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797 lines
14 KiB
Markdown
797 lines
14 KiB
Markdown
|
||
|
||
|
||
|
||
|
||
“백아(白牙)요? 하하하! 해인 학생 이거 이거, 보는 눈이 있었네요?”
|
||
|
||
|
||
|
||
이사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
||
|
||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
||
|
||
|
||
|
||
“그 무기는 무려 괴룡 알데바란과의 혈투에서! 초대 창립자님이 직접 습득하신!”
|
||
|
||
|
||
|
||
그의 어깨가 으쓱했다.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마치 내 선택을 칭찬이라도 하듯 우쭐한 태도.
|
||
|
||
그가 이토록 신난 이유는 단 하나. 이 무기는 수없이 많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
|
||
|
||
|
||
|
||
창고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
||
|
||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
||
|
||
|
||
|
||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짧게 되물었다.
|
||
|
||
|
||
|
||
“그래요?”
|
||
|
||
|
||
|
||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에 든 창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
||
|
||
|
||
|
||
그리고 곧바로—
|
||
|
||
눈을 감고 모든 마나를 끌어올렸다.
|
||
|
||
혈맥을 타고 흐르는 마나가 한곳으로 집중되며,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
||
|
||
나는 곧바로 창에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
||
|
||
그리고 편린의 마나까지 끌어모아, 있는 힘껏 불어넣었다. 녹빛의 멸마의 기운이, 서서히 흘러 들어간다.
|
||
|
||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
||
|
||
|
||
|
||
“해인 학생 무슨…?”
|
||
|
||
|
||
|
||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
|
||
|
||
|
||
사람들이 반응할 새도 없이, 변화가 시작됐다.
|
||
|
||
은빛이 서서히 붉게 타들어 간다. 이윽고, 그 붉은색조차 검게 물들며 색이 변해간다.
|
||
|
||
|
||
|
||
이제 더는, 단순한 철제 무기가 아니다.
|
||
|
||
한때 은빛을 띠던 창은 어느새 흑요석처럼 검게 빛나는 형태로 변모했다.
|
||
|
||
|
||
|
||
아, 머리야.
|
||
|
||
많은 양의 마나를 쥐어짜니, 두통이 몰려왔다.
|
||
|
||
|
||
|
||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무기의 변화에, 이사장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
||
|
||
말을 잇지 못하고, 겨우 입술을 달싹일 뿐.
|
||
|
||
나는 백아, 아니 ‘카타스트로피’를 한 손에 들어 올리며 짧게 말했다.
|
||
|
||
|
||
|
||
“잘 쓰겠습니다.”
|
||
|
||
|
||
|
||
그리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
||
그 순간.
|
||
|
||
|
||
|
||
『멸마(滅魔)의 힘?』
|
||
|
||
|
||
|
||
머릿속이 흔들렸다.
|
||
|
||
아니, 흔들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
||
|
||
어떤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
||
|
||
|
||
|
||
말이 들리는 순간, 머릿속에 울림이 퍼졌다.
|
||
|
||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
|
||
|
||
|
||
|
||
『…핏덩이가, 본좌의 잠을 깨웠구나.』
|
||
|
||
머리가 쪼개질듯 하다.
|
||
|
||
몸이 휘청였다.
|
||
|
||
|
||
|
||
『허나, 기묘하군.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깊이는 어째서, 나조차 감히 헤아릴 수 없는가.』
|
||
|
||
『패도(霸道)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도(正道)도 아닌 것이… 아주 엉망진창이야….』
|
||
|
||
기울어진 시야가 느리게 흔들리더니, 바닥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
||
|
||
|
||
|
||
『··· 역천(逆天).』
|
||
|
||
|
||
|
||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
||
|
||
|
||
|
||
『축을 고정시켜, 섭리를 거스른다? 하하하! 이거 흥미롭구나.』
|
||
|
||
|
||
|
||
『좋다. 네놈이 감히 나를 깨웠으니 그 대가로, 네놈의 본질을 속속들이 헤집어 보도록 하마.』
|
||
|
||
-쿵!
|
||
|
||
몸이 지면에 완전히 닿았다.
|
||
|
||
|
||
|
||
『네 생(生)에서 가장 지독했던 절망의 순간은 언제였지?』
|
||
|
||
|
||
|
||
-…해인아!!
|
||
|
||
|
||
|
||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
||
|
||
유하나와 천여울이 다급히 뛰어오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
||
|
||
|
||
|
||
『 느껴봐라. 그리고, 되새겨라.』
|
||
|
||
|
||
|
||
그러나 그마저도 이내, 시야가 암전됐다.
|
||
|
||
의식이, 끊겼다.
