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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재밌는 농담입니다.”
그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이아노의 무덤에서 획득한 영약과 십자가는 일본의 네임드 유물, 보검 야마타노 오로치와 비견될 정도로 귀중하다.
가치만 놓고 보면, 그 유물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쪽에서 바꿀 일은 전혀 없겠지만.
그런데 그걸 먹었다고? 일개 학생이? 믿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
그래서 나는 굳이 그의 의심을 정정하지 않았다.
“… 그렇다면 십자가는 혹시?”
내가 영약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자, 그는 포기한 듯 십자가의 행방을 묻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에 판매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다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영웅 협회가 노리는 건 애초에 십자가 자체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십자가를 일본 협회에 넘기지 않는 것, 혹은 넘기더라도 그 대가로 더 큰 보상을 뜯어오는 것.
그러니 결론적으로는 같은 배를 탄 셈이다.
“그렇군요. 아르카디아 또한 원할 것 같긴 합니다.”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묘하게 드러난 안도감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세단은 어느새 협회 건물에 도착했다.
웅장한 협회 건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건물 전면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고, 현대적이면서도 견고한 느낌을 준다.
“이대로 올라가시면 바로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 할 겁니다. 그리고 협상은 통역사를 제외하면 저희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끼어들 수도 없구요.
그는 그렇게 덧붙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 이쪽으로 먼저 오시겠습니까.”
차에서 내린 나는 그의 안내를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이끄는 방향은 외부인용 통로가 아닌, 내부 관계자들만 사용하는 듯한 별도의 입구였다.
그곳에는 고급스러운 금속 문이 설치되어 있었고, 문 옆에는 별도의 인증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손목에 찬 인증 태그를 문에 대자,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이쪽입니다.”
엘리베이터였다. 내부자만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작은 진동이 발끝에 전해졌다.
그는 층수를 입력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외부 협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내부적으로 논의하거나 정리할 사안을 다루는 장소입니다.”
문이 열리자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협상실이 눈에 들어왔다.
협상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여성은 깔끔하게 정돈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중, 나와 김길규를 보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정해인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네.”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다.
“앉아 주시겠어요? 협회 소속인 정유리입니다.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기 전에 몇 가지 사전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김길규는 나를 돌아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 이아노의 무덤 건과 관련하여 일본 측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요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녀는 서류를 넘기며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브리핑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첫 번째는, 현재 던전의 소유권입니다. 국제법과 대한민국 법률 모두, 던전 발견자의 권리를 강력히 보장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유권은 고사하고 탐험권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측은 이 소유권을 구매하려 시도할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입니다. 특히 이아노의 십자가와 영약은 일본 측에서 반드시 가져가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유물들은 그들 역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만요.”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던 중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영약은 없습니다. 이미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옆에 있던 길규 씨는 ‘그게 진짜였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진짜라니까 그러네.
“그렇군요,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상징성만 따지면 십자가가 훨씬 우위에 있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세 번째는, 던전 자체의 이전입니다. 일본은 전문가를 고용하여 이 던전을 자국으로 완전히 이전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던전을 자국 내에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따라서 정해인 님께서는 이 요청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실지, 혹은 역으로 일본 측에 요구할만한 조건을 정리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쓱
그녀는 내게 하나의 리스트를 건넸다.
“이것은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의 목록입니다. 희귀도와 위력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셔서 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와우.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목록을 천천히 살펴봤다. 생각해둔 것은 있긴 했다.
“이것도 가능할까요?”
나는 천천히 목록을 훑어보다가, 하나를 가리켰다.
내 손가락이 멈춘 곳을 그녀가 확인했다.
“아… 이건 조금 힘들겠습니다.”
그 물건의 정체는 일전에 말했던 보검, 야마타노 오로치였다.
“이 유물은 일본 측에서 절대 협상 대상으로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상했던 바다.
설령 가치가 동일하더라도 오로치가 가지는 상징성과 유명성은 궤를 달리하니까.
“그들이 오로치를 놔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그냥 물어본 것이다.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
“그럼, 이거는요?”
