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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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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본성이 착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매끄럽고, 성정이 우수하며, 모난 구석도 드물다.
단.
정해인과 관련된 일은 예외.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환수. 무각 유니콘.]
정적을 가르며 전광판이 울렸고, 전장에 하얀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털, 번뜩이는 금안.
뿔이 사라진 자리에 몸의 색과 대비되어 어둡게 일렁이는 칠흑의 털까지.
“전투준비.”
모든 대원의 시선이 환수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유하나의 시선은 그 환수가 아닌, 한 남자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아무도 모르게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폐 끝까지 찬 공기의 향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라벤더.
그의 체취가 아닌, 그녀의 잔향.
윤채하의 것이, 아직도 그 주변에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상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참아.
그녀는 조용히 속을 달래며, 이성을 붙들기 위해 자신을 붙잡았다.
본디 넷.
그녀들을 포함해 그를 아끼는 이들은 이미 오래전, 서로가 서로를 탐탁지 않아 하더라도 하나의 ‘계약’을 맺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은 넘지 마.
‘너무 모호한뎅….
‘너만 조심하면 돼.
이유는 단순했다.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존재 자체가 역천인 그녀들이기에, 필요 이상의 감정적 교류는 반드시 부작용을 동반한다.
따라서 정해인이 성장하기 전, 그가 그런 것들을 쉬이 감당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넘지 않을 것.
이미 상상이나, 속으로는 선을 넘다 못해 그 끝을 봐버린 여성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가 준비될 때까지는 그녀들은 그 선을 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녀들은 지금, 그가 성장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눈앞의 윤채하가 정해인의 등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금세 두 볼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깍지 낀 손을 뒤에 진다.
앞발꿈치로 바닥을 톡, 톡 건드리며 작은 원을 그렸다.
사랑을 막 시작한, 소녀의 수줍음.
-한 달 본다. 한 달.
그녀들 중 누군가가 이미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막상 이 상황이 현실로 닥쳐오자 숨이 턱 막힌다.
유하나는 결코 선을 넘을 수 없다.
원하더라도 넘을 수 없기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 여자는 다르다.
마치, 치트를 쓰는 게임 플레이어처럼.
규칙 무시, 규율 무시.
그녀들이 세운 것들은 윤채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매력적인 남성에게 호감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 접근하는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유하나는 막을 수 없다.
그게 유하나를 미치게 했다.
-푸르르릉!
눈앞의 마수가 푸릉거리며 콧김을 강하게 내쉰다.
땅을 쾅쾅 구르자, 땅에서 허연 유령들이 튀어나왔다.
“채하야 역장. 최대한 넓게, 얇아도 되니까 최대한 넓게만 펼쳐.”
“알았어.”
정해인이 윤채하에게 지시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따른다.
그 모습에, 유하나는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푸릉!
환수가 고개를 젓는 순간, 땅을 뚫고 나온 수십, 수백의 허연 유령들이 정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금!”
“ㅡㅡ!”
-화르르륵!!
윤채하는 대답 대신, 곧장 손을 뻗어 마나를 전개했다.
쏟아지는 수백의 유령들이 윤채하가 펼친 역장에 닿기 시작한다.
시야는 불꽃과 연기로 가려졌다.
윤채하가 펼친 역장을 놀라울 만큼 견고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짜인 마나의 그물.
팟! 파직!
닿는 족족, 타오른다.
유령의 형체는 윤채하의 역장에 닿는 순간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야는 불길 속에서 희뿌옇게 번진다.
얇지만 오밀조밀하게 짜여져 조금의 틈도 없는 그물의 코는, 유령들이 절대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윤채하는 작게 숨을 골랐다.
입가에 미소가 스며든다.
‘나, 잘하지?
정해인의 칭찬을 기다리며, 들뜬 마음으로 연기 너머를 바라봤다.
서서히 사라지는 연기.
그러나 그 순간.
-툭.
무언가 둔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연기 너머, 등지고 선 누군가의 실루엣.
바람이 불자, 짧은 치맛자락이 나풀거린다.
스르륵,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녀의 발끝 아래엔, 잘려 나간 거대한 목이 있었다.
무각 유니콘은 금빛 눈을 감지도 못한 상태로 명을 다했다.
“…뭐?”
유하나였다.
피 한 방울 없는 검을 가볍게 털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윤채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는, 압도적인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이 자리에서 윤채하만은 느낄 수 있었다.
