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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Quest).
게임을 즐겨 하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 단어는 흔히 플레이어가 수행할 과제나 임무를 표현할 때 쓰였는데, 사실 이건 현대에 와서 변형된 것이고 과거엔 다른 의미로 많이 쓰였다.
공주를 구출하는 임무.
마왕을 무찌르는 임무.
하여간 영웅적인 임무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여정을 퀘스트라고 불렀고, 대표적인 예시로는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성배 퀘스트’가 있었다.
“즉 레온 님은 역사에 남기 위해 노력 중인 거죠.”
“그런 거창한 소망을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제 말을 뭐로 들은 건가요. 성배를 찾는 순간 이미 그건 역사에 남는 행위라니까요.”
늦은 아침. 나는 여관의 홀에서 고개를 저었다.
레온은 다 좋은데 말을 두 번 해야 알아먹었다.
“성배는 초대 황제와 여정을 떠났던 화신체의 뼈로 만들어졌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런 걸 찾아놓고 역사에 이름이 안 남을 줄 알았어요?”
“…이름이 남는 건 알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였습니다.”
“네? 팔라딘이 돼 여태까지 당했던 수모를 갚아줄 생각이 아니었다고요?”
“아니요. 저는 그런 세속적인―.”
“농담이에요.”
이 여러 의미로 나이브한 견습 성기사가 그런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았다.
대충 언제부터 알았냐면, 그래.
“레온 님이 웬 용병에게 뒤가 뚫렸을 때부터 알았어요.”
“안 뚫렸습니다. 그 전에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저는 시간 계열 고유 마법을 익혀서요. 시간을 돌리기 전의 기억이 뒤섞여서 잠깐 혼란스러웠네요. 죄송해요.”
“하하. 그것참. ……농담이죠?”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글쎄요?”
“왜 이런 건 농담이라고 정정을 안 해주시는 겁니까.”
“거기까지가 농담의 완성이니까요.”
“주문하신 벌꿀주 2잔과 훈제 고기 2인분 나왔습니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벌꿀주와 훈제 고기를 테이블에 올린 종업원은 이내 고기 스튜와 우유를 테이블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고기 스튜와 우유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온은 고기 스튜와 우유를 받아 조심스럽게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제 남의 음식을 탐하지 않고 자기 몫을 주문해서 먹는군요. 성장하셨네요.”
“죄송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상한 게 아니라 루이나 님이 이상한 겁니다.”
“남의 음식을 먹는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요?”
“빵과 치즈를 4인분씩 시킨 게 혼자 먹기 위해서라고 누가 예상 하겠습니까. 당연히 제 몫까지 시킨 건 줄 알았습니다.”
어제 막 여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흰 빵과 치즈를 4인분씩 주문했다.
그 정도는 먹어야 배가 차서였는데, 이 배은망덕한 성기사는 내가 주문한 빵과 치즈를 날름 먹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추가 주문을 해야만 됐다.
“벌꿀주가 미지근해지는 와중에 안주가 없어 눈물을 흘리던 제 마음을 아시겠어요?”
“앞서 시킨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추가 음식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따뜻하게 먹었어요. 다음부터는 2번에 나눠서 시키려고요.”
꿀꺽. 벌꿀주를 들이켜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비율의 단맛. 도저히 해피 중세랜드의 음료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른 술은 안 이렇던데 왜 벌꿀주만 유독 맛있는 거죠? 마법의 힘인가요?”
“글쎄요. 저도 밖의 일은 잘 모르는지라.”
“으음.”
나는 벌꿀주가 든 잔을 깨끗하게 비우고 훈제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살 거 같네.
나는 손을 들고 외쳤다.
“여기 벌꿀주 2잔이랑 훈제 고기 2인분 추가요!”
“대낮부터 술을 4잔이나….”
레온이 작게 중얼거린다. 대낮부터 술을 4잔이나 먹는 나를 주군으로 모시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런이런. 이래서 뛰어난 사람은 곤란하다니까.
탁. 레온이 스푼을 내려놨다. 식사를 마친 것이다.
우유를 마시는 레온에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이제 슬슬 임무 얘기를 할까요?”
“좋습니다.”
레온은 성배를 찾으려 한다. 팔라딘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레온을 도와 그 대가로 전신 완전 치료를 무료로 받든, 아니면 싸게 받든 할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전신 완전 치료를 받을 돈은 있었지만, 이건 켈튼이 남겨준 돈이다. 그런 식으로 전부 쓰고 싶지는 않았다.
켈튼은 자기가 번 돈 자기가 마음대로 쓴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했지만, 아쉽게도 상속받은 시점에서 이 돈은 내 거였다. 내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었다.
이 돈은 아꼈다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다.
게다가 해피 중세랜드의 교단은 어지간히 썩어서. 풍문으로 들은 소문이 반만 사실이어도 까딱 잘못하면 전 재산을 날렸다.
따라서 원래라면 ‘사기꾼한테 돈을 바치라고요? 됐어요. 무슨 치료예요. 저희 4위계도 뚫을 겸 시원하게 불꽃 샤워나 한 번 더 할까요?’라고 했겠지만, 내게는 약속한 바가 있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왼손등을 쓰다듬으며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들자 앳된 얼굴과 백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몇 살일까. 내 현재 나이보다는 많을 거 같은데.
