 없는 이들이 존재하는 법.

“하하! 오늘도 이렇게 만나는군요. 사랑과 정열의 여신께서 제 애달픈 마음을 알아주시는 듯합니다.”

악사의 음악이 끝난 후, 그 여운에 잠겨 있던 여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렌스터 몬태규라는 남자는 그 ‘귀찮은 일’의 대표격이었다.

그는 여인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라이튼의 압박도 개의치 않았다.

몬태규 가문이라는 뒷배가 그런 렌스터의 자신감을 뒷받침했다.

“…….”

여인은 그런 렌스터에게 진심으로 번거로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예의상 거절의 말이라도 돌려주었지만, 이제는 아예 말을 거는 것조차 무시할 정도였다.

본인 딴에는 한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수백수천 번이라도 찍어서 넘어트리겠다는 생각인 것 같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이만큼 귀찮은 게 달리 없었다.

‘치워버릴까.

몬태규 가문의 힘과 영향력이 그 나름대로 괜찮은 건 사실이었으나, 솔직히 말해서 조직이 처리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평소의 자신과 ‘마녀 헤카테’로서의 자신을 가능하면 별개 취급하려는 여인의 성향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청년의 사지 하나쯤은 생선 밥으로 변해 있었겠지.

“이 칵테일은 어떠십니까? 제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배합법을 사용한 건데, 그 풍미가 무척이나-”

“죄송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네요. 그리고, 이렇게 계속 말을 거시는 것도 부담스럽고요.”

“어….”

“부디 다음부터는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일방적으로 선고한 뒤, 여인은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경고는 날렸으니, 이후에도 경고를 무시하고 달라붙으려 한다면 그땐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얼이 빠진 듯한 부잣집 도련님을 뒤로한 채, 여인은 가게를 빠져나왔다.

“하아.”

탄식에 가까운 한숨.

렌스터를 상대하며 느낀 피로라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제 의지를 강요하려는 그 모습에서 추악함과 동질감을 느꼈기에 새어 나온 한숨이었다.

만약 여인이 악사의 의지를 무시하고 억지로 그를 가까이하려고 했다면, 악사가 그녀에게 느꼈을 감정 역시 비슷했을 테니까.

“…그래, 잘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린 후, 여인은 재차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보스’로서의 일이 있으니, 곧바로 집에 돌아가 준비를 한 뒤 조직원들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게 문 앞을 떠나려 한 그 순간, 여인의 예리한 감각이 기이한 소음을 감지했다.

[이 ……가 어디서 감……!]

[어쭈, …… 그 눈 … 깔아?]

[악사 나부…… 따위…!]

폭력과 폭언.

여인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소리.

허나 그 익숙함 속에 ‘악사’라는 단어가 뒤섞여 있는 걸 확인하고, 여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소리의 근원지. 안개 낀 술잔의 맞은편에 있는 골목으로 그녀가 발을 내딛자, 그 안의 정경이 여인의 외눈에 비쳤다.

멱살을 붙들린 악사. 그런 그의 멱살을 붙잡은 불한당과 그 패거리. 불한당의 손에 잡힌 돈주머니와 악사의 얼굴에 있는 폭력의 흔적.

“앙? 이년은 또 뭐-”

여인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큰길 쪽에 가장 가까운 패거리 하나의 팔을 꺾은 뒤, 그대로 놈의 얼굴을 벽에다 처박으면서 팔꿈치를 거꾸로 꺾는다.

악사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두 번째 패거리의 종아리를 걷어차 놈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게 하고, 그대로 눈을 찌른다.

얼이 빠진 채 뒷걸음질을 치려는 마지막 패거리의 턱을 후려치고, 몸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는 놈의 얼굴 중앙을 힘껏 걷어찬다.

물 흐르는 듯한 연계였고,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건장한 남자 셋을 미처 반항할 틈조차 주지 않고 압살해버린 여인은, 그대로 다급하게 악사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나요? 내 말 들려요?”

“…음, 별로 안 괜찮은 느낌입니다.”

악사의 말에, 여인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마음을 씻겨 내려주는 소중한 악사가 망가졌다고 하면, 그녀는 그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디, 어디가 문제죠? 포기하지 말아요. 실력이 좋은 의사를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뇨, 그 의사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제가 느끼는 고통을 치료해 주시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이 병의 이름은 바로 쪽팔림이거든요.”

“네?”

눈을 끔뻑거리는 여인 앞에서, 악사 청년은 크으윽, 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니, 저번에 그렇게 폼 잡으면서 ‘제 연주는 그리 싸구려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했는데, 그 뒤가 이거라니. 인간적으로 수치심을 느낄만한 장면 아닙니까? 오, 위대한 아버지여. 왜 제 형제들에게는 많은 재능을 주셨으면서 저에게는 오직 음악 하나만 주셨나이까!”

과장된 동작으로 마치 무대 위의 비극의 주인공 같은 동작을 취하는 청년을 보며, 여인은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튼, 크게 다친 건 아니라는 거죠?”

“저의 사회적 체면과 금전적 손실을 그런 한마디로 압축하시다니, 레이디께서는 꽤 자비가 없으십니다?”

“어디 고집 강한 음악가님에게 가차 없이 차인 여자라서, 그런 건 못 챙기고 다닌답니다.”

“이런, 그것참 굉장히 나쁜 놈이 있었나 보군요. 그런데 솔직히 그건 레이디께서 잘못하셨습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예약 공연을 신청했으면 몰라도, 멀쩡한 공연이 대기 중인데 그걸 돈 몇 푼에 그만두라고 하신다니. 그거야말로 악사로서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일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정확한 포인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탁, 탁.

요란한 동작으로 몸에 묻은 더러움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 악사는, 그대로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법. 서로 보기 흉한 꼴을 봤으니 그 부분은 적당히 묻기로 하고,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물색할 때인 것 같군요. 레이디께서도 동의하시겠습니까?”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망설이던 여인은, 조심스레 악사의 손을 마주 잡았다.

“…네, 당신이 괜찮다면요.”

“좋습니다. 그러면 자기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저는 하멜. 세상에 음악을 전파하는 유쾌하고도 가냘픈 악사 나부랭이입니다. 레이디께서는?”

여인은 잠시 망설였다.

평소 그녀가 대는 이름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지만, 여인은 이 순간만큼은 조심스레 다른 이름을 입에 담기로 했다.

그녀가 헤카테를 자칭하기 전에 지니고 있던 이름을.

“히스티아(Hystia)라고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