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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거지 그리츠(Gritz) (13) - 왕도적인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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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인식을 이용해 수호신의 자리를 강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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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그레이스가 수호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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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이 죽은 뒤에 힘을 이어받을 후보자’와 ‘이미 수호신의 능력을 가진 예비 수호신’은 전혀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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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이 작전은 절대로 장기전을 상정해서는 안 되는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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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이 아무리 수동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들, 자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빼앗기는 상황에서까지 얌전히 있어 주리라는 건 너무 낙관적인 사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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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그리츠와 그레이스가 짜낸 작전의 순번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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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은은한 소문,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레이스가 어쩌면 차기 수호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떡밥만 깔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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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 순간, 예를 들면 축제의 마지막 날 같은 순간 수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대한 쇼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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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불을 붙이기 전에 일단 마른 장작과 기름부터 깔아두는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그레이스가 선보인 기적의 소문은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영지 전체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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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공정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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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재산이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미쳐 발광할 수호신을 잠재우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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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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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차 흐릿한 어두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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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향해 길을 안내하는 카닐리안 가주의 얼굴은 긴장과 초조로 인해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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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으로 향하는 길은 오직 역대 가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지만, 그저 그것뿐이라면 가주가 직접 길잡이 역할을 자처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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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츠에게 미리 길을 알려준 뒤, 본인은 집안에서 대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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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가주는 본인이 직접 나서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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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차피 그리츠와 그레이스에게 꿇어야 한다면 확실하게 꿇는 편이 낫다는 타산이기도 했고, 선조들이 만들어버린 괴물의 하수인 노릇은 그만하고 싶다는 절박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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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침입자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웅장한 철문 앞에 선 가주가 품에 있는 열쇠로 그 문을 열자, 그 너머의 풍경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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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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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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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와 그레이스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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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은 카닐리안 가문에서 소유한 부지 중 일부를 특수한 철창으로 둘러싼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 자체가 거대한 건물 같은 구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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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실내와 실외로 구분된 것이 아니었으니, 공기가 다를 이유가 없었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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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고작 문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도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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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끈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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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만들어낸 증기가 밀폐된 공간에 가득 들어차 있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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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사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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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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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신전 정문에서, 그 심부에 이르는 영역까지는 잘 포장된 돌길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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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지금 돌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잡초가 자라나, 그 잎사귀를 너풀너풀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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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는 인상을 쓰면서 풀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그 시도는 곧장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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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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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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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사용해 바닥의 풀을 밀어내려 했건만, 오히려 그 잎에 닿은 신발이 그대로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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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가만히 있는 칼에다가 두부를 가져다 댄 것 같은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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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했으면 발 그 자체가 그대로 잘려 나갈 뻔했던 상황에 가주는 창백한 얼굴을 했고, 그 모양새를 보던 그리츠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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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은 이만 돌아가 봐라. 안내는 여기까지 했으면 충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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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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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말 안 한다. 문밖에서 괜히 엉뚱한 놈들이 휘말리지 않게 지키고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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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던 가주는 그리츠가 새 역할을 결정해 준 뒤에야 조금 안심한 기색으로 되돌아갔고, 문 안에는 그리츠와 그레이스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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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돌아가도 된다. 어차피 싸우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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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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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단칼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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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싸움이잖아요. 근데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나 하다가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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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가봐야 구경밖에 더 하겠냐? 어차피 짐 덩어리 될 거 미리미리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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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덩어리가 될지 어떨지는 가봐야 아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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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그레이스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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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금 가주가 걷어내려다가 발이 잘릴 뻔한 잡초를 주저 없이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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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발 전체가 여러 살점으로 저며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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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레이스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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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신발은 멀쩡했고, 그레이스에게 짓밟힌 잡초는 방금까지의 날카로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시들 대로 시들어 그대로 가루처럼 부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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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죠? 나도 그냥 놀고먹은 게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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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 양손을 대고, 그레이스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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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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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츠는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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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냥이 아니라, 적지 않은 진심이 담긴 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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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강화해 칼날 겸 함정처럼 만든 것은 수호신의 권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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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그레이스는, 그 권능을 자신의 권능으로 상쇄한 뒤, 풀을 그대로 시들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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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가 신성력을 다루기 시작한 지가 고작 며칠 전이고, 그 힘이 본격적으로 커진 게 바로 오늘 오후였다는 걸 생각하면 가히 기가 막힐 정도의 성장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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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렇지, 역시 신성력이 좋긴 좋군. 검사나 마법사 놈들이 봤으면 사기 치지 말라고 울부짖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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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있으면 자기들도 산 제물 후보가 되어서 두근두근 콩닥콩닥한 매일매일을 보내라고 하면 되죠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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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뒤, 그레이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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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같이 가게 해줘요. 도움이 될지 어떨진 몰라도,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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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뭐, 마음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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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츠는 그런 그녀의 결의를 무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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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리츠 역시 마지막 확인차 한 번 더 물어봤을 뿐 진지하게 그녀를 떼놓고 갈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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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애초에 그레이스를 여기까지 데려오지도, 그녀에게 모든 계획을 설명하지도 않았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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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오크통이 굴러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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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사람이 풀을 짓밟고 나아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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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소리와 함께, 두 명은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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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공기는 더욱 끈적해졌고, 식물의 형상이나 생태는 더욱 기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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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울타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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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 한 채 정도 되는 크기의 석조 건물의 지붕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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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 두 명의 시선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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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언뜻 보면 금색과 녹색의 옷과 수많은 장신구를 두른 사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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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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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상반신 절반은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나머지 