|
||
|
||
|
||
|
||
|
||
|
||
『네놈이 누구였는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안녕하세요?”
|
||
|
||
|
||
|
||
나는 짐칸에 숨어 있다가, 드디어 튀어나왔다.
|
||
|
||
갑작스러운 등장에 뱅퀴셔 멤버들이 경악하며 나를 바라봤다.
|
||
|
||
|
||
|
||
“정해인!”
|
||
|
||
|
||
|
||
성아라가 가장 먼저 소리쳤다.
|
||
|
||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
||
|
||
여긴 강습 장소 근처의 베이스 포인트.
|
||
|
||
멀지 않은 곳에서 곧 작전이 시작될 것이다.
|
||
|
||
|
||
|
||
“네가 여길 어떻게 왔어?”
|
||
|
||
|
||
|
||
당연히 몰래 따라왔다.
|
||
|
||
껴달라고 하면 안 끼워줄게 분명했으니까.
|
||
|
||
|
||
|
||
나는 이 작전이 몰살로 이끄는 루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막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
||
|
||
|
||
|
||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
||
|
||
|
||
|
||
“…돌아가.”
|
||
|
||
|
||
|
||
단호한 목소리였다.
|
||
|
||
이도현이었다. 쌍검을 등에 찬 그는, 조용히 말했다.
|
||
|
||
|
||
|
||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
||
|
||
|
||
|
||
그의 눈빛은 냉정했다.
|
||
|
||
나를 마주한 다른 멤버들도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
|
||
|
||
“그러면 여기서 협회랑 통신만 도울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어요.”
|
||
|
||
|
||
|
||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
||
|
||
그래서 그들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차선책을 제시했다.
|
||
|
||
전투가 시작되면, 뛰어가 합류하면 됐으니까.
|
||
|
||
|
||
|
||
나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확신에 차 있었다.
|
||
|
||
편린도, 무사히 성시우에게 넘겼고, 등장인물의 성장도 순조롭다.
|
||
|
||
메두사도, 약간의 희생은 있었지만. 결국 잡아냈다.
|
||
|
||
|
||
|
||
‘이러다 사망 회귀 한 번도 안 쓰는 거 아니야?’
|
||
|
||
|
||
|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세운 10년간 계획은 완벽했다는 뜻이다.
|
||
|
||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
|
||
|
||
|
||
그러나.
|
||
|
||
|
||
|
||
“안녕?”
|
||
|
||
|
||
|
||
-으적!
|
||
|
||
|
||
|
||
내 첫 번째 죽음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
||
|
||
|
||
|
||
“허억!!”
|
||
|
||
|
||
|
||
나는 트럭 뒷칸에서 눈을 떴다.
|
||
|
||
|
||
|
||
전투다운 전투도 아니었다. 단 두 합, 그것뿐이었다.
|
||
|
||
|
||
|
||
첫 번째 공격, 방어가 무너졌다.
|
||
|
||
두 번째 공격, 머리가 으깨졌다.
|
||
|
||
|
||
|
||
“야! 해인아 너 여기서 뭐 해?”
|
||
|
||
|
||
|
||
박광철이었다.
|
||
|
||
인기척을 듣고 짐칸을 뒤지러 온 모양이었다.
|
||
|
||
|
||
|
||
나는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
||
|
||
정신이 안 차려진다.
|
||
|
||
밖에 나오니 뱅퀴셔의 인원들이 날 바라봤다.
|
||
|
||
|
||
|
||
난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
||
|
||
|
||
|
||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
||
|
||
방금의 죽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
||
|
||
|
||
|
||
뭔가가, 시작됐다.
|
||
|
||
|
||
|
||
두 번째 죽음.
|
||
|
||
|
||
|
||
몸이 두 동강이 났다.
|
||
|
||
|
||
|
||
세 번째 죽음.
|
||
|
||
|
||
|
||
간신히 머리가 박살 날 뻔한 것을 피했으나, 뒤에서 날아온 창에 목이 꿰뚫렸다.
|
||
|
||
|
||
|
||
그리고 열한번째 죽음.
|
||
|
||
|
||
|
||
“우웨에에에엑!”
|
||
|
||
|
||
|
||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구역질했다. 첫 죽음 이후로, 누적되는 죽음의 정신적 고통은, 결코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
|
||
나는 그때쯤, 내가 세운 계획에 의문을 느꼈다.
|
||
|
||
|
||
|
||
‘뱅퀴셔가 전멸했다.’
|
||
|
||
|
||
|
||
그저 작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텍스트 한 줄로 묘사했던 뱅퀴셔의 죽음.
|
||
|
||
그러나 그 죽음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
||
|
||
|
||
|
||
“해인아!”
