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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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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부로 강아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자 한다.

아무튼, 강아린은 나의 빛이자 지주였다.

정신적인 부분이든, 금전적인 부분이든.

150억이라는 거금을 이렇게 흔쾌히 내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녀로서도 쉽지 않은 지출이었을 것….

‘…….

아니다, 많이 쉬운 지출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꼭 갚을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었다.

그냥 날로 먹을 생각은 없었다.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갚고도 남을 금액이었으니까.

그러나 강아린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아린이 내 팔을 살짝 꼬집었다.

“아니.”

어느새 내 셔츠 소매를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내가 원해서 한 거야. 그냥… 선물이라 생각해.”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강아린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있잖아. 아까 말한 거.”

살짝 머뭇거리더니.

“네가 필요할 때 찾는 사람….”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진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어.”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지만, 그 마음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이미 강아린이었다.

챙겨준다는 이미지보다는, 알아서 잘하고 역으로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오히려, ‘더 이상 기대면 안 된다. 라는 생각으로 벗어나려고 했었다.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러다 버릇 나빠지는 거 아닌가.”

강아린이 내 말에 슬쩍 웃으며, 아예 몸을 조금 더 바짝 붙였다.

“괜찮아. 허락할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살짝 기대오는 무게와 팔에 닿는 온기가 전해졌다.

한 켠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절대 강아린이 몸을 딱 붙여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하태성은 무거운 분위기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짧게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오늘이냐.”

“예.”

나는 영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태성은 내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한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가더니, 이내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렀다.

탁, 담배 끝이 튀며 희미한 연기가 흩어진다.

“낯이 괜찮은 걸 보니, 떨리지는 않나 보군.”

오늘따라 평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

늘 무심한 척해도, 오늘만큼은 안색에서 미묘한 긴장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답했다.

“아니요, 긴장은 좀 됩니다.”

적어도 ‘진짜 문 앞’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미지의 세계다.

나로서도 긴장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를 위해서 여러 가지 대비를 해둔 셈이지만.

“…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아무도 못한….”

“성공할 겁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하태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하게 내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렸다.

그 손길에 씁쓸한 담배향이 가볍게 실려 왔다.

“다치지 말아라. 손녀 시집가는 건 봐야지.”

“시집은 무슨….”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지만, 그 속엔 분명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죠.”

하태성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

짧고, 묵직한 한마디.

그 말이 유난히 깊게 남았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에는 뱅퀴셔의 멤버들이 서 있었다.

최근 던전 공략에 성공했다고 한다.

푹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맞이하려고 나온 모양이었다.

멤버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때 같으면 가볍게 인사하고 흩어졌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무도 먼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녀올게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는다.”

박광철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툭, 내 어깨를 한 번 쳤다.

그 말과 함께, 다른 멤버들도 내 어깨를 하나둘씩 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응원이었다.

배려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난, 살짝 웃으며 한 명 한 명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시온이었다.

조용히 다가온 시온은 말없이 나를 꼭 안았다.

가벼운 체구지만, 팔에 감기는 무게는 확실했다.

귓가에 닿을 듯한 낮은 목소리.

“다치면… 안 돼.”

나도 모르게 시온의 등을 토닥였다.

“금방 다녀올게.”

짧은 포옹 뒤, 시온은 미련이 남은 듯 나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모두의 시선을 등에 지고.

이제는, 불을 넘을 차례였다.


협회 로비는 평소보다 적막했다.

오늘은 내 출입을 위해 별도로 동선까지 비워둔 듯했다.

“정해인 영웅님! 마지막 점검 준비 부탁드려요!”

나는 협회가 마련해준 대기실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장비를 하나씩 꺼내어 점검했다.

[야차(夜叉)의 연옥(燃獄)]

야차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도복은 눈부시게 새하얗다.

팔을 걷어 소매에 손을 끼워 넣자, 도복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게 내 몸에 맞춰 수축했다.

옷깃을 고쳐잡으니, 피부와 옷 사이에서 기묘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그 위에 검은색 장포를 덧댔다.

다음은 내 무기.

알데바란의 송곳니, 카타스트로피.

한 손으로 손잡이를 툭툭 두드려 감각을 익혔다.

등에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챙긴 아티팩트.

[구원의 나침반]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올바른 길을 가리킨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속 장치가, 손끝에서 미세하게 진동했다.

경로를 잃으면, 이 녀석이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이다.

[마그마 부스터]

[주변 열을 흡수해 방어막으로 치환합니다.]

