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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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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조사를 마치고 온 레온이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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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튜를 떠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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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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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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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레온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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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크리스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엎어져 있었는데, 나는 차분히 부연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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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해야 일생일대의 도박이 망한 것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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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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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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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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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크리스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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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예상과 다르게 포도주 비축분이 아직 넘치는 모양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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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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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포도주 수요가 바닥에 박혔습니다. ‘포도의 마을에서 포도주를 팔려고 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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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라면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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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크리스가 하려는 짓은 비유하자면 눈의 고장에서 얼음을 팔려는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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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고장에 폭염이 찾아온다는 정보를 듣고 행동한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성공하면 영웅 실패하면 반란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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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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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전부 날…리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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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괜찮습니다. 포도주는 보관 기간이 기니까요. 기회비용과 보관 비용. 그리고 포도주를 다시 금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여러 손해는 발생하겠지만, 아예 쫄딱 망한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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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다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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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행상인은 망하더라도 끌어 안고 망할 수 있는 물건을 팔아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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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처리해야만 하는 물건은, 자칫 잘못해서 물리면 그대로 인생이 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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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크리스의 얘기는 대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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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이었기에 나는 등불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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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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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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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제거 마법이 발동된 걸 확인한 레온은 잠깐 크리스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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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있는 자리에서 성배 얘기를 해도 되나 망설이는 건데, 솔직히 과민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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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 탐사가 레온 한 명에게만 내려진 극비 임무도 아니고,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이 성배를 찾으러 떠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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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곧 교단에서 성기사를 무더기로 파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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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방팔방 떠들고 다닐 이유도 없었지만, 크리스는 보름간 꽤 친해지지 않았는가. 인생 망한 젊은이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 치고 끼워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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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르지 않나. 크리스가 행상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내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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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레온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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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평범한 포도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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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내내 뜸을 들인 것치고는 정말 영양가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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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해야 3초 망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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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은 10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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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레온 님? 두 분 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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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자기만 모르는 얘기를 떠들면 그것만큼 섭섭한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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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에게 성배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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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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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 탐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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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짐작 가는 거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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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의 특징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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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치유, 풍요, 정화, 지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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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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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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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제와 상관 없는 얘기긴 한데, 크리스는 저런 행동의 선 하나하나가 여성스럽다고 해야 되나. 남자랑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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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딴에는 턱을 쓰다듬거나(마치 원래는 수염이 있었는데 밀었다는 듯) 딱딱한 말투를 써 남자를 가장하는 건데,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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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속는 걸 보면 효과가 있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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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머리카락도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이라 꽤 길고, 얼굴도 전형적인 미소녀인데 왜 속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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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남자인 게 그렇게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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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가슴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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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없으면 그럴 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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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러고 있던 크리스는 곧 팔짱을 풀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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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온천이 제국 북부에 있다는 소문은 있는데, 이건 너무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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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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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도 제대로 된 단서로 탐사를 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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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뜬소문도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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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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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 동의하냐는 의미였는데, 레온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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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몬테 윈터헤이븐은 안 그래도 제 다음 목적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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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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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내에서도 온천욕을 하고 지병이 나았다는 분이 몇 명 계셔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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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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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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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화이트헤이븐의 온천에 신기한 힘이 깃든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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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거 말고요. 교단에선 지병 치료도 못 해요? 전신 화상은 치료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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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팔도 재생시키는 곳에서 고작 지병을 못 치료하는 게 신기해 묻자, 레온은 이마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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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궁금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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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궁금해할 걸요.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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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은 물리적인 외상 치유나 역병 같은 곳에 특화돼 있습니다. 지병을 비롯한 평범한 병은 치료사들의 영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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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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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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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 모든 걸 다 해 처먹으면 치료사들이 굶어 죽으니, 밸런스 패치를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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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말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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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이해하신 거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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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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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완벽하게 이 세계가 돌아가는 구조를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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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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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리는 북소리에 나는 몸을 돌려 창문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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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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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손에는 포도와 포도주가 들려 있었는데, 저런 식으로 한 해 수확한 포도를 즐기는 게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축제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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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레온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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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떠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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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탐문 조사를 더 진행하겠지만, 그리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습니다. 축제가 끝나기 전에는 떠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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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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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소리 제거 마법을 평범한 불꽃으로 바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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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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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즐기지 않으면 손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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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둘을 내버려둔 채 여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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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손에 아무것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불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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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자마자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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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잔뜩 난 중년의 남자였는데, 그는 웃으며 포도주병과 잔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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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잔을 건네받은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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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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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외지인인가 본데, 마음껏 즐기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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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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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축제가 최고다. 