씨익.
유하나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은은하고 짙은 꽃향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향이 씻겨지는 듯한 감각을 느낀 윤채하는 고개를 돌려 눈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해인이 유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은 약간 벌어져 있었고, 시선은 완전히 그녀에게 빼앗겼다.
“…와.”
무심결에 새어 나온, 짧은 감탄.
윤채하는 말없이 손끝을 움켜쥐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그녀가 듣고 싶었던 반응.
그 눈빛과 목소리는.
지금, 유하나가 가져갔다.
***
“그러니까, 이런 분이 처음에는 리더를 안 하시려 했다?”
윤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고민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그러지 마.”
유하나는 머쓱한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보통 과제 끝나면 서로 탓하기 바쁜데, 우리 팀은 분위기가 유독 좋았다.
그야.
[1위 팀 유하나]
단체전 최종 결과.
우리 팀 이름이 전광판 맨 위에 떠 있었다.
“나이스!!”
“후….”
함성. 그리고 안도의 한숨.
1등 팀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개인전에 비하면 부상은 약간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했다.
애초에 단체전은 실적보단 경험이 중요하니까.
서로의 합과 빈틈, 위기 때의 대응을 체험하는 것.
그게 단체전의 취지다.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유하나를 바라봤다.
‘성장이… 엄청난데.
이번 웨이브의 핵심은 유령, 하나같이 실체가 희미하다.
환수는 유령을 무한으로 소환해 시야를 가리고, 혼란을 유도한다.
대부분 역장이나 방어를 통해 버티는 데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유하나는 연기가 사라지고, 유령이 다시 만들어질 그 사이에 직접 목을 치러 나갔다.
처음에는 내가 갈 생각이었다.
상황을 보고, 조금 피로해진다 싶으면 바로 할 준비 중이었는데.
그보다 먼저인 게 유하나였다.
무모한 게 아니라, 확신을 갖고 간 타이밍.
나는 늘 두 번째 편린을 누구에게 먼저 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셋 중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편린을 건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라면, 큰 변수가 없는 이상 유하나가 첫 번째가 될 것 같았다.
역시, 개입 없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은 준 건 맞는 판단이었다.
나는 내 방식에 대한 확신을 다시 얻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야… 저기 저분 내가 아는 그 분 맞냐?”
“미친.”
뒤편에서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린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나도 모르게 몸을 반듯이 폈다.
유 가(家)의 가주, 유무진.
청풍대의 주인이자, 유하나의 아버지.
그가 직접 가온의 휴게실까지 행차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유하나가 조용히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그녀는 나와 유무진 사이를 막아서듯 서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빠. 여긴, 학교예요.”
그에 유무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 정말 많이 강해졌더구나. 깜짝 놀랐다.”
“집에서 하면 되잖아요…. 그런 얘기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 청운검제가, 딸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다니.
주변에 있던 학생들, 심지어 교수들까지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
어째서인지 유무진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유하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그녀를 옆으로 비켜 세웠다.
잠시 놀란 듯 고개를 든 유하나.
하지만 곧, 이해한 듯 작게 끄덕인다.
나는 유하나를 지나, 유무진 앞에 섰다.
“정해인입니다. ”
주변이 조용해졌다.
“말씀 있으시면, 제가 듣겠습니다.”
유무진의 눈이 눈을 살짝 감았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그래.”
그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렸다.
“악수나 한 번 할까.”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손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손등에까지 굳은살이 빽빽하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묻어나는 손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 손을 맞잡았다.
꽈악.
잠깐의 악력. 힘을 준다.
상당한 압박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찔했을 것이다.
손끝이 떨리거나, 얼굴에 미세한 일그러짐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동도 없이, 그대로 그 악수를 받아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나, 그것이야말로 유무진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는 말보다는 몸으로 확인하는 것을 선호하는 자였다.
그러나 내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감에게 심심할 때마다 당하던 고문과 비슷했기 때문.
그 정적 끝에, 유무진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정해인.”
턱턱.
그가 내 어깨를 툭, 툭.
두 번 묵직하게 두드린다.
그러곤 말없이 돌아선다.
곧바로, 유하나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는다.
유하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유무진은 잠시 애틋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름 기억하마.”
나는 짧게 숨을 고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영광입니다.”
이건, 그의 인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