뭐 이런 것도 있긴 한데,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도복이 견디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니까.

“끝났습니다.”

나는 협회의 직원에게 말했다.

한 번씩 손으로 눌러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나는 모든 점검을 마치고, 곧장 협회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아마 내부에서의 시간은 바깥의 시간에 비해 극도로 빠르게 흐르니까.

그러니까, 모든 것을 치르고 나온다고 해도, 시간은 얼마 흐른 상태가 아니다.

내 등 뒤로 문이 스르륵 열렸다.

입구는 투박한 돌로 된, 소박한 문이었다.

오래된 성의 비밀통로처럼, 중앙에 조그맣게 열쇠 구멍만 뚫려 있었다.

“여기 있네.”

나는 협회장에게 열쇠가 담긴 큐브를 받아들였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길 바라겠네.”

협회장의 짧은 응원이 뒤따랐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손에 큐브를 쥐었다.

그리고 즉시.

  • 쨍그랑!

마나를 주입해 큐브를 깨트렸다.

유리가 깨지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안에 있던 열쇠가 바닥을 타고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손에 쥔 순간부터 열쇠에서는 미약한 열기가 전해진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열쇠를 구멍에 천천히 끼웠다.

차가운 금속성의 마찰음이 손끝에 감긴다.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자마자, 벽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 찰칵.

잠금이 풀리며, 벽면 전체가 서서히 갈라졌다.

“큭….”

곧이어, 틈 사이로 미친 듯한 열기와 함께 진홍색의 빛줄기가 새어 나왔다.

문 너머의 불길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는 것 같았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한 걸음 내딛는 것으로도, 화산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화염과 열기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찢어버릴 듯 밀려온다.

한 번 숨을 고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도복을 한 번 더 여미고, 등 뒤의 카타스트로피를 다잡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흐른다.

‘견뎌.

나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불가람의 공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시각, 아르카디아 교단.

거대한 성당의 돔 아래, 끝없이 펼쳐진 회의장의 긴 원탁.

의견은 갈라지고, 목소리는 점점 높아진다.

늘 그렇듯 성녀파와 용사파는 서로의 신념을 내세우며 설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여울에게 이런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지루하고 현학적인 시간일 뿐이다.

긴장감은 없었다.

창밖에는 아침빛이 들어오고, 여울은 조용히 책상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한쪽 귀로는 목소리를 흘려듣고, 다른 쪽 시선은 몰래 워치 화면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언제 연락해 주려나.

슬슬 바티칸으로 갈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그녀의 시야 한가운데로 커다란 시스템 알림창이 떠올랐다.

[불길이 피를 삼키고, 쇳물이 심장을 두드리는 곳. 불가람(不伽藍)의 공방이 마침내 새로운 주인을 시험한다.]

화려한 붉은 글씨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오늘이구나.

천여울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정해인은 공방에 입장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올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정말인가?”

그러나 교단 내부는 떠들썩해졌다.

성녀 측의 분위기는 평온했지만, 용사 측, 특히 주교인 성영일이 벌떡 일어났다.

그야, 다음 불가람에 도전하는 자는 요한.

이미 내부적으로 그렇게 예상했었으니까.

용사측은 그대로 뒤집어졌다.

“이게, 이게 무슨 소리요!”

급히 워치를 들어 부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뭐…? TV…?”

리모컨을 집어 TV를 켜는 순간, 교단 내의 모든 시선이 스크린에 집중된다.

화면에는 긴급 편성된 협회의 공식 브리핑이 흘러나온다.

협회장이, 묵직한 표정으로 대본을 읽기 시작한다.

  • 일전 사도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을 불가람의 공방에 새로운 도전자로 임명했으며,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용사파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제기랄!”

성영일은 그대로 워치를 바닥에 던졌다.

방송의 의미는 단순했다.

“대체 누구야!”

협회가 공식적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 주역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

요한의 얼굴 또한 점차 일그러졌다.

곧이어, 협회장의 음성이 다시 스피커를 타고 퍼졌다.

  • 그 대상은, 일전에 묵귀(黙鬼)로 불리웠으나….

화면이 전환된다.

백색 도복과 검은색 장포를 입은 소년의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 어두운 귀신이라는 이명을 떨치고, 이제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영웅, 정해인입니다.

순간, 교단 내부는 정적에 휩싸였다.

그 사이, 오직 한 명.

오직 천여울만이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행복하게 속삭였다.

“잘생겼다아~”

입가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생글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