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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혹은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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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태워 재가 된 후, 재에서부터 부활하는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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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세계에선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쓰였던 이 짐승은 지금의 세계에서도 취급이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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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고, 재에서부터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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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 아예 생뚱맞은 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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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세상엔 주술(呪術)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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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을 의미했는데, 원시 때부터 인류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주술의 기본 법칙은 공감주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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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닮은 것들은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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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접촉한 것들은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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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건 닮은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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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건 비슷한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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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때부터 인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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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인어의 살코기에는 불사의 힘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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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흡혈귀의 눈물에는 불로의 힘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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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면 변하는 늑대인간의 피에는 괴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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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역린에는 한계를 넘어설 힘이 있을 거라 믿으며 살아왔던 인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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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불사조에게만 관대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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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의 깃털에는 영생의 힘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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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 세계의 인류가 불사조에 환장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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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그게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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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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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정보는 하나같이 질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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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무 깃털이나 영생을 주는 건 아니긴 했다. 혼자 색이 다른, 태양을 닮은 불사조의 깃털에만 영생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게 정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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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불사조의 심장도 아니고 깃털 조금 얻었다고 영생이라니. 불사조가 태양의 깃털을 어떤 주기로 생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획득 난이도가 낮은 시점에서 성능이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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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는 상관없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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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사조의 깃털이 재료라서 얻으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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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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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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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야 너 은근슬쩍 자신도 포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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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우리 집에 슬며시 살림 차리는 거 아닌지 의심됐다. 돈 아낀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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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럴 거 같아서 무섭네. 이 돈에 미친 악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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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집착을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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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건. 별개로 나 여태 번 돈 전부 투자금으로 돌리는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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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한 푼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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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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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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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거야 루이나 님 저택에서 해결 중이었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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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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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빈방을 하나하나 열면서 확인하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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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몇 달 전부터 사람이 머물기라도 한 듯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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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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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우리 집에 살림을 차리는 게 아니라, 이미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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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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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처음부터지. 안 그래도 마법학교 주변 숙소는 비싼데, 돈 아깝게 그런 곳을 이용할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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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은 돈 참 잘 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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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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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뻐하는 크리스를 뒤로한 채 얘기를 처음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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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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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지 않는 짐승을 신수라 부르며 떠받드는 점에서 알 수 있겠지만, 불사조는 기본적으로 환상 속의 짐승이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기간보다 드러내지 않은 기간이 압도적으로 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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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불사조가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크리스가 가져온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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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사실이라도 불사조가 아직도 거기에 있을까는 의문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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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볼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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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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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돌은 제작도 까다로웠지만 그것보다 재료 수급이 정신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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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재료를 얻을 기회가 생길지 몰랐고, 따라서 기회가 생겼을 때 열심히 얻으려 노력을 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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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떠나는 거 같았지만, 인생이 원래 그랬다. 한곳에 머물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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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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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게 결정됐으니 얼른 밀린 일을 처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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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괴롭히는 게 밀린 일 중 하나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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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제가 언제 레온 님을 괴롭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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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련장에 엎어진 레온을 콕콕 찔렀다. 미동이 없다. 죽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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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었습니다. 애초에 조금 전까지 대화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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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벌떡 일어나 몸을 털었다. 그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마음 놓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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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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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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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은 레온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에 맞춰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직후 대련장 밖에 서 있던 적영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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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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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앞으로 달려든다. 마법사와의 싸움에서 검사가 고를 선택지는 하나였다. 거리를 좁히는 것. 상위의 경지에 도달한 검사는 검에서 마법을 쏘지만, 그 상태가 돼서도 변하지 않는 일종의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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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에서 시작된 붉은 선이 허공을 가른다. 총 72개로 나누어진 불꽃 폭격이 레온을 덮친다. 레온의 검이 흔들린다. 빠르게, 허나 가볍지는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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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가 찢어지며 그 위에 있던 모든 불꽃이 갈라진다. 모든 마법을 베어낸 레온이 재차 땅을 박찼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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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게는 그 1초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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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궁. 땅에서 나무줄기가 솟아오른다. 거인으로 바뀐 나무 거인이 주먹을 꽉 쥐고 레온을 후려쳤다. 