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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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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내받은 집은 자연 친화적인 곳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집이었는데, 이런 상태가 됐음에도 멀쩡히 나무가 살아있는 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다.

그래도 일단 요정족 왕국의 손님 자격으로 입국해서 그런가. 나름의 친절을 베푸는 게 티가 났다.

나는 나뭇잎을 엮어 만든 식탁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혹시 요정족 왕국의 특산 술 같은 걸 먹어볼 수 있나요?”

“응? 루이나 님? 나한테 그런 말을 해도 들어주기 힘든데?”

“아뇨. 크리스 님에게 한 말이 아니에요.”

“그럼 누구야. 적영이야?”

[주인님. 나야?]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크리스와 적영도 나랑 똑같이 천장을 바라본다. 직후.

천장에서 누군가 스르륵 떨어졌다.

크리스가 소리쳤다.

“하늘에서 요정족이 떨어진다!”

[꺄아아아악!]

착지에 성공한 요정족 여자가 나를 빤히 응시한다. 그녀의 표정엔 놀라움이 서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기척을 눈치챈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요정족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오히려 모른다고 생각한 게 더 신기한데요.”

“내 정령술은 완벽했다. 들킬 리가 없어. 아니면 그건가? 탐색 관련 고유 마법을 보유했나?”

“그건 아닌데요.”

“그럼 뭐지?”

“마법 냄새가 나서 알았어요.”

정확히는 맛있는 냄새가 났는데, 군침이 돌자마자 나는 방에 누군가 마법을 쓰고 숨어있다는 걸 알아챘다.

정령술.

요정족이 보유한 독자적인 마법 체계를 구경하자마자 눈이 돌아갔다.

“정령술 그거 저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술이라. 그건 왜 찾지?”

“아니면 거래해도 돼요.”

“하긴. 락토르 님이 요구한 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이니까. 요정족의 술을 먹어보는 것도 당연한가. 우리의 것은 뭐든지 세계 최고니. 기다려라.”

“마법 주고 가!”

나타났을 때처럼 스르륵 사라지는 요정족. 나는 애달프게 요정족을 불렀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크리스 님.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보세요.”

“무슨 아이디어?”

“무슨 술을 가져가야 부동의 현자가 만족할까요?”

“으음.”

크리스가 팔짱을 꼈다. 난제를 마주한 사람처럼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스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장사에서 중요한 건 결국 구매자의 수요를 파악하는 일이야.”

“현자의 취향을 알기 전까진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군요.”

“바로 그거야.”

세상엔 취향이라는 게 존재했다.

누군가에겐 최고의 작품도,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뿐이다.

최고의 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술과 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기선 현자의 취향을 고려해 술을 고르는 게 맞았으나.

내가 현자를 만나 봤어야 알지. 지금 현자의 취향을 무슨 수로 알아.

뭐, 그래도 추측은 됐다.

부동의 현자 락토르. 모든 걸 알기에 그 무엇도 하지 않는 현자는 일반적인 8위계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우선 일반적인 8위계를 살펴보자.

마법으로 초월자가 된 아델리안 크로프트.

연금술로 초월자가 된 톨트피어 프로센.

무투로 초월자가 된 용인족 천백

검술로 초월자가 된 실버즈라.

목록만 늘어놔도 알겠지만, 현 8위계는 대부분 이능을 극한으로 단련하며 초월자가 됐다.

그러나 락토르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락토르는 그 어떤 이능도 익히지 않았다.

정령술조차 익히지 않은 락토르는 순수하게 ‘지식’만으로 초월자가 됐는데….

만물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깨달으며 8위계에 준하는 힘을 손에 넣은 락토르가 좋아할 법한 무언가.

슬슬 짐작되지 않나?

맞다.

락토르조차 예측 못 하는 맛의 술.

그게 락토르의 취향이 분명했다.

“정답은 나왔어요. 이제 구현만 하면 돼요.”

“너무 추상적이지 않아? 그래서 현자도 예측 못 하는 술을 어떻게 만들어.”

“그건.”

“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애초에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본 현자의 허를 찌를 방법이 존재하긴 해?

그게 존재하는 순간 현자는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본 게 아니지 않아?

모순이잖아.

즉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모순을 돌파해야 됐다.

진짜 어렵네.

왜 이런 어려운 시험을 낸 거야 현자는.

[주인님. 그냥 맛있는 술이나 가져가면 되는 시험을 주인님이 어렵게 꼬는 중 아닐까?]

“적영은 조용히 하세요. 술을 먹어본 적도 없는 핏덩이가 뭘 아나요.”

이래서 어린 애들이 문제다.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현자가 그런 단순한 문제를 냈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어린애의 그것이었다.

