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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정도 남짓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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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기간 집중해야 할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일신의 무력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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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하나 시련에서 본 것처럼 사도가 나타난다면, 직접적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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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시점의 사도들은 악신의 부활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상황.
 
그들의 기운은 균열을 통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고, 따라서 본래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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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그들이 막강한 존재임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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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세계선에서의 나는, 약화된 사도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 채 죽어 나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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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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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편린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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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인 편린 수급은 어렵다.
 
히로인들, 그러니까 유하나, 천여울, 강아린의 성장 정도로는 편린을 얻더라도 사도를 상대하기는 버거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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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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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나는 죽으면 부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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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끝이다.
 
단 한 순간의 방심이 죽음을 부를 것이기에,
 
나 또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단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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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윤채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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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 끝나고도, 내가 살아 있다면. 그 이후에는 교류전이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윤채하 또한 성장시켜야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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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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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와 멘티 활동 중.
 
교관의 이론 수업이 끝나고, 윤채하가 잠시 머뭇거리다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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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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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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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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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하는 그녀.
 
이상하게도, 그녀는 내 앞에서만 서면 이런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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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당차고,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었는데.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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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잡을 때 펼친 기술… 보여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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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그녀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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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녀가 가온으로 넘어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카테나치오 인 듯했다.
 
윤채하는 그 기술을 보고 분석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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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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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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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잘된 일이다.
 
어차피, 카테나치오의 변형 기술인 팔랑크스 또한 연습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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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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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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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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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커졌다.
 
기대와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이 얼굴에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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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남에게 기술을 시연해달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결국 그 기술들은 영웅들 각자의 자산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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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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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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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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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상, 따라할 때까지 집 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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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번쩍 빛났다.
 
굳어야 할 얼굴이, 오히려 생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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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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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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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그녀는 오히려 기대에 찬 듯 손을 꽉 쥐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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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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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깊은 곳에 있는, 개인 훈련장에 들어섰다.
 
윤채하는 내 뒤를 바짝 따라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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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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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을 열며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윤채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맞은편에 섰다.
 
다리에 온 힘을 모으고, 공중으로 솟았다.
 
분신을 직조하고, 한점을 향해 찌른다.
 
그리고,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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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과 창의 궤적이 한순간에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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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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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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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마저 찢어버리는 충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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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격이 허공을 쓸자 벽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먼지들이 소용돌이쳤다.
 
자가 복구 기능이 있는 훈련장이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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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중에서 내려왔다.
 
그제야, 맞은편에서 윤채하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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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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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는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내 기술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마,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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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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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마지막에… 변형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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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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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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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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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윤채하는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 창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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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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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이미, 그녀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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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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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이자, 이른 새벽.
 
천여울은 개인 연습장을 하나하나 들춰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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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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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찾는 것은 당연하게도 정해인.
 
줄 것이 있어 서프라이즈 느낌으로 기숙사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몇시간을 내리 기다린 끝에 내린 결론은 단 하나.
 
그를 찾아 나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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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연습벌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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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A 훈련장부터 차례대로 뒤졌다. 어느덧 C 훈련장까지 확인했을 때, 불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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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여기까지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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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D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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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곳의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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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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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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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지 않는다.
 
천여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시간에 훈련장이 잠겨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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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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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녀는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문에다 귀를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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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것은, 남녀가 섞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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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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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목소리는 절망적이게도 정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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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천여울은 훈련장의 문을 강제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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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
 
그녀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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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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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그녀를 기분 좋게 하는 향, 정해인의 체향이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당최 처음 맡아보는 년의 거슬리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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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얼굴이 굳었다.
 
야심한 밤, 밀폐된 훈련장, 남녀 단둘.
 
온도는 높고, 공기는 묘하게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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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나마 불쾌한 상상이 스쳐 갔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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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가 얼빠진 표정을 짓게 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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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채로 창을 휘두르고 있는 정해인과 미친년마냥 허공에 손을 휘휘 젓고 있는 노란 머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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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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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정해인이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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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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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재빠르게 표정을 정돈했다. 단아하고 우아하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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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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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손을 흔들며 화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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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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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자락, 인간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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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의 저편, 태초부터 존재했으나 누구도 알지 못한 금단의 공간.
 
그 중심에는 금이 가고 무너질 듯한 신전이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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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신전의 심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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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圓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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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단 열 개의 의석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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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도(十使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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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신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들이며, 선택받은 심판자들이다.
 
오직 그들만이 이 성역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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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원탁의 가장 낮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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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의 실로 사람의 형상을 꿰매어진 기괴한 침상 위에, 한 여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마인들은, 곧 쓰러질 듯한 자세로 그녀의 무게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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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 얘기 하겠다고, 불러놓고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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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지루하다는 듯. 그녀의 손끝이 움직였다.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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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침대처럼 그녀의 다리를 받치고 있던 마인 중 하나가 부들부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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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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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그 기괴한 침상이 무너졌다.
 
마인의 몸이 무너지며 그녀의 다리가 훅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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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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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은 즉시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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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이 천천히 마인의 머리로 향했다.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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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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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짓 한번에, 마인의 머리통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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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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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무심히 부르자,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마인이 튀어나와 그녀의 다리를 떠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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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튀기잖아,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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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새하얗게 빛나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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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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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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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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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몇 마리 죽이는 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불러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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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원탁의 한쪽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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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래도, 그분께서 직접 우리를 부르신 이상, 분명한 뜻이 있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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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코, 입이 존재하지 않는 백색의 사도.
 
원래 그의 입가가 존재해야 했을 곳에서 희미한 파장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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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블라그.”
 
​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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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앉아 있던 붉은 눈의 여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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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셋은 한 달 전, 위대한 그분으로부터 신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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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제거하라.
 
그분이 지시한 것은, 어느 인간 단체를 몰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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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셋에게 있어 신탁은 절대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속으로 셋이나 가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했다.
 
벌레를 잡는 데 쓰기에는, 그들은 너무 큰 칼이었다.
 
사도 하나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손쉽게 지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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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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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중앙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공기가 일그러질 듯한 중압감을 뒤로한 채 원탁으로 들어섰다.
 
그는 천천히 걸어 들어오며,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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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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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도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됐다.
 
입을 열어 신탁을 고하는 그는, 십사도의 제 삼석(三席), 벨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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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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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의 여성이 흥미롭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벨리알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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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 말씀하시길— 흐름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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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원탁을 감싸는 기류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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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집행 대상 또한 바뀌었다. 벌레들이 아닌, 인간들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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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가 곧 공간 전체에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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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결국 벌레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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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끝에서 낮은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벨리알은 그 모든 반응을 무시하고,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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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반드시 멸하라."
 
"… 여기까지가, 위대하신 그분의 신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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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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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부터는, 십사도의 제 삼석, 나 벨리알의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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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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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그분의 계획이—"
 
"우리 같이 미천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이유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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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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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그분의 계획이 망가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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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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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알의 입술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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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하신 그분께서는 이마저도 미리 감지하시고,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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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도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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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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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반대편에 앉은 여성이, 두 손을 깍지 끼며 낮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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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위대하신 그분이, 세계의 억제력을 감내하면서까지, 제 힘을 온전히 펼칠 수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셨으니."
 
사도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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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능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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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알 피눈물을 닦아내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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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벨리알은 통탄을 금할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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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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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석(八席), 구석(九席), 십석(十席)."
 
"원래 집행에 계획된 사도는 셋이었으나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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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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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한 마디가, 모든 사도의 표정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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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탁의 집행 사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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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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