굉장히 위협적인 공격이었으나, 레온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빙글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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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의 궤도가 틀어진다. 사량발천근. 유의 묘리를 극한으로 파고들면 얻는 검사의 무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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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하면서 느낀 건데, 레온은 상당히 까다로운 검사였다. 수많은 검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도 까다로운데 신성력과 성물 강림도 보유했으니. 어지간해선 공략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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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레온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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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레온도 감당 못 할 무한한 선택지로 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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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뿌려진 바람의 핵에 화염 그물이 연결된다. 이동 반경이 제한된 레온은 우선 화염 그물을 베어 없애려다가, 발밑에 생긴 암속성 웅덩이에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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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진 몸에 레온은 혀를 차고는 손을 위로 들었다. 번쩍. 성검이 강림한다. 빛에 어둠이 물러나고, 레온이 성검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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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레온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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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막대를 축으로 불꽃의 원이 달린다. 모터음과 비슷한 소음이 세상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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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륜(轟輪)이 해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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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갈아 마시는 불꽃 바퀴의 등장에 레온은 별빛을 그러모아 검을 휘둘렀다. 서걱. 굉륜이 반으로 무너지며 땅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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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암석의 창이 허공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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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갈라진 굉륜의 사이를 스치듯 지나간 암석의 창이 레온을 짓누른다. 레온은 파지법을 살짝 바꾸고 그대로 성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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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무게가 실린 성검이 암석의 창을 땅으로 떨군다. 구궁. 땅이 흔들린다. 성공적으로 마법을 막아낸 레온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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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이 번뜩인 건 딱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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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의 창에 가려졌던 뇌전이 앞으로 쏘아지며 힘을 해방했다. 약화됐던 시간에 비례해 위력이 증폭되는 뇌전의 뭉치. 정뢰(正雷)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뇌전의 줄기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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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신성력을 몸에 둘러 막아낸 레온은, 또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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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 레온의 움직임을 방해하려다가,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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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가면 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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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법. 레온도 감당 못 할 무한한 선택지로 찌르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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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두 번째 방법을 꺼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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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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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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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불에 손을 넣고, 그대로 불꽃을 강하게 움켜쥐며 당기듯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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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비명을 지르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을 소모해 새로운 불꽃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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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불꽃을 연료로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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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불꽃을 잡아먹고, 끝없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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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장을 밝히던 붉은 빛이 푸른 빛으로 변한다. 눈이 멀 것 같은 새파란 불꽃이 손 위에서 일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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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에 도달하며 얻어낸 내 특기 마법은 하기에 따라 에 보호받던 악신의 최고위 사제도 날려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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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대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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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위력을 조절해, 제압할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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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뢰(炎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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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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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빛기둥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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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온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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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늘을 보고 누워 있던 레온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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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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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는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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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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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곤해 보이는 레온을 콕콕 찔렀다. 고작 대련 몇 번 했다고 피곤해하다니. 이거 검사 실격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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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인 저도 괜찮은데 벌써 늘어지면 어떻게 해요. 체력이 많이 부족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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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도 이제 어엿한 연단 마법 1단계 각성자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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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레온 님이 헤이즈 님보다 강한 이유가 있네요. 상대하기 까다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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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까다로운 거 맞습니까? 가지고 놀기 좋은 게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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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웠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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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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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갑자기 왜 레온을 붙잡고 두들겨 패고 있냐고 물으면, 검사들의 기상천외한 수작을 막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는 느낌이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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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온이랑 검술 수련은 했어도 이런 훈련은 안 해봐서. 생각난 김에 해본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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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연습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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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레온이다. 헤이즈를 가볍게 이기는 검사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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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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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념을 멈추고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헤이즈가 옆에서 삐딱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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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헤이즈에게 나는 적당한 반응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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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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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쟤한테 졌다는 거야. 진짜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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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보는 앞에서 다시 승부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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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제 절대 안 해. 너 보지도 않고 스르륵 사라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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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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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도 딱히 헤이즈와의 대련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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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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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저 인간과 대련을 하고 싶지는 않군요. 어차피 뻔한 승부라 힘만 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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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 뻔한 승부. 그래서 승자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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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물어봐야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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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과 헤이즈가 서로에게 으르렁댄다. 나는 그 광경을 구경하다가, 나직이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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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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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좋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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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좋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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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이 좋다는 건데, 내가 설명을 해줄 새도 없이 헤이즈와 레온이 각각 대련장에 올라가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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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격렬하게 부딪힐 거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 상황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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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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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도 다 했으니 이제 불사조나 찾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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