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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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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벽.
라벤더 향이 은은히 번진다.
방 안은 고요했고, 창밖의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시각.
윤채하는 침대에 등을 댄 채,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이불,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그녀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진홍색 눈동자가 그 손끝을 천천히 따라갔다.
“…….”
어제 저녁, 유하나의 검이 자신을 가른 순간이 떠올랐다.
그 꽃잎처럼 흩날리던 검격.
정확하게 마법진의 축을 찔러 들어온 날카로운 일섬.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훈련을 계속했지만.
속은.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다.
용암이 끓는 듯한 감각.
그리고, 그 끓어오르는 중심에는 이상할 만큼, 든든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
심장의 깊은 곳.
정해인이 넘겨준 양기가, 은은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뜨겁고 묵직한 감각.
아직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다만 느낄 뿐이었지만.
그 존재감만은 분명했다.
오히려 그 감각이 그녀를 더 자극한다.
‘졌어.
단순히 진 게 아니다.
무참히, 말도 안 되는 격차로.
그녀는 손을 이마 위에 올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새벽 공기조차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그녀 안에서 부글대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천천히 말린다.
“…다음에는 안 져.”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말은, 낮고 또렷하다.
방과 밤은 여전히 고요하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흩날리는 꽃잎들로 가득했다.
그 밤.
그녀는 수없이 졌고….
또 수없이, 다시 일어섰다.
***
-띠링.
방에서 나갈 채비를 하던 찰나, 워치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화면을 켜자 협회에서 도착한 문자 하나.
[정해인 영웅님. 포상안이 준비되었습니다. 편하신 일정에 맞춰 협회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상안이 준비됐으니, 시간이 날 때 언제든 방문해 달라는 내용.
“…뭘 준비했으려나.”
문자를 읽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를 포함해 다른 애들이 사용할 수만 있다면 받을 생각이긴 하다.
사실 대상이 나였어서 그렇지, 불가람의 공방의 출입을 허락한 것도 협회에서는 큰 결정이었을 테니까.
어차피 한 번쯤은 들러야 했다.
악신의 보옥 관련해서 윤채하와 함께 협회를 방문할 필요도 있었고.
이번 주말에… 방문하면 딱 되지 싶은데.
토요일.
딱히 일정도 없고,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워치의 메시지 입력창을 열어 짧게 입력했다.
[토요일 오전쯤 방문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끈다.
“아 맞다.”
문득, 넣어둔 영광의 주식이 떠올랐다.
요즘 아주 상승가도를 달리는 것 같던데.
나는 오랜만에 잔고창을 열어 확인해 봤다.
“…와.”
입에서 짧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아니 상상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당장 영웅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은 정도인 그런 수준.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슬슬 일부는 정리해볼 때다. 일부만 꺼내도 꽤 쓸만한 액수였다.
나는 천천히 화면을 닫았다.
나오는 자금으로 옥션을 한번 슬쩍 뒤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케이.”
할 일은 많다.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정리해보면 될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다.
등교할 시간이었다.
***
“아 뭔… 진짜.”
가온 아카데미는 체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영웅의 체력은 국력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불시에 체력장을 실시한다는 전통이 있다.
학년별로 전부 다.
이건 원작에서 체력 훈련을 게을리치 않게 하려 만든 장치이기도 했다.
분명 입원해 있던 동안 이번 달 체력장은 이미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오늘이 딱, 그날이었다.
땀은 줄줄 흐르고, 호흡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체력장을 하는 날은 수업이 없다.
수업 뿐만이 아니다, 그냥 모든 일정을 가온에서 취소시킨다.
즉 오늘 예정된 멘토 멘티 일정은 사라졌다.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금일 체력장의 순위가 떠오른다.
[정해인 3등]
1학년 전체 3등이다.
체력을 중요시하는 것은 가온뿐만 아니다.
영감도 그 방면에서는 철저했기에, 나 역시 체력 훈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침마다 유하나와 함께 뛰고 있었으니, 감각을 완전히 잃을 리도 없었고.
속속들이 학생들이 트랙을 빠져나와 스탠드로 올라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거나, 가온을 원망하며 투덜댄다.
강아린과 유하나는 각각 1등과 2등.
어째서인지 둘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마 먼저 샤워하러 가지 않았을까. 땀이 많이 났을 테니까.
완주 후 그대로 기숙사로 향한 듯했다.
그리고 방금 막 도착한 시온이, 헉헉거리며 스탠드에 올라왔다.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응… 근데 가까이 오지 마, 나 땀 때문에….”
시온은 인상을 쓰고는 살짝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대로 기숙사 방향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나저나 한 얼굴이 안 보이는데….
“천여울 어디 갔어.”
뻔하다.