반신은 녹색의 잎사귀와 금색의 이삭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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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오른쪽 날개는 하얀 깃털을 지닌 새를 닮아 있었으나, 왼쪽 날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수많은 식물의 줄기와 뿌리가 촉수처럼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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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게는 하반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신 상반신 아래에는 수많은 인골(人骨)이 서로 뒤얽힌 채 달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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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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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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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가주의 태도를 여태껏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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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이 그토록 껄끄러웠다면 은밀히 병사들을 모아서 퇴치를 하든 뭘 하든 하면 되었을 텐데, 가주는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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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도를 해봤다 실패한 거라면 몰라도, 아예 시도조차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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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이렇게 두 눈으로 신을 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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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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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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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웠으나 아름다웠고, 모독적이었으나 신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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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구나, 무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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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입을 열었다. 수호신이 말했다. 괴물이 그레이스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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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잔꾀를 부린 것을 안다. 그것이 패역(悖逆)임을 안다. 허나 용서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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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릇 어리석은 아이와 같아,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무작정 두려워하며 악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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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무지가 너에게 우행을 택하게 했으니, 이 땅의 어버이 되는 자로서 이를 어찌 꾸짖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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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직 늦지 않았다. 나의 앞에 다가와 기도하라, 내 품에 안겨라, 너의 선배들이 너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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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목소리는 지극히도 자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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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은 마치 보자기에 감싸인 어린아이를 보듯 상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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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레이스는 머릿속이 달콤한 꿀로 가득 차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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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모처럼 느껴졌고, 그의 하반신에 달린 인골들은 어느새인가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으로 뒤바뀐 채 그레이스에게 어서 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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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수호신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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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과 선대 무녀들의 미소가 한층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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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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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나는, 당신의 무녀 따윈 사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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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미혹에 홀렸던 것은 단 한 걸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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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뺨을 두들겨 정신을 되찾은 그레이스는, 그대로 수호신을 노려보며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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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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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금색 신성력과는 대비되는, 은과 재의 신성력이 그녀의 몸을 감싸자, 그녀의 눈을 현혹하던 환상이 바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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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와 선성으로 가득하던 수호신의 얼굴은 온갖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으로 그레이스를 응시하고 있었고, 막냇동생을 맞이하듯 친절함과 환호로 가득하던 선대 무녀들의 얼굴은 피눈물을 흘리며 질투와 원념에 찬 눈빛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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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거, 본인이 한 말은 아주 잘 지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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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츠가 유쾌하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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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겠다던 자신의 말을 뜻한다는 걸 깨닫고, 그레이스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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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츠가 들어 있는 오크통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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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일대의 모든 숲은, 수호신이 내뿜은 금색의 신성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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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을 우습게 넘는 세월 동안 차곡차곡 누적해 온 신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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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거대한 수조에 파이프를 연결해 내용물이 빠져나올 길을 만들었다고 해도, 신성력을 모조리 빼 내오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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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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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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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년보단 좋은 호칭이긴 한데, 그래도 이왕이면 이름으로 불러주면 더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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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열심히 기도나 해라. 아니, 명상? 정신력 싸움? 뭐 아무래도 좋으니, 저놈에게서 흘러오는 신성력의 기세를 더 빠르게 해서 쪽쪽 빨아들여 버리란 말이다. 이왕 이렇게까지 가까이 왔으니, 관객보단 승리의 주역이 더 재미있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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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는데, 그걸 그렇게 저거 앞에서 대놓고 말해도 돼요? 혹시 나를 미끼로 쓰려는 고도의 전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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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믿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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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피식 웃고는, 그대로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정좌한 채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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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향해 기원을 바치는 듯한, 어떤 의미로는 지극히 무방비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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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레이스의 몸 주변에서 흘러나오던 은색과 잿빛이, 주변을 가득 메운 황금색을 조금씩 침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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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하고, 또 우둔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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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선언과 동시에, 그의 몸에 날개처럼 달려 있던 식물 줄기, 아니 촉수라 불러야 할 무언가들이 그레이스를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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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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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숲에서 흩날리는 나뭇잎이 수리검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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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는 독성과 악의를 품고 호흡기를 향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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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아래의 뿌리가 창처럼 솟아났고, 식물을 말라붙게 하는 해충들이 날개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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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신의 위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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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신앙과 뛰어난 자질을 지닌 제물들을 제 일부로 만들며 쌓아온 힘은 평범한 분신으로선 상대할 수 없을 영역까지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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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저항도 허무하게, 그레이스를 보호하던 오크통이 먼저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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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오크통을 꿰뚫고, 그 파편이 무참히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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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방해꾼을 제거한 수호신은, 그대로 그레이스를 향해 재차 촉수를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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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파열음을 들었을 텐데도, 그레이스는 눈을 감고 양손을 모은 자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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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그리츠를 향한 회색 소녀의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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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그녀의 목을 꿰뚫으려 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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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이야. 실로 우둔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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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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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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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리가 가장 나중에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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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버버버버버버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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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칼날 같은 나뭇잎이, 독성을 품은 꽃가루가, 창을 흉내 낸 뿌리가, 악질적인 독충이, 단 한순간에 분쇄되며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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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눈이 반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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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이라면 경악이라고 불리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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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먼지 속, 금싸라기 같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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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우둔한 이를 좋아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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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의 파편을 마치 가면처럼 뒤집어쓴 남자는, 묘하게 기꺼운 듯한 목소리로 그리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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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의 이지가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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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존재는 방금과는 다른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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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몸짓이, 분위기가, 무엇보다도 그 존재감이, 이전과는 별개의 영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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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이것은, 신이 아무렇게나 짓밟을 수 있는 미개한 생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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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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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자네, 거지와 왕자의 아주 유서 깊고도 왕도적인 클리셰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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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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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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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수호신은 대답 대신 새로운 공격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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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역시 그에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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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 눈을 감은 관객만이 존재하는 무대에서 전설의 영역에 이를 싸움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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