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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가온은 임시 휴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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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다시 치르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여러 시설이 파괴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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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는 끊임없이 울렸다. 알림을 켜볼 엄두도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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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송 출연 제안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연락처를 대체 어떻게 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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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내가 묵귀란게 밝혀지기까지 하면 어떻게 될지, 벌써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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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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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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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짜리 플랜이 완전히 무너졌지만,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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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근 5일 동안, 닥치는 대로 던전을 돌았다. 쉽게 갈 수 있는 곳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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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중요한 아이템들은 아니었다. 미리 얻어두면 좋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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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는 내 거고, 몇 개는 우리 여성분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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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나는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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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수정한 새로운 플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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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보다, 직접 쓰면서 계획을 짜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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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순간, 흐름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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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처음 계획의 기조는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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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를 위한, 성시우에 의한, 완벽한 몰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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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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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니, 분배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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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위는 당연히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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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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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을 흡수했고, 이아노의 영약까지 섭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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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으로 돌아갔어야 할 대부분의 기연은, 이제 내가 가지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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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대체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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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 기연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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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기연은 특성상 나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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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후천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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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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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는 선천적으로 어마어마한 마나 용적을 타고났다. 나는 영약을 통해 보충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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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정제되고 단련된 것이라면, 성시우의 마나는 그저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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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의 거대한 마나 용적을 보조할 뛰어난 기연들은, 애초에 다른 조연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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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시우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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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아무리 뛰어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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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높은 포텐셜을 가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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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다 그에게 줘야하니,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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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내게서 떨어져 나갈 기연을 받을 인물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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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낙수를 받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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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제했던 옵션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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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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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마나 용적이 크지만, 성시우 그 때문에 묻혀버렸던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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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선정은 사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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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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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아카데미가 아닌, 칼로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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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와 특성이 겹쳐 애초에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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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펙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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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대한 재능은 정상급이며, 혼자서도 충분히 성장할 만한 의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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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위권에 오를 만한 인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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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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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더 빠르게 성장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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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메인 인물 중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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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가온도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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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잠시 문을 닫은 사이, 부족한 커리큘럼을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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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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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쯤,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올해는 예외적으로 앞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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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아카데미 가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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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위 아카데미 칼로스의 학생 교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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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자격을 검증 받은 후, 학생들은 자유롭게 반대편 아카데미로 넘어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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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인 명분은 상호 아카데미의 교육적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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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두 아카데미의 입맛에 맞는 인재들을 교환하는 장(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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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냉병기와 근접 전투에 있어서는 가온이 압도적이지만, 마법 특화는 칼로스도 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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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마법 전공 학생들은 칼로스를 1지망으로 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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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에 재능이 있는 칼로스의 학생들은 슬금슬금 가온으로 넘어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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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단점을 흡수해 강점으로 바꾸는 윈윈인 제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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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 거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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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그 강력한 옵션인 윤채하가 넘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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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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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우가, 일정 이상의 주목도와 활약 수치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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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기준을 채우는 게 엄청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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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넘기면, 그녀는 성시우에게 흥미를 느끼고 가온으로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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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수한 흥미, 애정으로 발전할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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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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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높은 주목도와 활약 수치를 채우지 못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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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흥미를 얻지 못해 칼로스에 남아 졸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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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원작에서는 공략 가능한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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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시우는 죽었고, 활약은 내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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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활약은 제법, 주목을 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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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제부터 지켜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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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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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은 한 8할 정도 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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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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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방구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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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빛나는 보석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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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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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게 많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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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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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아카데미, 1층 동아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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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머금은 금발이 창가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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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실 정도의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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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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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 찬란한 머릿결과는 어울리지 않게, 컴퓨터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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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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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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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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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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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거대한 뱀과, 다섯 개의 분신이 동시에 그 목을 내려치는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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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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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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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뻗으며, 나른하게 발끝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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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준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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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신경 쓰지도 않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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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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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주황빛 눈동자가 태양처럼 화사하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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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너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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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마법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그녀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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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계산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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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이론적으로 따져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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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격만큼은 분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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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은 주서준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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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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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상을 잠시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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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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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세밀한 마나를 순간적으로 분산해 완벽한 타이밍에 내리꽂는 것은, 웬만한 고급 마법사도 못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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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차마 못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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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따져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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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중 마력 손실률, 속도 변화에 따른 제어 난이도, 그리고 궤적을 감안한 최적 낙하지점 설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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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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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딱 잘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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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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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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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 집어 추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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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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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는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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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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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윤채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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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이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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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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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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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세밀한 조율 능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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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사람이, 그녀와 같은 나이대라는 것이 더욱 믿기지 않는 포인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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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가볍게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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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한쪽에 놓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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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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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의 교수들이 며칠 전부터 안내하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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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보면 학생들 간의 단순한 교류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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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결론은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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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싫으면 가온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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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내에서는 묘하게 전사들을 천대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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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는 선택의 자유를 주는 듯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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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칼로스 내에서 무력 중심의 학생들을 가온으로 밀어내려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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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윤채하 같이 우수한 마법 특화 인재에게도 안내가 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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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학 당시 칼로스는 전액 장학금과 마탑 연계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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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에서는 절대 제시하지 않을, 마법사에게 최적화된 최고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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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녀가 가온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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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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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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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있어서, 칼로스가 제시한 요소들은 어떤 메리트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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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도 감지 않은 채, 웃으며 포스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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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그녀와 함께했던 주서준은,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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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녀는 늘 제멋대로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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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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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불안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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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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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포스터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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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온으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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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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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 랭킹 5위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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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랭킹 1위인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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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떡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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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묻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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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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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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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으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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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를 볼 때마다, 그는 언제나 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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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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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가온으로 넘어가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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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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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 현실 너머의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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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세상과 단절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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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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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공간.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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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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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무복을 입은 한 남성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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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 그의 앞에 광활한 우주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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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소용돌이치고, 행성이 궤도를 그리며 선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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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유성의 흐름, 정해진 질서 없이 흩어지던 행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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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빛이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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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별이 푸른 빛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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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별은, 끝없이 방황하며 새로운 태양을 찾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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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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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숨어 웅크리고 있던 태양은, 그 시린 별빛을 바라보며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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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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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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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또한, 기다렸다는 듯 태양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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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떠오를 수 없었던 태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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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당히 별의 뒤를 따라 새로운 궤도를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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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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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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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바뀌어버린 시간선이며, 변화한 세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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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흐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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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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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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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거대한 석문이 천천히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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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쪽에서, 온몸을 검게 물들인 악마들이 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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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아귀에 쥔 창이 섬뜩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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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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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별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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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멈추지 않을 그 새로운 태양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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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을 집어삼킬, 화마(火魔)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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