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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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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일단 목소리 변환 약초를 먹고 오세요. 약효가 다 됐어요.”

“언니. 나 어떻게 해?”

“진정하세요. 컨셉이 풀렸어요. 그리고 제가 언니였나요.”

크리스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생을 건 도박이 실패하는 건 괜찮다. 물건을 손절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하지만 모든 물건이 청산당하는 건 다른 얘기였다.

크리스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많이 괴로워 보였다.

나는 안타까움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보다 어리면 16살 이하라는 건데, 그 나이에 그런 돈을 어떻게 모은 건가요. 혹시 초기 자본이 많으셨나요?”

“……이런 도박을 1년간 5번 연속으로 성공시켰어.”

“이제 보니 행상인이 아니라 도박 중독자였군요?”

말을 들어보니 오히려 5연속으로 도박에 성공했음에도 자본이 적었다. 어지간히 흙수저 스타트였나 보다.

“이번만 성공하면 나만의 상회를 꾸릴 수 있었는데….”

“저런.”

“언니. 나 너무 슬퍼.”

“저도 눈물이 나올 거 같아요. 그리고 저희 이제 말 놓기로 했나요.”

“언니….”

크리스의 목이 멨다. 진짜로 눈물이 고인 것이다.

근데 나라도 전 재산을 날리면 저럴 거 같다.

음. 정정하겠다. 나는 전 재산을 날려도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모든 마법을 날리면 저럴까?

비슷할지도.

크리스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이 지긋지긋한 남장 좀 푸나 싶었는데.”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남장한 거죠?”

“상회를 꾸릴 정도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안 당하지만, 여자 행상인은 거래 자체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 스윗한 해피 중세랜드는 여자가 상인을 하는 걸 안 좋아했다.

욕망이 가득한 더러운 세상에 여자가 발을 들이미는 걸 막아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진짜다. 절대로 ‘여자가 이성적으로 계산을 어떻게 해’라는 마인드가 아니다. 믿어줘라.

그나저나 포도주가 털렸다라.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크리스에게 조심히 물었다.

“혹시 털린 포도주가 이거인가요?”

“언니가 털어간 거였어?”

“저도 받은 거예요.”

나는 포도주병을 크리스에게 건넸다.

포도주병을 건네 받은 크리스는 내용물의 냄새와 맛을 살짝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여기 특산 포도주잖아. 내 건 다른 지역 포도주야. 전혀 달라.”

“그래요?”

“언니 이건 어디서 받았어? 최고급 포도주인데?”

“길 가다가 얻었어요.”

내가 포도주 아저씨는 착하고 좋으신 분이라 했잖아.

이분이 훔쳐 갔다고 억까한 사람들은 전부 앞으로 나와 엉덩이를 대시오.

나는 머리를 좌로 기울였다.

“포도주는 짐마차에 뒀던 건가요?”

“당연히 창고를 빌렸지. 짐마차에 그 비싼 포도주를 어떻게 그대로 둬.”

“창고에 뒀는데도 털렸다고요?”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창고라면 분명 잠금장치가 있을 텐데, 그걸 뚫고 물건을 털었다면 어지간히 독한 놈한테 걸렸다는 뜻이었다.

“창고 주인이 털어갔을 가능성은 없나요?”

“나도 언니처럼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현장을 보니까 그건 또 아닌 거 같아.”

“대체 어떻게 털렸길래 그런가요.”

“이건 직접 봐야 알아.”

하는 수 없이 나는 크리스를 따라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크리스의 말대로였다.

이건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창고에 쌓여 있는 오크통을 쓰다듬었다.

내가 쓰다듬은 곳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 배럴 안에 있는 건 포도주였다. 보석이 아니라.

차라리 오크통을 훔쳐 가면 훔쳐 갔지 이렇게 구멍을 뚫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멍을 뚫고 다른 용기에 포도주를 옮긴다? 이 오크통에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렸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건, 그래.

안에 든 포도주를 다 마실 생각이 아닌 이상 할 이유가 없는 짓이었다.

“수십 명의 장정이 여기서 술 파티라도 벌인 게 아닐까요?”

“그랬을 수도 있어.”

크리스는 땅을 가리켰다. 나는 크리스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포도주의 내용물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마치 술파티를 하다가 포도주를 흘리기라도 한 듯한 광경이었다.

“침전물의 양을 보면 포도주를 전부 땅에 버린 건 아니네요. 정말 약간 흘린 건데, 뭘까요.”

“그래서 내가 창고 주인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긴커녕 인간의 짓인지부터가 의심스러워.”

“일부러 미스테리한 사건을 꾸며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는 수법일 수도 있어요. 만약 그러면 이 포도주를 옮겨 담은 용기가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걸 찾으면 돼요.”

“…일리가 있어.”