그럼 지금 현자가 쓸데없는 시험을 내며 사람들을 불렀다는 거야?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분명 골치 아픈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시험 문제를 낸 거였다.

하여간.

그래서 어떤 술을 진상해야 현자가 만족할까.

“독…으로 만든 술은 있을 거 같네요.”

“루이나 님. 처음부터 발상이 너무 위험해.”

“성은…을 녹여 만든 술은 생각해 보니 저도 먹어봤네요.”

“그거 솔직히 이미지 때문에 비싼 거지 맛은 영 별로더라.”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답에 나는 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쳤다.

무언가 떠오를 거 같으면서 안 떠올라 속이 답답했다.

안 되겠다.

“크리스 님. 당장 옷 벗으세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목욕하자는 거 맞지? 근데 루이나 님이랑 목욕 오랜만에 하는 거 같다?”

“그러게요.”

예전이야 노숙을 많이 했으니 크리스가 나를 졸라서라도 목욕을 했었는데, 요즘은 정해진 거점이 있어서. 굳이 같이 목욕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에서 각자 알아서 하면 되니까.

물 원소 적성을 보유한 나는 용기에 물을 담는 과정조차 필요 없었다. 물을 허공에 고정하고, 그다음 화염 원소를 사용해 물을 최적의 온도로 맞췄다.

목욕 준비 완료.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에 몸을 집어넣었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감각이 찾아온다. 나는 기분 좋은 한숨을 뱉은 다음 몸을 기대려다가, 욕조를 만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급히 주위에 나무 원소로 등 받침대를 만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욕조를 만드는 거구나.

새로 배웠다.

“크리스 님. 어떤가요. 목욕을 하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나요?”

“솔직히 말해?”

“저는 언제나 솔직한 걸 원해요.”

“이거 답 없어. 포기하고 집에 가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크리스를 물속에 빠트렸다. 이 돈 계산 외에는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뭐 하는 거지?”

그리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범인은 아까 은신 중이던 여성 요정족이었는데, 녀석의 손에는 나무통이 들려 있었다.

부탁한 대로 요정족의 술을 가져온 것이다.

“마침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목욕 중에 술을 먹는 게 최고인데,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그…아니 됐다. 마셔봐라.”

나는 요정족이 건넨 나무통을 개봉해 안에 든 술을 마셔봤다.

새벽의 이슬을 먹은 듯한 상쾌한 맛과 깨끗한 목 넘김이 나를 자극했다. 확실히 세계 최고라고 자신할 법한 퀄리티였다.

“맛있네요.”

“‘새벽이슬’이다. 유리 나무의 나뭇잎에 맺힌 이슬을 모아서 만드는 술이지.”

“이걸 현자님도 좋아하나요?”

“락토르 님과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

“그러지 말고요. 어차피 이 정도는 상관 없잖아요.”

“안 된다.”

요정족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 현자의 존재감이 요정족 사이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어쩔 수 없나.

정보를 캐내는 걸 포기한 나는 새벽이슬을 홀짝이며 입술을 뗐다.

“그럼 마법이라도 알려주세요. 정령술에 흥미가 많아요.”

“너는 요정족의 손님이지만, 손님이라고 그렇게까지 해줄 의무는 없다.”

“거래를 해요 그러면.”

“인간에게 원하는 건 없다만.”

요정족은 기본적으로 가진 게 많았다. 풍족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원하는 것도 적었고, 설사 있다 해도 남들이 들어주기 어려웠다.

따라서 저 요정족의 반응은 지극히 타당했으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나는 달랐다.

“세상 곳곳을 탐험하고 싶으시죠?”

“너.”

화륵. 허공에 불꽃을 소환한 요정족이 나를 노려본다. 불꽃이 꺄르륵 웃음을 터트린다. 정령술을 처음 목격한 내가 신기한 표정을 짓자 요정족이 으르렁댔다.

“뭐하는 녀석이야.”

“루이나예요.”

“뭘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묘하게 저한테 잘해주시잖아요. 그러면 이득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물론 노린 건 아니겠지만, 무의식중에 손익을 계산한 거 아니에요?”

“…….”

“요정족에겐 없고 저에겐 있는 것. 그건 하나밖에 없잖아요. 행동의 자유. 맞죠?”

내 말에 요정족이 입을 닫았다.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정답을 맞힌 자에겐 보상이 주어져야 됐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에이린이다.”

“에이린 님. 저를 믿으시면 당신에게 모험을 선사해 드릴게요.”

“무슨 수로?”

무슨 수긴.

다 방법이 있다.

“에이린 님.”

“뭐냐.”

“혹시 방구석 모험에 흥미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