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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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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중앙 단상 위로 사회자가 올라오자, 각 방의 불빛이 한꺼번에 작아졌다.

한쪽 쇼파 중앙에는 푸른 빛의 태블릿이 곧바로 켜졌다.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기계 장치였다.

  • 스윽, 스윽.

방이 어두워지자 강아린은 쇼파 끝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며 살짝씩 내 쪽으로 바짝 붙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태블릿 화면만 바라보다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더 와. 거기서는 잘 안 보이잖아.”

그녀는 시치미를 떼듯, 조금 더 내 쪽으로 몸을 붙였지만….

아예 어깨를 확 잡아끌어다가 바로 옆에 앉혔다.

어차피 내 쪽으로 와야 태블릿을 조작할 수 있었으니까. 단상도 기둥에 가려 잘 안 보이기도 하고.

강아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고 태블릿을 괜히 조작하는 척 리모컨을 집었다.

버튼을 하나씩 누르며 화면을 돌린다.

그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강아린은 내 쪽을 슬쩍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오늘 노리는 게 뭐야?”

“방열복.”

강아린이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 불이라도 끄러 가게?”

장난기가 잔뜩 담긴 말투.

“…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아린은 한동안 내 얼굴을 지켜보다가, 곧바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줄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아린이 함께 오긴 했으나, 그녀에게 기댈 부분은 입장까지다. 솔직히 입장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경제적인 부분까지 그녀에게 기댈 생각은 없었다.

“흐응… 그래?”

강아린은 잠깐 입꼬리를 올리더니, 다시 시선을 사회자 쪽으로 돌렸다.

“혹시라도 마음 바꾸면 바로 말해.”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든든해지는 말이었다.

사회자가 단상 중앙에 서서 손짓하자 방마다 조명이 순식간에 꺼졌다.

강아린의 기분 좋은 온기만이 내 옆에 느껴졌다.

  • 탁.

단상 위에 놓인 작은 스포트라이트가 경매품 하나를 밝혔다.

[용골 각반]

품격 있는 진열대 위에, 번뜩이는 각반 한 쌍이 올려졌다.

사회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간다.

“첫 번째 품목입니다. 고룡의 뼈를 소재로 하고, 고위 마법이 새겨진 각반,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장인이 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꽤 괜찮다.

옥션이랑은 그 질부터가 달랐다.

설명이 이어지고, 입찰이 시작됐다.

  • 띡.

  • 띡.

입찰에 참여한 방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11억 2천만, 11억 4천만, 11억 6천만….”

그리고 낙찰이 결정되는 순간, 그 방의 조명이 한 번 더 번쩍, 밝아졌다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다음 품목들이 차례차례 올랐다.

[청은의 망토]

[세인트 마르코의 브로치]

각 품목이 등장할 때마다 어떤 방은 불이 잠깐 들어왔다가 금세 꺼지기도 했다.

경매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을수록, 홀의 공기는 점점 더 팽팽해졌다.

그러다.

[야차(夜叉)의 연옥(燃獄)]

드디어 왔다.

내가 기다리던 물품.

나는 일체지각을 사용해 정보를 확인했다.

[지옥불에 잠겨 천 번을 태워도 사라지지 않았던 연화의 도복.]

[기본 효과]

[초월급 화염 내성]

[마나 증폭, 순환]

[특수 효과]

[절명의 재생]

[저주성 마력 동화 및 흡수 가능, 마나로 전환]

야차가 지옥불에 불타오르며 남긴 유산.

화염에 내성이 있음과 동시에, 신체를 녹이는 저주성 화염을 순간적으로 흡수해 마나로 치환까지 해준다.

반드시,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빠르게 입찰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러나 순간, 내 손등이 따뜻한 감각에 덮였다.

강아린이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작은 속삭임을 귓가에 흘렀다.

“조금만, 천천히.”

본능적으로 급하게 달려들려 했던 자신을 자각했다.

아무래도 경매 경험이 없다 보니, 서툰 티가 났던 모양이다.

  • 15억… 15억 1천만원….

사회자가 천천히 금액을 읊는다.

야차라는 네임드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화력은 저조했다.

그야 탐지형 권능을 보유한 게 아닌 이상 완벽한 성능을 파악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 덕분에, 낙찰 경쟁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

강아린이 다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응. 지금부터 살짝씩… 한 번씩… 부드럽게 찔러줘.”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조금씩 금액을 올려 입찰했다.

조금 느긋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응… 지금 느낌 괜찮아.”

  • 18억… 19억… 20억….

점점 입찰 빈도가 줄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세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과감하게 버튼을 눌렀다.

  • 25억… 25억… 25억… 10초 후 마감됩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다른 방들은 조용했다.

이렇게 쉽게, 정말로?

