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19 lines
11 KiB
Markdown
319 lines
11 KiB
Markdown
|
|
“꺄아아아악!”
|
|
|
|
“일단 목소리 변환 약초를 먹고 오세요. 약효가 다 됐어요.”
|
|
|
|
“언니. 나 어떻게 해?”
|
|
|
|
“진정하세요. 컨셉이 풀렸어요. 그리고 제가 언니였나요.”
|
|
|
|
크리스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
|
|
|
인생을 건 도박이 실패하는 건 괜찮다. 물건을 손절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
|
|
|
하지만 모든 물건이 청산당하는 건 다른 얘기였다.
|
|
|
|
크리스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
|
|
|
많이 괴로워 보였다.
|
|
|
|
나는 안타까움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
“저보다 어리면 16살 이하라는 건데, 그 나이에 그런 돈을 어떻게 모은 건가요. 혹시 초기 자본이 많으셨나요?”
|
|
|
|
“……이런 도박을 1년간 5번 연속으로 성공시켰어.”
|
|
|
|
“이제 보니 행상인이 아니라 도박 중독자였군요?”
|
|
|
|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5연속으로 도박에 성공했음에도 자본이 적었다. 어지간히 흙수저 스타트였나 보다.
|
|
|
|
“이번만 성공하면 나만의 상회를 꾸릴 수 있었는데….”
|
|
|
|
“저런.”
|
|
|
|
“언니. 나 너무 슬퍼.”
|
|
|
|
“저도 눈물이 나올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 이제 말 놓기로 했나요.”
|
|
|
|
“언니….”
|
|
|
|
크리스의 목이 멨다. 진짜로 눈물이 고인 것이다.
|
|
|
|
근데 나라도 전 재산을 날리면 저럴 거 같다.
|
|
|
|
음. 정정하겠다. 나는 전 재산을 날려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
|
|
|
모든 마법을 날리면 저럴까?
|
|
|
|
비슷할지도.
|
|
|
|
크리스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중얼거렸다.
|
|
|
|
“이 지긋지긋한 남장 좀 푸나 싶었는데.”
|
|
|
|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남장한 거죠?”
|
|
|
|
“상회를 꾸릴 정도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안 당하지만, 여자 행상인은 거래 자체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
|
|
|
이 스윗한 해피 중세랜드는 여자가 상인을 하는 걸 안 좋아했다.
|
|
|
|
욕망이 가득한 더러운 세상에 여자가 발을 들이미는 걸 막아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
|
|
|
진짜다. 절대로 ‘여자가 이성적으로 계산을 어떻게 해’라는 마인드가 아니다. 믿어줘라.
|
|
|
|
그나저나 포도주가 털렸다라.
|
|
|
|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크리스에게 조심히 물었다.
|
|
|
|
“혹시 털린 포도주가 이거인가요?”
|
|
|
|
“언니가 털어간 거였어?”
|
|
|
|
“저도 받은 거예요.”
|
|
|
|
나는 포도주병을 크리스에게 건넸다.
|
|
|
|
포도주병을 건네 받은 크리스는 내용물의 냄새와 맛을 살짝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
|
|
|
“이건 여기 특산 포도주잖아. 내 건 다른 지역 포도주야. 전혀 달라.”
|
|
|
|
“그래요?”
|
|
|
|
“언니 이건 어디서 받았어? 최고급 포도주인데?”
|
|
|
|
“길 가다가 얻었어요.”
|
|
|
|
내가 포도주 아저씨는 착하고 좋으신 분이라 했잖아.
|
|
|
|
이분이 훔쳐 갔다고 억까한 사람들은 전부 앞으로 나와 엉덩이를 대시오.
|
|
|
|
나는 머리를 좌로 기울였다.
|
|
|
|
“포도주는 짐마차에 뒀던 건가요?”
|
|
|
|
“당연히 창고를 빌렸지. 짐마차에 그 비싼 포도주를 어떻게 그대로 둬.”
|
|
|
|
“창고에 뒀는데도 털렸다고요?”
|
|
|
|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
|
|
|
창고라면 분명 잠금장치가 있을 텐데, 그걸 뚫고 물건을 털었다면 어지간히 독한 놈한테 걸렸다는 뜻이었다.
|
|
|
|
“창고 주인이 털어갔을 가능성은 없나요?”
