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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자의 공간은 조용했다. 대화는 없었다.
아무도 먼저 말하려 하지 않았고,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 정적을 깨는 작은 탄식.
“… 아?”
화면 너머, 정해인이 히든 포인트에서 나오는 장면이 비쳐졌다.
문이 열리고, 그가 문턱을 넘었다.
그 순간, 누군가 작게 숨을 삼켰다.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공간.
그러나 탈락자 중 누구도 시험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말해, 정해인은 부활을 포기했다.
유하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채 앉아 있었다.
부활에 대기하고 있었던 그녀 나름의 자세였다.
그러나 그 자세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계속 그렇게 앉아있으면 되겠다.”
옆에 앉은 하시온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비웃는 듯한 어조였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그녀 또한 선택받지 못한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아….”
기말고사 후의 여행.
그것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공수 교대 시작.]
[현재 인원]
[청팀 77명] VS [백팀 101명]
[점수 현황]
[4200점] vs [3010점]
[5분 후 공수가 교대됩니다.]
[마지막 교대입니다.]
워치 좌측엔 탈락자 현황이 떠 있었다.
[랭킹 1위 강아린]
[랭킹 5위 유하나]
[랭킹 4위 천여울]
[랭킹 19위 하시온]
[랭킹 없음 윤채하]
“이야….”
나는 워치를 내려다보며 짧게 감탄했다.
아주 개판이었다.
이번 교대가 끝나면, 모든 시험이 종료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마지막 전투, 최종 수비.
정상적이라면, 이 타이밍에 수비 쪽이 점수에서 앞서야 했다.
상대의 공격을 막기만 하면 이기는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밀렸다.
청팀 4200점.
백팀 3010점.
1000점이 넘게 차이가 난다.
그도 그럴 만하다.
예상치 못하게 상위권 인물들이 대거 탈락했다.
강아린과 하시온 또한 보스에게 도전하다가 탈락했으니.
청팀도 백팀도 많은 전력을 잃었지만, 차이는 남은 인원의 '질'이었다.
백팀에 남은 핵심은 단 한 명.
랭킹 2위, 요한.
그에 비해 청팀은 랭킹 3위 신현우, 그리고 주서준이 건재했다.
그 둘이 이끄는 청팀은, 수비하는 와중에도 성실하게 점수를 벌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금색 방울의 보스 공략까지 성공하며 대량 점수를 확보한 것이다.
그 결과, 백팀은 지금부터 공격을 막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뒤처져 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뻔했다.
‘보스 공략.’
유일하게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수비라는 건 원래 인원의 탈락을 전제로 둔 턴이다.
어차피 분명 여럿은 탈락당한다.
보스를 잡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은색 방울로는 부족하다.
금색 보스를 공략한다고 해도 점수 역전을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의 목표는 하나가 됐다.
검은색 방울인 유세린.
“아… 피곤하네.”
절대 공략하고 싶지 않던 대상이었다.
게다가 마음이 맞는 팀원도 없다.
“나중에 혼 좀 나자.”
내 말도 안 듣고 유세린에게 도전한 천X울 양과 윤X하 양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워치를 꺼내 지도를 펼쳤다.
공동을 중심으로 유세린은 시계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아무리 봐도… 정면은 무리다.
유세린의 특성상 상하좌우 구분 없이 모든 방어가 가능하다.
카테나치오의 완벽한 상극이었다.
단, 완벽한 사각인 등 뒤를 제외하면.
“팀이 있었으면….”
팀원이 앞에서 그녀의 관심을 끌고, 내가 뒤에서 공격하는 방식을 채택했겠지만.
이미 늦었다.
팀은 없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지도 위의 진입 경로들을 차례로 훑었다.
“··· 어?”
잠깐만.
굳이 팀원이 아니어도 상관 없는 거 아닌가?
전투를 먼저 열고, 시선을 끌고, 혼란을 유도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누군가가 해준다면.
분명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고, 또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그리고 지금, 불리한 팀의 점수를 뒤집기 위해서라면 뒤도 안 보고 갖다 박을 사람이.
네가 힘 좀 써줘야겠다.
‘요한.’
그를, 이용하면 된다.
나는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그렸다.
공격팀의 눈을 피해 모인 숲속.
그들 사이에서 짧고 무거운 대화가 오갔다.
“… 진짜 해야 하는 거지?”
떨리는 목소리.
“당연하지.”
요한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단호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요한과 그가 이끄는 크루세이더.
팀원들은 숲속에 보여서 토론하고 있었다.
모든 학생을 어우르며 단체로 이동하는 청팀의 주서준과 달리.
요한은 자신에게 잘 보이거나, 또 성에 차는 사람들만 팀을 이뤘다.
[4200점] VS [3010점]
결국 워치 속 점수는 잔인하게 현실을 드러냈다.
이쪽 또한 유세린을 잡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설마 가온이 못 잡을 수준의 보스를 넣지는 않았을 테니.
그들이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인원은 다섯.
만약 주서준이나 다른 청팀에게 걸리면 큰일이다.
공수가 바뀌자마자, 공동에서 나오기 전에 바로 노린다.
그게 그들의 전략이었다.
숲 너머, 검은 연기가 지면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세린이 이동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진영 갖춰.”
“진입하자마자 바로 섬광이야.”
“최전방은 요한.”
하나둘씩 전략을 이야기한다.
