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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이미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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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남겨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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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는 모든 교육과정이 끝났고, 성적도 모두 정리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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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곳곳에선 이미 짐을 싸고 떠나는 학생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1학년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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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방학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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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온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는 계속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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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곳의 훈련 시설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최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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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하는 1학년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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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나의 계획 역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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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계획은 잔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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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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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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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나는 캠퍼스를 따라 러닝 코스를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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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변함없이 유하나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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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학기 동안 이슈가 없는 이상 늘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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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오래된 파트너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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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러닝을 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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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 목표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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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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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의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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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不伽籃)의 공방에 입장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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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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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성격이 특이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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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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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반드시 더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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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이 있는 나는 최소한의 조건을 달성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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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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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의 편린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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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의 보상은 어쩌면 이 두 번째 목표를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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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는 셋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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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선별해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내 옆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유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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뜀걸음이 끝나고,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유하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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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방울이 그녀의 이마를 따라 반사되며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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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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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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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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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말했던 거,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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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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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대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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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방학 때 같이 가기로 했던 거, 혹시 일정 변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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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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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도 워낙 바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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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일정에 차질이 있으면 안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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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급적 어떻게든 데려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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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리든… 아니면 끌고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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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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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말을 늘리며, 이내 조심스레 내게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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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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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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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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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 방학에 아버지께 승계받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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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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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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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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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는 유 가(家)의 전통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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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가 소가주에게, 즉 다음 세대에게 공식적으로 가주의 자리를 넘기는 일종의 통과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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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 가주와 소가주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공동(空洞)에 들어가 오로지 대련만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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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주가, 현 가주를 이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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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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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이벤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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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2학년 무렵에나 치르는 게 일반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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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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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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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유하나의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알아챈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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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이자 아버지인 유무진 또한, 그 사실을 알아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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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의 실력은 이미 예상을 훌쩍 넘어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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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곡선이 워낙 가파르니, 유무진 입장에서도 더 미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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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실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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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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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니,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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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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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상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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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싫은 건 아니야. 절대로.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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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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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가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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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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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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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설령 나랑 가기 싫다고 해도, 내가 유하나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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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만 아니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리고 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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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유하나는 한 차례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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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급하게 다음 대상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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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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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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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한명을 골라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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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등교 전, 기숙사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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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며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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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결국 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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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정해인의 제안을, 한 번 더 고심 끝에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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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결코 사적인 욕망이나 거짓된 핑계로 밀어낸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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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아버지가 승계 의식을 앞당겨 잡아 제안한 것은 사실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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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유하나가 미치도록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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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좋았다. 결국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미친 척하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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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마음 한 켠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안은 금세 달콤한 쾌감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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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아직도,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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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그녀는 정해인의 두 번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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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이든, 마음이든… 더 나아가 혹시나 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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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두렵기보단 오히려 온몸이 들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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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죄책감과, 짜릿한 금지의 설렘이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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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단순히 게임 후유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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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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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부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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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녀의 취향과, 관념이 망가졌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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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독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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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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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 누구보다 환장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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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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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여행 안 가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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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워치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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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를 덮으니, 불이 붙은 듯 미친 듯이 메시지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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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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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깨달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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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훈련하다 깨달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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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습득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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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그녀들은 정해인에게 편린의 자격을 보이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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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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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연달아 울려대는데도, 그녀는 슬쩍 웃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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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아직도,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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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방문했었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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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번째 입장이 허락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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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히 말하지만, 가온에서는 뭐 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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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좀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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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으로 윤채하 좀 괴롭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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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좀 먹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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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윤채하 좀 괴롭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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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성지 방문이 더더욱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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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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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양질의 훈련을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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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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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워치에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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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나 영약 챙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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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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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보상으로 모두에게 지급된 영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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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했지만… 오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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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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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오늘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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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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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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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ef_]: 오늘은 옷 좀 제대로 입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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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는 피부가 공기에 닿는 면적이 옷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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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때의 나는 돌부처였기에 상관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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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좀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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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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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_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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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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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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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알림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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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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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입구에 다다르니, 내부는 차가운 새벽 공기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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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은근히 퍼져나오는 온기와 신성력이, 몸 구석구석을 조금씩 녹여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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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대리석 문이 눈앞에 닿을 즈음,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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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딜 봐도 천여울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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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처에 대기 중이던 사제에게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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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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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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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입장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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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입장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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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기다리니, 거대한 대리석 문이 묵직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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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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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과 동시에 문은 곧장 천천히 닫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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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을 바라보니, 넓고 맑은 공간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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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다소곳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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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확실히, 성지 안임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단정한 옷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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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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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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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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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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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안은 묘하게 무겁고, 동시에 차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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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불경한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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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훈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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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차오르다 못해 부족할 때까지 분위기에 이끌려 몸을, 마음을 모두 혹사시키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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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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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십 분이 지나자, 몸 여기저기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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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이라 무리했더니, 아주 피곤해 죽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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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결국 녹초처럼 누워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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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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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큰 목적 중 하나는 천여울의 관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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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녀가 편린을 받아들일 만한 상황인지를 확인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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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천여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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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와는 다르게, 천여울의 임계점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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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얼 태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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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그녀의 독자적인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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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술의 파편이라도, 설령 초입이라도, 실마리만 붙잡는다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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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렇기에 그녀의 순서는 미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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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고차원적인 영역의 기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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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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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직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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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천여울이 조용히 숨을 내뱉고,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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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그녀의 왼손 위로 법진이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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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정결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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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성법(聖法)의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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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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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진을 전개하는 것은 이미 숙달이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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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도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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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순간 천여울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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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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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의아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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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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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지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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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날카로운 마법이 공기 중에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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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성법을 펼치는 동시에 파란색 마법진을 형성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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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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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모르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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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태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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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듀얼 태스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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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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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극도로 집중한 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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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두 법진이 동시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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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지지지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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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빛이 튀며 두 법진이 동시에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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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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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작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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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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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남는 듯, 아쉬운 눈빛으로 손을 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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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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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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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는지, 순간 당황스러운 듯, 금세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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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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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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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티아라 쓰고 나서 성력이 늘어났거든… 그래서 뭔가 번뜩였달까? 요즘 계속 연구하고 있었어. 아직 잘 안되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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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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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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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유하나, 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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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가장 많은 보조와 지원을 받았던 게, 바로 천여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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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노의 십자가부터 티아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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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아티팩트를 흡수했고, 그 막대한 양의 성력과 마나를 전부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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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천여울을 과소평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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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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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많이 집중했는지 온 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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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땀에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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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숨을 가다듬으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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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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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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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여행의 대상은 정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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