|
|
|
|
“나도 언니처럼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현장을 보니까 그건 또 아닌 거 같아.”
|
|
|
|
“대체 어떻게 털렸길래 그런가요.”
|
|
|
|
“이건 직접 봐야 알아.”
|
|
|
|
하는 수 없이 나는 크리스를 따라 창고로 향했다.
|
|
|
|
창고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
확실히 크리스의 말대로였다.
|
|
|
|
이건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
|
|
|
나는 창고에 쌓여 있는 오크통을 쓰다듬었다.
|
|
|
|
내가 쓰다듬은 곳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
|
|
|
이 배럴 안에 있는 건 포도주였다. 보석이 아니라.
|
|
|
|
차라리 오크통을 훔쳐 가면 훔쳐 갔지 이렇게 구멍을 뚫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
|
|
|
구멍을 뚫고 다른 용기에 포도주를 옮긴다? 이 오크통에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렸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이었다.
|
|
|
|
이건, 그래.
|
|
|
|
안에 든 포도주를 다 마실 생각이 아닌 이상 할 이유가 없는 짓이었다.
|
|
|
|
“수십 명의 장정이 여기서 술 파티라도 벌인 게 아닐까요?”
|
|
|
|
“그랬을 수도 있어.”
|
|
|
|
크리스는 땅을 가리켰다. 나는 크리스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
|
|
|
포도주의 내용물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마치 술파티를 하다가 포도주를 흘리기라도 한 듯한 광경이었다.
|
|
|
|
“침전물의 양을 보면 포도주를 전부 땅에 버린 건 아니네요. 정말 약간 흘린 건데, 뭘까요.”
|
|
|
|
“그래서 내가 창고 주인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긴커녕 인간의 짓인지부터가 의심스러워.”
|
|
|
|
“일부러 미스테리한 사건을 꾸며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는 수법일 수도 있어요. 만약 그러면 이 포도주를 옮겨 담은 용기가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걸 찾으면 돼요.”
|
|
|
|
“…일리가 있어.”
|
|
|
|
크리스의 표정에 희망이 돌아왔다. 내 말대로라면 포도주는 분실한 거지 소멸한 게 아니었다. 되찾기만 하면 원상복구가 가능했다.
|
|
|
|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
|
|
|
|
“나는 의심되는 사람들의 집을 몰래 뒤져볼게.”
|
|
|
|
“순순히 허락해 줄까요?”
|
|
|
|
“언니. 나 행상인이야. 남의 집에 자연스럽게 초대받는 기술은 기본이지. 아니었으면 진작 굶어 죽었어.”
|
|
|
|
“레온 님과 함께 하세요. 위험할 수도 있어요.”
|
|
|
|
“알겠어.”
|
|
|
|
이게 사람이 한 짓이라면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범죄였다. 조사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
|
|
|
“맞다, 언니. 마법으로 추적은 안 돼?”
|
|
|
|
“그런 마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는 흔적을 지우는 건 몰라도 찾는 건 안 돼요.”
|
|
|
|
“아쉽네.”
|
|
|
|
“저도 나름대로 의심되는 곳을 조사 해볼게요.”
|
|
|
|
그렇게 우리는 창고를 벗어나 흩어졌다.
|
|
|
|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 축제는 일주일간 진행됐다. 때문에 밤이 늦은 지금도 사람으로 가득했는데, 죄다 포도주를 들이켜서 거리엔 온통 포도 냄새가 진동했다.
|
|
|
|
이러면 냄새로 추적한다는 계획은 포기해야 됐다.
|
|
|
|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자.
|
|
|
|
“혹시 유독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
|
|
|
“누군가 했더니 체스 괴물이잖아.”
|
|
|
|
“안녕하세요.”
|
|
|
|
“포도주? 지금 마을에 있는 사람은 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데? 이게 왜?”
|
|
|
|
실패.
|
|
|
|
다음 계획.
|
|
|
|
도둑질은 비도덕한 짓이다. 즉 윤리의식이 느슨할 거 같은 사람을 찾으면 범인을 밝힐 수 있었다.
|
|
|
|
“팔씨름 내기 잘돼 가시나요?”
|
|
|
|
“망했어. 우리는 망했다고.”
|
|
|
|
“거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잖아.”
|
|
|
|
아쉽게도 두 도박꾼은 무언가를 훔칠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
|
|
|
나는 사고를 전환하기로 했다. 범인의 입장이 되기로 한 것이다.