나는 다른 항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종이를 향했다.
“음, 이건….”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백검.’
게임 내에서는 치트를 제외하고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유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는 히로인 중 이 검과 유독 잘 어울리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오로치만큼은 아니더라도, 솔직히 쉽진 않습니다만….”
"잠시만요."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듯, 옆에 있던 김길규가 시계를 확인하며 나를 바라봤다.
“슬슬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협회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고요했던 복도가 점점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통역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협상실에 들어가는 건, 나와 통역사가 끝이었다.
“일본 측에서 이미 대기 중입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일본 대표단 몇 명이 이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날 보자 살짝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메마시떼(はじめまして。).”
나조차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이었기에. 나 또한 가볍게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대표는 먼저 상투적인 말부터 꺼냈지만,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사이로 넘겨진 서류에는 이아노의 무덤 현황, 일본 측의 평가, 그리고 일본 영웅 협회의 요구사항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저희 일본 협회 측은 이아노의 무덤 소유권을 정식으로 원합니다.”
딱 부러지는 요구. 내가 아무런 표정 변동 없이 서류를 넘기자, 협상 대표는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
“물론 상당한 액수의 보상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협의가 이뤄지길 바라는데… 어떠신가요?”
나는 일부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상대 대표는 숨을 삼키는 듯 입술을 매만지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주제를 바꿨다.
“하하… 알겠습니다. 만약 소유권 문제로 협의가 쉽지 않다면, 무덤 내에서 발견된 유물—특히 이아노의 십자가나 영약—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이 또한 저희가 적절한 금액을 측정해놓았습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일본 대표의 시선이 나를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잠시 통역사를 바라본 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팝니다.”
“… 네?”
“안 팔아요, 금액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 대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실무진들도 살짝 웅성거리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무표정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렇다면, 그··· 혹시 던전을 통째로 일본으로 이전하는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표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번엔 내가 먼저 깔끔히 말을 꺼냈다.
“무덤의 소유권이 그렇게도 필요하다면, 제가 넘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본 대표단 전원이 흠칫 놀란다.
한 줄기 기대감이 얼굴에 스쳤다가, 곧장 경계심으로 번진다.
나는 테이블 위에 깍지 낀 손을 조용히 포갠 채 입을 열었다.
“동백검, 주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협상 담당으로 보이는 인물이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선다.
그의 당혹감이 그대로 전해지는지, 통역사는 조금 더딘 목소리로 내 요구사항을 반복했다. 앉아있던 대표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답변했다.
“아, 그것은… 너무 어려운 조건인데요. 동백검은 우리 역사에서도 상당히—”
“아 네, 역시 어렵겠군요. 어쩔 수 없죠.”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마치 금세라도 자리를 뜰 듯 가볍게 몸을 뒤로 뺐다.
‘저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누군가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판매처를 하나 생각해 놨습니다.”
절대 그럴리 없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중국입니다.”
통역사가 번역한 그 말과 함께, 나른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찢길 듯이 바뀌었다.
이 세계에서 중국은 약 20년 전부터 아시아 각지의 역사적 영웅들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아노 또한, 당연히 그들이 노리는 대상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걸 중국에 넘긴다면, 자국의 영웅을 눈 뜬 채로 빼앗기는. 일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될 터였다.
더욱이, 이 세계관에서는 앞선 이유로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그려진다.
내 말이 온전히 전달되었는지, 건너편에 있던 한 위원이 노발대발하며 시끄럽게 소리를 높였다.
“뭐래요?”
통역사는 내게 전달했다.
“말도 안 된다고… 중국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네요.”
이 세상에서 말이 안되는 것은 없다.
나는 자세를 비스듬히 하면서 누웠다.
“아 모르겠다, 그냥 중국에다 갖다 팔아버리던가 해야지.”
안 주면 팔아버린다.
“길규씨~ 빨리 중국에 연락해주세요~”
동백검 줄래?
아니면, 동북공정 당할래?
이건 협박이기도 했지만.
내가 준비한 가장 강력한 카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