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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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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향이 은은히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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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고요했고, 창밖의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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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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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침대에 등을 댄 채,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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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 이불,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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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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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색 눈동자가 그 손끝을 천천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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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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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유하나의 검이 자신을 가른 순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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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잎처럼 흩날리던 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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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마법진의 축을 찔러 들어온 날카로운 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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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훈련을 계속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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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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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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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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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끓는 듯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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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끓어오르는 중심에는 이상할 만큼, 든든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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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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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넘겨준 양기가, 은은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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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묵직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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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다만 느낄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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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감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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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 감각이 그녀를 더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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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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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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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히, 말도 안 되는 격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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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손을 이마 위에 올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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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조차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그녀 안에서 부글대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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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이 천천히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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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안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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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새어 나온 말은, 낮고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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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밤은 여전히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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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흩날리는 꽃잎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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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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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없이 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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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없이,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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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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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나갈 채비를 하던 찰나, 워치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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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켜자 협회에서 도착한 문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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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영웅님. 포상안이 준비되었습니다. 편하신 일정에 맞춰 협회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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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안이 준비됐으니, 시간이 날 때 언제든 방문해 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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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준비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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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읽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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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해 다른 애들이 사용할 수만 있다면 받을 생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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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상이 나였어서 그렇지, 불가람의 공방의 출입을 허락한 것도 협회에서는 큰 결정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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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 번쯤은 들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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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보옥 관련해서 윤채하와 함께 협회를 방문할 필요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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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방문하면 딱 되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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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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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일정도 없고,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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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치의 메시지 입력창을 열어 짧게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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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쯤 방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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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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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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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넣어둔 영광의 주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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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주 상승가도를 달리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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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만에 잔고창을 열어 확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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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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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짧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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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아니 상상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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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영웅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은 정도인 그런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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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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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일부는 정리해볼 때다. 일부만 꺼내도 꽤 쓸만한 액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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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화면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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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자금으로 옥션을 한번 슬쩍 뒤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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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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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다.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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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정리해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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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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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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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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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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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아카데미는 체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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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체력은 국력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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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불시에 체력장을 실시한다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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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별로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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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원작에서 체력 훈련을 게을리치 않게 하려 만든 장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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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입원해 있던 동안 이번 달 체력장은 이미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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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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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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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딱,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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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은 줄줄 흐르고, 호흡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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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장을 하는 날은 수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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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뿐만이 아니다, 그냥 모든 일정을 가온에서 취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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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오늘 예정된 멘토 멘티 일정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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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 실시간으로 금일 체력장의 순위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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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3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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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전체 3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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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을 중요시하는 것은 가온뿐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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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도 그 방면에서는 철저했기에, 나 역시 체력 훈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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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침마다 유하나와 함께 뛰고 있었으니, 감각을 완전히 잃을 리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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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학생들이 트랙을 빠져나와 스탠드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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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거나, 가온을 원망하며 투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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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과 유하나는 각각 1등과 2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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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둘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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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먼저 샤워하러 가지 않았을까. 땀이 많이 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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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후 그대로 기숙사로 향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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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금 막 도착한 시온이, 헉헉거리며 스탠드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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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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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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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근데 가까이 오지 마, 나 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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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인상을 쓰고는 살짝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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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로 기숙사 방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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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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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한 얼굴이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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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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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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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눈치 빠르게 도망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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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해서 안 되겠다. 만나면 딱밤으로 처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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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시 한번 트랙 저편에서, 누군가 느릿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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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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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처진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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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흠뻑 젖은 체육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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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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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체육복은 땀에 완전히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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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녀는 끝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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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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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측 인원 중 주서준 외에는 전원 리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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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서준조차도 10위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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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쩔 수 없다. 당연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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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체력이 약했고, 칼로스는 마법사 특화 학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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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기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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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당당히 완주하고, 스탠드를 걸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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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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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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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여전히 거칠게 몰아쉬고 입술은 바짝 말랐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맹렬한 기세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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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눈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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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어제의 패배가 그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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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상 잠도 제대로 못 잤을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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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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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협회에 데려갈 좋은 구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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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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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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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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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그대로 스탠드에 몸을 던지듯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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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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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이마 아래로 흐르던 땀방울들이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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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식 웃으며 그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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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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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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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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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더 미친 듯이 파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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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장으로 인해 수업과 교류전 팀 미팅은 전부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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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오늘 하루는 휴식. 더 이상 특별한 일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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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없이 땀을 식히던 윤채하가 갑자기 눈을 살짝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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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멘토링 좀… 해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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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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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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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윤채하의 심지는 제대로 타오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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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훈련장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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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기습 체력장으로 학생들이 전부 휴식에 들어갔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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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그 빈 훈련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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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 개인 룸에서는 연속적인 폭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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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감각이 기억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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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머릿속에 있던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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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훈련장, 같은 스승, 그 대상만 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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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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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남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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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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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목소리가 훈련장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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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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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로 인해, 뱅퀴셔를 잃었고, 그들의 강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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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희망이라 여긴 성시우에게, 더욱 매몰차게 훈련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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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경고에 성시우는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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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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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개를 들고 정해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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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분히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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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얼마 전 요한과의 대련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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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믿고 있었고, 그 믿음에 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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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타들어 가는 건 정해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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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조급함을, 성시우는 알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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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것저것 알려주는 건 고맙지만… 선은 넘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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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검을 들어 정해인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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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너도 곧 이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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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죽은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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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 자신의 과오부터 되짚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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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조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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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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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이 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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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처럼, 또 스스로를 탓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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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망덕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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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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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쥔 주먹에서 피가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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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늘 자신을 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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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 훈련장 너머에서 반복되는 이 장면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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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조금이라도 그놈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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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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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이 쳐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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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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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는 너무 착하고, 또 정이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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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녀, 천여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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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훈련장의 벽 너머를 투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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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와의 결전 이후, 다시금 습득한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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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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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이 난 벽면들, 훈련의 흔적이 깊게 팬 바닥, 훈련장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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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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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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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워치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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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생 많았어. 체력장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이만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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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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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상대를 존중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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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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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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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괜찮으면… 나는 더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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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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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진홍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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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급히 정해인의 반응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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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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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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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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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동은, 그가 만족스러울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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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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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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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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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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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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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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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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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으로 일렁이던 눈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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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볼 필요는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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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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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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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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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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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의심했고,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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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방금 그 장면은, 분명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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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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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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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성시우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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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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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훈련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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