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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남의 검은 굉장히 사나웠다. 거칠었고, 얼핏 정해진 검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강력했고 유연했다.
카가가각! 흉터남의 검과 헤이즈의 검이 맞부딪히며 불똥이 튀었다.
헤이즈는 검에 실린 힘을 슬쩍 빼 흉터남의 검로를 유도하고, 그대로 검을 빙글 돌려 흉터남의 목을 노렸다.
하나의 잘 짜인 연극 같은 움직임이었으나, 흉터남은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인지 자연스럽게 크로스 가드로 공격을 막아냈다.
직후 허공을 맴돌던 두 번째 검이 흉터남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다.
챙! 검을 뒤로 빼며 두 번째 검을 막아낸 흉터남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진짜 재밌는 짓을 하네?”
흉터남은 땅을 단단하게 밟으며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허리를 돌리며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걸 딱 반 발짝 뒤로 물러나며 피한 헤이즈는 검을 차분히 모아 힘을 일 점으로 수렴시켰다.
촤악! 헤이즈의 검이 흉터남의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걸리는 느낌이 얕았다. 옷만 스친 것이다.
흉터남은 뒤이어 날아오는 두 번째 검을 후려치며 눈을 빛냈다.
붉은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흉터남의 검이 두 개로 나뉘었다.
서로 다른 각도로 날아오는 검. 두 개 다 실체를 가졌다.
마법? 아니, 이건 마법이 아니었다.
검술이었다.
재밌는 짓을 하는 게 누군데 떠넘기고 있어.
헤이즈는 검 손잡이를 꽉 잡고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1식.
녹룡첨아(綠龍尖牙).
검에 생긴 날카로운 기류가 첨단을 만들고, 그대로 흉터남의 검을 꿰뚫었다.
충격에 뒤로 물러난 흉터남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헤이즈를 가리켰다.
“그거 드라고밀류잖아. 너 걔구나? 희대의 행운아?”
희대의 행운아.
그것은 전대 공작이자 제국 최강의 검인 발리온 드라고밀의 제자가 된 헤이즈의 별명 같은 거였다.
어감에서 알겠지만 좋은 뜻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운 좋게 제자가 됐다고 비웃는 별명이니까.
헤이즈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내 앞에서 그 말을 쓴 놈치고 잘난 놈은 하나도 못 봤는데 말이야.”
“거리 재는 감각이 뛰어난 걸 보면 제국제일검이 아무나 제자로 받은 건 아닌가 봐? 그런데 말이야.”
쿵. 강하게 땅을 밟은 흉터남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검술은 영 시원찮다? 다른 곳에 너무 한눈 팔렸던 거 아니야?”
콰아앙―! 강하게 올려 치는 검을 헤이즈는 손쉽게 막았다.
허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검격이 이어진다.
왼쪽, 오른쪽, 아래, 위에서 쏟아지는 검에 헤이즈는 검을 한차례 빙글 돌렸다.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2식.
녹룡비상(綠龍飛上).
부드러운 기류가 원을 그리고,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 게 어설프다는 거야!”
하지만 흉터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의 중앙을 강하게 꿰뚫었다.
바람의 막이 부서지고, 헤이즈는 검 면으로 찌르기를 간신히 막아냈다.
손이 떨린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흉터남의 검술이 심상치 않았다.
야생성이 넘치면서 동시에 절제됐다. 양극단의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 효과는 엄청났다.
어떤 상황에도 대처가 되며, 항상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그래, 확실히 검으로만 덤비면 자신이 불리할 수 있다. 인정하겠다.
그런데 내가 가진 건 검술만이 아니라고.
헤이즈는 검을 양손으로 잡아 머리 옆 높이로 들고, 검 끝을 흉터남쪽으로 겨눴다.
이어서 허공에 둥실 떠오른 두 번째 검이 누웠다.
첫 번째 검이 허공을 꿰뚫는다. 챙! 흉터남이 첫 번째 검을 막는다. 쐐애애액! 두 번째 검이 비슷한 각도로 쏘아진다. 챙! 역시나 흉터남이 강하게 두 번째 검을 쳐낸다.
그게 계속 반복된다. 헤이즈는 정신없이 검을 움직이며 흉터남을 압박했다.
헤이즈의 특기 마법, 적영(寂影)은 염동력이 아니었다.
비슷한 효과를 가졌지만, 엄밀히 따지면 많이 달랐다.
쉽게 말해 적영은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드는 마법이었다.
보이지 않는, 자신처럼 움직이는 손을 만드는 마법. 그게 적영이었다.
때문에 적영을 한 번 발동하면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지 않아도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처럼 알아서 유려하게 적을 공격했으니까.
‘…어째서.’
두 개의 검이 흉터남의 머리를 노린다. 막힌다.
‘……어째서 전부.’
두 개의 검이 흉터남의 심장을 노린다. 역시나 막힌다.
‘전부,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는―.’
“이상한가 봐? 비장의 공격이 전부 막혀서.”
흉터남은 헤이즈의 검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나 가벼운 태도라 헤이즈는 순간 이곳이 전장이 아니라 티파티 현장인 줄 알았다.
“그거야 당연히, 뻔하니까 그러지!”
콰앙! 도저히 검과 검이 부딪히며 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음이 울려 퍼지고, 헤이즈를 튕겨낸 흉터남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무슨 공격을 할지 훤히 보이는데, 검이 두 개든 백 개든 효과가 있겠어?”
“…….”
