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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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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협상장을 나온 내 손에는 간이로 만든 바우처가 쥐어져 있었다.

나중에 일본 측에서 대한민국 협회로 동백검을 보내오면, 교환할 수 있는 증표였다.

며칠 안에 보내오겠다고 하더라.

협상이 끝난 후 저쪽의 표정도 나쁘지는 않았다.

너무 몰아붙이기만 했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은 열어둬야 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니까.

아예 국가 단위로 척질 필요도 없긴 하고. 물론 척져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물론 핵심은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

십자가는 절대 넘길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본토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이아노의 추가적인 유적 정보를 제공했다.

세세한 설정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도 없긴 했다.

대충 홋카이도 근방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 힌트로도 저쪽은 충분히 만족한 것 같았다.

줘도 괜찮은 건가 싶지만, 거긴 보상이 구리다.

어차피 갈 수도 없고.

“해인님…!”

저 멀리서 김길규 씨가 나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네?”

“중국 쪽에서 급하게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이아노의 무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액의 보상을 제시했는데….”

아무래도 저쪽 또한 냄새를 맡은 모양.

아직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건 아니니,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래를 체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을 새로 차리셔도—”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중국이요…흐.”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애초에 그쪽에 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안 팔죠. 절대.”

감정이 안 좋은 쪽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었으니까.


기업 영광이 운영하는 도시 중심가의 최고급 호텔 카페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 아래, 우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공간. 하지만 지금, 카페 한가운데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온의 유명 생도들, 유하나와 천여울이 있었다.

유하나는 길고 매끈한 다리를 꼬아 올리며 앉아 있었고, 그녀의 하늘빛 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천여울은 그와 대조적으로 차분하게 정리한 단발 머리칼과 단아한 복장으로, 성인(聖人)처럼 따스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언니…! 저 사인해주세요…!”

유하나의 옆으로 몰려든 어린 팬이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좋아, 종이 줄래?”

우아한 손길로 사인을 하며 팬을 응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다.

멀리서 보면 두 사람은 환상의 조합처럼 보였다. 아름다움과 기품으로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가까이서 들리는 대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유하나는 테이블 위 찻잔을 손끝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입을 열었다.

“좋았어?”

천여울은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응 너무.”

천여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흘러나왔지만,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

유하나는 찻잔을 들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잘했다고 할게, 그이를 존중하지만, 그 영약은….”

유하나는 말을 이어가다 말고 이상한 낌새를 느껴 고개를 들었다.

천여울은 차 한 모금을 머금은 채, 아직도 여운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살짝 상기된 얼굴, 그리고 아련하게 흐려진 눈빛.

“…뭐해?”

유하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천여울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천여울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은은한 미소는 유하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안,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유하나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천여울은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도 않는 듯,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 톡톡 두드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약 기운을 돌려야 해서, 몸 구석구석 만져야 했거든…. 너도 알잖아.”

“푹 안겨서 자는데… 얼마나 귀여웠는지 알아?”

유하나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그녀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천여울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기는 듯,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몸에 무슨 짓을 해도 세상 모를….”

“다행이다.”

유하나는 결국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미소만큼은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천여울은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왜?”

“하마터면 정말 죽일 뻔했거든.”

그녀의 말에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천여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작게 웃었다.

“분위기 잡기는.”

“조심하라고.”

그런 와중, 이번에는 남자 꼬마 팬이 천여울에게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천여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가 내민 종이에 사인했다.

꼬마는 두 손을 모으고 몸을 살짝 뒤척이며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다. 작은 발은 바닥을 동동 구르고, 입술은 망설이는 기색으로 달싹거렸다.

“꼬마야, 하고 싶은 말 있어?”

천여울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의 망설임을 풀어주려는 듯 물었다.

“성녀님 정말 요한 용사님이랑 사귀어요?”

“풉!”

아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천여울은 잠시 표정을 굳혔다.

반면, 유하나는 입을 막으며 소리를 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절대 아니야. 응, 절대로.”

“그럼, 제가 커서 성녀님이랑 결혼할래요!”

꼬마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천여울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고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고마운데, 그건 안돼.”

꼬마는 한순간에 풀이 죽은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임자 있는 몸이라, 미안해?”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중세풍의 거대한 건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외관이지만, 이 도시의 풍경 속에서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아르카디아 교단.