아무래도 눈치 빠르게 도망간 듯하다.
괘씸해서 안 되겠다. 만나면 딱밤으로 처벌해야….
그때, 다시 한번 트랙 저편에서, 누군가 느릿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비틀거리는 걸음.
축 처진 어깨.
땀에 흠뻑 젖은 체육복.
윤채하였다.
머리카락은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체육복은 땀에 완전히 젖어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걸었다.
나는 순간 놀랐다.
칼로스 측 인원 중 주서준 외에는 전원 리타이어.
그 주서준조차도 10위 밖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당연한 이치였다.
마법사는 체력이 약했고, 칼로스는 마법사 특화 학교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기권하지 않았다.
느리지만 당당히 완주하고, 스탠드를 걸어 올라오고 있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눈빛이 보인다.
눈이 마주쳤다.
숨은 여전히 거칠게 몰아쉬고 입술은 바짝 말랐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맹렬한 기세가 살아 있다.
이글거리는 눈빛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어제의 패배가 그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성격상 잠도 제대로 못 잤을게 뻔했다.
딱 좋은 타이밍이다.
주말에 협회에 데려갈 좋은 구실이 생겼다.
“진짜 고생했어.”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윤채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그대로 스탠드에 몸을 던지듯 기댔다.
몸에서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이마 아래로 흐르던 땀방울들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옆에 앉았다.
“좀 쉬어.”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될 테니까.
내가 뭘 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더 미친 듯이 파고들 것이다.
체력장으로 인해 수업과 교류전 팀 미팅은 전부 취소됐다.
사실상 오늘 하루는 휴식. 더 이상 특별한 일정은 없다.
그때, 말없이 땀을 식히던 윤채하가 갑자기 눈을 살짝 떴다.
“오늘… 저녁에… 멘토링 좀… 해줄 수….”
그리고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
“허.”
아무래도, 윤채하의 심지는 제대로 타오른 듯했다.
***
늦은 저녁. 훈련장은 조용했다.
가온의 기습 체력장으로 학생들이 전부 휴식에 들어갔기 때문.
천여울은 그 빈 훈련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 끝, 개인 룸에서는 연속적인 폭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감각이 기억을 건드린다.
그녀는 머릿속에 있던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똑같은 훈련장, 같은 스승, 그 대상만 다를 뿐이었다.
“… 성시우.”
정해인이 남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래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어.”
단호한 목소리가 훈련장을 가로질렀다.
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절박했다.
사도로 인해, 뱅퀴셔를 잃었고, 그들의 강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따라서 희망이라 여긴 성시우에게, 더욱 매몰차게 훈련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경고에 성시우는 코웃음을 쳤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그는 고개를 들고 정해인을 바라봤다.
“나는, 충분히 강하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요한과의 대련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성시우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믿고 있었고, 그 믿음에 취해 있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정해인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조급함을, 성시우는 알 리 없었다.
“뭐 이것저것 알려주는 건 고맙지만… 선은 넘지 말도록.”
그는 검을 들어 정해인을 가리켰다.
“솔직히 말해, 너도 곧 이길 것 같으니까.”
정해인은 죽은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늘 그랬듯, 자신의 과오부터 되짚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조급했나.
‘강요였나.
‘내 방식이 틀렸나.
그리고 언젠가처럼, 또 스스로를 탓했겠지.
“…배은망덕한 새끼.”
천여울의 이가 갈린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늘 자신을 희생했다.
따라서. 지금, 훈련장 너머에서 반복되는 이 장면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그놈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가차 없이 쳐낼 것이다.
그 놈처럼.
해인이는 너무 착하고, 또 정이 많았으니까.
이건 그녀, 천여울의 몫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훈련장의 벽 너머를 투시했다.
사도와의 결전 이후, 다시금 습득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보인다.
산산조각이 난 벽면들, 훈련의 흔적이 깊게 팬 바닥, 훈련장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
윤채하였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고 있었다.
정해인은 워치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고생 많았어. 체력장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이만 쉬자.
단호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어조.
늘 그렇듯, 상대를 존중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윤채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너만 괜찮으면… 나는 더 하고 싶어….
천여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윤채하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진홍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정해인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턱을 매만졌다.
‘아….
천여울은 알고 있었다.
그 행동은, 그가 만족스러울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게다가.
윤채하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뻐한다.
그가.
정해인이 기뻐하고 있었다.
“…흐응.”
천여울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던 눈이 잦아들었다.
더 볼 필요는 없어보였다.
“뭐….”
시온의 말이 떠오른다.
‘걔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처음엔 의심했고,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그 장면은, 분명 달랐다.
단편적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정할게.
윤채하는 성시우와는 달랐다.
천여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훈련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