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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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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드드드득.

활시위가 한계치 이상으로 당겨지는 소리가, 양궁장의 사로를 가득 메웠다.

팽팽하게 당겨진 장력은, 힘이 버거울 만큼 감겨있다.

하지만, 그녀.

하시온은 멈추지 않았다.

손끝을 단단히 고정한 채, 화살촉이 살짝 떨릴 정도로 극한까지 당겼다.

그리고.

-팡-!

손끝이 풀리는 순간, 화살은 폭발적인 속도로 쏘아졌다.

순식간에 허공을 뚫고,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으적!

정확히 중심을 꿰뚫은 화살이, 과녁을 단번에 부숴 버렸다.

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감각이 남아 있었다.

“하….”

그녀의 머릿속은, 최근 들어 전쟁터였다.

드는 감정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남은 감정.

죄책감.

그녀들이 그를 위한답시고 바꾼 흐름이 결국, 그에게 다시 그 고통을 겪게 했다.

해야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데도 이 미안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치 한순간에 물이 차오르듯,

머릿속이 다른 누군가의 기억으로 덮였다.

아니. 이건, 남의 기억이 아니었다.

‘내, 기억.

나, 하시온이 남겼던 확실한 기억이었다.


습격의 끝을 알리기라도 하듯, 반도는 폭우에 휩싸였다.

쏟아지는 빗물 소리는, 죽은 영웅들을 위한 비가(悲歌)였다.

검은색 상복.

비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은 천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무릎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울음처럼 조용히,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상주로서 뱅퀴셔 영웅들의 장례식 앞에 앉아 있었다.

하시온은 부모를 어린 나이에 잃었지만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자상한 할아버지와 또 그런 할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삼촌, 언니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한 소년을 데려왔다.

그 소년은 연약했고, 가족이 없었다. 나약한 몸으로 할아버지에게 싸우는 방법을 배웠다.

그녀는 그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하시온은 마음 한편에서 싹트던 감정을 인지했다. 그것을 그녀는 우정이라 여겼지만, 그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부질없는 감정이었다는 것 또한, 이날, 깨닫게 되었다.

“네…?”

협회의 직원이, 비보를 들고 찾아왔다.

비에 젖은 서류를 정리하며, 직원은 통탄스러운 표정으로 사망자를 호명했다.

평소와 같은 임무였다.

그리고 그 평범해 보였던 임무로 인해 그녀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그녀를 지탱하던 존재들이 대부분이 사망했다.

남은 것은 소년, 정해인. 그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을 쉴 수도,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영웅 사망 및, 정해인 학생은 현재 의식 불명으로….”

그러나.

“정해인??”

그녀는 되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대체 거길 네가 왜.

사망은 아니었으나, 많은 이들이 사망을 점치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수많은 영웅이 유감을 표하며 헌화하고, 절을 올렸다.

그녀는 상주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비에 젖은 환자복. 붕대가 감긴 팔과, 터진 상처에서 스며 나온 피가 옷 위로 번졌다.

오래 서 있기도 힘든 듯, 한쪽 다리를 살짝 절며 걸어왔다. 처참한 몰골이었다.

“해인아!!!”

그였다.

하시온은 벌떡 일어나 주저 없이 그에게 뛰어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정해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미안해… 미안해… 시온….”

그는 망가진 인형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다는 걸까. 그녀는 묻지 않았다.

결국, 그녀 또한 그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세상에 남을 유일한 이유.

그것은 이제, 정해인.

그뿐이었다.


-파파파방!

화살 열 개가 동시에 쏘아진다. 엄밀히 따지면 동시에 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빠른 속도는 동시라고 여기기에 충분했다.

속사(速射).

10발의 화살은 전부 각기 다른 표적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사로에서 연습하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하시온은 눈을 감고, 맹세했다.


신청을 넣은 다음 날. 동아리에서는 즉시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수업이 끝난 후, 동아리 활동을 할 예정이니 모이라는 소식까지.

마침, 멘토 멘티 활동을 하는 날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윤채하에게 권할 수 있었다.

“동아리 가입했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여기 어때?”

나는 워치를 열어, 포스터를 띄운 뒤 그녀에게 내밀었다.

윤채하는 의문을 표하며

워치 속 포스터를 살펴봤다.

-보드게임 동아리. 렉시움.

“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어떻게 신청하면 돼?”

“이미 했어.”

“나까지?”

“어.”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멘토잖아.”

별일 아니라는 듯 덧붙이자, 윤채하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동아리방은 보드게임 동아리답게 여러 가지 게임들이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안쪽 테이블에는 단 한 명만 앉아 있었다.

"어, 왔어?"

연두색 카라, 2학년 선배였다.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리고,

워치의 가입 명단을 확인한 뒤.

“이름만 보고 설마 했는데, 유명인들이 가입했네?”