전생까지 따지면 적겠지만.
과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견습 성기사는 제 몫을 할까?
심히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레온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우선 레온 님이 모은 정보를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죠.”
어떤 일이든 정보를 공유하는 게 먼저였다.
내 말에 레온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목표물의 특징을 아십니까?”
“영생, 치유, 풍요, 정화, 지혜 대충 이 정도겠죠?”
“저는 그중 풍요의 힘에 주목했습니다.”
“왜요? 보통은 영생 쪽이 아닌가요?”
“만약 목표물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면 그때 힘을 발휘하는 건 풍요의 힘 쪽일 거 같아서 말입니다.”
요컨대 레온은 성배를 소유 중인 사람은 없다 쪽에 거는 거였다.
“흐음.”
“왜 그러신가요?”
“아니에요.”
레온의 사고방식이 짐작됐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풍요의 힘을 중점으로 탐색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마을을 찾아가 볼 생각인가요?”
“꽤 많지만, 당장은 여기입니다.”
레온은 책상에 글자를 적었다. 이상한 부분에서 철저한 남자였다.
나는 레온이 적은 글자를 읽었다.
[웨스트 쉐이드 그레이프턴]
쉐이드 백작령 서쪽에 위치한 포도 마을이라는 의미로,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알았다.
곧 포도 축제가 열리는 곳이었다.
“확실히 여기는 풍작이 안 끊기는 곳이니까요. 의심할 만하네요.”
“그렇습니다.”
“포도 축제면 포도주도 많을까요. 갑자기 기대되네요.”
“루이나 님. 그런 식으로 다 말하면 기껏 지명을 숨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조심하세요. 혹여나 주변에서 듣고 이상한 마음을 품으면 위험합니다.”
“그 조심성, 제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 발휘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짤랑. 나는 등불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등불 안엔 불꽃이, 입이 달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입이 달린 불꽃은 탐욕스럽게 무언가를 먹는 중이었다.
“이건.”
“새어나가는 소리를 먹는 중이에요. 안심하고 떠드세요.”
“…그런 건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깜빡했어요.”
사실 목표물이니 뭐니 하면서 갑자기 첩보 영화를 찍길래 재밌어서 조용히 있었다.
쉐이드 백작령이라.
나는 이곳에서 쉐이드 백작령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꽤 멀었다.
“축제 기간에 맞춘 일정 맞죠?”
“축제를 즐기다 보면 느슨해질 테니까요. 조사하기 편해지겠죠.”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축제 기간에 간신히 맞춰서 도착하겠네요. 왜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일정을 짜셨나요?”
이해가 안 돼 묻자, 레온은 멋쩍은 듯 볼을 긁고 대답했다.
“원래라면 이것보다 일찍 도착했겠지만, 중간에 여비가 부족해져서요. 일을 하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여비 계산을 잘못했을 리는 없고, 잃어버리셨나 보네요. 소매치기라도 당했나요?”
“…….”
“혹시 귀족의 사생아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왜 귀족 도련님이 가문 밖으로 혼자 나왔을 때 겪는 상황을 1번부터 10번까지 전부 경험하고 있나요.”
“제가 밖의 세상을 잘 몰라서….”
모르면 어쩔 수 없지.
“교단 안에서 수련만 하셨나 보네요.”
“10년간 검만 휘둘렀습니다.”
“그런 거치고 용병들에게 너무 쉽게 당했네요. 혹시 재능이 없으신가요? 참고로 저는 없어요.”
“검 실력은 뛰어난 편입니다. 성법은…. 아직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름을 받지 못했다. 신성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그랬으니 마비약에 당한 거였다.
부름을 받았다면 몸 안에 깃든 신성력이 해로운 모든 걸 정화했을 테니까.
내가 알기로 신성력은 보유하기만 해도 정식 성기사와 정식 사제가 됐다. 꽤 얻기 힘든 힘이었다.
그래서 신성력이 없는 건 아쉬웠지만, 검 실력이 뛰어나면 어지간한 상황에선 도움이 될 거였다.
이걸로 목적지도 정해졌고 동행자의 실력 파악도 대충 끝났다.
이제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정을 보니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네? 제가 일정을 아슬아슬하게 짜긴 했지만, 벌써 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며칠 쉬었다 움직여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늦잖아요.”
“…그게 무슨.”
레온이 머리 위에 갈고리를 띄웠다. 내가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친절히 설명했다.
“가면서 돈을 벌 것까지 생각하면, 바쁘게 움직여야 돼요.”
“잠깐만요. 지금 쉐이드 백작령으로 이동하며 돈을 버시겠다는 말입니까?”
“네.”
그럼 그 긴 거리를 멍하니 이동만 할 줄 알았어?
내 말에 레온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정 시간이 부족해지면 잠을 줄이면 돼요.”
현재 내 제1 목표는 돈이다. 이건 바뀌지 않았다.
“이게 싫다면 여기서 저희는 헤어져야 돼요.”
“…알겠습니다.”
“역시 레온 님이에요. 말이 잘 통해요.”
레온에 대해 오해했었다. 그는 한 번만 말해도 잘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나는 벌꿀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것만 마시고 바로 출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