사람들의 인심이 전부 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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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에 든 포도주를 잔에 따른 후 코 앞에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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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가 기가 막힌 게, 질 좋은 포도로 정성껏 만든 포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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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최고급 포도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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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그냥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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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포도주를 준 중년 남자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인파의 파도가 중년 남자를 지운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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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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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감사하다고 하긴 미안해서 필살 불꽃쇼라도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이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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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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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시작한 건지 모를 노랫소리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다 같이 유쾌하게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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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빠질 수 없는 그 첫 번째.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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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똑같은 노래인 걸 보면 쉐이드 그레이프턴에 내려오는 전통 노래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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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사람들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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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빠질 수 없는 그 두 번째. 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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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없지만, 모두가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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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체스의 신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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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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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누군지 알아? 상대의 특기 오프닝을 그대로 따라 해 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체스의 악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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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역사상 최고 체스 플레이어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등불을 보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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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빠질 수 없는 그 세 번째. 새로운 인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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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축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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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전부 축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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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놓고 돈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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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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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린 곳에선 야비하게 생긴 남자와 구릿빛 근육질의 남자가 호객 행위를 하는 중이었는데, 내용이 참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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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육질의 남성과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금화 1개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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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전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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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자는 금방 나왔다. 마찬가지로 힘에 자신 있어 보이는 덩치가 큰 남자였는데, 도전자의 등장에 야비하게 생긴 남자는 손을 비비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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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는 은화 1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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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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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큰 남자는 참가비를 지불하고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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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초 만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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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릿빛 근육남은 근육에 키스를 하며 퍼포먼스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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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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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돈을 날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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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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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기에선 내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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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이블 앞에 앉으며 등불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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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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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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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하는 건지 이해한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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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씨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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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로 은화 한 개를 지불해야 되는 것도 이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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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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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은화를 꺼내 건네자 야비한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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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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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를 받지 않고 야비한 남자는 구릿빛 남자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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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 이상해. 기사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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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견습 기사 출신이야. 마력을 쓰면 눈치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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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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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를 마친 야비한 남자는 내게 다가와 재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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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 은화 1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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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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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릿빛 남자 또한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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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자 구릿빛 남자가 마주 잡다 말고 움찔거린다. 화상 자국을 눈치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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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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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태연한 목소리에 구릿빛 남자의 표정이 굳는다. 머리가 복잡해 보인다. ‘도대체 이 녀석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 거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귀에 대고 직접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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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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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한스. 이 녀석 뭔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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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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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는 힘껏 구릿빛 남자의 팔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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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로브를 슬쩍 걷어 얼굴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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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다. 아무리 손에 남은 화상 자국을 봤어도 내 얼굴이 이럴 거라고 예상하긴 힘들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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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줄 타이밍을 놓친 구릿빛 남자의 팔에 내 모든 전력을 다한 힘이 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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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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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힘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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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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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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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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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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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정신을 차린 구릿빛 남자가 내 팔을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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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의 팔은 내가 힘을 잔뜩 주었음에도 1mm도 안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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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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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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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야비한 남자와 구릿빛 남자가 또 회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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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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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겠어. 힘은 평범한 여자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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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당당해서 뭔가 숨기고 있는 줄 알았잖아. 왜 덤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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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체 능력은 평범하지만 귀는 좋아서. 저렇게 소곤대는 소리도 다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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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덤볐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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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잖아요. 당연히 즐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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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말 잘했다! 축제인데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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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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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터지는 소리로 의심할 수 있지만, 이건 누군가 자리에 앉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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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덩치가 크고 근육질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인간인지는 의심스러웠다. 오우거 혼혈이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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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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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참가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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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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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씨름 도박판을 벗어나 거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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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금화 1개를 잃게 될 남자 둘이 불쌍했지만, 원래 도박이라는 게 이렇다. 딸 때가 있으면 잃을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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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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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이 섞인 미지근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 그 아래에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세상을 등불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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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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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원한 기분 바람은, 앞으로 좋은 일만 펼쳐질 거라는 그런 암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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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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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큰일 났습니다! 제 포도주가 모조리 다 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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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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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인 줄 알았더니 장례식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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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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