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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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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예상했던 이야기 쪽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어떠세요?”
눈앞의 귀족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자신이 거절당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은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그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은 없었어도, 적어도 꺾을 생각은 없었다.
순간, 옆에 있던 강아린의 시선이 정해인을 찔렀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미묘하게 붉어진 귀끝이 그 감정을 대변했다.
정해인은 잠시 침묵했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영광이긴 하지만… 저는 아직,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하시온의 얼굴에 짧은 당황이 스쳤지만, 곧 미소로 덮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언젠가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잖아요!”
이 분위기를 이대로 두면 이상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정해인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일단, 먼 길 오셨으니… 식사라도 하고 계시겠습니까?”
영애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그럼요.”
그때, 영애는 고개를 돌려 기사를 바라봤다.
강아린도 잠깐 망설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저택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해인과 일행은 그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해인은 적어도, 영애의 제안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각 저택 내부.
내부 거실에는 이미 차 한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애와 그 기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는 뜻.
유하나는 창문 너머로 농가를 바라보며,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입가엔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액자를 깔끔히 닦던 천여울이 그녀에게 물었다.
“매일 오시는 이유가 뭘까요?”
천여울의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유하나는 짧게 웃었다.
“아시잖아요?”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은근한 긴장과 여유로 가득했다.
게임 바깥이면 몰라도 사실, 이 세계의 천여울은 집까지 찾아온 손님을 함부로 내쫓을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마을을 발전시키고자 직접 움직이는 영주였다.
남편에게도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니,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뜻.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겠다… 이런 거 아닐까요?”
영주인 유하나가 계속 찾아오는 다름 아닌 이유.
일종의 허락을 위해서였다.
일부다처가 당연시되는 이 세계.
매력적인 남성에게 여러 여성이 달라붙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을 누구와 나누든 법적으로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막말로, 만약 허락을 구하지 않고 남자를 구슬려 거사를 치른 뒤에 임신한 채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천여울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예를 갖춰 방문하는 것 자체가 드물 정도였다.
굳이, 굳이, 따지자면 양심 있는 행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천여울이 뭐라 대답하기 전… 누군가 들이닥쳤다.
“실례합니다~”
문이 활짝 열리며, 앳된 목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천여울과 유하나는 동시에 등을 돌렸다.
하시온은 잠깐 집안을 훑더니, 두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입꼬리에 미소를 머금고, 마치 무도회장에 입장한 듯한 태도로.
“안녕하세요? 혹시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정해인 씨의 부인이신가요?”
상냥한 톤으로 묻는다.
오는 길에 들었다.
아내가 있다고 했다.
솔직히 상관없었다.
실망한 쪽은 오히려 강아린.
‘둘 다 예쁘긴 하네?
시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둘 중 누구든, 혹은 둘 다 아내던, 상관없었다.
사교계의 장미. 하시온.
공작가의 영애로 타고난 수완과 욕망은 어떤 일을 벌여도 성공했고 원하는 건 반드시 갖는 스타일이었다.
이번 블루베리도 마찬가지.
그녀는 특유의 추진력과 화법으로 단숨에 아버지, 공작을 설득해냈다.
자신감이 있었다.
이 집에 아내가 몇이든, 그에게 관심을 둔 사람이 몇이든.
자신이 진짜 승자가 될 거란 믿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녀는 정해인이란 자에게 꽂혔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꼭 가져야만 했다.
“…….”
그렇게 불편한 식사가 시작됐다.
식탁 위에는 차려진 음식이 가득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혀 푸근하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속내를 감추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시온이 포크를 먼저 들었다.
품위 있게 음식에 손을 대며, 천여울과 유하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미 천여울이 아내이고, 유하나가 영주인 것까지 들었다.
입꼬리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 참 마음에 들어요. 영지로 직접 오시지 않더라도… 블루베리처럼 뛰어난 작물을 보기 위해, 본가에서 직접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 중이에요.”
하시온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조율도 필요하고, 앞으로 현지 사정도 익혀야 하니… 잠시 이 집에, 방 두 개만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 보상은… 충분히 할게요.”
정해인이 무의식적으로 컵을 들었다 놓으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천여울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쥔 컵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잔잔하게 웃는다.
“저희 집은 언제든 열려 있어요. 다만… 한 가지, 조심스레 부탁드릴 게 있어요.”
하시온이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천여울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작게 속삭이듯 덧붙였다.