“검술 수련을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 아직 식이 체화되지도 않았는데 잡기술에 한눈을 파니 다 읽히지.”
헤이즈는 숨을 고르며 검을 들었다.
아직, 아직이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그리고.”
흉터남은 나직이 말하고는 검 끝을 하늘 방향으로 들었다.
직후 기세가 폭발한다.
“너와 나는 애초에 격이 다르다고.”
설마.
여태까지와는 아예 다른 기세에 헤이즈의 머릿속에 한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이 옳았다고 알려주듯, 흉터남은 조용히 하나의 단어를 읊조렸다.
“해방.”
동시에 흉터남의 등 뒤에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수천 개의 작은 정육면체가 생성됐다가 다시 조립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불타는 망토가 탄생하고, 거기서 이어진 불꽃이 검에 닿았다.
연단 마법은 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기사들의 핵심 마법이었다.
초대 황제가 직접 만든 이 전통성 있고 역사가 깊은 마법은 단계가 존재했다.
0단계. 무기 강화.
말 그대로 무기에 마법을 덧씌우는 단계였다.
현재 루이나가 해당하는 단계였으며, 효과도 무기의 예기나 강도를 강화하는 게 끝이었다. 크게 도움이 안 됐고, 그래서 보통 0단계에 머무는 기사를 견습이라 불렀다.
다음으로 1단계, 신체 강화.
헤이즈가 도달한 단계였다.
마법이 무기를 넘어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였으며, 눈 색이 변한다는 외관적 특징을 가졌다.
이 단계부터 흔히 말하는 기사의 초인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정식 기사가 이 단계에 머물렀다.
하지만 모든 기사는 아니었다.
극히 일부 기사만이 도달하는 경지.
2단계, 해방.
누구나 마음속에 이상향을 품고 있다.
최강의 이미지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2단계 해방은, 기사가 내면을 두들겨 완성한 이상향 중 하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경지였다.
불꽃이 타오른다. 너무나도 격렬한 불꽃에 헤이즈는 입술이 마르는 느낌을 받았다.
한겨울이라고 믿기지 않는 뜨거운 공기가 헤이즈와 흉터남 사이를 채운다.
흉터남은 타오르는 대검을 똑바로 들고 사납게 위협했다.
“그 좋은 재능을 마법을 익히겠다고 썩히니까, 나한테 밟히는 거 아니야 이 행운아 새끼야!”
붉은 유성이 세상을 수놓는다.
헤이즈의 몸이 떠오른다. 잠깐 허공을 유영하던 몸이 이내 대지의 손길에 잡아끌려 지상으로 낙하하고, 헤이즈는 땅을 굴렀다.
그동안 눈이 좀 쌓여서 그런가.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대신 속이 아팠다.
‘그렇게 마법에 한눈팔다가는 언젠가 후회할 거다. 헤이즈.’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지 않기에 제자고, 스승의 말은 늘 옳기에 스승의 말이라는 옛 격언이 있다.
어째서 그런 말이 생겼는지 헤이즈는 몸과 마음으로 격렬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오르핀――!”
이사크가 오르핀을 몰아붙인다. 황궁에서만 지낸 오르핀과 전쟁터에서 구른 이사크. 둘 중 누구의 검이 더 날카로운지는 대보지 않아도 뻔했다.
흉터남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헤이즈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키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적영의 발동에 처음 성공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마법 하나를 특기 마법 수준으로 발전시키다니. 드디어 스승님에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됐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검술 실력도 나날이 발전했다. 기어코 황족의 눈에 들어 수호 기사가 됐을 때는 세간에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 헛짓거리였다.
스승의 말이 옳았다.
기사는 연단 마법을 익히지만 마법사가 아니다. 그걸 진작에 이해했어야 됐다.
후회.
후회가 된다.
조금 더 검술에 매진했다면, 마법을 진작 버렸다면.
조금 더, 이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눈을 즈려밟는 흉터남의 발소리를 들으며 헤이즈는 속으로 외쳤다.
누구라도 좋다.
신? 악신? 악마? 천사?
정말 누구라도 좋아.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줄게. 바라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게.
이 후회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면, 그게 누구든 좋으니까.
제발 내게 한 번만.
“끝이다. 행운아. 다음 생에는 기껏 손에 넣은 행운을 방치하지 말도록.”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콰아아아앙!
거대한 질량이 땅에 떨어진다.
다만 그게 대검은 아니었다.
헤이즈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헤이즈의 바로 앞. 흉터남이 있던 땅을.
언젠가 봤던 나무 거인의 주먹이, 강하게 짓이기고 있었다.
“원래 외상은 안 받지만, 헤이즈 님은 우수 고객이니까요. 마법 꼭 주셔야 돼요?”
급박한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태연한 목소리에 헤이즈는 역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구구궁. 나무 병사가 무더기로 소환되며 이사크를 막아선다.
루이나는 뚜벅뚜벅 이사크에게 걸어갔다.
오르핀을 마무리하기 직전 갑자기 방해를 받은 이사크가 분노를 터트린다.
“네놈 뭐 하는 짓이냐.”
“안녕하세요.”
“지금 나를 막아선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 이 이사크 에테르노를 적으로 돌린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냐는 말이다!”
“무슨 소리예요 2황자님.”
루이나는 환하게 웃고는, 특대 나무 거인을 땅에서 소환해 그 위에 올라탔다.
그다음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그럼 2황자님은 제 성은을 훔쳐 간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