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01 lines
12 KiB
Markdown
301 lines
12 KiB
Markdown
|
||
흉터남의 검은 굉장히 사나웠다. 거칠었고, 얼핏 정해진 검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
허나 강력했고 유연했다.
|
||
|
||
카가가각! 흉터남의 검과 헤이즈의 검이 맞부딪히며 불똥이 튀었다.
|
||
|
||
헤이즈는 검에 실린 힘을 슬쩍 빼 흉터남의 검로를 유도하고, 그대로 검을 빙글 돌려 흉터남의 목을 노렸다.
|
||
|
||
하나의 잘 짜인 연극 같은 움직임이었으나, 흉터남은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인지 자연스럽게 크로스 가드로 공격을 막아냈다.
|
||
|
||
직후 허공을 맴돌던 두 번째 검이 흉터남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다.
|
||
|
||
챙! 검을 뒤로 빼며 두 번째 검을 막아낸 흉터남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
||
|
||
“진짜 재밌는 짓을 하네?”
|
||
|
||
흉터남은 땅을 단단하게 밟으며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허리를 돌리며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
||
|
||
그걸 딱 반 발짝 뒤로 물러나며 피한 헤이즈는 검을 차분히 모아 힘을 일 점으로 수렴시켰다.
|
||
|
||
촤악! 헤이즈의 검이 흉터남의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걸리는 느낌이 얕았다. 옷만 스친 것이다.
|
||
|
||
흉터남은 뒤이어 날아오는 두 번째 검을 후려치며 눈을 빛냈다.
|
||
|
||
붉은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흉터남의 검이 두 개로 나뉘었다.
|
||
|
||
서로 다른 각도로 날아오는 검. 두 개 다 실체를 가졌다.
|
||
|
||
마법? 아니, 이건 마법이 아니었다.
|
||
|
||
검술이었다.
|
||
|
||
재밌는 짓을 하는 게 누군데 떠넘기고 있어.
|
||
|
||
헤이즈는 검 손잡이를 꽉 잡고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
||
|
||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1식.
|
||
|
||
녹룡첨아(綠龍尖牙).
|
||
|
||
검에 생긴 날카로운 기류가 첨단을 만들고, 그대로 흉터남의 검을 꿰뚫었다.
|
||
|
||
충격에 뒤로 물러난 흉터남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헤이즈를 가리켰다.
|
||
|
||
“그거 드라고밀류잖아. 너 걔구나? 희대의 행운아?”
|
||
|
||
희대의 행운아.
|
||
|
||
그것은 전대 공작이자 제국 최강의 검인 발리온 드라고밀의 제자가 된 헤이즈의 별명 같은 거였다.
|
||
|
||
어감에서 알겠지만 좋은 뜻은 아니다.
|
||
|
||
아무것도 없는 놈이 운 좋게 제자가 됐다고 비웃는 별명이니까.
|
||
|
||
헤이즈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
||
|
||
“내 앞에서 그 말을 쓴 놈치고 잘난 놈은 하나도 못 봤는데 말이야.”
|
||
|
||
“거리 재는 감각이 뛰어난 걸 보면 제국제일검이 아무나 제자로 받은 건 아닌가 봐? 그런데 말이야.”
|
||
|
||
쿵. 강하게 땅을 밟은 흉터남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
||
|
||
“검술은 영 시원찮다? 다른 곳에 너무 한눈 팔렸던 거 아니야?”
|
||
|
||
콰아앙―! 강하게 올려 치는 검을 헤이즈는 손쉽게 막았다.
|
||
|
||
허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검격이 이어진다.
|
||
|
||
왼쪽, 오른쪽, 아래, 위에서 쏟아지는 검에 헤이즈는 검을 한차례 빙글 돌렸다.
|
||
|
||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2식.
|
||
|
||
녹룡비상(綠龍飛上).
|
||
|
||
부드러운 기류가 원을 그리고,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
||
|
||
“그런 게 어설프다는 거야!”
|
||
|
||
하지만 흉터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의 중앙을 강하게 꿰뚫었다.
|
||
|
||
바람의 막이 부서지고, 헤이즈는 검 면으로 찌르기를 간신히 막아냈다.
|
||
|
||
손이 떨린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흉터남의 검술이 심상치 않았다.
|
||
|
||
야생성이 넘치면서 동시에 절제됐다. 양극단의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
||
|
||
그 효과는 엄청났다.
|
||
|
||
어떤 상황에도 대처가 되며, 항상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
||
|
||
그래, 확실히 검으로만 덤비면 자신이 불리할 수 있다. 인정하겠다.
|
||
|
||
그런데 내가 가진 건 검술만이 아니라고.
