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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흑발 흑안은 기본적으로 배척의 대상이었다.
악신의 사제들의 퍼스널컬러가 검은색이라 그랬다.
물론 눈동자 색과 머리카락 색은 어디까지나 부모를 따라갈 뿐이라는 걸 아는 지식인들이야 아무 신경도 안 썼지만, 여기는 해피 중세랜드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이 미신에 민감했다.
때문에 대마법사 아델리안 크로프트조차 흑발로 어렸을 때 고생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 눈동자까지 새까만 프린드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심히 궁금해졌다.
“강사님?”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프린드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훑어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나요.”
“마법 관련으로 궁금한 게 있어서요.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새로운 새싹이 자라는 건 언제든 환영이었다.
얼른 마법을 무럭무럭 키워주렴.
프린드가 말했다.
“강사님은 결국 원소 제어가 이 세계 마법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구체적으로는 원소 제어를 갈고닦아야, 자신이 원하는 심상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계의 마법을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심상을 세상에 구현하는 거였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마법을 만들기 위해선 심상에 새로운 법칙을 새겨야 됐는데, 이 새로운 법칙을 새기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강렬한 의지.
번뜩이는 영감.
뚜렷한 구조.
이 셋이 합쳐져야만 비로소 새로운 법칙이 새겨졌으니까.
뭐,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입장이 아니라 계승자의 입장이면 그냥 반복 학습만 하면 됐지만, 선구자는 저렇다는 얘기다.
하여간.
얘기가 살짝 돌았는데, 때문에 아무리 심상에 어마어마한 법칙을 새겼어도 그걸 현실에 구현할 원소 제어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괜히 모든 마법사가 원소 이해도를 올리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게 아니다.
원소의 이해도가 올라야 원소 제어력이 올라가고, 그로 인해 더 대단한 법칙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프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발상이네요.”
“그런가요? 근데 이건 기본기 중의 기본기라 딱히 재밌고 말고 할 게 없지 않나요? 모든 마법사가 이렇게 생각할 거 같은데요.”
“원소 제어력이 중요하니, 불을 삼키게 해서라도 원소의 이해도를 올린다는 발상이 재밌다고요.”
“아하.”
난 또 뭐라고.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한입 하실래요?”
“오늘은 사양하겠습니다.”
프린드는 보기 드문 4대 원소 적성 마법사였는데, 그래서 좋았다.
체험시킬 게 다양해지잖아.
덕분에 프린드는 내 관심을 한 몸에 받아, 강의시간에 남들보다 4배로 수련을 했다.
역시 어떤 분야든 재능이 뛰어나야 됐다.
프린드를 봐라. 재능이 넘치니 이득을 보지 않나.
내 강의를 독점하다니. 뭇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포상이었다.
실제로 프린드에게 각종 원소를 체험시켜 주면 누군가가 눈에서 빔을 쐈다.
정확히는 카이렌이.
카이렌의 교육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강의시간마다 극한의 집중을 하는데, 카이렌의 그 마법을 향한 마음은 내게 잘 와닿았다.
카이렌처럼 마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사실 원소를 직접 체험해 경지를 늘린다는 발상 자체는 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나는 지극히 평범한 행동만 한다.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강사님은 체계적이라고 해야 될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써야 상위의 경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지 수없이 많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서 놀랐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정말 별거 아니다.
그냥 켈튼과 약속을 한 후, 오직 상상 속에서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여러 아이디어가 쌓였을 뿐이니까.
지금은 고작 1단계에 불과했다.
더욱 익숙해져 5단계에 도달하면, 모두 신세계를 보게 될 거였다.
그렇게 내가 언젠가 찾아올 미래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자, 프린드가 말을 걸었다.
“아무튼 그런 다양한 이유로 저는 강사님에게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요?”
“마법입니다.”
내 마법이 궁금하다라.
신기할 건 없었다. 마법사가 마법사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나도 제리의 고유 마법이 뭔지 궁금해하지 않았나?
비슷한 거다.
내가 괜찮다는 식으로 고개를 까딱이자, 프린드가 차분히 입술을 움직였다.
“강사님은 화염 원소 적성이시겠죠?”
프린드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한다.
내 손에는 성은(星銀)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등불이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 불꽃이 고요히 타올랐다.
불꽃이 흔들리며 존재감을 내뿜는다. 마법사라면 내가 화염 원소 적성을 가졌다는 걸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맞아요.”
“마법은…설정된 제약을 지켜 대가를 끌어오는 식인가요?”
“용케 아셨네요.”
