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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사교계는 마족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실제로도 몇 번 검거 됐었는데, 때문에 이 세계의 사교계에선 유독 물을 흐리는 사람을 ‘마족에게 홀렸다’라며 욕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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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는 닫힌 세계다. 자기들만의 논리로, 자기들의 규칙을 지키며 사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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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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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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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닫힌 사교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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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는 이권이 따라온다. 원시 인류가 리더를 정했을 때부터 계속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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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교계를 운영하는 귀족들은 이 세계 권력의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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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라 하면 직관적으로 안 와닿을 수 있으니 권력자들의 커뮤니티라 바꾸어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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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이 서로 비밀스러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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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 싶다면, 권력을 쥐고 싶다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벼야 됐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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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래도 사교계 정도면 닫힌 커뮤니티 중에선 열려 있는 편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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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프라이빗 소셜 클럽들은 완전 회원제에 외부인은 아예 출입도 안 시켰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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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교계? 늙은 사내들끼리만 모여서 얘기하면 재미없으니 데뷔탕트로 영애들을 매년 꾸준히 유입시키는 곳이다. 외부인에게 비교적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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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업적을 세웠다던가, 아니면 재미있는 모험을 했다던가, 아니면 재미있는 사람이면 사교계에 잠깐이라도 초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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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완전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우선 항해를 시작해 대모험을 한 후 그걸 바탕으로 귀족과 우호 관계를 쌓았는데, 너무 널리 알려진 루트라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게 웃긴 점이라면 웃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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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까지 들으면 알겠지만, 결국 사교계에 진입하는 방법은 두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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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저를 물고 태어나기. 그냥 태생이 귀족이면 사교계에 ‘입장’ 자체는 시켜줬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어서 그 뒤로 안 부를 수는 있어도, 최초의 한 번은 무조건 끼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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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명해지기. 유명해져서 가십의 중심이 된다? 그 순간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귀족들이 부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사교계 진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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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의 난이도 차이가 너무 높지 않나 싶겠지만, 원래 세상이 그랬다. 타고나는 거에 따라 대부분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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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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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둘 중 어떤 방법으로 사교계에 진입해야 되냐면, 뭐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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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유명 인사였다. 성배 퀘스트, 반란군 제압, 악신의 교단 저지, 자의식과잉이 아니라 가감 없이 담백하게 요즘 가장 유명한 사람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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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 퀘스트까지 갈 것도 없다. 악신의 교단을 때려잡은 얘기만 해줘도 사람들이 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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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나는 귀족이기도 했다. 심지어 영지가 딸린 계승 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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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회적으로 굉장히 높은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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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승 귀족이 아닌 것부터 심상치 않은데, 영지? 그 시점에서 허울뿐인 몰락 귀족들은 어떤 작위건 전부 내 밑에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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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사교계에 참가할 수 있는 위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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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내 목적도 생각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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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족을 찾는 거였다.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해 이목을 끄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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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이목을 끄는 걸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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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이목을 끌어서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차분히 관찰할 기회가 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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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마족 탐색이 목적이라면 사교계에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됐는데, 이걸 원한다면 평범한 방법으로 사교계에 진입하는 게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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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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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입장으로 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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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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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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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닉스에서 내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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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시골에 처박힌 영지 아니랄까 봐. 외지인을 배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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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저건 외지인 배척이 아니라, 하늘에서 피닉스를 타고 내려와서 놀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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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런 거에 놀라는 게 문제예요. 마법 보급이 덜 됐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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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게 대꾸하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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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밀밭…은 아니고, 평범한 크기의 밀밭을 지나치자 전형적인 시골 영지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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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사람이 지나다니고, 적당히 외부인이 있고, 적당히 활기가 돌지만, 엄밀히 따지면 한산한 게 맞는 영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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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어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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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은 가끔 무서운 소리를 한다니까. 혹시 이러다 사람이 싫다고 세상을 불태우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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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마법을 만들어줄 마법사도 다 불타잖아요. 제가 그런 짓을 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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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불태우다니.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내가 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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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이 보여준 탐욕의 미로에서는 세상을 몇 개 멸망시켰었지만, 그건 환상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그럴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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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마법이 없는 세계도 아니고 마법이 멀쩡히 존재하는 세계인데, 이런 곳을 불태우는 건 내가 미쳐서 정신이 나가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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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더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마법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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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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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크리스 님이 사람을 금화로 봐서 그래요. 그러니 저라는 사람도 잘못 파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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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사람을 금화로 봤어. 루이나 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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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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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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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의 눈물 버튼을 누르고 성읍을 가로질러 영주성에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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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영주성은 시골 영지의 영주성답게 수수했다. 황도의 성과 비교하면 거의 낙서와 미술 작품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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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워낙 관리가 잘 돼서 보기 나쁘진 않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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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황제의 성과 비교하면 세상에 낙서가 아닌 게 몇이나 된다고. 비교 자체가 가혹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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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주성 입구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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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경비원이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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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신원을 밝히려다가, 경비원의 다음 말에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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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으신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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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무슨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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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가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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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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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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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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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루이나. …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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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을 확인하던 경비원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입을 멍하니 벌리며 내 얼굴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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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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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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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엘피니엘 남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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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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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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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이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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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 거인을 소환해 강제로 문을 열고 영주성 안으로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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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은 굉장히 깔끔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성으로 가득 차 거기서 생기는 미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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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지의 전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센스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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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피 중세랜드에 피어난 미니멀리즘을 즐기던 나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음에 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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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엘 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영지를 맡아서 관리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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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호엘 님의 영지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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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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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음이 들린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잘 관리된 정원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는데, 그중 한 남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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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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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엘 님이 초대하신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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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여자 초대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이봐. 누군데 함부로 영주성에 들어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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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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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에게, 영주 대리인 호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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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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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대체 누군데, 제 성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계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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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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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엘의 얼굴이 하얘졌다. 원래도 피부가 하얬는데, 거기서 더 하얘져서 이제는 거의 귀신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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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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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를 보자마자 ‘누가 매춘부를 불렀어’라고 소리치진 않았으니까요. 최악은 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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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엘피니엘 남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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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엘이 말을 더듬는다. 지금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는 걸 도저히 믿기 싫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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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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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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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별개로 사실 나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술파티를 벌이는 게 뭐 대수라고. 오히려 거슬린다면 벌꿀주가 아니라 와인을 마시는 게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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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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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영주 대리인이면 제 얼굴은 외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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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 외모가 은발 녹안이라는 건 알아야 정상인데, 반응을 보면 그것도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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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를 좋아하는 건 괜찮아도 일을 못 하는 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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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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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엘 님이라면 저를 대신해서 엘피니엘 남작령을 부강하게 만들어 줄 줄 알았는데, 실망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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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루이나 님은 호엘 님을 만나보기는커녕 남작령 자체에 처음 와봤잖아. 그런데 어떻게 믿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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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가 임시로 쓰라고 내려준 대리인이잖아요. 당연히 일을 잘할 줄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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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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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전령관이 임시 대리인을 해고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라는 조언을 한 게 아니었다. 역시 사람들의 조언엔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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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벌 떠는 호엘을 훑다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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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모두 움찔거렸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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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끝났어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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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엘 너는 나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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