요한은 조용히 검을 뽑았다.
“앞장선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섯 명의 그림자가 검은 안개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느낀 유세린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떴다.
팔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허공에서 사슬이 얽혀 뚝뚝 떨어지듯 흩어졌다.
아까보다는 명백히 적은 사슬의 개수.
이번 상대는 수비팀이었다.
“… 으휴.”
가볍게 몸을 풀며 중얼거렸다.
“한 번 더 오나 보네?”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싸웠다.
그것도 심지어 리미트를 푼 상태로.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 정도 싸울 것이라 여겼는데.
학생들의 승부욕은 그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천여울 윤채하.
강아린 하시온.
절대 깃털처럼 가볍게 떨어뜨릴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리미트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강했고, 예상보다 오래 버텼다.
몸이 약간 무겁다.
평소 같으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피로가 몸 끝부터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 피곤하네.”
그녀는 부드럽게 손등을 쓰다듬었다.
검은 사슬이 다시 손목 주위에 얽히며 또아리를 틀었다.
일정한 간격.
맞춰진 발소리.
“다섯?”
진영이 잘 갖춰진 팀이었다.
유세린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때.
“섬광!!”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을 집중하자, 지면 아래로 흐르던 검은 연기가 그대로 몸을 따라 올라오며 그녀를 띄워냈다.
첫 섬광이 터졌다.
빛이 번쩍이며 공동의 중심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 섬광에서 피했다.
섬광 속.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 머리 위를 지나갔다.
“위ㅡㅡ!”
요한이 소리치기도 전에, 사슬이 하늘에서 휘감겨 떨어졌다.
- 쾅!
- 쾅쾅!
두 명.
즉시 바닥으로 튕겨 나가며 검을 놓쳤다.
유세린은 통통, 두 발로 바닥을 디디며 착지했다.
마치 놀이처럼, 발끝을 돌리며 한 바퀴 회전한다.
“반가워요?… 헉, 유명한 얼굴?”
그녀의 눈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남은 세 명.
그중 중앙, 검을 든 요한의 시선과 맞닿았다.
순간, 유세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빠른 돌진과 함께 요한이 검을 휘둘렀으나… 유세린의 사슬에 완벽히 막혔다.
- 챙!
그의 손목에서 심한 통증이 일어났다.
눈 깜짝할 새에, 사슬이 그의 손목을 비틀며, 반격을 가했다.
-
훅!
-
캉!
그의 검은 유세린의 사슬을 막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젠장….’
요한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팀원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유세린의 발밑에서 나오는 고작 몇가닥의 사슬로 전부 가로막혔다.
물론, 그건 요한도 마찬가지였지만···.
요한은 이 시험이 끝나면, 저놈들을 갈아치울 생각뿐이었다.
반대로 유세린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그녀는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
요한의 저항.
분명 그녀가 시험 전에 예상했던 가온의 랭커 수준이었다.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강함.
그러나, 분명 전에 싸운 학생들은, 이 학생과는 수준이 한참 달랐다.
리미트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까다로웠으니까.
그래서 가온의 순위권 학생들의 평가를 상향 조정했었는데….
“으잉?”
다시 원래 예상했던 수준으로 돌아왔다.
‘차이가 이 정도라고?’
유세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준 차이가 이렇게 날 줄은 몰랐다.
“큭, 크으으!”
그의 고통 섞인 비명이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몇번의 합이 더 오간다.
요한의 검이 유세린의 사슬을 꿰뚫지 못할 때마다, 그의 몸은 점점 더 힘을 잃어갔다.
요한이 약한… 건 아니다.
유세린이 너무 강할 뿐.
그녀의 사슬이 요한의 모든 공격을 압도하고, 다시 그를 밀어내는 식으로 방어했다.
- 퍽!
- 쿵!
이미 주변의 팀원들은 전부 나가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요한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낸 부작용, 마력 탈진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숨을 헐떡였다.
유세린은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고생했어요~”
유세린도 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점수 현황은 그녀에게도 공유가 된다.
따라서 백팀의 최후의 도전이 올 것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속전속결로 끝날 줄은 몰랐다.
결국 뭐, 정해인은 만날 수 없었다.
그녀의 사슬이 요한의 워치를 톡 터치했다.
[공략 실패]
수비팀으로써 보스에게 도전했기에, 탈락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워치의 버튼을 누르자마자.
유세린은 뒤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을 느꼈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늦었….’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 콰아아아앙!!!!
사슬이 그녀의 등에 감기며,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 투쾅!
그녀는 땅에 튕겨 나가 그대로 건물 벽에 처박혔다.
‘무슨…!’
요한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창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도, 차마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유세린에게 정확히 꽂히는 모습을 요한은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그 공격을 보는 순간, 요한은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고 말았다.
마력의 밀도, 크기, 속도까지.
이미 학생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누구지?’
요한의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잔뜩 지친 기색의 남성.
어깨가 가볍게 들썩이고, 땀에 젖은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다.
“어우… 죽겠네 진짜.”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요한의 등이 움찔하며 떨렸다.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정해인.
그는 요한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요한은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이어진, 정해인의 한 마디.
“야 인마… 너 왜 이렇게 약하냐….”
비웃음도 아니었고, 조롱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감정 없이, 정말 궁금해서 던진 말처럼 들렸다.
그게 오히려.
요한에게는 더욱 잔인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