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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내받은 집은 자연 친화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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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집이었는데, 이런 상태가 됐음에도 멀쩡히 나무가 살아있는 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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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단 요정족 왕국의 손님 자격으로 입국해서 그런가. 나름의 친절을 베푸는 게 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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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뭇잎을 엮어 만든 식탁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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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혹시 요정족 왕국의 특산 술 같은 걸 먹어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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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루이나 님? 나한테 그런 말을 해도 들어주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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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크리스 님에게 한 말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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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누구야. 적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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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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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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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크리스와 적영도 나랑 똑같이 천장을 바라본다.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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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누군가 스르륵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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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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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요정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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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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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지에 성공한 요정족 여자가 나를 빤히 응시한다. 그녀의 표정엔 놀라움이 서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기척을 눈치챈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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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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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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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모른다고 생각한 게 더 신기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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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령술은 완벽했다. 들킬 리가 없어. 아니면 그건가? 탐색 관련 고유 마법을 보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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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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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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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냄새가 나서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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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맛있는 냄새가 났는데, 군침이 돌자마자 나는 방에 누군가 마법을 쓰고 숨어있다는 걸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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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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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이 보유한 독자적인 마법 체계를 구경하자마자 눈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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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 그거 저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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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 그건 왜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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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거래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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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락토르 님이 요구한 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이니까. 요정족의 술을 먹어보는 것도 당연한가. 우리의 것은 뭐든지 세계 최고니.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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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주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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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났을 때처럼 스르륵 사라지는 요정족. 나는 애달프게 요정족을 불렀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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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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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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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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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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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술을 가져가야 부동의 현자가 만족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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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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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팔짱을 꼈다. 난제를 마주한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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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스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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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에서 중요한 건 결국 구매자의 수요를 파악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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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취향을 알기 전까진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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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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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취향이라는 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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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최고의 작품도,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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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술과 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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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기선 현자의 취향을 고려해 술을 고르는 게 맞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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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자를 만나 봤어야 알지. 지금 현자의 취향을 무슨 수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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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추측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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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현자 락토르. 모든 걸 알기에 그 무엇도 하지 않는 현자는 일반적인 8위계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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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일반적인 8위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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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으로 초월자가 된 아델리안 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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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로 초월자가 된 톨트피어 프로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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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투로 초월자가 된 용인족 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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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로 초월자가 된 실버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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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만 늘어놔도 알겠지만, 현 8위계는 대부분 이능을 극한으로 단련하며 초월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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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락토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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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락토르는 그 어떤 이능도 익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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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술조차 익히지 않은 락토르는 순수하게 ‘지식’만으로 초월자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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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깨달으며 8위계에 준하는 힘을 손에 넣은 락토르가 좋아할 법한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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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짐작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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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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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조차 예측 못 하는 맛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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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락토르의 취향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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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나왔어요. 이제 구현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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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상적이지 않아? 그래서 현자도 예측 못 하는 술을 어떻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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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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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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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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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본 현자의 허를 찌를 방법이 존재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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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존재하는 순간 현자는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본 게 아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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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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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모순을 돌파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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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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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어려운 시험을 낸 거야 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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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그냥 맛있는 술이나 가져가면 되는 시험을 주인님이 어렵게 꼬는 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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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영은 조용히 하세요. 술을 먹어본 적도 없는 핏덩이가 뭘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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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어린 애들이 문제다.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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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그런 단순한 문제를 냈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어린애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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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현자가 쓸데없는 시험을 내며 사람들을 불렀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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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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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골치 아픈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시험 문제를 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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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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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술을 진상해야 현자가 만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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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으로 만든 술은 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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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처음부터 발상이 너무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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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을 녹여 만든 술은 생각해 보니 저도 먹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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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솔직히 이미지 때문에 비싼 거지 맛은 영 별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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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답에 나는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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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떠오를 거 같으면서 안 떠올라 속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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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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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당장 옷 벗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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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목욕하자는 거 맞지? 근데 루이나 님이랑 목욕 오랜만에 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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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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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야 노숙을 많이 했으니 크리스가 나를 졸라서라도 목욕을 했었는데, 요즘은 정해진 거점이 있어서. 굳이 같이 목욕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에서 각자 알아서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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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원소 적성을 보유한 나는 용기에 물을 담는 과정조차 필요 없었다. 물을 허공에 고정하고, 그다음 화염 원소를 사용해 물을 최적의 온도로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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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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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에 몸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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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감각이 찾아온다. 나는 기분 좋은 한숨을 뱉은 다음 몸을 기대려다가, 욕조를 만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급히 주위에 나무 원소로 등 받침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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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사람들이 욕조를 만드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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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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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어떤가요. 목욕을 하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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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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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나 솔직한 걸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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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답 없어. 포기하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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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도움이 안 되는 크리스를 물속에 빠트렸다. 이 돈 계산 외에는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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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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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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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아까 은신 중이던 여성 요정족이었는데, 녀석의 손에는 나무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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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한 대로 요정족의 술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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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목욕 중에 술을 먹는 게 최고인데,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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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니 됐다. 마셔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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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정족이 건넨 나무통을 개봉해 안에 든 술을 마셔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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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이슬을 먹은 듯한 상쾌한 맛과 깨끗한 목 넘김이 나를 자극했다. 확실히 세계 최고라고 자신할 법한 퀄리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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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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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이다. 유리 나무의 나뭇잎에 맺힌 이슬을 모아서 만드는 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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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현자님도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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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 님과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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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요. 어차피 이 정도는 상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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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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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 현자의 존재감이 요정족 사이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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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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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캐내는 걸 포기한 나는 새벽이슬을 홀짝이며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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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법이라도 알려주세요. 정령술에 흥미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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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요정족의 손님이지만, 손님이라고 그렇게까지 해줄 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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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를 해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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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원하는 건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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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은 기본적으로 가진 게 많았다. 풍족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원하는 것도 적었고, 설사 있다 해도 남들이 들어주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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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저 요정족의 반응은 지극히 타당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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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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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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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을 탐험하고 싶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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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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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허공에 불꽃을 소환한 요정족이 나를 노려본다. 불꽃이 꺄르륵 웃음을 터트린다. 정령술을 처음 목격한 내가 신기한 표정을 짓자 요정족이 으르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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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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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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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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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저한테 잘해주시잖아요. 그러면 이득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물론 노린 건 아니겠지만, 무의식중에 손익을 계산한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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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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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에겐 없고 저에겐 있는 것. 그건 하나밖에 없잖아요. 행동의 자유.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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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요정족이 입을 닫았다.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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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맞힌 자에겐 보상이 주어져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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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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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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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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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린 님. 저를 믿으시면 당신에게 모험을 선사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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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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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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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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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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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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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방구석 모험에 흥미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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