|
||
|
||
헤이즈는 검을 양손으로 잡아 머리 옆 높이로 들고, 검 끝을 흉터남쪽으로 겨눴다.
|
||
|
||
이어서 허공에 둥실 떠오른 두 번째 검이 누웠다.
|
||
|
||
첫 번째 검이 허공을 꿰뚫는다. 챙! 흉터남이 첫 번째 검을 막는다. 쐐애애액! 두 번째 검이 비슷한 각도로 쏘아진다. 챙! 역시나 흉터남이 강하게 두 번째 검을 쳐낸다.
|
||
|
||
그게 계속 반복된다. 헤이즈는 정신없이 검을 움직이며 흉터남을 압박했다.
|
||
|
||
헤이즈의 특기 마법, 적영(寂影)은 염동력이 아니었다.
|
||
|
||
비슷한 효과를 가졌지만, 엄밀히 따지면 많이 달랐다.
|
||
|
||
쉽게 말해 적영은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드는 마법이었다.
|
||
|
||
보이지 않는, 자신처럼 움직이는 손을 만드는 마법. 그게 적영이었다.
|
||
|
||
때문에 적영을 한 번 발동하면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
||
|
||
그러지 않아도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처럼 알아서 유려하게 적을 공격했으니까.
|
||
|
||
‘…어째서.’
|
||
|
||
두 개의 검이 흉터남의 머리를 노린다. 막힌다.
|
||
|
||
‘……어째서 전부.’
|
||
|
||
두 개의 검이 흉터남의 심장을 노린다. 역시나 막힌다.
|
||
|
||
‘전부,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는―.’
|
||
|
||
“이상한가 봐? 비장의 공격이 전부 막혀서.”
|
||
|
||
흉터남은 헤이즈의 검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
||
|
||
너무나 가벼운 태도라 헤이즈는 순간 이곳이 전장이 아니라 티파티 현장인 줄 알았다.
|
||
|
||
“그거야 당연히, 뻔하니까 그러지!”
|
||
|
||
콰앙! 도저히 검과 검이 부딪히며 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음이 울려 퍼지고, 헤이즈를 튕겨낸 흉터남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
||
|
||
“무슨 공격을 할지 훤히 보이는데, 검이 두 개든 백 개든 효과가 있겠어?”
|
||
|
||
“…….”
|
||
|
||
“검술 수련을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아직 식이 체화되지도 않았는데 잡기술에 한눈을 파니 다 읽히지.”
|
||
|
||
헤이즈는 숨을 고르며 검을 들었다.
|
||
|
||
아직, 아직이다.
|
||
|
||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
||
|
||
“그리고.”
|
||
|
||
흉터남은 나직이 말하고는 검 끝을 하늘 방향으로 들었다.
|
||
|
||
직후 기세가 폭발한다.
|
||
|
||
“너와 나는 애초에 격이 다르다고.”
|
||
|
||
설마.
|
||
|
||
여태까지와는 아예 다른 기세에 헤이즈의 머릿속에 한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
||
|
||
그 생각이 옳았다고 알려주듯, 흉터남은 조용히 하나의 단어를 읊조렸다.
|
||
|
||
“해방.”
|
||
|
||
동시에 흉터남의 등 뒤에 변화가 생겼다.
|
||
|
||
그것은 수천 개의 작은 정육면체가 생성됐다가 다시 조립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
불타는 망토가 탄생하고, 거기서 이어진 불꽃이 검에 닿았다.
|
||
|
||
연단 마법은 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기사들의 핵심 마법이었다.
|
||
|
||
초대 황제가 직접 만든 이 전통성 있고 역사가 깊은 마법은 단계가 존재했다.
|
||
|
||
0단계. 무기 강화.
|
||
|
||
말 그대로 무기에 마법을 덧씌우는 단계였다.
|
||
|
||
현재 루이나가 해당하는 단계였으며, 효과도 무기의 예기나 강도를 강화하는 게 끝이었다. 크게 도움이 안 됐고, 그래서 보통 0단계에 머무는 기사를 견습이라 불렀다.
|
||
|
||
다음으로 1단계, 신체 강화.
|
||
|
||
헤이즈가 도달한 단계였다.
|
||
|
||
마법이 무기를 넘어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였으며, 눈 색이 변한다는 외관적 특징을 가졌다.
|
||
|
||
이 단계부터 흔히 말하는 기사의 초인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정식 기사가 이 단계에 머물렀다.
|
||
|
||
하지만 모든 기사는 아니었다.
|
||
|
||
극히 일부 기사만이 도달하는 경지.
|
||
|
||
2단계, 해방.
|
||
|
||
누구나 마음속에 이상향을 품고 있다.