“항상 등불에 불꽃을 피우셨으니까요. 그게 강박에 가까운 습관이라면, 마법 또한 그 강박에서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분석력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프린드가 이제 몇 살이지. 마법학교에 막 입학했으면, 17살인가?
“프린드 님은 마법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뭘 하면서 지냈나요?”
“용병입니다. 평민 고아가 할 일이라곤 그런 거밖에 없으니까요.”
용병이라.
몇 살 때부터 용병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풍기는 분위기로 살피면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용병 일을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만큼 경험도 풍부하겠지. 저런 분석력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프린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닉스도 강사님의 마법일 텐데, 동일한 체계라기엔 제약과 탄생은 서로 결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건 제 마법 덕이에요.”
“마법이라면?”
끼익. 내 손에 이 잡혔다.
그 세상과 동떨어진 저울에, 프린드의 눈이 커졌다.
“혹시 천칭인가요?”
“아시나 보네요.”
살짝 놀랐다.
아무리 이 아는 사람은 아는 마법이라지만, 여태까지 알아본 사람이 고위 예지 마법사, 8위계 대마법사, 여동생을 정말 사랑하는 친오빠,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뿐이지 않나?
고위 예지 마법사인 엘레라조차 살짝 부족하게 느껴지는 라인업만 을 알아봤는데, 거기에 프린드까지 포함되다니.
어지간히 식견이 넓은 모양이었다.
“천칭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게….”
“상당히 오래 전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프린드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에 시선을 고정한 게, 어지간히 충격적인 듯했다.
그러나 그건 프린드의 사정이고,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마법을 양도하거나, 공유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하세요. 공평한 조건으로 거래를 한답니다.”
내가 괜히 을 세상에 자랑하며 다니는 게 아니다.
어차피 모두와 거래를 할 거니 대놓고 정체를 알려주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작게 소곤거렸다.
“지금이라면, 서비스로 벌꿀주도 드려요.”
“사양하겠습니다.”
“아쉽네요.”
그래도 괜찮았다.
씨앗은 심어놨으니까.
언젠가 저 씨앗이 발아돼, ‘내 은사님인 루이나 강사님에게 마법을 바쳐…선물해 드려야 돼!’라는 말을 듣게 될 날이 올 거였다.
내가 말했다.
“호구조사는 다 끝났나요?”
“실례했습니다.”
“아니요. 제자와 얘기하는 건 언제든 즐거우니까요. 더 궁금한 건 없으세요?”
“궁금한 거…. 이건 아예 다른 얘기입니다만, 강사님은 고문을 맡지 않으십니까?”
고문. 그건 일종의 감독관이었다.
이 학교에는 특별 활동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학생들이 주축으로 강의시간 외에 활동을 하는 모임이었는데, 쉽게 말해 동아리라고 보면 됐다.
그리고 감독관은 이 특별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특별 활동을 창설하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고문이 되어줘야 하는 만큼 평소에 강사, 혹은 교수들과 친한 학생만 특별 활동을 창설할 수 있었는데, 나는 프린드가 뭘 하고 싶은지 대충 알아버렸다.
“특별 활동을 창설하고 싶으신가요?”
“가급적이면요.”
초대 황제의 유지를 받들어 마법학교에 다니며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기본적으로 무료였지만, 어디까지나 ‘기본’ 시설의 비용이 그렇다는 거고.
세월이 흐른 지금의 마법학교엔 각종 고급 시설이 들어섰는데, 이걸 이용하는 비용은 상당히 비쌌다.
따라서 이 마법학교엔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돈이 없어 마법학교의 기본 시설만 이용하는 하층민과.
고급 시설을 이용하는 상류층. 이렇게 두 개가.
아마 프린드는 이중 전자의 학생들이 결집할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닐까?
아무래도 평민은 이리저리 치이는 입장이니 말이다.
특별 활동이라.
문득, 괜찮은 생각이 났다.
“하고 싶은 특별 활동이 있으신가요?”
“그건 딱히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특별 활동을 할지 제가 정해도 되나요? 대신 고문을 맡아드릴게요.”
“음.”
“특별 활동을 할 인원을 모아서 신청서를 써오세요. 그러면 바로 도장을 찍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프린드는 빠르게 납득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모아올 기세였는데, 나는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었다.
치익. 담뱃불이 붙는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제리 님. 혹시 멀리서 음침하게 훔쳐보고 있었나요?”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연기를 길게 뱉으며 나는 늘어지게 숨을 쉬었다.
한동안 체스를 못 했었는데, 잘 됐네.
오랜만에 재미 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