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나는 본래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쁜 편에 가깝다.
어릴 때부터 주먹다짐은 일상이었다. 싸움이 잦았고, 한 번 붙으면 끝장을 봤다.
덕분에 ‘쌈닭’이라는 귀여운 별명도 얻었었다.
내 사람이라 규정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그러나, 내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친절할 이유를 못 느꼈다.
이 흑백논리를 떨쳐낸 건 아마, 군대였을까. 나는 그때쯤 화를 억누르고, 착한 ‘척’ 하는 법을 익혔다.
거긴 내 사람이 없었거든.
그리고 이런 나의 성향을, 영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은, 훈련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었다.
몸이 둔한 것도, 머리가 무거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모든 것이 틀어졌다.
창이 기대만큼 뻗어나가지 않았고,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결국, 머리를 비우고 허수아비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생각을 지우듯, 감정을 털어내듯, 무작정 휘둘렀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연속으로 200개쯤 부쉈을 무렵, 폐허가 된 훈련장은 고요했다.
부러진 목재가 허공을 떠돌다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산산이 부서진 형체들이 내 주위에 잔뜩 떨어져 있었다. 손끝이 뜨겁게 떨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을 더욱 깊이 움켜쥐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마인은 강하다. 특히 간부급 이상은… 그저 사람의 형체를 한 괴물이다.
이래서, 등장인물들의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 수 있을까.
‘지킬 수 있나?’
나는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이해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몇 시간 고민했을까.
뒤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영감이었다.
“아… 오셨어요?”
나는 억지로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애초에 그런 태도는 영감 앞에서 무의미했다.
그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눈동자 속에 얽힌 감정들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 내면의 화를 완전히 억압할 필요는 없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찌 되었든, 그 또한 너의 일부이니.”
나는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억압할 필요 없다, 라….
나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내면을 들여다봤다.
불완전한 감정이 뒤엉킨 나의 깊은 곳.
끊임없이 들끓고 있는, 자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분노.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피로감이 깃든 무력감.
그 둘 사이에서 나는 늘 채찍질하며, 이를 억눌러왔다.
‘분노는 쓸데없는 감정이다. 초조함과 흔들림은 곧 약점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보다, 감정을 억누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영감의 말처럼, 억제할 필요가 없다면—
차라리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뜨겁고, 차갑고, 벅차고, 공허하다.
그러나 감정들은 예상과 달리, 나를 조종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 감정들을 조율했다.
억누르지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그저 흐름에 맡겼다.
감정이 뒤섞이지 않도록, 그러나 완전히 흘려보내지도 않도록.
미쳐 날뛰는 짐승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참아내는 부처도 아니다.
나는 감정을 가졌다.
그러나,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눈을 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3일이 지나 있었다. 영감은 내 뒤에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 고생했다.”
그는 짧게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
“그리고, 축하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내 눈앞에 떠오른 창을 확인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습득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귀신(鬼神)이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요한이 움직였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 내게 겨눴다.
마치, 자신이 진짜 용사라도 된 듯한 자세.
“조심하지 그랬어.”
그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갔다.
관중석에서 터지는 함성과 환호를 등에 업고,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익힌 후, 나는 감정의 동요란 걸 잊고 살았다.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그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았으니까.
“가끔 있다고 해.”
그는 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대련하다가 사고로 죽는 경우도.”
그러니 이런 저급한 도발에도, 마땅히 무감각해야 했다.
그런데.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내 안에서 완전히 조율되어 있던 감정 중, 하나가 튀어나오려 한다.
나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나는 본능적으로 내면을 살폈다.
‘…나.’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혹시.
‘화난 건가?’
너무 오랜만이라, 인지하지도 못했다.
마치 가라앉은 진흙탕 밑바닥에서, 질척한 오물이 떠오르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편린 이후인가? 아니면, 그 꿈을 꾼 이후인가?
최근 들어 감정 조절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끓어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요한이 검을 내리며 말했다.
“대체 누구 걸 건드리는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이건가?
방금 그 말 한마디에, 내 안의 무언가가 요동쳤다.
나는, 천여울을 내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캐릭터였고, 또 그에 맞는 애정을 가지고 대했으니까.
그리고 요한이 내 사람을 건드린다. 도구 취급을 하며, 내 사람을 뺏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레ㅡ 화가 난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지만, 최근의 나에겐 이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이것 또한 내 감정이니 받아들이겠다.
나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요한이 검을 뒤로 젖히며 마나를 사출했다. 순식간에 강화된 신체가 가속했다.
시야가 확장된다.
일체지각(一切知覺)의 발현.
어디로 공격할지는 뻔하다. 정면이겠지. 나름 용사니까.
나는 창을 가볍게 비틀어 쥐었다.
-챙!!
그의 공격로에 정확히 창을 갖다 댔다.
양쪽 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순식간에 펼쳐진 힘겨루기.
검날과 창날이 맞물려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요한이 마나를 폭발적으로 밀어 넣으며 검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정도.’
그러나 나는 적당히 그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었다.
요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여유롭던 표정이 서서히 당황으로 점철되어간다.
내 손끝엔 그의 손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요한의 검이 흔들렸다.
순간, 그는 눈을 좁히더니— 강하게 검을 틀어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걸 깨닫자, 바로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실수였다.
나는 틀어진 반동을 역이용해 몸을 회전시켜, 허리춤에서 창을 꺼내 들어 곧장 투창했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
정확히 머리로 쏘아진 창에, 순간적으로 기함하며 검을 들어 튕겨냈다.
일순간, 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창이 날아간 창사, 승기를 잡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틈이다. 전투를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가 창을 튕기는 바로 그 순간, 전신을 던져 파고들었다.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 워치를 순식간에 끌어올려 너클처럼 감쌌다.
-퍽!
그리고 그 너클이, 정확히 그의 옆구리에 직격했다.
“억!”
요한이 입을 벌렸으나,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머리 위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딱히 멈출 생각은 없었다.
다시 한번, 같은 자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으드득!
이번엔 깊숙이 들어갔다.
손등을 타고 전해지는, 놈의 뼈가 부러지는 감각.
요한의 몸이 크게 뒤틀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눈도 풀려있고, 이미 맥아리가 없다.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다.
나는 머리만 살짝 젖혀 검을 피했다.
그리고ㅡ 너클을 낀 주먹이. 이번엔 놈의 면상을 강타했다.
-으적!
선혈과 함께 요한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의 몸이 한순간 공중에 떴다.
그리고ㅡ
-쿵!
바닥으로 거칠게 내팽개쳐졌다. 그러나 나도 함께였다.
그대로 무너져가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으적!
그리고, 다시 한번, 면상을 찍었다.
-삐이이이이익!!
경기장을 울리는 시합 종료 신호.
나는 잠시 멈칫했다.
눈을 떠보니 요한의 신체는 이미 경기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놈의 실격패, 나의 실격승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선혈로 물든 주먹이 요한의 얼굴에 꿰뚫듯 내리꽂혔다.
-쾅!
충격에 그의 머리가 반동으로 바닥을 튕기듯 튀어 올랐다.
금이 간 타일 위로 흩뿌려진 피와 함께, 이빨 몇 개가 타닥 하고 튕겨 나갔다.
나는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에 감겨 있던 철제 시계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나 있었다.
잔해를 거칠게 풀어헤쳐, 바닥에 툭 던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관중석은 조용하다.
어색한 정적.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스, 승자는— 정해인!”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귀를 살짝 틀어막았다.
시끄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