|
||
|
||
|
||
|
||
그리고 열 두 번째 죽음의 직전.
|
||
|
||
박광철이 내게 몸을 날렸다. 그의 복부가 꿰뚫린다. 그와 동시에. 나도 죽었다.
|
||
|
||
|
||
|
||
57번째 죽음 쯤일까.
|
||
|
||
아마 몇 합 이상이라도,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놈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게 된 건 그때쯤이었다.
|
||
|
||
|
||
|
||
-캉! 챙!!
|
||
|
||
|
||
|
||
“괜찮네?”
|
||
|
||
|
||
|
||
‘악신의 사도(使徒).’
|
||
|
||
|
||
|
||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남성처럼 생긴 녀석은, 지난 57번 모두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두 합 만에 죽여왔다.
|
||
|
||
뱅퀴셔의 대원들이 고개를 돌려 달려오지만. 늘 늦었다.
|
||
|
||
|
||
|
||
그러나—
|
||
|
||
이번엔 다르다. 나는 벌써 세 번, 네 번, 그 이상의 합을 받아냈다.
|
||
|
||
헤아릴 수 없는 강자와의 합. 그것은 나를 강제로 성장시키고 있었다.
|
||
|
||
|
||
|
||
“정해인!!”
|
||
|
||
|
||
|
||
성아라와 박광철이 내게 도착했다. 처음 보는 전개였다. 그들이 달려오자, 눈앞의 남성은 혀를 차며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
||
|
||
박광철은 내게 침착하게 말했다.
|
||
|
||
|
||
|
||
“온 이상, 살아. 해인아. 정신 차려야 해.”
|
||
|
||
|
||
|
||
그는 내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그 어떤 질책도 하지 않았다.
|
||
|
||
나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어떻게든, 반격에 성공해야 했다.
|
||
|
||
‘사도 한 명 정도라면….’
|
||
|
||
|
||
|
||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인원 수는, 나를 절망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
||
|
||
|
||
|
||
사실 사도는, 없을 가능성이 높았고, 많아봐야 하나라 여겼다.
|
||
|
||
|
||
|
||
내 예측을 비웃듯, 이곳에 서 있는 사도는.
|
||
|
||
총 셋이었다.
|
||
|
||
|
||
|
||
직감했다.
|
||
|
||
|
||
|
||
이 싸움은.
|
||
|
||
|
||
|
||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이다.
|
||
|
||
|
||
|
||
152번의 죽음.
|
||
|
||
|
||
|
||
239번의 죽음.
|
||
|
||
|
||
|
||
399번? 아니지, 아마 400번의 죽음.
|
||
|
||
|
||
|
||
나는 쉴 새 없이 죽어 나갔다.
|
||
|
||
그리고 401번째의 삶.
|
||
|
||
나는 트렁크에서조차 일어나지 못했다.
|
||
|
||
온몸이 무겁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들었다.
|
||
|
||
|
||
|
||
‘포기하자.’
|
||
|
||
|
||
|
||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
||
|
||
|
||
|
||
어차피, 전부 죽는다고 하더라도, 성시우만 있으면 깰 수 있을 것이다.
|
||
|
||
이게 원작의 흐름이니까. 나는, 애초부터 이 흐름에 없던 변수일 뿐이니까.
|
||
|
||
|
||
|
||
그쯤의 나는, 미쳐있었고, 너무나도 나약했다.
|
||
|
||
성공에 취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성시우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일신의 무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등한시했다.
|
||
|
||
|
||
|
||
약점이었던 스태미나는 발목을 잡았으며.
|
||
|
||
마(魔)를 상대할 방법도 성시우의 편린에 기대어, 마련하지 않았었다.
|
||
|
||
|
||
|
||
-쾅!!
|
||
|
||
|
||
|
||
저 멀리서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폭음이 들려온다.
|
||
|
||
나는 귀를 막았다.
|
||
|
||
|
||
|
||
‘미안해… 미안해….’
|
||
|
||
|
||
|
||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
||
|
||
사도는 셋이었고, 나는 나약했다.
|
||
|
||
|
||
|
||
설정상, 정말 많아봤자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악신의 사도(使徒)는 뱅퀴셔 전원이 덤벼도 한 명을 상대할까 말까였으니까. 악신의 부활 전, 저렇게 많은 사도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
||
|
||
나는 어떤 사도든 간에 녀석의 약점을 빠르게 전파해, 공략에 힘을 실어주려 했다.
|
||
|
||
사도 하나 쯤은, 어찌저찌 할만 하다. 그게 내가 짜놓은 계획이었다.
|
||
|
||
|
||
|
||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닫는다.
