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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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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진 동아리 방.
책상 위에는 바둑판과 동아리장이 나가며 남긴 방 열쇠가 놓여 있었다.
창문을 통해 달빛이 희미하게 스며든다. 어둠 속에서 책상과 바둑판만이 은은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벽시계가 조용히 시각을 알렸다. 시간은 이미 밤을 향해 있었다.
윤채하는 턱을 괴고, 반쯤 감긴 눈으로 바둑판을 바라봤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몇 시간을 꼬박 들여 복기했다.
처음에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진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집중력은 필수적인 요소.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둑을 많이 두었다.
그리고, 마법에 조예가 깊은 그녀는 당연히 바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었다.
그런데, 졌다.
10판 전부.
“흐응….”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처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녀에게 있어 패배란, 익숙한 감정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두면 둘수록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수를 따라가는 만큼, 그는 더욱 빠르게 달아나며 성장했다.
그 성장 곡선의 각도는, 마치 바둑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가팔랐다.
그리고 10판째.
어느 순간, 그의 수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됐다.
더 이상 그는 그녀가 재단할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니게 되었다.
“… 이게 가능해?”
속삭이듯 새어 나온 말.
문득 깨달았다.
재능.
늘 마주 당하는 존재였던 윤채하.
그녀는 처음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마주했다.
***
주말이 되었다.
나는 뱅퀴셔 본부로 향했다.
오늘은 결판을 봐야 하는 날이다.
우선, 영감에게 곧 있을 작전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아야 했다.
팔라딘의 협조도 구했겠다, 몰래 숨어드는 것보다는 정식으로 뱅퀴셔에 합류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리고, 내 등에서 잠자고 있는 카타스트로피.
그 안에 깃든, 무식하게 강한 용과도 담판을 지어야 했다.
익숙한 복도를 지나 영감의 서재 문을 열었다.
책장 사이로 들어서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창가 쪽에서는 영감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문턱을 넘어가며,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도 끼워주십쇼.”
커피를 따르던 영감이 손을 멈췄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치 미친놈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뭘 껴줘?”
“있잖습니까, 2주 뒤에 하는 임무.”
어느새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영감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 없이 각설탕 두 개를 연거푸 커피에 던져 넣었다.
설탕이 녹아들어 가는 커피잔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입안에서 씁쓸한 커피 맛을 음미하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가 그걸 어떻게….”
“어쩌다 보니 봤습니다.”
협회가 맡긴 의뢰. 함경도의 마인 군락 제거.
명목상, 그렇게 위험한 임무는 아니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협회가 요청한 인원이 많아진 것뿐이었으니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나도 내심 속으로 그러길 바라고는 있다.
영감은 깊은 침묵 속에서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치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영감의 침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무엇을 고민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마인에게 살해당한 그의 딸과 그리고, 그의 가장 아끼던 대원.
영감이 손끝으로 커피잔을 가만히 돌렸다. 나는 그 생각의 틈을 비집고, 차분히 말을 꺼냈다.
"걱정하시는 건 압니다."
영감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저도 슬슬 실전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비 뱅퀴셔’로서….“
그 순간, 영감의 손끝이 멈칫했다.
그는 곧장 표정을 관리했지만, 순간적으로 반응이 새어 나오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날을 위해 참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뱅퀴셔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영감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그게 아니다, 이놈아."
"네?"
"시온이 먼저 왔다 갔다."
“누구요?”
시온이?
“네 녀석이 말한 그 임무, 시온이 먼저 발견했다. 그리고 참여하겠다고 하더라.”
나는 무심코 눈썹을 찌푸렸다.
“그걸 허락하셨어요?”
내 질문에 영감은 ‘너도 허락해달라며? 라고 묻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할 수가 있나. 몇 날 며칠을 괴롭히는데, 내가 버틸 리 없지.”
나는 영감을 괴롭히는 시온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 듯해, 입꼬리를 올렸다.
시온의 성격상, 마음먹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너를 막을 명분이 없다, 명분이.”
영감은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곤, 다시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알아서 해라.”
“대신, 어디까지나 지원이다. 전선에는 나서지 말도록.”
“감사합니다!”
허락이었다.
지원대기, 그 정도면 충분했다.
***
가온의 훈련장도 충분히 뛰어나다.