눈빛에는 흥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조서연이라고 해. 동아리장을 맡고 있어.”

우리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동아리방 내부를 훑었다.

보드게임이 쌓여 있는 선반.

테이블 위에 놓인 체스 세트. 구석에 자리 잡은 바둑판.

“다른 사람들은요?”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주 비싼 거 하러 갔지.”

그녀가 가리킨 곳.

넓은 방의 바닥.

그곳에는 푸른색 큐브, 네 개가 빛을 내뿜으며 마구마구 회전하고 있었다.

‘저거구나.

인스턴트 던전 형식의 퍼즐. 아마 활성화된 내부의 마력 공간에서 각자 게임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큐브 하나당 한 개의 퍼즐 공간이 형성된다.

그러니, 총 네팀 정도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선배님은 안 하세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 한 명은, 반드시 밖에서 봐야 하거든. 저래 보여도, 사실 작동 원리로 따져보면 한 끗 차이로 위험한 장치라.”

그녀는 손가락으로 큐브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윤채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위험하다고요?”

선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설명했다.

“모의 던전 수업했었지? 저게 사실 그 장치의 축소판이라 보면 돼. 공간 박리, 마나 역류, 뭐 문제가 생기려면 끝도 없이 생길 수 있어.”

당연한 일이다.

막말로 내부의 마력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쉽고 간단할 리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우리 동아리에 온 걸 환영한다.”

조서연은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편하게 놀다가 가. 비싼 것들은 다 쓰고 있어서 못 하긴 하는데, 다른 것도 할 건 많으니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윤채하도 따라잡았다.

“뭐하고 싶어?”

윤채하에게 물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 씩 웃으며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먼지가 쌓인 바둑판. 그곳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둘 줄 알아?”

예상했다.

그녀가 선택할 보드게임이 바둑이라는 것쯤은.

바둑은 두 사람이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 두며,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싸움이다. 한번 놓인 돌은 결코 움직일 수 없으며,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이 게임의 본질은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니다.

돌 하나를 놓을 때마다, 그 한 수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어.”

영감과 몇 번 둔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래 두지는 않았다.

전인(全人), 내 재능은 단 며칠 만에 영감을 넘어섰으니까.

윤채하는 나를 끊임없이 재단하고, 시험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그 시험에 통과하면 된다.

바둑판 위에서, 우리의 대화는 돌로 이루어졌다.

-탁.

-탁.

흑과 백.

돌을 놓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윤채하는 처음부터 거침없이 두었다. 난전을 유도하며, 나를 강제로 끌어내기도 하며, 발 빠르게 구역을 넓혀갔다. 그녀가 두는 수는 단 하나의 낭비도 없었다.

모든 형태가 교과서적이었다. 효율적이고, 최적의 흐름.

철저히, 마법사다운 바둑.

나는 그저 따라갔다.

그녀가 공격하면 받아주고, 판을 흔들려 들면, 선을 쫙 그어 최소한의 이득만 챙겼다.

-탁.

-탁.

일정한 흐름이 이어졌다.

그녀가 주도권을 잡는 흐름, 나는 굳이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대국은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ㅡ

-탁.

윤채하의 손이 멈췄다.

그녀가 승부수를 던졌다.

이제부터는 선택의 싸움이었다.

효율을 추구하는 그녀라면.

내가 가운데 한 칸을 비우고 돌을 떼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많은 분석과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장 최적화된 수.

그녀의 시선에서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수 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녀가 예상치 못한 곳에 돌을 뒀다.

-탁.

한 칸을 띄고 벌려서 놓는 대신, 나는 그녀의 돌 옆에 바로 붙였다.

통상적으로 바둑에서 한 칸을 띄워 두는 것은 발 빠른 한 수로 인식된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고, 이후에 유리한 싸움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금의 수는?

나는 그 상식을 무시했다. 바로 옆에 붙이는 수로.

가장 느리지만, 즉각적인 싸움을 요구하는.

가장 공격적인 수였다.

“…!”

이건 어려운 묘수가 아니다.

그저,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합리적 사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수일 뿐이다.

바둑을 많이 두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자유로운 수.

윤채하가 손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 한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윤채하는 아니다.

나는 돌을 집으며 짧게 말했다.

“계가(計家).”

바둑에서 돌을 다 놓고 나면, 각자의 영역을 계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보통, 확신을 가진 자가 선언하는 말이었다.

윤채하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바라봤다.

“…….”

웃으면서, 화난 듯.

그녀의 표정은 묘했다.

윤채하는 계산을 시작했다.

흑과 백이 차지한 집을 새어 나가는 그녀의 손끝이, 평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따지고, 곱씹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하나, 둘, 셋ㅡ

그리고, 그녀는.

“한 판 더해줘.”

손에 들고 있던 돌을 천천히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