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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훈련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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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 훈련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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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훈련장 중앙에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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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신경을 내면으로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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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은, 기본적으로 사한 것을 멸하는 마나를 가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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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 본래의 마나와 완전히 합일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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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마나에, 잉크를 덧대어 성질을 바꾸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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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경계를 허물고, 나의 모든 마나를 편린의 성질로 완전히 바꿀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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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의 수준과 정교함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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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까지나 예상의 범주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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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야 안다. 연구의 한 방향성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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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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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권능은 이렇게 맨땅의 헤딩을 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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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야 공략법이 있겠지만, 여기는 그런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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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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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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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등 뒤에서 나를 향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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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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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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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가득 찬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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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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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복 차림의 시온이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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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조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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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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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궁금한 게 생겼는지, 자꾸 질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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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좀 조율이 필요해 보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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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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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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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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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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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영웅들도 감지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런데 시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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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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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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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잘 보이는데. 내가 궁수라 그런지 눈이 좀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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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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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멍하니 묻자, 그녀는 씩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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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훈련복 틈새로 보이는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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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여, 되게 크고 뜨거운 거랑… 따뜻한 게… 뒤죽박죽 섞여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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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몸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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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또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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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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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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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담담히 제안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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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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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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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할아버지가 알려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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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뛰어난 영웅임과 동시에 영웅 육성의 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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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시온에게 별걸 다 알려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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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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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이상한 짓을 할 리도 없고, 정보의 출처가 영감이라면 신뢰도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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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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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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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는 내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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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 잠자코 그녀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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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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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 등 뒤에,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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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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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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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내 등 전체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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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이, 나를 뒤에서 그대로 끌어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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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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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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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팔이 내 가슴팍을 부드럽게 감싸고, 등에는 그녀의 부드러운 굴곡이 완전히 밀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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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로 시온의 턱이 얹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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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는 뜨거운 숨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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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간질이는 은은한 샴푸 향기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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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 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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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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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녀의 양 손바닥에서부터,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아주 맑고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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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분명 낯선 기운이어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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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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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집을 찾은 것 마냥 시온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몸 구석구석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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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기운이 부드럽게 내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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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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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따로 돌던 마나가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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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합일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운용이 편해졌다.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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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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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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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했는데, 시온의 조율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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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진짜 도움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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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이 끝났으니, 나는 당연히 그녀가 몸을 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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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등 뒤의 감촉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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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감싸 안은 시온의 팔에 아주 미세하게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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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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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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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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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한 손이 내 몸을 떠나 천천히 내 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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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턱을 감싸고, 거부할 틈도 없이, 내 얼굴을 옆으로 부드럽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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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시선은, 내 어깨에 턱을 얹은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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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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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에는 장난기라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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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속에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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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붉은 입술이, 내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아주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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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해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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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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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도… 그냥 동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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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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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시온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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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동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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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줘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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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애써 무시하고 있는, 지금 내 등 뒤의 이 감촉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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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한 시온의 몸이 더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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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자꾸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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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의 세월이 나를 막아서지만, 시온이 내 등을 떠미는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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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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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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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른침을 삼키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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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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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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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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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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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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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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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내 등 뒤에서 만족스러워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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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옭아매던 시온의 팔이 스르륵,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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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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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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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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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훈련장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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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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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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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착한 동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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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벙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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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텅 빈 세면실에서, 흐르는 물에 얼굴을 박고 정신없이 찬물 세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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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을 식혀야 했다. 열이 오른 머리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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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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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그저 지켜줘야 할 아이였던 하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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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느새, 다른 의미로 너무나도 많이 성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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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정해인은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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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이 맺힌 그의 얼굴 위로, 다른 여성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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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호텔 방에서, ‘그 다음.’을 속삭이던 천여울의 열기로 가득했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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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전 훈련장에서 보았던, 하시온의 눈빛도, 결국 그와 비슷한 성질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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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경매장에서 내게 시종일관 보이던 강아린의 눈빛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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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모두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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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유하나와 윤채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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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는 이것 또한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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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천여울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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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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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도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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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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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다시금 얼굴을 문지르며, 찬물에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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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하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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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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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져 있고, 심장은 터져 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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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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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갖다 박고, 또 도발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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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확장 권능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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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의도뿐이었던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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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폭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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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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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과 정해인이 함께 돌아온 그날부터, 그녀는 조바심과… 또 뭐, 패배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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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모르게 저지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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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대담했던 행동의 결과로 하시온은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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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은 방금 전의 순간을 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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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정해인이라면, 내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틀림없이 여유롭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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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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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렇게 말하며, 선을 쫘악ㅡ 하고 그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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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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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뒤에서 그를 껴안았을 때, 그의 등 근육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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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으로 점철된 그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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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장벽이 무너졌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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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말이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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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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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지막 관문만 넘는다면 이제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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