|
||
|
||
최강의 이미지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
||
|
||
그리고 2단계 해방은, 기사가 내면을 두들겨 완성한 이상향 중 하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경지였다.
|
||
|
||
불꽃이 타오른다. 너무나도 격렬한 불꽃에 헤이즈는 입술이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
||
|
||
한겨울이라고 믿기지 않는 뜨거운 공기가 헤이즈와 흉터남 사이를 채운다.
|
||
|
||
흉터남은 타오르는 대검을 똑바로 들고 사납게 위협했다.
|
||
|
||
“그 좋은 재능을 마법을 익히겠다고 썩히니까, 나한테 밟히는 거 아니야 이 행운아 새끼야!”
|
||
|
||
붉은 유성이 세상을 수놓는다.
|
||
|
||
헤이즈의 몸이 떠오른다. 잠깐 허공을 유영하던 몸이 이내 대지의 손길에 잡아끌려 지상으로 낙하하고, 헤이즈는 땅을 굴렀다.
|
||
|
||
그동안 눈이 좀 쌓여서 그런가.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
||
|
||
대신 속이 아팠다.
|
||
|
||
‘그렇게 마법에 한눈팔다가는 언젠가 후회할 거다. 헤이즈.’
|
||
|
||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지 않기에 제자고, 스승의 말은 늘 옳기에 스승의 말이라는 옛 격언이 있다.
|
||
|
||
어째서 그런 말이 생겼는지 헤이즈는 몸과 마음으로 격렬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
||
|
||
“오르핀――!”
|
||
|
||
이사크가 오르핀을 몰아붙인다. 황궁에서만 지낸 오르핀과 전쟁터에서 구른 이사크. 둘 중 누구의 검이 더 날카로운지는 대보지 않아도 뻔했다.
|
||
|
||
흉터남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
||
|
||
헤이즈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키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
||
|
||
적영의 발동에 처음 성공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마법 하나를 특기 마법 수준으로 발전시키다니. 드디어 스승님에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됐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
검술 실력도 나날이 발전했다. 기어코 황족의 눈에 들어 수호 기사가 됐을 때는 세간에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
|
||
다 헛짓거리였다.
|
||
|
||
스승의 말이 옳았다.
|
||
|
||
기사는 연단 마법을 익히지만 마법사가 아니다. 그걸 진작에 이해했어야 됐다.
|
||
|
||
후회.
|
||
|
||
후회가 된다.
|
||
|
||
조금 더 검술에 매진했다면, 마법을 진작 버렸다면.
|
||
|
||
조금 더, 이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
||
|
||
눈을 즈려밟는 흉터남의 발소리를 들으며 헤이즈는 속으로 외쳤다.
|
||
|
||
누구라도 좋다.
|
||
|
||
신? 악신? 악마? 천사?
|
||
|
||
정말 누구라도 좋아.
|
||
|
||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줄게. 바라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게.
|
||
|
||
이 후회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면, 그게 누구든 좋으니까.
|
||
|
||
제발 내게 한 번만.
|
||
|
||
“끝이다. 행운아. 다음 생에는 기껏 손에 넣은 행운을 방치하지 말도록.”
|
||
|
||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
||
|
||
콰아아아앙!
|
||
|
||
거대한 질량이 땅에 떨어진다.
|
||
|
||
다만 그게 대검은 아니었다.
|
||
|
||
헤이즈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
||
|
||
헤이즈의 바로 앞. 흉터남이 있던 땅을.
|
||
|
||
언젠가 봤던 나무 거인의 주먹이, 강하게 짓이기고 있었다.
|
||
|
||
“원래 외상은 안 받지만, 헤이즈 님은 우수 고객이니까요. 마법 꼭 주셔야 돼요?”
|
||
|
||
급박한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태연한 목소리에 헤이즈는 역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
||
|
||
구구궁. 나무 병사가 무더기로 소환되며 이사크를 막아선다.
|
||
|
||
루이나는 뚜벅뚜벅 이사크에게 걸어갔다.
|
||
|
||
오르핀을 마무리하기 직전 갑자기 방해를 받은 이사크가 분노를 터트린다.
|
||
|
||
“네놈 뭐 하는 짓이냐.”
|
||
|
||
“안녕하세요.”
|
||
|
||
“지금 나를 막아선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이 이사크 에테르노를 적으로 돌린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냐는 말이다!”
|
||
|
||
“무슨 소리예요 2황자님.”
|
||
|
||
루이나는 환하게 웃고는, 특대 나무 거인을 땅에서 소환해 그 위에 올라탔다.
|
||
|
||
그다음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
||
|
||
“그럼 2황자님은 제 성은을 훔쳐 간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으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