나는 지금 그 교단의 신전 앞에 도착했다.

어차피 휴가도 받은 김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십자가 유물까지 오늘 다 처분해버릴 생각이었다.

‘대외비로 하실 수 있고, 공개로 하실 수도 있습니다.

협회는 이번 던전 공략 성공에 대한 언론 공개 여부를 내게 물었었다.

일단 비공개로 하겠다고 하기는 했다.

했는데….

“지켜지겠어?”

협회 내부에서도 정보를 팔아넘기며 소소한 부업을 즐기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 분들 덕분에 어차피 곧 밝혀질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신전에 들어섰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사제에게 다가갔다.

“사제님.”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제는 친절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아티팩트를 판매하려고 합니다.”

“아티…팩트요?”

그녀는 살짝 놀란 듯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정해인입니다.”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멀리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급하게 뛰어나온 한 사제가 허둥지둥 다가왔다.

“아이고 말씀해주시고 오시지!”

“…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죠?”

“하하, 그런가요?”

사제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긁적였다.

“접견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사제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사실 천여울 님께서 저희에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정해인 님이 오시면 정중히 모시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분에게 잘 말해주시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걸 보아하니, 천여울은 벌써 교단 내부의 세력을 확실히 장악해가고 있는 듯했다.

아르카디아 교단의 내부 세력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용사인 요한을 지지하는 층, 다른 하나는 성녀인 천여울을 지지하는 층.

요한의 지지층은 전통과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이들로, 용사를 중심으로 여기는 꼰대들이 모여있다.

그런 점에서, 천여울이 방금처럼 자신의 영향력을 확고히 다지는 것은, 굉장히 잘하고 있는 행동이다.

교단의 접견실은 보다 고급스러웠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거래를 담당하는 분이 곧 오실 겁니다.”

사제가 퇴장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차분하게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해인 님이시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거래를 담당하게 된 아르카디아 교단의 루크 주교입니다.”

그의 태도는 조용하면서도 품위 있었다.

나는 대꾸 대신 가방에서 십자가를 꺼내 보였다.

“이걸 판매하려고 합니다.”

내 손에 들린 십자가가 드러나자, 루크 사제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놀람과 경외가 동시에 스쳐 지나간 듯한 그의 표정은, 자신이 대면한 물건의 가치를 이미 짐작한 듯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십자가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더니, 낮게 물었다.

“제 부족한 식견으로 보건대, 범상치 않은 신성력이 느껴집니다. 혹시 이름을 알고 계신다면….”

“무녀 이아노의 유물입니다.”

“아… 역시 그랬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십자가를 건넸다.

루크 사제는 긴장된 표정으로 십자가를 손에 받아들며 말했다.

“저희에게 판매해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정해인 님께서 만족하실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이게 워낙 큰 물건이다 보니….”

아,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내 선에서 가격을 정하기엔 너무 거물이라 협의가 필요하니, 유예시간을 주세요.' 라는 소리다.

사실 나는 돈에 연연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는 그냥 주려고 했었으니까.

“가격은 나중에 알려주셔도 괜찮으니, 계약서 한 장만 주시겠어요?”

내 말에 루크 사제는 조금 당황한 듯 서둘러 품에서 백지 계약서와 펜을 꺼냈다.

그가 건넨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나는 무언가를 간단히 적어 내려갔다.

“됐습니다. 여기요.”

“이 조건만 지킨다면, 뭐 가격이 정해지는 대로 언제든 연락주세요.”

아르카디아가 모시는 신의 보증이 새겨져 있는 계약서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내가 작성한 계약서를 읽는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한참 동안 내용을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겨우 이 정도 조건이라니…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천여울은 교단이 반드시 자신에게 십자가를 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확실히 조건을 걸어두는 편이 그녀에게 더 유리할 것 같았다.

계약서에 적은 내용은 간단했다.

‘이아노의 십자가는 반드시 ‘성녀’ 후보에게 사용할 것.

루크 사제는 계약서를 다시 한번 검토하더니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 조건을 거절할 사람은… 교단 내에 없겠지요.”

그는 계약서를 소중히 접어 품에 넣으며 덧붙였다.

“이교도가 아닌 이상에야, 말입니다.”

그리고 눈앞의 루크 주교는 아르카디아 교단 내에서 강경한 ‘친 성녀’파로 유명하다.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유물에 깃든 신성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분의 손에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