  • 띡.

[낙찰 완료.]

태블릿이 위에 글씨가 떠 올랐다.

그리고 방 안의 불이 꺼졌다.

강아린은 내게 속삭였다.

“처음인데 좋았어.”

나는 강아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 덕분이네.”

그녀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대충, 감을 잡은 느낌이다. 경매 특유의 리듬이 조금씩 몸에 익어가는 듯했다.

경매는 계속 이어졌다.

방열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스트를 더 살폈다.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고, 워낙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으니까.

[마그마 부스터]

[주변 열을 흡수해 방어막으로 치환합니다.]

예상보다 싼 값, 5억에 낙찰.

이 정도면 진짜 방열만큼은 확실하게 대비가 됐다.

이제 길을 찾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마땅한 게 없나 싶었으나….

그때, 사회자가 또 하나의 유물을 들고나왔다.

[구원의 나침반]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올바른 길을 가리킨다.]

이름도, 설명도, 지금의 나에게 딱 맞았다.

경쟁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다.

이걸로 진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쇼파에 기댄 채, 태블릿에 표시된 낙찰 목록을 천천히 훑었다.

강아린이 슬쩍 내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

“만족해?”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응. 이 정도면 완벽해.”

내가 원하는 물건은 전부 끝났다.

이제 남은 경매를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

다음 물품.

그때, 사회자가 작은 케이스를 올렸다.

[위그드라실의 씨앗]

“위그드라실…?”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위그드라실은 세계수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고목이다.

신성함은 기본이고, 그 씨앗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지금 위그드라실은 작살이 났다는 것.

악신에게 있어서 가장 견제되는 것은 신성한 기운을 가진 랜드마크.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위드그라실이었다.

따라서 과거 악신의 태동과 함께, 즉시 작살을 내놨다.

그런데 그 전신이자 유산이 여기 경매장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토리상 마인의 손에 있어야 했다. 강아린의 오빠가 마인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넘겼어야 했으니까.

필요하다.

격하게 필요하다.

문제는 가격이다.

내가 준비한 총 예산은 100억.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물품은, 그렇게 비싸지 않을 테니까.

따라서 이것도 솔직히 말해 넉넉했고, 실제로 70억 가까이 남았다.

그런데 저 씨앗은 다르다.

경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곳저곳 방의 조명이 한꺼번에 켜졌다.

수많은 경쟁자들이 단번에 반응한 것이다.

강아린이 내 어깨 너머로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어머… 입찰하는 사람이 좀 많네?”

“…….”

가격은 순식간에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 50억, 지금부터는 단위가 5천만원입니다.

큰일이다.

진짜 큰일이다.

저 씨앗은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태블릿의 입찰 버튼을 바라봤다.

[60억]

[65억]

[70억]

멈춰 제발.

머릿속으로 빌었지만, 숫자는 아무런 자비도 없이 올라갔다.

방마다 조명이 번쩍였다가, 순식간에 꺼진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진다.

“80억! 85억! 90억….”

내 머릿속에서도 숫자가 연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숫자는 100억을 가뿐히 돌파했다.

무리였다.

나는 태블릿에서 손을 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내 옆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몸을 바짝 붙였다.

강아린이었다.

“무슨 고민 있어?”

강아린이 늘 내게 해왔던 말.

그러나 귓가에 닿는 숨결이 너무 가까웠다. 손끝이 살짝 내 허벅지 위를 스친다.

강아린이 내 귀에 바짝 대고,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음… 이번에도 아마,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120억… 120억… 120억… 10초 후 마감됩니다!

태블릿에 떠오른 금액은 120억, 가치를 생각하자면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었다.

  • 톡, 토톡.

강아린은 태블릿에 거침없이 150억을 입력했다.

그리고, 귀에 낮고 느릿하게 속삭였다.

“대신 나한테 약속 하나만 해줘.”

“약속…?”

“뭔가 안 풀리고, 힘든 게 있으면… 꼭 말하는 거야. 도와달라고. 특히, 나한테.”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를 바라보려 했으나, 강아린은 내 어깨에 턱을 얹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원래 성격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굴을 파고 들어가서 고민하는 타입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 5…! 4…!

“그럴게….”

결국 약속해버렸다.

  • 띠딕.

[150억 입찰하셨습니다.]

  • 150억… 150억… 150억… 10초 후 마감됩니다!

강아린은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얹은 채, 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잘했어, 그런데 약속은 꼭 지켜야 해.”

[낙찰 완료]

경매가 끝나는 순간, 방 안의 불이 스르륵 꺼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아린을 바라봤다.

“안 지키면….”

희미한 빛이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반사된다.

“상상에 맡길게.”

목소리에는 섬뜩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이걸로, 경매는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