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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 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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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 지낸 거 같군. 얼굴이 완전히 폈어. 너무 펴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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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웃으며 농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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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젯과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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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오빠(아님)인 라이젤의 마법에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가, 톨트피어의 마도구로 되살아났던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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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젯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자 바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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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을 보는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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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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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니까 그만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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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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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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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여기에 왔다는 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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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마을에서 벌어진 기생 몬스터 사건은 톨트피어의 마도구와 연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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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가능성이 높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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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대답한 바젯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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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만년필이었는데, 겉에 새겨진 문양이 굉장히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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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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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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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 님이 가지고 다니니 톨트피어의 마도구겠죠. 벌써 하나 찾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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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년필로 그린 그림은 살아서 움직이게 된다네. 실체를 갖게 되지. 그래서 이걸로 난리가 났던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 상황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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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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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톨트피어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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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도구다! 후대의 인간들이여! 이 톨트피어의 유산을 원한다면 찾아라! 모험을 해라!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남긴 마도구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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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피터팬 증후군 대마법사가 할법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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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도구로 세상을 어지럽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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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던전을 준비하면서도 낄낄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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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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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막 도착해서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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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안 돼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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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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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피어의 마도구라면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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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생을 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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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왕 왔는데 마도구 구경도 안 해보고 가는 것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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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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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행은 어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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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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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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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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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차피 마도구에 관심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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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정확히는 마도구에 목을 매지 않는다고 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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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구를 만드는 마법에는 관심이 있지만, 마도구 자체에는 딱히 흥미가 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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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와주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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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는 게 아니라 구경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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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고위 마법사가 함께면 든든하니까. 혹시 몰라? 또 마도구를 얻다가 목이 달아날 일이 생길지. 네가 옆에 있으면 그런 건 막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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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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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저번에 옆에 있었음에도, 라이젤의 공격을 못 막아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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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능력치가 공격에 특화돼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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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엔 고유 마법 가 생겼으니까. 전과는 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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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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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의 용병단 소속의 용병이 빠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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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접근하자 바젯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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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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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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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흘긋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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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멍하니 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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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못 차리는 남자의 모습에 바젯은 손가락을 튕기며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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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끝까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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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그래. 마찰이 일어났어. 지금은 대치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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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 다른 용병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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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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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용병의 설명에 바젯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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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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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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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바젯은 소속 용병과 함께 어디론가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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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둘을 따라 숲을 가로질렀는데, 얼마간 걷자 곧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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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대충 봐도 2개의 집단으로 구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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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과 통일된 복장을 한 사람들. 둘 중 누가 용병이고 누가 다른 집단인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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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쩍 레온에게 시선을 옮겼다. 상대가 악신의 사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악신의 사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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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교의 성기사들이 가진 악신 추적 센서는 예리해서. 내가 얼마 전 해치웠던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면 속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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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큼 많은 인원이 전부 특이 케이스는 아닐 테니, 저 사람들이 악신의 사제가 아닌 건 거의 확정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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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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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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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으로 정체를 추리하기엔 말이 통일된 복장이지 저들이 유니폼을 입은 게 아니라. 다 똑같이 흔해 빠진 로브를 입은 것도 통일이긴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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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길거리에서 산 듯한 남색 로브를 입어서 어디 소속인지 추측이 아예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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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안 밝혀질 거 같은데, 그런 내 생각이 닿은 걸까. 바젯이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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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젯 용병단의 바젯이다! 정체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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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의 외침이 공터를 가득 메웠다. 때문에 귀가 먼 게 아니라면 바젯의 말을 들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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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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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상대는 귀머거리였는지 묵묵부답으로 대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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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대놓고 무시당했으니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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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입술을 열었다. 경고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거보다 먼저 상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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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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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대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바젯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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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들이랑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마찰이 생겼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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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숲을 돌아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더라.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길을 막아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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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들이 파수꾼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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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 바젯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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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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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은 안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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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새로는 하려던 거 같은데, 우리가 즉시 동료를 불러서 그런가 참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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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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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으르렁댔다. 동료를 죽이려던 상대를 그냥 보냈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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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씩씩대던 바젯은 이내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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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 녀석들이 누군지 짐작 가는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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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으면 진작 말했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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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런가. …느낌이 안 좋군. 영 꺼림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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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젯이 목을 쓰다듬었다. 몇 달 전의 섬뜩한 기억이 뇌리를 스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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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한숨을 쉰 바젯은 지끈거리는 관자를 누르며 동료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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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 수색은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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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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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너는 어쩔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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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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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나마 바젯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바젯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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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진짜 상관이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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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곳의 사건이 영생과 무관해 보이는 시점에서 관심이 식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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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너무 길게 있는 것도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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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구경하다가 마법학교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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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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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다음 날 아침. 깨끗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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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마을의 청년이 검은 선 탓에 미쳐버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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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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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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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의 부모님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벤트가 7살 무렵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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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벤트가 사는 마을에는 벤트의 숙부도 살았다. 때문에 어린 벤트와 어린 벤트보다 더 어린 여동생이 굶어 죽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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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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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굶어 죽지만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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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와 그의 여동생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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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의 집에 들어간 이후 모든 노동은 벤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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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길어오는 것도, 장작을 패는 것도, 청소를 하는 것도, 가축을 돌보는 것도, 그 외에 온갖 잡일이 벤트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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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싫지는 않았다. 숙부의 덕에 삶을 이어간 거니까. 그래서 벤트는 오히려 숙부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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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음식만 먹게 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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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만 입힐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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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잠을 자게 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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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픔에도 그대로 집안일을 시킬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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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는 숙부를 원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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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까진, 정말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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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방진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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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가 벤트의 뺨을 후려친다. 얼마나 강하게 맞았는지 입안이 터진 벤트가 피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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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에도 화가 안 풀렸는지 숙부가 강하게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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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었으면 네놈들은 진작 죽었어. 내가 크나큰 은혜를 베푼 거라고. 그런데 그 은혜를 갚을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하기 싫다고 징징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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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의 여동생은 신기하게도 굉장히 미인으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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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이어진 숙부와도, 숙부의 자식들과도, 벤트와도 다르게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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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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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평민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는, 세상 모두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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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가 계속 지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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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백작가의 하녀가 되는 거다. 혹시 아나? 백작님의 마음에 들어 첩 자리라도 꿰찰지. 잘 생각해라. 평민으로 평생 밭일이나 하다 죽는 삶이 네 여동생에게 좋은지, 아니면 귀족의 첩이 돼 사람을 부리는 삶이 네 여동생에게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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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미 거래는 끝났어. 못 되돌려. 아니면 그거냐? 귀족님에게 거래를 무르라고 따지기라도 할 생각이냐? 네가 그걸 할 수 있을까? 너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애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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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는 인생 처음으로 분노라는 게 뭔지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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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앞에서 아무 말이나 떠드는 숙부를 도륙 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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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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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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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는 크게 웃고는,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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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네가, 뭘 하겠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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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속에서 벤트는 크게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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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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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분노도 제대로 못 터트리는, 병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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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뜨거운 머리로 잠자리에 누운 벤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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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게 힘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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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모든 걸 부숴버릴 힘이 있었다면, 여동생의 삶도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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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상념 속에서 벤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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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떴다. 웬 숲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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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한 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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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는 홀린 듯 자신의 앞에 꽂힌 물건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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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투성이의 검이, 벤트에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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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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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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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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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도륙 낼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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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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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의 숙부는, 사지가 분해된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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