“저녁 아홉 시 이후로는… 복도로 나오지 않는 게 좋으실 거예요. 저희가 아직 신혼이라… 민망한 소리가….”
적막이 흐르고, 식탁 위로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다소 노골적인 선언이었다.
“아하… 네, 그럼요. 조심할게요.”
하시온은 잠시 멈칫하다가, 곧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숨막혀.
그리고, 정해인은 그 분위기 한가운데에서 포크를 쥔 채 묘하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최근 영주인 유하나부터 자꾸 여자가 늘어나는 기분이다.
물론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건 영주인 유하나였다.
잔을 내려놓고 정해인 쪽으로 다가오더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 쪽.
따뜻한 입술이 정해인의 뺨에 살짝 닿았다.
“내일 봐요.”
그녀의 출신 지방에서는 흔히 있는 인사라고 한다.
정말로 그 지방의 풍습인지 진위를 판별할 길이 없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뒤이어 하시온과 강아린도 자리를 정리했다.
영애는 눈을 반짝이며 정해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녁에 봬요! 농부님.”
여러 협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영주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마침 영주인 유하나가 집에 있었으니 일사천리였다.
잠시 후, 손님들은 모두 유하나를 따라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지자, 비로소 집 안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어후….”
정해인을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새 집안에 사람이 늘었다. 매일매일 손님, 쉴 틈이 없었다.
“자꾸 미안해. 바쁠 텐데 요즘 자꾸 사람을… 읍.”
말끝이 닿기도 전에, 천여울이 정해인의 입술을 강하게 덮쳤다.
처음엔 짧게, 그리고 곧장 깊게 파고들었다.
“헤에… 흡.”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맞닿는다.
혀끝이 살짝 입술을 훑으며 자국을 남긴다.
그녀의 손이 정해인의 목덜미를 붙잡고, 허리를 감싼다.
이젠 아예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몸 전체로 감아올리듯,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했다.
“하아….”
천여울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진다.
두 볼이 상기되고, 촉촉해진 입술로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을 깨문다.
정해인은 저항할 틈도 없이 그 열기에 빨려들었다.
몇 분 동안, 오로지 키스만.
거실에는 점점 뜨거운 숨소리만이 가득해졌다.
천여울은 숨이 모자란 듯 헐떡이면서, 그러다 한순간 눈을 치켜떴다.
“따라와요….”
숨을 몰아쉬며, 정해인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 질질.
정해인은 그대로 방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 찰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곧바로.
- 으윽.
무언가에 세게 눌린 듯, 터져 나오는 낮은 목소리.
- 하으… 사랑해요….
간간이 섞여 나오는 속삭임.
천여울의 경고처럼, 비록 9시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도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만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
- 지지지직.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
윤채하는 이미 주사위를 굴리는 건 잊었다.
“…….”
그저 천여울과 정해인이 잔뜩 키스하고.
함께 들어간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실제로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으윽.
- 하으… 사랑해요….
그저 음성만 들려올 뿐.
자꾸만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손끝과 발끝까지 퍼지는 전류 같은 감각.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더 짙게, 또렷하게 그녀를 감싼다.
마치 자신이 저 장면 한가운데에 들어선 듯, 몸이 뜨거워지고, 숨이 자꾸 짧아진다.
부끄러움과 묘한 열등감이 뒤섞여 마음이 불편해졌다.
“…….”
책상 위에는 멈춰 선 주사위 하나.
그 불편한 열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윤채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다.
​말로 할 수 없는 갈증 같은 것을 포함해,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러나 손을 움직인 그 순간.
- 툭.
"?"
윤채하의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본래의 계획한 목적지는 아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주사위가 툭,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12!]
[당신은 결국, 그 위대한 존재의 심연에 닿고야 말았습니다.]
[배드 엔딩 조건 충족 : 위대한 크툴루, 잠에서 깨어나다.]
[크툴루가 마왕을 무한히 복제하며, 세상 모든 생명체를 불태웁니다.]
[모든 언어가 붕괴되고, 모든 존재가 꿈틀거리는 어둠 속에 잠식됩니다.]
[이 게임은 3분 후, 모든 의미와 함께 종료됩니다.]
“… 어?”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방 안은 어두웠고, 여신은 마지막 나레이션을 조용히 읊었다.
윤채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엔딩을 흐린 눈으로 바라봤다.
“나도… 나도….”
패배감과 허무함.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만이.
가슴속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