최첨단 기구와 엄선된 훈련 프로그램, 수준급 교관들이 상주하며, 영웅을 양성하는 시설로는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뱅퀴셔의 훈련장은 세계 최고였다.
훈련 기구, 전투 시뮬레이션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직접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물론 귀찮아서 가온에서 훈련하는 거로 퉁칠 때도 있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찾아왔다.
-팡!
훈련장 내부에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던 모양.
그곳에는 시온이 있었다.
활을 쥔 채, 고요하게 표적을 바라보는 그녀.
그녀가 활시위를 강하게 당기는 순간ㅡ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공기를 잡아먹을 듯 타오르는 불꽃이 일렁였다. 평범한 마력이 아니었다.
‘오?
일체지각으로 바라본 그녀의 불꽃은, 미약하지만 항마(抗魔)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시온의 성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우웅.
“어?”
그때, 등에 메단 카타스트로피가 진동했다.
마치 저 기운에 공명하는 듯.
그러나.
“흐….”
그녀는 이내 활을 내려놓으며 숨을 푹 내쉬었다.
활을 정리하고, 장비를 정리했다.
훈련이 끝난 듯했다.
“게으름쟁이가 웬일이래?”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을 걸었다.
시온은 뛰어나고 재능이 넘쳤지만, 무를 갈고닦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방금 본 광경은 꽤 희귀하다 볼 수 있었다.
시온은 흠칫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훈련을 마친 시온은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숨이 가빠져 가슴이 가볍게 오르내렸고, 땀에 젖은 옷이 살갗에 밀착되어 움직일 때마다 살짝씩 달라붙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쇄골을 따라 흘러내려 사라졌다.
머리카락 끝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팔을 들어 이마를 닦을 때마다 미세하게 반짝였다.
“그냥… 오랜만에….”
시온은 적당히 얼버무리며 활을 내려놓았다.
훈련을 마친 후의 시온은 평소보다 훨씬 붉어져 있었다.
몸을 많이 움직인 탓인지 얼굴이며 목덜미까지 열이 오른 상태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네. 시간 있어?”
“있지, 왜?”
“옆에 좀 있어 줄래?”
시온은 붉어진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나는 등에 메던 창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카타스트로피가 낮은 진동을 내며 미세하게 떨렸다.
아까 시온의 검은 불꽃을 본 이후부터 계속 반응하고 있었다.
“얘가 살짝 위험한 녀석이라 혹시 또 쓰러지거나 하면….”
“아… 알았어.”
말을 흐리자, 시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이내 이해했다는 듯이 자리로 와 앉았다.
‘후….
나는 속으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아주 두근두근 뛴다.
가능하면 미루고 싶었지만, 더 이상 미룰 곳이 없었다.
카타스트로피의 힘을 온전히, 아니 반이라도, 아니 반의반이라도 끌어내기 위해서는 알데바란의 협조가 필요했으니까.
이제, 담판을 지을 차례다.
나는 천천히, 창에 손을 얹었다.
-우우우우웅…!
창의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손끝에서부터 차갑고 거친 감촉이 올라왔다.
그 순간.
- 크르르르르…
짧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들여다보는, 짐승의 눈빛이 느껴졌다.
창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
정해인이 방을 나서자 영감, 하태성은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잔 속의 검은 액체가 일렁였다. 커피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져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오래된, 낡은 액자 하나.
유리에는 희미한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하태성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어, 조심스럽게 액자를 닦았다.
천천히. 또 천천히.
사진 속에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여성이 서 있었다.
입가에는 따스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옆에 선 젊은 남성이 장난스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여성은 시온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남자는——강인한 인상을 가진 대원이었다.
둘은, 한때 그가 가장 아꼈던 존재들이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응시하는 동안,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날, 그들이, 자신이 가장 아꼈던 존재들이, 마인에게 살해당했던 날.
그러나 사진 속 그녀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온은 점점 그녀를 닮아갔다.
그리고, 정해인은 묘하게 그때의 ‘그 녀석’과 비슷한 기운을 풍겼다.
그 사실이, 그를 기쁘게 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태성은 묵묵히 사진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버릇없는 녀석들.”
손에 들린 커피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남아 있는 감정들을 씹어 삼키듯이, 혀끝에는 묵직한 쓴맛이 스쳤다.
그는 한때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힘이 부족했고,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내게 다시 주어진다면.
하태성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뜰 때, 그의 시선은 더 깊고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