|
|
|
|
포도주를 훔쳐 갔을 때 가장 숨기기 좋은 곳이 어딜까.
|
|
|
|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다. 때로는 뻔한 곳에 숨기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역설의 지혜가 담긴 말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 포도주가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
|
|
|
포도밭이다.
|
|
|
|
나는 냉큼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
|
|
|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밭은 굉장히 넓었다. 괜히 포도 축제가 열리는 게 아니다. 수확하고 나면 포도가 넘치다 못해 썩어나니 축제가 열리는 거였다.
|
|
|
|
나는 쉐이드 백작 소유의 거대한 포도밭 위를 걸었다.
|
|
|
|
이미 세상은 어두워진 지 오래였기에 오직 등불만이 포도밭을 밝혔다.
|
|
|
|
나는 등불을 들어 포도밭 군데군데를 살폈다.
|
|
|
|
어디야.
|
|
|
|
어디에 포도주를 숨겨놓은 거야.
|
|
|
|
그 순간이었다.
|
|
|
|
등불의 빛이 살짝 닿지 않는 곳에, 거대한 그림자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
|
|
|
나무는 아니었다. 실루엣만 보면 둥글고 높았다.
|
|
|
|
마치, 무언가를 쌓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
|
|
|
찾았다!
|
|
|
|
나는 단번에 거대한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
그리고 등불을 들었다.
|
|
|
|
바위가 있었다.
|
|
|
|
“안녕하세요.”
|
|
|
|
나는 바위에게 인사하고 등을 기댔다.
|
|
|
|
포도밭에 바위는 있을 법하지.
|
|
|
|
오히려 오크통을 여기에 숨기는 놈이 이상한 거 아니야? 이런 탁 트인 곳에 누가 장물을 숨겨.
|
|
|
|
새삼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바위에 기대 하늘을 봤다.
|
|
|
|
하얀 보석이 지상으로 쏟아진다.
|
|
|
|
나는 별빛과 닮은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다가, 주머니에서 포도주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
|
|
|
미안하다 크리스.
|
|
|
|
나는 여기까지인 거 같다.
|
|
|
|
쪼르륵. 향긋한 포도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
|
|
|
과연 최고급 포도주다. 냄새만 맡아도 몸이 떨렸다.
|
|
|
|
병을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
|
|
|
땅을 손으로 짚기 위해서였는데, 직후 나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
|
|
|
계단이 있을 거라 믿고 발을 내디딘 곳에 계단이 없어 균형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가?
|
|
|
|
방금 내가 그랬다.
|
|
|
|
땅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없어서 넘어진 것이다.
|
|
|
|
뭐지 이건.
|
|
|
|
등불을 비춰 살피자 땅에 웬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다.
|
|
|
|
두더지네.
|
|
|
|
두더지는 해수니 보이면 구제하는 게 일반적인 선택이다. 알아둬라.
|
|
|
|
의문이 해결된 나는 기분 좋게 포도주를 들이켰다.
|
|
|
|
별이 빛나는 밤에 포도밭에서 포도주라니.
|
|
|
|
고아함마저 느껴지는 조합이었다.
|
|
|
|
못 참겠다. 한 잔 더 마셔야지.
|
|
|
|
나는 아까 내려놓은 포도주병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
|
|
|
허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
|
|
여기가 아니었나?
|
|
|
|
조금 더 손을 뻗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
|
|
뭐지.
|
|
|
|
설마 병째로 굴러갔나?
|
|
|
|
뚜껑을 안 닫아서 그러면 내용물이 다 흐를 텐데?
|
|
|
|
나는 화들짝 놀라며 등불로 옆을 비췄다.
|
|
|
|
그리고 꿈틀거리는 무언가에 눈을 깜빡였다.
|
|
|
|
고개를 내렸다.
|
|
|
|
조금 전 발견했던 주먹만 한 구멍이 녀석의 몸으로 꽉 차 있었다.
|
|
|
|
구멍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꿈틀대며 무언가를 열심히 몸 끝으로 이동시켰다.
|
|
|
|
포도주병이었다.
|
|
|
|
포도주병을 이동시킨 녀석은 그대로 몸체 끝을 쩍 벌리고 포도주병을 아그작 부숴 먹어 치웠다.
|
|
|
|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
|
|
|
“포도에 미친 촉수 괴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