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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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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시위가 한계치 이상으로 당겨지는 소리가, 양궁장의 사로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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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하게 당겨진 장력은, 힘이 버거울 만큼 감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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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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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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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을 단단히 고정한 채, 화살촉이 살짝 떨릴 정도로 극한까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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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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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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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풀리는 순간, 화살은 폭발적인 속도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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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허공을 뚫고,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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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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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중심을 꿰뚫은 화살이, 과녁을 단번에 부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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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감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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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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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머릿속은, 최근 들어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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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감정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남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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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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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그를 위한답시고 바꾼 흐름이 결국, 그에게 다시 그 고통을 겪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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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데도 이 미안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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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순간에 물이 차오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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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다른 누군가의 기억으로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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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남의 기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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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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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시온이 남겼던 확실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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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의 끝을 알리기라도 하듯, 반도는 폭우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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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물 소리는, 죽은 영웅들을 위한 비가(悲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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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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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은 천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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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울음처럼 조용히,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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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상주로서 뱅퀴셔 영웅들의 장례식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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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부모를 어린 나이에 잃었지만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자상한 할아버지와 또 그런 할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삼촌, 언니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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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한 소년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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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연약했고, 가족이 없었다. 나약한 몸으로 할아버지에게 싸우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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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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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마음 한편에서 싹트던 감정을 인지했다. 그것을 그녀는 우정이라 여겼지만, 그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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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모두 부질없는 감정이었다는 것 또한, 이날,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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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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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의 직원이, 비보를 들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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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서류를 정리하며, 직원은 통탄스러운 표정으로 사망자를 호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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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은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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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평범해 보였던 임무로 인해 그녀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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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그녀를 지탱하던 존재들이 대부분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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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소년, 정해인. 그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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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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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도,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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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사망 및, 정해인 학생은 현재 의식 불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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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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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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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되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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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거길 네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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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은 아니었으나, 많은 이들이 사망을 점치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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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가,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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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웅이 유감을 표하며 헌화하고,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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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상주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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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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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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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환자복. 붕대가 감긴 팔과, 터진 상처에서 스며 나온 피가 옷 위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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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서 있기도 힘든 듯, 한쪽 다리를 살짝 절며 걸어왔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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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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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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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벌떡 일어나 주저 없이 그에게 뛰어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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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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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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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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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미안해…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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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망가진 인형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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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렇게 미안하다는 걸까. 그녀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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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 또한 그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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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있어 이 세상에 남을 유일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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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제,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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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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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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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열 개가 동시에 쏘아진다. 엄밀히 따지면 동시에 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빠른 속도는 동시라고 여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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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速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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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발의 화살은 전부 각기 다른 표적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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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에서 연습하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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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시선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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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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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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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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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눈을 감고,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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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을 넣은 다음 날. 동아리에서는 즉시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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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추가적으로 수업이 끝난 후, 동아리 활동을 할 예정이니 모이라는 소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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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멘토 멘티 활동을 하는 날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윤채하에게 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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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가입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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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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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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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여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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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치를 열어, 포스터를 띄운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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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의문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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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속 포스터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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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동아리. 렉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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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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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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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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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신청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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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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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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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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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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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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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니라는 듯 덧붙이자, 윤채하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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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동아리방은 보드게임 동아리답게 여러 가지 게임들이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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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쪽 테이블에는 단 한 명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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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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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카라, 2학년 선배였다.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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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리를 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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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의 가입 명단을 확인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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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보고 설마 했는데, 유명인들이 가입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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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에는 흥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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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서연이라고 해. 동아리장을 맡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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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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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동아리방 내부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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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이 쌓여 있는 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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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놓인 체스 세트. 구석에 자리 잡은 바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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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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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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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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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비싼 거 하러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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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리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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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방의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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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푸른색 큐브, 네 개가 빛을 내뿜으며 마구마구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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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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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던전 형식의 퍼즐. 아마 활성화된 내부의 마력 공간에서 각자 게임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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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하나당 한 개의 퍼즐 공간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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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총 네팀 정도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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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은 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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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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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한 명은, 반드시 밖에서 봐야 하거든. 저래 보여도, 사실 작동 원리로 따져보면 한 끗 차이로 위험한 장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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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손가락으로 큐브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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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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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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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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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던전 수업했었지? 저게 사실 그 장치의 축소판이라 보면 돼. 공간 박리, 마나 역류, 뭐 문제가 생기려면 끝도 없이 생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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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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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내부의 마력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쉽고 간단할 리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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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 동아리에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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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연은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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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하게 놀다가 가. 비싼 것들은 다 쓰고 있어서 못 하긴 하는데, 다른 것도 할 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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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윤채하도 따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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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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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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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 씩 웃으며 구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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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먼지가 쌓인 바둑판. 그곳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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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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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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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선택할 보드게임이 바둑이라는 것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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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두 사람이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 두며,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싸움이다. 한번 놓인 돌은 결코 움직일 수 없으며,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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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게임의 본질은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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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를 놓을 때마다, 그 한 수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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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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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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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과 몇 번 둔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래 두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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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全人), 내 재능은 단 며칠 만에 영감을 넘어섰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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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나를 끊임없이 재단하고, 시험하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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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그 시험에 통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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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에서, 우리의 대화는 돌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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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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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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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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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놓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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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처음부터 거침없이 두었다. 난전을 유도하며, 나를 강제로 끌어내기도 하며, 발 빠르게 구역을 넓혀갔다. 그녀가 두는 수는 단 하나의 낭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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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형태가 교과서적이었다. 효율적이고, 최적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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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마법사다운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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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저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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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공격하면 받아주고, 판을 흔들려 들면, 선을 쫙 그어 최소한의 이득만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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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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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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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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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한 흐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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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도권을 잡는 흐름, 나는 굳이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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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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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은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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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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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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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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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손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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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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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선택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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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을 추구하는 그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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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운데 한 칸을 비우고 돌을 떼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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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석과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장 최적화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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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에서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수 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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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녀가 예상치 못한 곳에 돌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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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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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을 띄고 벌려서 놓는 대신, 나는 그녀의 돌 옆에 바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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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바둑에서 한 칸을 띄워 두는 것은 발 빠른 한 수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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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고, 이후에 유리한 싸움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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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방금의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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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상식을 무시했다. 바로 옆에 붙이는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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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느리지만, 즉각적인 싸움을 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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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공격적인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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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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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려운 묘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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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합리적 사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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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많이 두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자유로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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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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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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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한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윤채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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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돌을 집으며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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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計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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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 돌을 다 놓고 나면, 각자의 영역을 계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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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보통, 확신을 가진 자가 선언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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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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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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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화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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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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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계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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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이 차지한 집을 새어 나가는 그녀의 손끝이, 평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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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따지고, 곱씹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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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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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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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더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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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고 있던 돌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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