크리스의 표정에 희망이 돌아왔다. 내 말대로라면 포도주는 분실한 거지 소멸한 게 아니었다. 되찾기만 하면 원상복구가 가능했다.

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

“나는 의심되는 사람들의 집을 몰래 뒤져볼게.”

“순순히 허락해 줄까요?”

“언니. 나 행상인이야. 남의 집에 자연스럽게 초대받는 기술은 기본이지. 아니었으면 진작 굶어 죽었어.”

“레온 님과 함께 하세요.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알겠어.”

이게 사람이 한 짓이라면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범죄였다. 조사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맞다, 언니. 마법으로 추적은 안 돼?”

“그런 마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는 흔적을 지우는 건 몰라도 찾는 건 안 돼요.”

“아쉽네.”

“저도 나름대로 의심되는 곳을 조사 해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창고를 벗어나 흩어졌다.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 축제는 일주일간 진행됐다. 때문에 밤이 늦은 지금도 사람으로 가득했는데, 죄다 포도주를 들이켜서 거리엔 온통 포도 냄새가 진동했다.

이러면 냄새로 추적한다는 계획은 포기해야 됐다.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자.

“혹시 유독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누군가 했더니 체스 괴물이잖아.”

“안녕하세요.”

“포도주? 지금 마을에 있는 사람은 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데? 이게 왜?”

실패.

다음 계획.

도둑질은 비도덕한 짓이다. 즉 윤리의식이 느슨할 거 같은 사람을 찾으면 범인을 밝힐 수 있었다.

“팔씨름 내기 잘돼 가시나요?”

“망했어. 우리는 망했다고.”

“거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잖아.”

아쉽게도 두 도박꾼은 무언가를 훔칠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사고를 전환하기로 했다. 범인의 입장이 되기로 한 것이다.

포도주를 훔쳐 갔을 때 가장 숨기기 좋은 곳이 어딜까.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다. 때로는 뻔한 곳에 숨기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역설의 지혜가 담긴 말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 포도주가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포도밭이다.

나는 냉큼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밭은 굉장히 넓었다. 괜히 포도 축제가 열리는 게 아니다. 수확하고 나면 포도가 넘치다 못해 썩어나니 축제가 열리는 거였다.

나는 쉐이드 백작 소유의 거대한 포도밭 위를 걸었다.

이미 세상은 어두워진 지 오래였기에 오직 등불만이 포도밭을 밝혔다.

나는 등불을 들어 포도밭 군데군데를 살폈다.

어디야.

어디에 포도주를 숨겨놓은 거야.

그 순간이었다.

등불의 빛이 살짝 닿지 않는 곳에, 거대한 그림자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무는 아니었다. 실루엣만 보면 둥글고 높았다.

마치, 무언가를 쌓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찾았다!

나는 단번에 거대한 그림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등불을 들었다.

바위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바위에게 인사하고 등을 기댔다.

포도밭에 바위는 있을 법하지.

오히려 오크통을 여기에 숨기는 놈이 이상한 거 아니야? 이런 탁 트인 곳에 누가 장물을 숨겨.

새삼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바위에 기대 하늘을 봤다.

하얀 보석이 지상으로 쏟아진다.

나는 별빛과 닮은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다가, 주머니에서 포도주병을 꺼내 잔에 따랐다.

미안하다 크리스.

나는 여기까지인 거 같다.

쪼르륵. 향긋한 포도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과연 최고급 포도주다. 냄새만 맡아도 몸이 떨렸다.

병을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땅을 손으로 짚기 위해서였는데, 직후 나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계단이 있을 거라 믿고 발을 내디딘 곳에 계단이 없어 균형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가?

방금 내가 그랬다.

땅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없어서 넘어진 것이다.

뭐지 이건.

등불을 비춰 살피자 땅에 웬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다.

두더지네.

두더지는 해수니 보이면 구제하는 게 일반적인 선택이다. 알아둬라.

의문이 해결된 나는 기분 좋게 포도주를 들이켰다.

별이 빛나는 밤에 포도밭에서 포도주라니.

고아함마저 느껴지는 조합이었다.

못 참겠다. 한 잔 더 마셔야지.

나는 아까 내려놓은 포도주병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허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었나?

조금 더 손을 뻗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뭐지.

설마 병째로 굴러갔나?

뚜껑을 안 닫아서 그러면 내용물이 다 흐를 텐데?

나는 화들짝 놀라며 등불로 옆을 비췄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무언가에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내렸다.

조금 전 발견했던 주먹만 한 구멍이 녀석의 몸으로 꽉 차 있었다.

구멍에서 튀어나온 녀석은 꿈틀대며 무언가를 열심히 몸 끝으로 이동시켰다.

포도주병이었다.

포도주병을 이동시킨 녀석은 그대로 몸체 끝을 쩍 벌리고 포도주병을 아그작 부숴 먹어 치웠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포도에 미친 촉수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