|
||
|
||
그 모든 건, 전장에서 단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자의 착각이었다.
|
||
|
||
|
||
|
||
나는 지금껏, 사망회귀(死亡廻歸)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죽지 않았다.
|
||
|
||
|
||
|
||
처음 맞닥뜨린 패배는 너무도 허무했고, 처음 마주한 죽음은 비참할 정도로 짧았다.
|
||
|
||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
||
단순히 죽는 게 아니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마주한 채, 무너졌다.
|
||
|
||
|
||
|
||
그리고 그 벽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작성한 텍스트 한 줄로써 만들어진 것이었다.
|
||
|
||
|
||
|
||
자기혐오가 몰려온다. 400번을 죽고 회귀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
||
|
||
나는 여전히 몇 합 만에 죽고, 나는 여전히 놈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
||
|
||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죽는다.
|
||
|
||
|
||
|
||
이 싸움은 내 영역이 아니다.
|
||
|
||
내가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
||
|
||
|
||
|
||
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
||
|
||
|
||
|
||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도,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
||
|
||
귀를 막은 내 손의 떨림도 멎어가며, 전투의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
||
|
||
|
||
|
||
그런데 그때.
|
||
|
||
|
||
|
||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
|
||
|
||
|
||
여기서 도망치면, 나는 앞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
||
|
||
아무리 피하려 해도, 아무리 합리화를 해도, 이 전장을, 그리고 그들을 뒤로하고 돌아가 멀쩡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
||
|
||
|
||
|
||
내가 만든 세상의 결과였다.
|
||
|
||
|
||
|
||
내가 책임지고 바꿔야 했다.
|
||
|
||
|
||
|
||
이대로 도망치면 시온의 얼굴조차, 다시 볼 자신이 없다.
|
||
|
||
|
||
|
||
눈을 감았다.
|
||
|
||
숨을 들이마셨다.
|
||
|
||
심장이 아직도 요동친다.
|
||
|
||
|
||
|
||
400번의 죽음에도, 두려움은 한 톨도 줄어들지 않는다.
|
||
|
||
|
||
|
||
그런데도, 해야 한다.
|
||
|
||
내 잘못이다.
|
||
|
||
|
||
|
||
“…….”
|
||
|
||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고, 눈을 떴다.
|
||
|
||
|
||
|
||
탁했던 정신에 맑은 기운이 맴돈다.
|
||
|
||
|
||
|
||
나는, 마침내.
|
||
|
||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
||
|
||
====
|
||
|
||
[권능: 사망회귀(死亡回歸)]
|
||
|
||
①회귀
|
||
|
||
ㅡ 사망 시, 무조건 회귀합니다. 기억은 유지됩니다.
|
||
|
||
②???(미해방)
|
||
|
||
③???(미해방)
|
||
|
||
====
|
||
|
||
|
||
|
||
눈앞의 시스템.
|
||
|
||
미해방으로 쓰여있던, 두 번째 칸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내.
|
||
|
||
|
||
|
||
====
|
||
|
||
② 불굴지혼(不屈之魂)
|
||
|
||
ㅡ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
||
|
||
====
|
||
|
||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
||
|
||
온몸이 아직도 떨리고 있다.
|
||
|
||
하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다.
|
||
|
||
|
||
|
||
나는 죽음을 이용한다. 내가 저들보다 많은 건 시간, 하나뿐이다.
|
||
|
||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전장으로 향했다.
|
||
|
||
|
||
|
||
이미 뱅퀴셔의 대원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
||
|
||
|
||
|
||
영감.
|
||
|
||
|
||
|
||
그는 팔이 잘려 서 있는 상태로 마지막까지 항전하고 있었다.
|
||
|
||
그러나, 마침내 그가 쓰러졌다.
|
||
|
||
|
||
|
||
나는 영감이 무너지는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전부, 눈에 담았다.
|
||
|
||
|
||
|
||
그때, 멀리서 한 인영이 사라졌다.
|
||
|
||
그리고 동시에, 눈앞에 거대한 대검이 날아든다.
|
||
|
||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
||
|
||
|
||
|
||
-챙!
|
||
|
||
|
||
|
||
곧게 뻗은 창과 대검이 부딪힌다.
|
||
|
||
창은, 검에 의해 서서히 베어진다.
|
||
|
||
|
||
|
||
그러나, 한 번이라도 더—
|
||
|
||
그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기 위해.
|
||
|
||
|
||
|
||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
||
|
||
|
||
|
||
강하다면, 반드시 배워내겠다.
|
||
|
||
|
||
|
||
얼마가 걸리더라도.
|
||
|
||
|
||
|
||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